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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4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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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kjwon54@gmail.com
  • -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 [곽재원의 Now&Future] 케인즈·슘페터·드러커의 삼각형… 하준경 정책실장에게 주어진 세가지 과제

    프랑스의 거리가 다시 시끄럽다. 교육여건과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교육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 국채금리 상승, 정치적 분열과 정부 불신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국민은 더 나은 교육과 복지, 일자리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회복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국가가 약속한 것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프랑스의 혼란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5극3특 국가균형발전, 첨단산업 육성과 민생안정이라는 야심 찬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와 적극재정을 기반으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국민의 평가는 비전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국정지지율 하락과 정치적 갈등은 장기 성장전략과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경제 사이의 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성장수석으로 일해 온 경제학자 하준경을 경제사회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실장으로 발탁했다. 이번 인사는 참모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복합 난제를 어떤 경제철학과 정책운영 방식으로 풀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준경은 경제성장과 기술혁신, 금융과 산업구조의 관계를 연구해 온 경제학자다. 그의 과제를 이해하는 데는 세 명의 사상가가 유용한 좌표가 된다. 경제의 불안정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존 메이너드 케인즈,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말한 조지프 슘페터, 조직의 목표와 실행능력을 중시한 피터 드러커다. 첫째, 케인즈의 관점에서 생활경제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대공황은 시장이 스스로 완전고용과 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부족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정부가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경제가 불안정할 때 정부가 수요와 고용을 안정시켜 민간경제가 회복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한국은 대공황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성장의 성과가 국민에게 고르게 전달되지 않는 문제는 여전하다. 반도체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올라도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줄지 않는다면, 거시지표와 가계의 체감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정책실장이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곳이 바로 이 간격이다. 주거안정, 청년고용, 서민금융을 개별 복지사업이 아니라 경제의 활력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성장정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주거비 부담은 청년의 소비와 결혼, 출산,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가계부채는 경제 전체의 소비여력을 제약한다. 민생안정은 성장 이후의 부차적 과제가 아니라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케인즈의 이름으로 무제한의 재정확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프랑스의 교훈은 오히려 그 반대다. 재정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정부가 국민을 지원할 능력 자체가 약해진다. 반도체는 경기순환이 큰 산업이어서, 호황기 세수를 영구적 수입으로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첫 번째 과제는 민생안정과 재정규율을 대립시키지 않는 데 있다. 적극재정일수록 무엇을 위해 얼마를 쓰고 어떤 성과를 얻을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 슘페터의 관점에서 성장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케인즈가 자본주의의 불안정을 설명했다면,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지를 설명했다. 경제발전은 기존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가가 새로운 기술과 제품, 생산방식, 시장과 조직을 결합하면서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뀌는 과정이다. AI 대전환은 창조적 파괴의 거대한 실험장이다.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틱 AI,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기술혁신은 생산방식뿐 아니라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국가 간 경쟁질서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GPU, 반도체, 로봇에 막대한 투자를 추진하는 이유다. 그러나 질문이 남는다. AI 인프라를 많이 구축하면 AI 강국이 되는가. 미국의 하이퍼 스케일러와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소프트웨어·클라우드·AI 모델·전력과 네트워크를 잇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프라를 소유한 기업이 기술표준과 서비스의 흐름까지 좌우하는 경쟁이다. 한국이 데이터센터 건설과 GPU 확보에만 집중한다면 해외 플랫폼에 막대한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조에 머물 수 있다. 글로벌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위에서 한국 기업이 얼마나 독자적인 기술과 서비스,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이 슘페터적 산업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설비투자의 규모가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새로운 기업이 얼마나 등장했는지, 기술사업화와 산업 간 융합이 얼마나 활발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의 제조 경쟁력이 곧바로 AI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과거의 성공 경험이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기도 한다. 대·중소기업 간 기술격차, 창업과 인수합병의 제약, 연구성과가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는 새 산업의 육성과 함께 기존 산업의 변화와 퇴출을 수반한다. 혁신정책은 보조금과 투자확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쟁을 촉진하고 실패한 기업의 자원이 새로운 도전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정부의 일은 모든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드러커의 관점에서 국가의 실행능력을 혁신하는 일이다. 드러커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성과에서 찾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달성했느냐였다. 한국 정부는 거대한 국가전략을 세우고 예산을 배분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여러 부처에 걸친 정책을 하나의 성과로 묶어내는 데는 서툴다. AI 정책만 해도 과학기술·산업·에너지·교육·국토·금융정책이 얽혀 있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전력과 용수, 입지 문제가 풀려야 하고, AI를 산업현장에 적용하려면 전문인력과 소프트웨어, 기업의 조직혁신이 필요하다. 정책실장은 부처 사업을 취합하거나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가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부처 간 이해충돌을 조정하며, 실행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예산집행률을 정책성과와 혼동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산을 다 썼다고 사업이 성공한 것이 아니고, 데이터센터를 지었다고 AI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아니며, 청년고용 예산을 늘렸다고 양질의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정책은 투입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돼야 한다. 대형 프로젝트마다 목표와 책임자, 일정과 성과지표를 명확히 하고, 일정 기간 뒤 성과를 검증해 부족한 사업은 수정하거나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효율화가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근거를 만드는 일이다.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출발점은 당장의 민생불안을 완화하고 재정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동시에 AI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장기적 생산성 혁신을 추진하고, 이 둘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실행체계의 개혁을 처음부터 병행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민은 오늘의 생활개선을 요구하지만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개혁은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린다. 단기 성과를 보여주면서도 장기 투자를 포기할 수 없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적 리더십과 정책 조정능력이 시험받는다. 2027년 예산은 그 선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다. AI 대전환과 지역균형발전, 민생지원을 모두 같은 속도와 규모로 추진할 수는 없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조정할지, 경기와 세수 여건이 달라지면 어떤 대안을 택할지까지 준비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시위는 사회갈등이 재정적 제약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이 정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부담이 공정하게 나뉜다고 느끼지 못하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개혁도 실행되기 어렵다. AI 전환에 따른 일자리 변화, 교육개혁, 연금과 재정의 세대 간 부담,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풀려면 정부와 기업, 노동계, 청년세대, 지역사회 사이의 대화가 필요하다. 정책실장은 경제정책의 조정자이자 사회적 합의의 촉진자여야 한다. 성장국가에서 실행국가로 한국은 오랫동안 성장국가의 논리로 성공했다. 정부가 산업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투자하며 국민이 노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AI 대전환과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겹친 지금은 과거의 성공방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장국가를 넘어 실행국가로 진화하는 일이다. 얼마나 거대한 비전을 발표했느냐보다 그것을 얼마나 실현했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케인즈는 오늘의 불안을 완화하는 지혜를, 슘페터는 내일의 성장동력을 만드는 원리를, 드러커는 두 목표를 실제 성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세 사람의 사상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다. 물론 이를 하나의 국가운영 철학으로 결합하는 일은 경제학자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결단과 국회의 협력, 관료조직의 실행력, 기업의 혁신과 국민의 신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케인즈의 안정, 슘페터의 혁신, 드러커의 실행. 이 삼각형의 중심에 놓여야 할 것은 결국 국민의 삶이다. 하준경 정책실장의 진정한 과제는 세 사상가의 이론을 조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을 거대한 약속의 국가에서 약속을 실현하는 국가로 바꾸는 데 있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케인즈·슘페터·드러커의 삼각형… 하준경 정책실장에게 주어진 세가지 과제
  • [곽재원의 Now&Future] 산업통상 관료들의 2026년 가을

    한국의 10월은 시끄럽다.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정부 부처마다 긴장이 감돈다. 장관과 기관장들이 국회에 불려 나가고, 지난 1년의 정책과 예산을 놓고 여야의 질문이 쏟아진다. 공무원들은 밤늦도록 답변 자료를 만들고 숫자를 맞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국정감사가 지나가면 곧바로 예산 정국이다. 정부가 제출한 이듬해 예산안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법정 시한인 12월 2일 본회의 의결을 향해 간다. 국정감사와 예산심사가 맞물리는 10월부터 12월 초까지, 부처의 가을은 사실상 ‘60일 전투’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 특히 산업통상 관료들에게 2026년 가을은 예년과 다르다. 문득 일본 작가 시로야마 사부로(城山三郎)의 소설 <관료들의 여름>이 떠오른다. 197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고도성장기 일본 통산성 관료들을 그렸다. 자동차와 전자, 철강과 석유화학 같은 새 산업이 커가던 시절이었다. 어떤 산업을 키우고, 외국 자본에 어떻게 대응하며,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 관료들은 정치권·재계와, 때로는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다퉜다. 그들 손에 들린 것은 행정서류였지만, 실제로 그들이 그리고 있던 것은 일본 산업의 미래 지도였다. 반세기가 흘러 이제 무대는 한국이다. 반세기 전 일본에 ‘통산 관료들의 여름’이 있었다면, 2026년 한국에는 ‘산업통상 관료들의 가을’이 있다. 산업정책이 돌아왔다 이 이야기가 관료사회의 고생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세계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선진국 경제정책에서 ‘산업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산업은 시장이 고르고, 정부는 경쟁 환경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 코로나19가 드러낸 공급망의 취약성,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반도체 전쟁, 그리고 AI 혁명이 한꺼번에 겹쳤다. 반도체를 어느 나라에서 생산하는가, 배터리 공급망을 누가 쥐는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어디서 끌어오는가가 경제 문제인 동시에 국가안보 문제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흐름을 ‘산업정책의 귀환’으로 규정한다. 2023년 한 해에만 세계적으로 2500건이 넘는 산업정책 개입이 집계됐고, 미국·중국·유럽연합이 신규 조치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정책 목표도 기업 경쟁력 강화를 넘어 기후 대응, 공급망 회복력, 경제안보로 넓어지고 있다. IMF는 2020년 전후를 구조적 전환점으로 보는데, 이후의 산업정책은 지정학적 경쟁의 성격을 한층 강하게 띤다. 세계는 바야흐로 ‘글로벌 신산업정책의 시대’에 들어섰다. 과거의 산업정책이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었다면, 신산업정책은 기술과 산업, 통상과 안보, 에너지와 지역, 인재와 자본을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는다. 반도체 정책이 곧 공급망 정책이고, AI 정책이 곧 전력 정책이며, 데이터센터 정책이 곧 지역 정책이다. 산업정책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 세 개의 거대한 실험을 동시에 시작한 한국 이런 변화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야심 찬 국가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띄웠다. AI를 새 성장동력으로 삼는 AI 대전환, 수도권 일극 체제를 바꾸겠다는 5극3특 구상, 그리고 이를 지역의 산업과 일자리로 구체화할 3대 메가프로젝트다. 이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해내기도 쉽지 않다. AI 대전환은 반도체·데이터·GPU·전력·인재·제조업을 한 줄로 꿰어야 한다. 5극3특은 산업입지와 기업투자, 대학과 연구개발, 교통망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역 성장은 중앙정부 예산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지방정부와 기업이 움직이고 사람이 옮겨 와야 한다. 그리고 세 프로젝트가 만나는 교차로에 산업통상 행정이 있다. 산업통상부의 2026년 예산만 보아도 방향은 뚜렷하다. 산업 전반의 AX 확산에 1조1347억원, 5극3특 균형성장에 8835억원이 편성됐다. AI 팩토리, 지역혁신클러스터, 산업단지, RE100 산단, 공급망 안정이 한 부처의 정책 영역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사업의 개수가 아니다. 세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진짜 위험은 세 전략이 서로 다른 정책으로 따로 굴러가는 것이다. AI 따로, 지역 따로, 산업단지 따로, 에너지 따로, 인재 양성 따로 움직이면 아무리 큰 예산을 쏟아부어도 국가의 힘은 흩어진다. 산업통상 관료들에게 이번 가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산을 따는 관료에서 국가를 설계하는 관료로 그렇다면 이들에게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가. 가장 쉬운 주문은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무책임한 주문이기도 하다. 이미 밤을 새우는 사람에게 한 시간 더 일하라고 해서 산업경쟁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의 증가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다. 첫째, 사업이 아니라 미션으로 일해야 한다. AI 팩토리 몇 개, 산업단지 몇 곳, 지역 R&D 몇 건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지역을 AI 제조혁신의 세계적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반도체와 AI, 전력과 산업단지, 대학과 기업, 중앙과 지방의 사업을 모두 그 목표 아래 묶어야 한다. 둘째, 산업부가 모든 것을 직접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신산업정책 시대의 핵심 역량은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연결하는 능력이다. 과학기술·국토·재정 부처, 지방정부, 기업, 대학을 하나의 판 위에 올려야 한다. 산업통상 관료는 정책의 생산자에서 국가 프로젝트의 오케스트레이터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거대한 청사진 못지않게 작은 성공을 쌓아야 한다. 5극3특의 성패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AI 대전환도 몇 년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과 기업이 기다려 줄 수 있으려면 중간중간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다. 어느 지역 산업단지가 AI 팩토리로 바뀌었고, 어느 지방도시에 AI 기업과 연구인력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어느 제조기업이 AI 도입으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소식이 하나씩 쌓여야 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결국 2026년 산업통상 관료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을 하나 더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흩어진 정책 열 개를 하나의 결과로 묶어내는 능력이다. 산업정책의 귀환은 관료 역량의 시험대 경계할 점도 있다. 산업정책이 돌아왔다고 해서 정부가 언제나 시장보다 현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IMF 역시 산업정책의 효과는 설계와 집행에 따라 크게 갈리며, 재정 부담과 자원배분 왜곡, 국가 간 보조금 경쟁이라는 위험이 따른다고 경고한다. 산업정책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신산업정책 시대에는 관료의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지원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어느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삼고 어느 기술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수도권과 지역을 어떻게 잇고, 기업의 요구와 국민의 세금 사이에서 어디까지 지원할 것인가. 이 판단은 결국 사람이 내려야 한다. AI 시대라 해도 국가전략의 마지막 결정을 AI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좋은 산업정책과 나쁜 산업정책을 가르는 것은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역량인 경우가 많다. <관료들의 여름>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가을이 지나간 뒤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한국 사회는 관료에게 유난히 엄격하다. 정책이 실패하면 무능을 질책하고, 규제가 생기면 관료주의를 비판한다. 부처 칸막이와 복지부동, 책임 회피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필요한 비판이다. 그러나 한번쯤 되물을 필요도 있다. 우리는 국가적 난제를 맡겨 놓은 사람들에게 책임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숫자를 고치고 설명자료를 만들고 국회를 뛰어다니다 보면 10월이 가고 11월이 가고 어느새 12월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루는 것은 예산서의 숫자만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산업을 심을지, AI 시대에 한국 제조업을 어디로 이끌지, 반도체와 배터리와 에너지의 공급망을 어떻게 지킬지, 수도권과 지역을 어떻게 다시 이을지가 그 숫자 속에 들어 있다. 더 크게 보면, 글로벌 신산업정책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할 자리가 그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미국도, 중국도, 유럽도 국가의 산업역량을 다시 동원하고 있다. 이 시대에 한국에 필요한 것은 시장을 대신하는 국가가 아니다. 시장과 기업이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필요한 곳에서 위험을 나누며, 성공하면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유능한 국가다. 그 국가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관료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길고 힘들 것이다. 국정감사와 예산심의가 끝난다고 그들의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진짜 실행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질책과 주문만이 아니라 격려의 말도 보내고 싶다. 숫자 뒤에 산업을 보고, 산업 뒤에 지역을 보고, 지역 뒤에 사람을 보기 바란다. 부처의 사업을 지키는 관료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관료가 되어 주기 바란다. 우리 사회도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실패에는 책임을 묻되 도전에는 기회를 주고,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되 제대로 된 성과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훗날 한국 산업사를 돌아볼 때 2026년 가을이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다시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 가을, 그리고 그 최전선에서 뛰었던 산업통상 관료들의 가을이었다고.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산업통상 관료들의 2026년 가을
  • [곽재원의 Now&Future] 풍요로운 기술… 불안한 인간

    요즘 세계를 보며 자주 떠올리는 역설이 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과 기술, 자본을 손에 쥐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미래를 더 불안해하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반도체 연산능력은 높아지고 데이터센터에는 천문학적 자본이 몰린다. 우주와 바이오, 로봇 분야에서도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혁신이 잇따르고 있다. 적어도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미래는 어느 시대보다 밝아 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집값과 임대료,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한다. 지금의 좋은 직장이 앞으로도 좋은 직장일지 확신하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무역과 공급망에는 정치와 안보가 깊숙이 개입한다. 스마트폰을 열면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지만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조작인지 가려내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가 10월호에서 '디지털 공간의 야만'과 '인플레·정치·전쟁'이라는 두 특집을 나란히 실은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하나는 디지털, 하나는 경제와 안보를 다룬 전혀 다른 주제 같지만 그 밑바닥에는 같은 시대감정이 흐른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2026년을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불안인지 모른다. 결핍보다 무서운 것 20세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결핍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자본과 기술, 정보가 모두 부족했다. 그래서 경제발전의 목표도 비교적 분명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공급하고, 더 많은 사람이 교육과 정보에 닿게 하면 됐다. 성장은 결핍을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고, 그 공식은 수십 년간 비교적 잘 작동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세계는 공급망으로 촘촘히 연결됐지만 전쟁이나 정치적 갈등 하나가 반도체와 에너지, 식량의 흐름을 흔든다. 금융시장에는 막대한 자금이 있지만 그 향방은 점점 예측하기 어렵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와 재정을 움직여도 물가와 자산가격이 의도대로 반응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AI라는 새로운 지능까지 만들어냈다. 기술은 풍부해졌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통제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시대를 읽는 핵심 키워드가 '결핍의 불안'에서 '통제 불가능성의 불안'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비상사태가 일상이 되다 과거의 위기는 대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오일 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위기가 터지면 정부와 중앙은행이 비상대책을 내놓고 경제를 정상궤도로 되돌리는 것이 정책의 기본 역할이었다. 위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팬데믹에 이어 전쟁이 터졌고, 전쟁은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흔들었으며, 공급망 불안과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미중 전략경쟁은 반도체와 핵심광물, 배터리와 AI를 경제재가 아닌 전략 자산으로 바꿔놓았고, 한동안 잊혔던 관세와 보호무역도 되살아났다. IMF(국제통화기금)가 2026년 세계경제를 '전쟁과 기술의 교차로' 속에 있다고 진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 투자가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사이, 지정학과 무역갈등은 반대 방향에서 세계 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다. 하나의 위기가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겹치며 다음 위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쩌면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 '비상사태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변화는 정치에도 무거운 부담을 지운다. 정부는 물가·주택·경기·산업 대책을 쉼 없이 내놓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그만큼 크지 않다. 정책은 늘어나는데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내 생활은 나아지고 있는가." 불안의 수익화 여기에 과거에 없던 거대한 공간이 더해졌다. 디지털 공간이다. 과거에는 언론이나 권력기관이 정보를 전달했다면, 이제 SNS는 개인 한 사람에게도 수백만 명에게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을 준다. 그 자체로는 분명 민주주의의 진전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가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간의 '관심'이 됐다. 사람을 오래 붙잡아둘수록 광고와 수익이 늘어나니, 차분한 설명보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합의보다 갈등이, 이성보다 분노가 유리해진다. 인간의 불안과 분노와 욕망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 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불안의 수익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의 불안과 디지털의 불안이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활비가 오르고 집을 구하기 어렵고 일자리가 불안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열고, 알고리즘은 그 불안을 다시 붙잡아 분노를 자극하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내민다. 경제적 불안은 사회적 불만으로, 사회적 불만은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된 갈등으로, 그 갈등은 다시 정치적 불안정과 정책 마비로 이어진다. 불안이 불안을 낳는 피드백 루프다. AI라는 결정적 변수 2026년의 시대상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변수가 AI다. AI는 이 모든 문제를 풀 가능성과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을 함께 지녔다. 이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신약개발을 앞당기며 제조업과 에너지 시스템, 행정을 혁신할 수 있다. 동시에 콘텐츠 생산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춰 개인 맞춤형 정보와 광고, 정치 메시지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 만드는 비용은 떨어지는데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비용은 오히려 높아진다. 신뢰의 비용이 치솟는 셈이다. 경제에서도 AI는 양면적이다.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망과 반도체에 막대한 자본이 몰리며 새 성장축이 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성장의 과실을 같은 속도로 체감하는 것은 아니다. AI 기업의 가치가 치솟아도 평범한 사람의 질문은 단순하다. "그래서 내 삶은 좋아지는가."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체감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다. 신뢰의 복합위기 이 모든 현상을 하나로 묶는 단어는 '신뢰'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장은 안정될 것인가. AI는 인간을 도울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인가. 정보·정부·시장·기술·미래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위기도 정치위기도 아닌 '신뢰의 복합위기'다. OECD가 민주주의와 정부 신뢰의 문제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ECD의 2026년 신뢰조사에서 중앙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평균 40%에 그쳤고, 정치 시스템에서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신뢰도는 크게 갈렸다. 사람들이 정부의 모든 정책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내 목소리가 반영되며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신뢰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 감각이 사라질 때 불안은 쉽게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다시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된다. 통제에서 회복력으로 그렇다면 통제 불가능성의 시대에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세계 경제와 기술은 한 나라가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국가의 역할은 통제(Control)에서 회복력(Resilience)으로 옮겨가야 한다. 모든 위기를 막겠다고 약속하는 국가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잃는다. 그보다는 위기가 닥쳐도 사회가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일어설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에너지와 데이터 인프라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기술 변화로 밀려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플랫폼의 책임성을 높이는 새 규칙이 필요하다. AI 역시 규제냐 혁신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되 인간이 최종 판단권과 선택권을 쥐는 구조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도 달라져야 한다. GDP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가, AI 투자가 얼마나 증가했는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끼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된다고 믿는지, 미래를 설계할 만큼의 예측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도 국가 경쟁력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선진국은 가장 강력한 모델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빠른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술을 자신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나라일지 모른다. 풍요를 신뢰로 인류는 놀라운 시대에 들어섰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가장 강력한 컴퓨팅 능력을 갖고, 가장 빠른 기술혁신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인간은 미래를 더 불안하게 바라본다. 바로 이 모순이 2026년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20세기의 과제가 결핍을 풍요로 바꾸는 것이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과제는 풍요를 신뢰로 바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을 멈출 수는 없다. AI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도, 세계 경제를 과거로 돌려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변화를 이해하고 선택하고 대응할 능력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로. 필자는 이것이 국가와 기업,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21세기의 경쟁은 기술의 속도만을 겨루는 경쟁이 아니다. 풍요로운 기술과 불안한 인간 사이의 거리를 누가 더 잘 좁히는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서도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누가 돌려주는가의 경쟁이다. 그것이 '통제 불가능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문명의 과제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풍요로운 기술… 불안한 인간
  • [곽재원의 Now&Future] 신뢰를 자본으로 만든 '오마하의 현인' …AI 시대에도 빛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마침내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96세다. 최고경영자 자리를 후계자에게 넘긴 데 이어 회장직에서도 퇴진하면서, 1965년 경영권을 장악한 뒤 60여 년 동안 이어진 ‘버핏의 버크셔’도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게 됐다. 세계 투자금융사의 거대한 한 장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에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AI·알고리즘·초고속 금융의 시대에 세계는 여전히 96세 투자자의 판단을 신뢰하는가?” 지금의 금융시장은 버핏이 처음 주식을 샀던 1940년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인공지능(AI)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주식을 사고판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이 몇 초 만에 시장가격에 반영된다.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GPU는 인간이 평생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를 짧은 시간에 분석한다. 그런데 역설적이다. 금융이 이렇게 빨라지고 영리해졌는데도 세계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 중서부 오마하에 사는 노인의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버핏이 평생 무엇을 샀는가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가 투자하면서 무엇을 배웠으며, 그 결과 무엇을 축적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버핏의 80년 투자 인생을 압축해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진화가 나타난다. 젊은 시절에는 가격(Price)을 보았다. 그 다음에는 가치(Value)를 발견했고, 다시 기업의 질(Quality)을 중시했다. 좋은 기업을 발견한 뒤에는 시간(Time)의 힘을 이용했다. 오랜 시간이 쌓이면서 신뢰(Trust)가 만들어졌고, 마침내 그 신뢰는 권위(Authority)가 됐다. 젊은 버핏은 무엇보다 가격을 중시했다. 그는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충실한 제자였다. 실제 가치보다 현저하게 싼 주식을 찾아 사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었다. 1달러 가치의 자산을 50센트에 사는 방식이다. 버핏이 1965년 당시 쇠락하고 있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도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싼 기업이 반드시 좋은 기업은 아니었다. 여기서 평생의 동반자 찰리 멍거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형편없는 기업을 아주 싼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1972년 인수한 시즈캔디는 이러한 전환의 상징이었다. 공장과 설비 같은 유형자산보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신뢰가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버핏은 배웠다. 이후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GEICO 등에 대한 투자는 같은 철학에서 나왔다. 버핏의 관심은 ‘싼 주식’에서 ‘좋은 기업’으로 이동했다. 좋은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경쟁우위와 강력한 브랜드, 가격 결정력, 지속적인 현금 창출 능력,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경영자가 있었다. 버핏은 이를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중세(中世)의 성을 둘러싼 해자처럼 경쟁자가 쉽게 넘어올 수 없는 장벽을 가진 기업이었다. 그러나 버핏의 투자철학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진화한다. 좋은 기업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간을 그 기업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코카콜라는 이를 상징한다. 버크셔는 1980년대 후반 코카콜라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였고 장기간 보유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그것이 다시 투자되면서 복리의 힘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졌다. 그래서 버핏의 가장 강력한 투자 도구는 첨단 금융공학도 컴퓨터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월스트리트가 하루, 한 달, 한 분기의 수익률을 놓고 경쟁할 때 그는 10년, 20년 뒤를 생각했다. 다른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사고팔 때 좋은 기업을 발견하면 오래 기다렸다. 여기에 버핏 투자의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그는 무엇을 하는 능력 못지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을 키웠다. 투자할 기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지 않았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기다렸다. 좋은 투자처가 없으면 막대한 현금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기다림은 때로 무능력으로 보인다. 버핏에게 기다림은 하나의 전략이었다. 이것이 AI 시대에 그가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다. 속도가 반드시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빨리 계산할 수 있다. 수천 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몇 초 만에 비교할 수도 있다. 뉴스와 시장 움직임 사이의 시간차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빠른 계산과 좋은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니다. AI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간보다 빨리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어떤 기업을 20년 동안 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버핏이 평생 쌓아온 것은 바로 이러한 판단의 능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세계 금융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 버핏은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중요한 것은 50억 달러만이 아니었다. ‘버핏이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다. 그의 돈이 들어가는 순간 시장에는 돈과 함께 또 다른 자산이 공급됐다. 신뢰였다. 여기서 버핏은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선다. 젊은 버핏이 가격을 샀다면 노년의 버핏이 축적한 것은 ‘신뢰자본(Trust Capital)’이었다. 기업 경영자들은 회사를 팔 때 버크셔를 찾아갔다. 버크셔가 단기 차익을 노리고 회사를 해체하거나 되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들도 버핏에게 자본을 맡겼다. 그가 그 돈을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곳에 재배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단순한 투자회사라고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험회사가 만들어내는 플로트(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급의 시차자금) 와 자회사들의 현금흐름, 주주들이 맡긴 자본을 다시 생산적인 곳으로 배분하는 거대한 신뢰 기반의 자본 배분 시스템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버핏이 일본에서 특히 존경받는 이유도 이 대목에서 흥미롭다. 그는 2019년부터 이토추상사,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마루베니 등 일본 5대 종합상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20년 투자를 공개했을 때 이미 각 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려 이제는 5개사의 10% 안팎을 보유한 주요 주주가 됐다. 처음에는 각 회사 지분을 9.9% 이상 보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분이 이 한도에 가까워지자 일본 상사들이 상한 완화에 동의했다. 버핏은 후계자들도 이들 기업의 주식을 수십 년 동안 보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순한 일본 주식 투자가 아니다. 일본 종합상사는 다양한 사업에서 현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사업에 재배분한다. 버크셔와 상당히 닮은 구조다. 버핏이 본 것은 일본 주가의 단기적인 상승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하는 기업문화와 현금 창출 능력, 자본배분 능력, 경영진의 자세를 본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뢰가 양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버핏이 일본 상사를 신뢰했지만 일본의 대표 기업들도 버핏을 장기 주주로 받아들였다. 투자자와 기업 사이의 신뢰가 서로 만난 것이다. 그러나 버핏의 80년 여정은 신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신뢰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 권위가 된다. 권위는 권력과 다르다.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권위는 강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사람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다. 버핏에게는 중앙은행 총재처럼 금리를 결정할 권한도 없고 정부처럼 법을 만들 권력도 없다. 그런데 그가 어느 기업의 주식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세계의 투자자들이 그 기업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가 시장의 과열을 경고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점검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성과가 신뢰를 만들었고, 그렇게 축적된 신뢰가 마침내 권위를 만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버핏의 태도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쉽게 투자하지 않았다. 닷컴 열풍 때 인터넷 기업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다. 반대로 애플은 단순한 기술회사가 아니라 강력한 소비자 생태계와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라고 판단한 뒤 버크셔 역사상 가장 중요한 투자 가운데 하나로 키웠다. AI에 대해서도 그의 태도는 비슷했다. 버핏은 자신이 AI를 잘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동시에 AI가 엄청난 선을 가져올 가능성과 엄청난 해악을 가져올 가능성을 함께 지적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만들어낸 AI 영상을 직접 본 경험을 소개하며 사기와 허위 정보가 급증할 가능성도 경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핏이 AI의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가 평생 중요하게 여겼던 이 태도는 AI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지금은 모두가 미래를 설명하려 한다. 범용인공지능이 언제 등장할 것인지,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지,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인지 수많은 전망이 쏟아진다. 그러나 버핏의 철학은 다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한다. 좋은 기업을 찾고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뒤 시간이 자신의 편이 되도록 기다린다. 어쩌면 AI가 인간에게 주는 가장 위험한 유혹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버핏이 AI 시대에 남기는 가장 중요한 유산은 특정한 투자기법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판단의 규율이다. 정보와 지식을 구별하고, 지식과 판단을 구별하며, 판단과 지혜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AI는 정보의 생산비용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누구나 방대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비슷한 분석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정보 자체의 희소성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욱 희소해질 것인가. 판단이다. 인내다. 책임이다. 그리고 신뢰다. 그 위에 오랜 시간 검증된 권위가 만들어진다. 버핏의 80년 투자 인생은 바로 이 과정을 보여준다. 가격을 보던 젊은 투자자는 기업의 가치를 발견했다. 가치에서 기업의 질을 발견했고, 좋은 기업에 시간을 투자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신뢰를 얻었고, 수십 년간 검증된 신뢰는 마침내 권위가 됐다. 많은 사람이 돈을 번다. 일부는 뛰어난 성과를 낸다. 그보다 적은 사람만 수십 년 동안 성과를 지속한다. 더 적은 사람만 그 과정에서 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극소수만이 그 신뢰를 시대를 넘어 통용되는 권위로 바꾼다. 버핏이 바로 그 드문 경우다. AI 시대의 자본주의도 어쩌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빠른 GPU, 더 정교한 알고리즘만으로 더 좋은 자본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인간의 책임은 오히려 커진다. 버핏은 AI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첨단 금융공학을 만든 사람도 아니다.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오마하에서 평생 기업과 인간을 관찰했다. 그런데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계산하는 시대가 되자 역설적으로 그의 철학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기계가 속도를 담당한다면 인간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AI가 계산한다면 인간은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이 빨라질수록 신뢰는 더욱 비싸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 검증된 신뢰만이 권위가 된다. 96세의 노(老)투자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비싼 자산은 어쩌면 주식도 돈도 아니다. 시간을 견뎌낸 판단, 신뢰, 그리고 권위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는 자산이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신뢰를 자본으로 만든 오마하의 현인 …AI 시대에도 빛나다
  • [곽재원의 Now&Future] AI는 달린다 …인간은 과연 더 현명해질 것인가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세계의 공기가 갑자기 달라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경쟁의 화두는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들고, 더 많은 GPU를 확보하고, 더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느냐였다. 그런데 이제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과 AI를 직접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서 “우리가 너무 빨리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9월 11일 25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AI의 심각한 미스얼라인먼트(A Severe Misalignment of AI in Mathematics)’라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놀랍게도 AI가 수학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AI가 너무 빨리 수학 난제를 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AI 기업이 수학 문제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푸느냐를 능력의 척도로 삼는 과정에서 수학의 본질인 개념적 이해와 통찰, 인간 사이의 토론과 지식 전승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정답을 만들어내는 것과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AI를 만드는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최근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를 비롯한 주요 AI 기업 경영자들이 최첨단 AI 개발의 속도를 조절하고 안전성을 점검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AI가 가져올 위험을 경고해 온 외부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AI 개발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브레이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반대 방향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과의 경쟁을 강조하며 미국이 AI에서 앞서 있고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발 감속론에 반대했다. 여기에는 AI 안전의 문제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쟁이 벌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도 세계의 AI 투자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AI 관련 투자가 약 8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2027년 1조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한쪽에서는 가속페달을 밟고 다른 한쪽에서는 브레이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필자는 이 질문을 AI 당사자에게 직접 던져보았다. “너 자신을 SWOT으로 분석해 보라.” AI가 AI를 분석하게 한 셈이다. 그 결과를 ‘AI 대전환의 SWOT’이라는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해 보니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논쟁의 구조가 의외로 선명하게 나타났다. 먼저 AI의 강점(Strength)은 명확하다. 한마디로 ‘지능의 증폭’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인간의 능력을 끊임없이 기계에 이전해 왔다. 증기기관은 근육을 증폭시켰고 자동차는 이동능력을, 컴퓨터는 계산능력을, 인터넷은 정보 접근능력을 확장했다. AI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인간의 지적 작업 자체를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번역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미지를 제작하고 복잡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의학에서는 진단과 신약개발을 돕고 과학에서는 방대한 연구공간을 탐색한다. 기업에서는 생산성과 자동화를 높이고 개인에게는 과거 일부 전문가에게만 가능했던 지적 능력을 제공한다. 그래서 AI의 가장 강력한 힘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지능의 대중화’다. 그러나 바로 이 강점에서 AI의 약점(Weakness)이 발생한다. 필자는 이를 ‘너무 유용한 기술의 역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AI가 형편없는 기술이라면 인간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AI가 놀라울 정도로 편리하고 점점 더 유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고민한 뒤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질문 몇 줄이면 AI가 그 과정을 상당 부분 대신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연쇄가 시작될 수 있다. AI의 보조가 AI 의존으로 바뀌고, 의존이 사고의 외주화로 이어지며, 결국 인간의 지적 능력 자체가 약화되는 것이다. 이것을 ‘AI 의존성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인간도 자동적으로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줄여버릴 수도 있다. 최근 수학자들의 문제 제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학의 목적이 정답을 빨리 얻는 것이라면 AI의 발전은 축복이다. 그러나 수학의 목적이 문제를 이해하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며 다음 세대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전승하는 데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6월 국제수학연맹(IMU)이 지지한 ‘라이덴 선언’ 역시 AI 시대에도 수학 연구가 인간의 판단과 투명한 연구 관행, 공동체의 가치에 의해 이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수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학생이 AI로 리포트를 쓰고, 기자가 AI로 기사를 만들며, 연구자가 AI로 논문을 정리하고, 경영자가 AI의 분석을 받아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해 보자. 결과물의 생산성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질문을 만들고 오류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가능성을 비교하는 능력까지 AI에 넘기기 시작하면 생산성 증가와 지적 능력의 약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AI의 발전을 멈추자는 결론으로 곧바로 가는 것도 성급하다. SWOT의 세 번째 요소인 기회(Opportunity)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이제 에이전틱 AI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다음 단계에서는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 AI가 현실 세계로 나온다. AI가 문장을 만들어주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하며 기계와 공장을 움직이게 된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국가에는 새로운 노동력이 될 수 있다. 개인별 교육과 의료를 가능하게 하고 과학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제조업에서는 스마트팩토리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는 공장이 등장할 수 있다. 장애인과 고령자의 능력을 보완하고 언어와 전문지식의 장벽도 낮출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AI를 단순히 인터넷의 다음 단계라고 보는 것은 과소평가일지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와 더 비슷한 범용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기가 모든 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었듯 AI 역시 거의 모든 산업의 생산함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규모 때문에 위협(Threat)도 커진다. 첫째는 AI 버블이다. 지금 세계에서는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망과 반도체에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문제는 그 투자가 만들어 낼 수익이 투자 증가속도를 따라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AI 기업 지도자들의 개발속도 조절론이 투자자들의 불안까지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AI 버블 가능성과 AI 혁명의 실재 여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닷컴버블이 붕괴했다고 인터넷 혁명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술은 진짜였지만 자본이 기술보다 너무 빨리 달렸던 것이다. AI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는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다. AI 시대의 핵심 자원인 첨단 반도체, 클라우드, 데이터, 전력, 자본은 소수 국가와 소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더라도 그 과실이 일부 기업과 계층에 집중된다면 기술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셋째는 딥페이크와 사이버 공격, 군사적 활용이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증폭한다는 말에는 선한 능력뿐 아니라 악의적 능력도 포함된다. 공격의 비용을 낮추고 속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AI는 기존 디지털 기술과 다른 위험을 갖는다. 넷째는 미·중 AI 패권경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개발 감속론에 반대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을 언급한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한 기업이 위험을 느껴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러나 경쟁국이 계속 달린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멈추기 어렵다. AI 안전 문제가 국제정치의 ‘죄수의 딜레마’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AI 거버넌스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AI를 둘러싼 논쟁을 단순한 낙관론과 비관론의 대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는 “이 엄청난 투자가 충분한 수익을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없앨 것인가, 인간의 능력을 증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지성의 차원에서는 “AI가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 것인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그리고 문명 차원에서는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인간의 제도와 통제능력이 따라갈 수 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만든 ‘AI 대전환의 SWOT’ 한가운데에는 그래서 두 개의 상승곡선이 놓여 있다. 하나는 ‘AI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통제능력’이다. AI의 능력은 빠르게 올라간다. 그렇다면 인간의 법과 제도, 윤리, 교육, 기업의 책임, 국제적 거버넌스도 함께 올라가야 한다. 두 곡선 사이의 간격이 좁다면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생산성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그 간격이 계속 벌어진다면 기술적 성공이 오히려 인간 사회의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여기에 AI 시대의 진짜 역설이 있다. 인류가 만들어야 할 것은 더 강력한 AI만이 아니다. 더 강력한 AI를 사용할 수 있는 더 현명한 인간과 사회다. AI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회도 위험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AI의 발전 자체를 막는 사회 역시 미래를 잃을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가속이냐 감속이냐’라는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다. 어디에서는 과감하게 가속하고 어디에서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능력이다. 결국 AI 대전환의 승패는 AI의 IQ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AI가 인간보다 얼마나 더 똑똑해지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더 현명해질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AI에게 AI 자신의 SWOT을 분석시켜 본 끝에 돌아온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AI는 달린다 …인간은 과연 더 현명해질 것인가
  • [곽재원의 Now&Future] 9·11 이후 25년…위기는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시대'를 열었다

    9·11 이후 25년…세기적 기술혁신은 왜 일어났는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꼭 25년이 흘렀다. 4반세기다. 당시의 충격적인 장면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9·11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지만, 이제 세계에는 9·11 이후 태어난 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25년은 하나의 사건을 추모하는 시간을 넘어 그 이후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역사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세월이다. 필자가 지난 25년을 되돌아보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 국제정치의 변화 못지않게 기술의 변화다. 현대사에서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기술이 동시에 등장하고 발전하고 서로 결합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산업, 국가의 모습을 바꾼 시대가 또 있었을까. 2001년의 세계를 떠올려보자. 인터넷은 이미 등장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바일 인터넷은 없었다.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SNS도 없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상상의 영역에 가까웠고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의 기술이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조차 완성을 앞둔 단계였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기업들의 면면도 지금과 크게 달랐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기술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은 스마트폰으로 이어졌고, 다시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거쳐 딥러닝과 생성형 AI의 시대로 발전했다. 이제 AI는 인간의 지시에 답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이동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로봇, 공장과 결합하는 피지컬 AI의 시대도 열리고 있다. 반도체에서는 CPU 중심의 컴퓨팅에서 GPU와 HBM, AI 가속기가 전략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바이오에서는 게놈 분석과 정밀의료, 유전자 편집과 합성생물학이 발전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와 전기차가 거대한 산업을 형성했다. 우주산업 역시 정부가 주도하던 시대에서 민간기업과 위성 네트워크가 경쟁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필자는 이 25년을 ‘세기적 기술혁신의 시기’​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나 기술의 화려한 성과를 나열하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이처럼 많은 혁신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왜 기술혁신은 한두 차례의 붐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는가. 첫 번째 이유는 기술혁신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위대한 범용기술은 존재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만들었고 전기는 공장을 바꾸었으며 자동차는 도시와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그러나 21세기의 기술혁신에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하나의 기술이 다음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것이다. 반도체의 발전은 컴퓨터의 성능을 높였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은 인터넷을 확산시켰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을 연결했다. 그 연결에서 엄청난 데이터가 만들어졌다.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축적됐고 GPU라는 강력한 계산수단과 만나 AI 발전을 가속했다. 그리고 이제 AI가 다시 반도체를 설계하고 신약과 새로운 소재를 탐색하며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로봇을 학습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혁신이 컴퓨팅과 인터넷, 데이터와 AI로 이어지고, AI의 발전이 다시 반도체와 바이오, 로봇과 소재의 혁신을 촉진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른바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회로’​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은 인간이 기술을 이용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한다. 앞으로는 인간과 AI가 함께 다음 세대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기술발전이 점차 복리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2026년의 AI 상황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스탠퍼드대의 ‘AI Index 2026’에 따르면 세계 AI 컴퓨팅 역량은 2022년 이후 연평균 3.3배씩 증가했다. 자연과학 분야의 AI 관련 논문은 2025년 약 8만 건에 이르렀다. AI가 단순한 정보처리 도구를 넘어 과학기술 연구 자체를 가속하는 도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지난 25년이 역설적이게도 끊임없는 ‘위기의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9·11은 미국과 세계에 안보의 개념을 바꾸도록 요구했다. 미국은 2003년 22개 기관과 조직을 통합해 국토안보부를 출범시켰다. 정보공유와 사이버보안, 국경관리, 감시와 탐지 등 새로운 기술적 능력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9·11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멈춰 세웠다. 이어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충돌이 이어졌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역시 세계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때마다 기술은 문제 해결의 최전선으로 호출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감시와 통신, 위성과 무인기 기술을 자극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디지털 금융과 플랫폼 경제가 성장했다. 코로나19는 백신과 바이오 기술뿐 아니라 클라우드, 원격근무,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전환을 단기간에 확산시켰다. 미·중 경쟁은 반도체와 AI를 단순한 산업의 영역에서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값싼 드론과 위성통신, AI가 전쟁의 방식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25년에는 이처럼 또 하나의 순환구조가 작동했다. 위기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면 국가와 기업이 자본과 인력을 투입했고, 기술은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다시 새로운 산업을 낳고 국가와 기업 간 경쟁을 촉발했다. ‘위기의 연쇄’와 ‘혁신의 연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9·11이 지난 25년의 기술혁명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터넷과 반도체, 바이오와 디지털 기술의 기본적인 흐름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9·11의 역사적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이미 진행되던 디지털 혁명에 안보와 국가경쟁,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새로운 가속장치로 결합되는 시대를 상징적으로 열었다는 것이다. 기술이 경제성장의 수단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안보, 패권을 결정하는 전략자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5년을 세 단계로 나눠볼 수도 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가 ‘디지털 기반의 시대’​였다면, 2008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결과 데이터의 시대’​였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SNS와 플랫폼이 세계의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면서 인간의 행동과 경제활동이 거대한 데이터로 축적됐다. 2020년 이후에는 전혀 다른 국면이 시작됐다. ‘지능의 시대’​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반도체, 클라우드와 컴퓨팅 능력이 AI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결합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대규모로 이해하고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AI는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에서 코딩과 과학연구, 기업경영과 제조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25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최첨단 AI 모델의 90% 이상을 기업이 개발했고, 조직의 AI 이용률은 88%에 이르렀다는 조사도 나온다. AI 혁명이 연구실을 넘어 산업과 사회의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5년의 기술문명은 결국 디지털화에서 연결로, 연결에서 지능화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지능화에서 자율화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그렇다면 기술혁신은 이제 정점에 도달한 것인가. 필자는 오히려 반대로 본다. 앞으로 기술혁신이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AI가 바로 그것이다. AI는 이미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며 신약 후보와 새로운 소재를 탐색한다. AI를 활용한 과학 논문의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직 AI가 인간 과학자를 대체한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복잡한 연구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에서는 여전히 인간 전문가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왔다. 앞으로는 인간과 AI가 함께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이 다시 더 강력한 AI를 가능하게 하며, 그 AI가 다시 기술혁신을 가속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01년부터 2026년까지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나온 25년은 기술혁명의 완성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시대’가 시작된 첫 25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9·11 25주년을 맞는 오늘 세계는 당시와 전혀 다른 위험 앞에 서 있다. 25년 전 가장 큰 공포가 테러 네트워크였다면 지금은 AI 패권경쟁, 반도체 공급망, 사이버공격, 드론전쟁, 기후위기, 에너지와 핵심광물 확보가 국가안보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기술과 경제와 안보의 경계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떤 기술을 따라갈 것인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다음 25년의 기술혁신 자기증폭 회로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만 잘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전력과 에너지, 로봇과 바이오, 소재와 제조업, 그리고 인재와 자본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어느 하나의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들 기술이 서로 다음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지난 25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쩌면 이것인지 모른다. 혁신은 더 이상 혼자 오지 않는다. 혁신이 혁신을 부르고, 기술이 기술을 만들며, 위기가 다시 혁신을 재촉한다. 2001년 9월 11일에서 2026년 9월 11일까지 25년. 인류는 이 짧은 시간에 인터넷에서 AI까지 왔다. 그렇다면 다시 25년 뒤인 2051년 9월 11일,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필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지난 25년을 ‘세기적 기술혁신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목적은 과거를 정리하는 데 있지 않다. 다음 시대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데 있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9·11 이후 25년…위기는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시대를 열었다
  • [곽재원의 Now&Future] AI 시대 최태원 회장의 진짜 성적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오랫동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삼성이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자산업을 앞세운 삼성은 한국 제조업의 상징이자 수출경제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산업과 국가경쟁력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재계의 지형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생겼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이 있다. SK의 규모가 삼성보다 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시대에는 기업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매출, 자산, 수출, 고용이 기업의 국가적 중요성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잣대였다. 지금은 여기에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통신과 에너지, 글로벌 기술동맹과 공급망을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느냐가 추가됐다. 이 기준으로 보면 SK는 흥미로운 위치에 서 있다. SK는 AI·반도체·에너지·라이프사이언스 등에 걸쳐 180개가 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술과 자본, 전문인력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다. AI시대의 SK를 단순한 ‘재벌그룹’이라는 전통적인 틀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한국의 핵심 산업 인프라와 세계 AI 생태계를 연결하는 ‘전략 플랫폼 기업집단’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다른 길에서 만난 AI SK의 현재 위치를 이해하려면 삼성과의 차이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기업이면서 스마트폰과 가전 등 세계적인 완제품 사업까지 가지고 있다. SK의 구조는 다르다. SK하이닉스의 메모리, SK텔레콤의 통신과 AI, 여기에 에너지 사업 등이 주요 축을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차이가 AI시대에는 SK의 강점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AI산업을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그려보자. 최첨단 AI 모델을 구동하려면 GPU가 필요하고, GPU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이 필요하다. 수많은 AI 반도체를 연결하려면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며, 이를 움직이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초고속 통신망이 있어야 한다. ‘반도체→AI 컴퓨팅→데이터센터→통신→에너지’. 놀랍게도 SK가 가진 사업 포트폴리오는 이 AI 가치사슬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있다. SK하이닉스는 AI용 HBM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고 엔비디아는 핵심 고객이다. AI 붐 이전까지만 해도 메모리는 경기변동이 심한 범용 반도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확산은 그 위상을 바꾸었다. HBM은 이제 AI 컴퓨팅의 성능을 좌우하는 전략부품이 됐다. AI 혁명이 SK를 세계 AI 공급망의 중심부로 끌어올린 것이다. HBM에서 ‘AI Factory’로 더 주목할 것은 SK가 HBM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HBM을 잘 만들어 공급하는 데 그친다면 SK는 세계적인 반도체기업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SK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그보다 훨씬 크다. SK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메모리와 GPU를 결합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이른바 ‘AI Factory’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2028~2029년을 목표로 AI 특화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사업모델의 중요한 진화다. HBM이라는 AI의 핵심 부품을 파는 기업에서 AI 자체가 생산되는 인프라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SK하이닉스가 AI의 핵심 메모리를 담당하고 SK텔레콤이 통신과 AI 인프라를 확장하며 그룹의 에너지 역량이 이를 뒷받침한다면 SK는 개별 사업의 집합을 넘어 하나의 AI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SK는 세계 최대급 반도체 생산거점 건설을 추진하면서 기존 계획보다 완공 시기를 크게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AI시대 한국 재계의 새로운 역할이 드러난다. 정부는 AI산업 육성정책을 만들고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HBM 공장을 짓고, 수십조 원의 위험자본을 투입하고, 글로벌 빅테크와 기술협상을 벌이며 공급망을 실제로 움직이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AI시대에는 기업의 전략적 투자 결정 자체가 국가 산업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산업을 넘어 거시경제에서 SK의 역활 SK의 역할은 산업을 넘어 거시경제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예탁증서(ADR) 상장을 통해 대규모 달러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국내 공장 건설 등의 투자에 활용하기 위해 원화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규모 달러 매도와 원화 매수가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면서 다른 수출기업들의 해외자금 국내 환류 움직임까지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원화 환율을 한 기업이 좌우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금리와 경상수지, 글로벌 달러 흐름, 외국인 자금과 정부정책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변화가 숨어 있다. 과거 우리는 대기업을 주로 수출과 고용의 주체로 생각했다. 이제 세계적 규모의 기업은 해외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이를 국내에 투자하고, 외화를 환류시키며,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과 환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국가의 거시경제 안정능력과 연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 SK의 최근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최태원 회장의 역할을 분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SK그룹 회장인 동시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다. 따라서 그의 말과 행동은 이미 한 기업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 재계 전체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특히 주목할 것은 일본이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사실상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하는 ‘한일 경제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양국이 하나의 시장을 만들고 경제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하며 AI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공급망 같은 전략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기업인의 언어와는 조금 다르다. 보통 기업인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말한다. 최 회장은 한 단계 위에서 “어떤 경제권을 만들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의 공동생산과 연구개발, 공급망 공유, 나아가 공동공장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세계 공급망의 블록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상당히 전략적인 접근이다. 한국 혼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AI 생태계에 맞서기는 어렵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메모리·통신·제조역량과 일본의 소재·장비·로봇·정밀제조 역량이 결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의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은 단순한 한일관계 개선론이라기보다 AI시대의 산업지정학 구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CEO를 넘어 ‘민간 전략가’로 여기서 AI시대 기업인의 역할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CEO가 기업경영자(Manager)였다면 글로벌화 시대의 CEO는 투자자(Investor)이자 네트워크 구축자(Network Builder)가 됐다. 그리고 AI와 기술패권의 시대에는 여기에 민간 전략가(Private Strategist)라는 역할이 추가되고 있다.최태원 회장의 최근 행보가 흥미로운 것도 이 세 번째 영역이다. 그는 글로벌 테크기업들과 협력하는 동시에 일본 경제계와 대화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정부 간 외교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경제협력의 접점을 기업 차원에서 넓혀가고 있다. 최 회장이 이끄는 최종현 학술원 등을 통해 한미일 국제대화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것도 이러한 흐름과 연결된다 이를 과거의 ‘민간외교’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늘날 경제안보에서는 반도체 공급망과 AI 데이터센터, 에너지망과 기술표준이 전통적인 외교만큼 중요해졌다. 글로벌 기업인은 때로 국가 정상보다 더 자주 세계적인 기술기업 CEO를 만나고 실제 투자와 공급계약을 결정한다. AI시대의 민간외교는 친선을 만드는 외교에서 기술·자본·시장·공급망을 연결하는 경제안보 외교로 진화하고 있다. ‘SK의 회장’과 ‘재계의 회장’은 달라야 바로 이 지점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또 하나의 과제가 생긴다. 한국 재계의 대표 조직은 오랫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였다. 전경련은 산업화와 고도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의 목소리를 정부와 사회에 전달하는 사실상의 재계 대표 창구였다. 지금은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최근 재계의 대외적인 대표 역할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존재감이 크게 높아졌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의 위상도 그만큼 달라졌다. 그가 해외에서 한일 경제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정부와 산업정책을 논의하며 한국 기업을 대표해 국제무대에 설 때 그는 더 이상 SK의 이해만 대변해서는 안 된다. 삼성과 현대차, LG와 포스코 같은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폭넓게 바라보아야 한다.따라서 앞으로 최태원 리더십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포용의 리더십’이 되어야 한다. 재계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업마다 이해관계와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공통분모를 찾아 정부와 사회, 해외에 전달하는 능력이다.특히 AI 전환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만 AI 생산성을 높이고 중소기업이 뒤처진다면 한국 경제 전체의 AI 전환은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SK가 AI시대의 선도기업이라면 최태원 회장은 AI시대 한국 재계 전체의 동반성장을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이 ‘SK 회장 최태원’과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SK의 시대’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평가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AI 투자 붐이 언제까지 현재의 속도로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메모리산업은 본질적으로 사이클 산업이며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거세다. 데이터센터에는 천문학적인 자본뿐 아니라 전력과 용수, 부지까지 필요하다.중국 기업의 부상과 AI 투자 둔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속도만을 좇기보다는 시장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유연한 투자전략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SK의 여러 사업을 실제 하나의 AI 생태계로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느냐이다. 반도체가 강하다고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자동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통신회사를 가지고 있다고 세계적인 AI 플랫폼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에너지 사업이 있다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SK의 최대 강점인 포트폴리오가 잘못하면 최대 약점인 복잡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의 경영 능력을 판단하는 앞으로의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업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업들을 얼마나 하나의 AI 가치사슬로 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느냐가 될 것이다. AI시대, 재계의 역할 SK의 변화는 결국 한국 재계 전체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AI시대에 대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미래의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 위험을 지고 미래산업에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둘째, 기술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HBM처럼 아직 시장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을 때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먼저 베팅해야 한다. 셋째, 산업생태계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소재·부품·장비기업과 스타트업, 대학과 연구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세계와 한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자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AI 기술과 일본의 제조생태계, 한국의 반도체와 산업역량을 연결해 한국이 세계 AI 공급망에서 빠질 수 없는 국가가 되도록 해야 한다.마지막으로 ‘국가의 민간 전략자산’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경제외교와 기술동맹의 공간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최태원 회장은 한국 재계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올라서고 있다. 최태원의 진짜 성적표 그렇다고 지금 최태원 회장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 AI 호황기에 투자하는 것과 AI산업의 장기적인 승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진정한 경영능력은 AI 사이클이 흔들릴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막대한 투자를 재무적으로 감당하면서 기술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 HBM의 성공을 차세대 기술로 이어갈 수 있는가. SK의 다양한 사업을 하나의 AI 생태계로 묶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의 이익과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이익을 얼마나 일치시킬 수 있는가. 여기에 이제 하나의 질문을 더해야 한다. SK의 성공을 넘어 한국 재계 전체의 성공을 이끄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최태원 회장의 최종적인 성적표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변화만큼은 이미 분명하다. 20세기 한국에서 대기업의 국가적 역할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 세계에 파느냐’였다면 AI시대에는 ‘세계의 기술·자본·데이터·에너지·인재의 흐름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한국을 통과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SK와 최태원 회장의 행보는 한 기업의 성공담을 넘어선다. AI시대 한국 재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의 성공 여부는 SK만의 문제가 아니다.한국이 AI시대에 단순한 제조강국을 넘어 세계 AI 생태계의 ‘필수 경유지’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AI 시대 최태원 회장의 진짜 성적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 [곽재원의 Now&Future] 한국의 제조업은 정말 강한가

    한국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제조 강국이라 불러왔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철강 어느 분야를 놓고 봐도 세계 정상급 기업을 갖춘 나라는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힘은 제조업’이라는 말을 신조처럼 되뇌어왔다. 지난 8월 30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열린 한·일 저출산 대응 심포지엄에서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저출산과 인구절벽이라는 두 나라 공통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아예 ‘경제공동체’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양국 청년이 국경을 넘나들며 일하고 배우며 자격과 경력을 서로 인정받도록 하고, 관광에 머물러 있던 지역 교류를 산업과 경제 전반으로 넓히며, 돌봄 로봇과 의료 AI 같은 첨단기술을 함께 실증하고 표준을 세워 인력 부족의 부담을 덜자는 구상이었다. 비용을 나누고 시장을 합쳐 더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필자는 최태원 회장의 이 발표를 보면서 문득 'AI 시대에 한국의 제조업은 진정 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일수록 산업의 체력을 무엇으로 지탱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절박해지기 마련이고, 그 답의 상당 부분은 결국 제조업이 AI 시대에도 얼마나 대체불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일본의 대표 종합경제지 『Voice』 8월호를 읽으면서 이 물음은 한층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됐다. 특집 제목은 '주가(株價) 신시대, 산업의 행방'. AI에서 에너지, 자동차, 반도체, 우주에 이르기까지 일본 산업의 미래를 폭넓게 짚은 글이었는데 핵심은 단순한 주가 상승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 경제가 산업을 평가하는 잣대 자체를 바꾸면서 그동안 저평가돼 온 일본의 산업 자산을 다시 봐야 한다는 '재평가'의 목소리였다. 이 질문을 그대로 우리에게 돌려보면 어떨까. 필자는 이 질문 앞에서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웠다. 한국 제조업이 갑자기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현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산업의 강약을 재는 저울추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하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곱하기다 지난 30년, 좋은 제조업의 기준은 명료했다. 더 싸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면 그만이었다. 생산성과 가격경쟁력, 시장점유율과 수출액이 산업경쟁력을 재는 대표적 잣대였다. 그러나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공급망의 지형이 통째로 흔들렸다. 여기에 AI 혁명이 겹쳤다. 이제 산업의 가치는 가격과 생산량만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핵심 기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자리를 차지하는가, 충분하고 값싼 전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데이터를 쌓아 AI로 전환할 역량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산업의 등급을 새로 매긴다. 과거의 경쟁력 방정식이 '기술+자본+노동+가격'의 더하기였다면, AI시대의 방정식은 '기술×AI×데이터×에너지×공급망×안보'의 곱하기에 가깝다. 더하기와 곱하기의 차이는 크다. 더하기는 어느 하나가 약해도 다른 것으로 메울 수 있지만 곱하기는 어느 한 항목이 0에 가까우면 전체 값이 무너진다. 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익숙했던 한국 제조업의 초상화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공장은 있다, 그러나 그 공장의 '머리'는 누구 것인가 한국 제조업의 가장 큰 자산은 공장 그 자체다. 반도체 팹부터 자동차·배터리·조선소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현장이 이렇게 밀집한 나라는 드물다. 이는 생성형 AI를 넘어 '몸을 가진 AI', 즉 피지컬 AI의 시대에는 대단한 자산이다. 로봇이 움직이고 자동차가 달리고 반도체가 수천 개 공정을 거치는 그 현장에서 현실 세계의 방대한 데이터가 매 순간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장들은 어찌 보면 거대한 '현실 세계 AI 학습장'인 셈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데이터를 누가 지배하는가. 공장을 최적화하는 산업용 소프트웨어는 누가 만드는가. AI 모델과 클라우드, 설계 도구, 디지털 트윈, 로봇의 운영체제는 누구의 것인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지만 그 공장을 움직이는 핵심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은 상당 부분 해외 기업에 기대고 있다. 하드웨어는 강하고 소프트웨어는 약한, 이른바 '강한 몸, 약한 머리'의 구조다. AI가 공장의 보조수단에 머물 때는 이 정도 간극은 견딜 만했다. 그러나 AI가 공장의 '머리' 그 자체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공장은 우리 땅에 있는데, 그 공장의 지능과 데이터에서 나오는 고부가가치는 다른 나라 기업의 몫이 되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제조업에 켜진 첫 번째 경고등이다. 챔피언 기업은 많다, 챔피언 생태계는 있는가 두 번째 문제는 경쟁력이 소수의 대기업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공장에 들어서면 분명 세계 최첨단이다. 그러나 공급망을 따라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가 보면 자동화와 데이터 활용, AI 도입 수준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AI 시대에는 이 격차가 더 치명적이다. 대기업 하나가 AI 전환에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국가 전체의 생산성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수천 개의 협력기업이 함께 달라져야 비로소 산업 전체의 체질이 바뀐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챔피언 기업' 전략은 이제 '챔피언 생태계' 전략으로 옮겨가야 한다. 몇 개의 세계적 기업을 가진 나라에서, 세계적인 산업생태계를 가진 나라로 갈 수 있느냐—. 이것이 앞으로의 승부처다. 일본이라는 거울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이미지 탓에 제조업까지 함께 쇠퇴한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AI와 경제 안보의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소재·장비, 정밀부품, 산업용 로봇 등 일본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산업 자산의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한·일 제조업을 다소 거칠게 대비하자면, 일본은 깊이(Depth)의 나라이고 한국은 속도(Speed)의 나라다. 일본은 소재에서 부품, 장비, 정밀기계로 이어지는 산업의 계층이 매우 두텁다. 한국은 과감한 투자 결정과 대규모 양산, 세계시장 진입의 속도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깊이도 속도도 그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의 지능(Intelligence), 중국의 규모(Scale), 일본의 깊이, 한국의 속도가 서로 경쟁하고 뒤엉키면서 새로운 산업 질서를 짜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조선도 있으니 제조업은 걱정 없다"는 안도는 위험하다. 세계 산업 패권의 경쟁 단위가 이미 개별 제품에서 AI와 제조업이 결합된 생태계 전체로 옮겨가고 있는 까닭이다. 뒷전에 있던 변수, 전력 AI 제조강국을 논하면서 전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반도체 팹도, AI 데이터센터도, 배터리 공장도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산업 입지를 결정짓는 기준은 인건비나 땅값을 넘어 얼마나 충분하고 안정적이며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저탄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확보하고 반도체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유치해도 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다.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을 더 이상 따로 설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성적표는 대체불가능성 그렇다면 한국 제조업의 새 성적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수출액이나 시장점유율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대체불가능성(Indispensability)'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가 한국산 HBM(고대역 메모리) 없이 AI 서버를 만들 수 있는가. 한국의 조선소 없이 LNG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산업정책의 목표도 달라진다. 시장점유율 1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술과 생산능력을 한국에 쌓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만 그 대체불가능성이 해외의 AI와 소프트웨어에 지나치게 기대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전략 자산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정부는 판을 만들고, 기업은 가치를 만들라. 일본 『Voice』가 산업 재평가 끝에 내놓은 처방 중 하나가 '공격적인 산업정책'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공격성은 보조금이나 보호가 아니라 '선점'을 뜻한다. 쇠퇴한 산업을 뒤늦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에 필요한 시장과 기술, 인프라와 인재를 정부가 기업보다 한발 앞서 준비하는 일이다. 산업정책의 동사가 이제 보호(Protect)에서 구축(Build)으로, 그리고 선도(Lead)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판을 깔았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 다음은 기업의 몫, 즉 '새로운 가치창조'다.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더 많이 파는 것만으로는 AI 시대의 높은 부가가치를 잡을 수 없다. 물류에 AI를 결합해 수요를 예측하면 물류는 비용센터에서 가치창조의 플랫폼으로 바뀐다. 자동차에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엮으면 자동차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만드는 플랫폼이 된다. 기업의 경쟁방식이 이제 제조(Make)에서 연결(Connect)을 거쳐 창조(Create)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지금이 바로 그 절대적인 시점이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랄 만한 제조 강국을 일궈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경쟁력을 저절로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한국 제조업은 강한가"가 아니다. "AI 시대에도 세계가 한국의 제조업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만들 수 있는가" —. 여기에 답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진짜 위기는 약하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강하다는 믿음 때문에 변화의 때를 놓치는 데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희망도 바로 거기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현장을 이미 가지고 있는 지금, 정부가 미래 산업의 판을 제대로 짜고 기업이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제조강국을 넘어 AI 시대의 '대체불가능한 제조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아직 우리 손 안에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바로 지금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한국의 제조업은 정말 강한가
  • [곽재원의 Now&Future] 트럼프의 과학경시…세계 기술패권의 판도가 바뀐다

    2026년 8월 초, 미국 연방의회 상원 세출위원회는 백악관 행정관리예산국(OMB)이 제출한 보조금 규정 개정안의 발효를 최소 12월 11일까지 연기하는 잠정 예산안을 전격 발표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10월 1일부터 연간 1조 달러가 넘는 정부 보조금과 연구비 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하려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명확했다. 수십 년간 미국 과학기술의 정통성을 떠받쳐온 전문가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단순 조언으로 격하시키고, 대통령이 지명한 정권 담당자가 정책 우선순위와 국익 부합성을 직접 검증하여 연구비 지급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 심사의 무력화, 정치적 검증의 제도화, 이에 따른 연구비 지급 중단 사태는 현장 연구자들을 거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전후 80년을 지탱해온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가 제시한 『과학, 그 끝없는 국경(Science, the Endless Frontier)』의 철학, 즉 정부의 차별 없는 공공 기초과학 투자와 학문의 자율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는 정치적 진영 논리와 단기 성과주의가 그 뿌리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경시’ 정책은 단순한 자국 내 행정 개혁을 넘어, 미국이 지닌 지정학적 패권의 기초를 스스로 허무는 자해가 되고 있다. ‘개혁’이라는 수사(Rhetoric)와 ‘자해’라는 현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 『Science: A New Golden Age』를 통해 이번 정책이 낡은 대학 기득권 체제를 해체하고 AI 중심의 국가 미션을 유연하게 추진할 ‘80년 만의 대개혁’이라 강변한다. 관료화된 대학과 지루한 절차를 뛰어넘어 혁신적 개인 연구자에게 직접지원(direct-funding)을 제공하고 벤처 캐피털 방식의 파격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수사다. 그러나 비전과 현장의 실제 간극은 참담할 정도로 벌어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글로벌 과학계가 경고하듯, 현 행정부의 행보는 ‘과학의 해체’에 가깝다. 첫째, 장기적 원천기술의 씨앗이 되는 순수 기초과학 연구비가 대폭 삭감되고 있다. 당장 수익이 나는 응용 분야나 정치적 치적이 되는 첨단 산업에만 자금이 쏠리면서 10~20년 뒤의 기술 혁신을 책임질 기초 연구 생태계가 말라붙고 있다. 둘째, 과학 연구의 급격한 정치화다. 연구비 신청서에서 ‘기후변화’나 ‘다양성’ 같은 단어를 스스로 검열하고 삭제하는 기괴한 현상이 미국 주요 대학 연구실에서 일상화되었다. 정권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연구가 정치 임명권자에 의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공포는 학문의 자율성과 객관적 신뢰성을 사장시킨다. 셋째, 인재 안보의 자발적 포기다. 외국인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유학생과 연구자에 대한 비자 문턱을 높이고 국제 공동연구에 정치적 잣대를 대면서, 전 세계의 유능한 두뇌를 흡수하던 미국의 가장 강력한 자석(Magnet) 효과가 파괴되고 있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서 농부마저 쫓아내는 격이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냉혹한 결과 중국의 역전 우려는 이미 가시화된 데이터로 입증되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과학기술 지표 2026』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연구개발비 총액은 전년 대비 13.1% 급증한 97.1조 엔(1엔은 10원) 으로, 미국(95.3조 엔)을 제치고 마침내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중국은 이미 전체 논문 수(2017년), 상위 10% 고품질 논문 수(2018년), 상위 1% 최우수 논문 수(2019년)에서 미국을 연이어 추월한 바 있다. 이제 연구비 투자 총액마저 미국을 앞지름으로써, 명실상부한 글로벌 과학기술 1위국으로 올라섰다.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제재와 규제는 중국 제조업 기업들의 사활을 건 독자 R&D 투자를 폭발시킨 촉매가 되었다. 중국 기업 R&D(75.4조 엔)는 컴퓨터, 전자, 광학 등 첨단 제조업에 집중되며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반면 미국 기업 R&D의 절반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등 비제조업에 쏠려 있다. 미국이 정치적 이념 논쟁과 예산 삭감, 연구비 지급 지연이라는 내부 진통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압도적 물량 공세로 기술 패권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기술강국(한·일)에 던진 실전적 과제 미중 격돌과 미국의 시스템 파행은 한국과 일본 같은 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기반 기술강국에 심각한 화두를 던진다. 이번 지표에서 일본은 22.1조 엔으로 3위, 한국은 15.3조 엔으로 5위를 기록했다. 양적으로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나, 두 나라 역시 R&D 시스템의 근본적 재편이라는 피할 수 없는 논쟁에 직면했다. 우선, ‘전략기술(미션형)’과 ‘기초연구’ 간의 예산 포트폴리오 정립이다. 미중 기술 전쟁 속에서 국가전략기술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처럼 기초과학을 외면한 채 단기 산업 성과에만 매몰되면 장기적인 기술 체력이 고갈된다. 또한, 관료주의적 연구 관리 시스템의 개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낡은 평가 체계나 과제수주제(PBS)를 허물고, 실패를 자산으로 삼는 고위험·고수익(High-risk, High-reward) 연구 지원 모델을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울러 저출생으로 인한 이공계 인력 부족 상황에서 미국이 폐쇄적 자국 우선주의로 밀어내는 글로벌 우수 인재들을 끌어안을 유연한 ‘친화적 인재 안보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한국의 생존 전략, 제3의 R&D 혁신 모델을 향하여 미국의 정치적 자해와 중국의 국가주도형 질주 사이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율성과 전략성이 조화를 이루는 고도화된 3세대 R&D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첫째, 정치와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장기 기초연구 방화벽(Firewall)’을 구축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예산이 흔들리고 연구 현장이 겪는 파행은 국가적 비극이다. 국가 미션형 전략기술 투자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진행하되, 순수 기초과학과 원천 연구는 정치적 잣대나 단기 시장 논리로부터 완벽히 보호받는 장기 지원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세계 우수 인재를 흡수하는 ‘글로벌 R&D 블랙홀’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이 비자 장벽과 정치적 검증으로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들을 머뭇거리게 만들 때, 한국은 파격적인 연구 환경, 신분 보장, 정주 여건을 제공하여 이들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 인재 유입의 폐쇄성을 깨는 나라가 차세대 기술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이다. 셋째, 에너지, 데이터, 지역 거점이 결합된 제조업 기반의 독자적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에 편중되는 미국이나 규격화된 물량 공세를 퍼붓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전력 공급(Watt)과 AI 데이터 인프라(Bit), 그리고 지역 산학연을 연계한 고도화된 제조업 R&D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 마이크로 거점을 전국 단위로 배치하는 전략이다. 트럼프의 과학경시는 전 세계 기술 지형을 흔드는 거대한 위기다. 그러나 역사는 시스템이 휘청일 때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스스로를 혁신한 자에게 새로운 패권을 허락했다. 정치적 파행을 넘어서는 학문의 자유, 그리고 정교한 국가 전략이 어우러진 R&D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미중 격돌이라는 격랑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가장 확실한 생존법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트럼프의 과학경시…세계 기술패권의 판도가 바뀐다
  • [곽재원의 Now&Future] 동경대에서 한일 AI기술산업동맹을 생각하다 ③

    제3부. 경쟁을 넘어, 함께 세계를 설계할 시간 동경대 캠퍼스를 걸으며 필자가 떠올렸던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은 이랬다. 당시 일본은 세계 제조업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정보통신 혁명의 출발점에 있었고,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쉼 없이 달리던 산업국가였다. 그 무렵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가장 강한 경쟁자로 인식했다.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경쟁했고, 더 많은 자동차를 팔기 위해 경쟁했으며, 더 높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 경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한국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와 디지털 제조 역량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고, 일본은 정밀 제조와 소재·부품·장비,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은 양국을 성장시켰고, 오늘의 산업 기반을 만들었다.그러나 AI 시대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쟁만으로도 충분한가. AI는 단순히 새로운 산업 하나를 의미하지 않는다. 제조업과 금융, 의료와 교육, 국방과 물류, 에너지와 도시를 하나의 지능형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산업문명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승부는 개별 기업이나 단일 산업이 아니라, 얼마나 큰 생태계를 만들고 얼마나 많은 국가와 기술을 연결하느냐에서 결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은 경쟁을 포기할 이유도 없지만, 협력을 미룰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한국은 AI와 반도체, 디지털 전환과 실행력이 강하다. 일본은 정밀 제조와 로봇, 소재·부품·장비와 품질관리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양국이 가장 잘하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미래 산업이 요구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는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일 AI 기술산업동맹'을 단순한 협력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모델로 바라본다. 이 동맹은 정치적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대학과 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기업이 함께 투자하며,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오가고, 표준과 특허를 공동으로 만들며, AI 인재가 국경을 넘나드는 생태계가 구축될 때 비로소 실체를 갖게 된다. 양국 정부가 추진할 과제도 분명하다. 첫째, '한일 AI 기술산업위원회'와 같은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반도체·AI·로봇·에너지·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공동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대학과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한일 AI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가 다시 찾은 동경대와 한국의 주요 대학, 연구소들이 하나의 혁신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그 자체가 동북아 최대의 지식 생태계가 될 수 있다. 셋째, 기업 간 협력도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 공동 연구개발을 넘어 공동 투자와 공동 표준, 공동 브랜드 전략으로 확장해야 한다. AI Factory, 차세대 반도체,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양자기술은 이러한 협력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들이다. 넷째, 협력의 무대는 처음부터 세계여야 한다. 아세안과 인도, 중동, 유럽, 미국을 함께 연결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 전략을 세울 때 비로소 한일 협력은 국제적 설득력을 갖는다. 이러한 협력은 어느 한 나라의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이 강해지고 일본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며, 일본이 앞서고 한국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AI 시대의 산업질서는 제로섬이 아니라 네트워크 경쟁이다. 연결이 많을수록 가치가 커지고, 협력이 깊을수록 혁신의 속도는 빨라진다. 동경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필자의 생각은 결국 하나의 확신으로 이어졌다. 20세기 한일 관계의 키워드는 '추격'과 '경쟁'이었다. 21세기의 키워드는 '공동 설계(Co-design)'와 '공동 창조(Co-creation)'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는 어느 한 나라가 홀로 미래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다. 서로 다른 강점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국가가 세계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동경대를 뒤로하며 필자는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는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답은 생각보다 크다. 양국 산업의 미래만이 아니다. 아시아의 혁신 생태계를 바꾸고, 세계 공급망의 새로운 축을 만들며, AI 시대의 산업문명을 함께 설계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잊는 용기가 아니다.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지혜다. 경쟁은 양국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협력은 세계를 움직일 차례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곽재원의 Now&Future]  동경대에서 한일 AI기술산업동맹을 생각하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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