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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WED
브랜드칼럼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dslee@globalpeace.org
  •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공지능'은 있어도 '인공지성'은 없다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예견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기술적 변화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말이 갈린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많은 기능을 대신하게 되겠지만, 인간은 여전히 유한한 몸과 감각을 가진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슈퍼리치와 기술 격차는 새로운 “종 구분”에 가까운 계층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전망의 마지막에서 그가 꺼내든 해법은 의외로 소박하다. 생각을 멈추고, 잠시 호흡에 머무르며, 자기 마음을 관찰하는 명상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몸’이다. 명상은 머릿속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몸으로 돌아가는 연습이다. 몸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건설 현장에서 공구를 들고 골조를 오르내리며 날마다 체감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노동하는 자만이 몸의 중요성을 더 깊게 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육체노동자는 '오늘의 몸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무거운 자재를 들다 삐끗한 허리,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생긴 무릎의 묵직함, 콘크리트 양생 속도를 가늠하는 손가락의 감각. 이런 계산은 엑셀도, 챗봇도 대신할 수 없다. 반대로, 현대인은 몸으로 느끼는 시간보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스마트폰과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람의 주의를 붙잡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고, 짧은 영상과 무한 스크롤은 사용자의 신체 감각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용자가 알고리즘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이때 육체노동은 오히려 인간다운 삶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몸을 쓰는 노동은 화면에서 떨어져 나온 시간 속에서 다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한다. 어쩌면 머리로 관념과 개념을 다루는 지식인은 AI로 빠르게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의 경험으로 익혀 온 성품과 노동의 감각은 쉽게 AI로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면서 자주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AI의 인텔리전스(Intelligence)를 한국어로 옮길 때, 우리는 왜 여전히 ‘지능’이라고 부를까. 왜 ‘인공지성’이 아니라 ‘인공지능’일까.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습관이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대비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인간의 지성(intellect)이다. 지능은 주어진 문제를 잘 풀고, 많이 기억하고,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그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는 성품에 가깝다. 말하자면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디스커션(discussion)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말이 더 논리적인가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을 지향하는 토론은 지능이 아니라 지성의 영역이다. AI가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을수록, 인간은 오히려 이런 지성의 자리를 더 분명히 요구받는다. 디지털 시대의 토론 역시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소셜미디어와 댓글 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논의(discussion)’는 사실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싸움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토론은 “누가 옳으냐”를 겨루는 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지능이 상대를 이기기 위한 논리를 쌓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한 박자 늦춰 “정말 이게 더 나은 답인가”를 되묻는 힘이다. 논의(論議)의 한자 ‘議’는 言과 義의 합성어다. 義의 기원을 풀어내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양(羊) 머리를 창(戈)에 꽂아 하늘에 바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 형상을 그린 글자라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정답’을 받아 적는 톱다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큰 질서 앞에서 자기 이익을 잠시 내려놓는 행위를 가리킨다. 지성은 머리의 영리함이 아니라,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태도와 이어져 있다. 종교 전통도, 인간의 모순을 지성의 문제와 연결해 설명해 왔다.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서 타락(Fall)은, 인간이 하느님을 떠난 결과로 죄와 죽음, 고통뿐 아니라 ‘지성의 어두워짐’을 겪게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타락으로 인해 “지성이 흐려지고, 무지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옳은 것을 아는 능력 자체가 손상되었거나 왜곡되었다는 진단이다. 불교에서 무명(無明, avidyā)은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현실을 잘못 보는 근본적인 ‘착각’이나 ‘오인’을 가리킨다. 사성제, 연기, 무상·무아 같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 즉 세계와 자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뒤틀려 있는 상태가 무명이다. 이 무명이 번뇌와 업, 괴로움의 사슬을 돌리는 최초의 고리로 제시된다. 두 전통 모두 인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지적 차원, 곧 intellect의 결함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공부 부족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 세계 전체를 보는 눈이 구조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진단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를 현대적 언어로 묶어 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왜곡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종교란 그 왜곡을 직면하고 바로잡으려는 각각의 시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때 intellect는 정보 처리 능력이라기보다는 세계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지성의 방향과 깊이에 대한 내용이 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덕’이라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개념이 떠오른다. 한자 德(덕)을 파자해서 彳(걸음·행동), 直(곧음), 心(마음)으로 보아, 곧은 마음이 올곧은 길로 드러난 상태를 가리킨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은 彳을 두 사람의 걸음으로, 直 안의 십자를 하나됨의 상징으로, 目을 사위를 보는 눈으로 읽어, 덕을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타자와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으로 풀어낸다. 문자학의 정설이라기보다, 덕을 관계적 존재론 속에서 다시 읽어낸 창의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덕은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고 조화를 익히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라는 말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남의 흠결을 들어 그 사람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흠결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비추어 보고, 공은 계승하고 과는 경계함으로써 자기 덕을 키우는 태도다. 어느 시대의 위인이나 예술가에게도 흠결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그 흠결이 드러났을 때, 그 사람의 존재 전체와 공헌을 통째로 없애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과 과를 분리하여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이다. 요즘 미당 서정주 논쟁은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언어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국민적 시인이면서도, 일제 말기 친일 작품과 해방 이후 군부 권력에 대한 협력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을 통째로 삭제하는 흐름은, 친일을 단죄하려는 의지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역사와 모순을 피하고 싶은 사회의 편의주의일 수도 있다. 친일 행적을 분명히 비판하면서도 문학사적 공헌을 함께 가르치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과를 토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덕을 키우는 교육일 것이다. 완전한 친일청산과 적폐청산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의 과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새로운 사람(New Man)”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사람은 남보다 뛰어난 초인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과거의 폭력과 오류를 외면하지 않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이다. 덕을 “나다움이 성숙해 가는 힘”으로 볼 때, 새로운 사람은 곧 자기 덕을 키워가는 사람,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인간다운 자신을 향해 걸어가려는 사람이다.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며 나는 올 한 해를 “새희망 새출발”의 해로 삼고자 이 말을 올해의 표어로 정했다. 그리고 첫 그림 전시회 제목을 “노동이 사람을 만든다”로 정해 1월에 진행했다. 이것은 AI 시대의 노동자이자 국제구호 시민활동가로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겠다는 자기 선언이다. 인공지능이 지능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몸으로 세계를 느끼고,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통해 덕을 키우고, 과거의 모순과 마주하며 더 나은 사람을 향해 나아가려는 지성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공구를 들고 현장에 서는 몸,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세계를 해석하려는 손, AI를 도구로 쓰되 그 지능의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마음. 이 세 가지가 함께 갈 때, 노동과 지성, 덕과 새로운 사람이라는 오래된 말들은, 혼돈과 갈등에 묻힌 오늘의 일상 속에서 다시 현재형이 될 것이다. AI가 다 해 줄 수 있다고 인간이 자기 계발 노력을 멈춘다면, 즉 덕을 쌓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자기 존립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덕은 자기 가치를 높이고 키우려는 자기 노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덕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욕망이 필요하다. 자기 삶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싶은 야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뭔가 더 알려고 하는 호기심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경쟁이며 모험이고, 싸워 이기는 과정이다. 면역력을 높인다고 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 싸워 이기는 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무균실의 환경에서는 면역력도, 창의성도 만들어질 수 없다. 인간의 삶은 결국 기억과 기록이다. 몸으로 겪은 일을 기억하고, 머리로 그 기억을 기록하며 되짚어 보는 과정 속에서 지성은 자란다. 지성이란 타고난 머리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경험을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공지능은 있어도 인공지성은 없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함에 박사 타이틀 더해져도 결국…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올해의 표어를 하나 정했다. '새희망 새출발'. 작년의 표어가 ‘정리정돈’이었다면 올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겹쳐 있는 해다. 내 나이 만 60세가 되는 해다.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대표로서 공식적인 일을 시작하고, 그동안 지방에서만 하던 건설노동도 수도권으로 현장이 바뀐다. 예정대로라면 8월에는 박사 학위도 받게 된다. 겉으로만 보면 책상 앞에서 하는 일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은 책상이 아니라 공사장의 비계와 삽자루였다. 건설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나는 머릿속에서만 오래 맴도는 사람에 가까웠다. 책과 기획서를 붙들고 '노동과 인권, 교육의 가치란 무엇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을 즐겼다. 글로만, 머리로만 싸우는 사변의 시간도 분명 소중했다. 그러나 실제로 안전모를 쓰고 먼지와 소음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전까지 노동은 내게 어디까지나 개념이었다. 몸이 아니라 문장으로만 아는 단어였다. 현장에서 미장칼과 모르타르를 들고 갱폼 위를 오르내리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노동은 단지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빚는 학교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 말투와 손동작, '이건 이렇게 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몸의 기억, 위험을 눈치채고 서로를 챙기는 눈빛이 내 사고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론적으로 타당한가’를 먼저 물었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실제로 가능한가, 몸으로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노동을 하면서 나는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책임 있게' '끝까지'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는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몸에 밴 습관이다. 현장에서는 대충 넘긴 작은 틈이 나중에 큰 하자로 돌아오고, 오늘 대충 한 안전조치가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꼼꼼함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대충대충 시간이나 때우는 허술한 태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노동을 통해 배웠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몸은 더 건강해지고, 생각은 더 단단해졌다. 책상 앞에서만 고민할 때보다 현장에서 땀을 흘릴 때 더 선명한 인사이트가 떠오르는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은 거창한 명분이나 비전만을 추구하는 목적 지향의 삶은 아니다. 높은 산 하나를 정복하기보다는 산을 오르내리며 주변 풍광을 즐기는 재미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성취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결코 생략할 수 없다는 뜻이다. 흔히 인생의 ‘에르곤(ergon)’을 거창한 목표나 비전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삶을 형성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작은 실천과 소소한 기쁨들이다.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질을 비켜난 주변부의 ‘파레르곤(parergon)’처럼 보이는 이 일상의 조각들이야말로 우리 삶이 어떤 방향과 의미를 갖는지를 드러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예전에 군대에 가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흐르고, 어떻게든 제대 날짜는 다가온다는 뜻이다. 국방의 의무니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왔고, 그러니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체념이 숨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리, 자기 안에서 동기가 생기지 않은 일을 할 때 그 환경을 외면하거나 최소한으로만 견디려는 마음이 생긴다. 노동 현장도 비슷하다. 이쪽 일은 원래 힘들고 거칠다.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고,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은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하루하루를 ‘시간 때우기’로 느끼게 하고, 결국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 역시 그 시선을 그대로 반사해 막노동꾼으로 보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를 '잠시 거쳐 가는 사람, 실패해서 밀려난 사람, 언젠가는 떠날 사람, 불결하고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 정도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앞으로 거칠고 힘든 일은 휴머노이드로 대체될 거라고 말한다. 지식 중심의 일자리도 빠르게 AI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가트너는 2028년부터 매년 일자리 수천만 개가 AI에 의해 재편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많은 일자리에서 '전통적 업무' 대신 AI와 협업하는 형태가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분석들은 2030년경이 되면 전체 노동의 최대 30% 이상이 자동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하며, 일부는 그 비율이 70%에 이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구조가 개인의 정체성, 하루의 리듬, 사회복지 시스템까지 모두 떠받치고 있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 단순 사무와 계산, 운송·물류·제조의 상당 부분은 AI·로봇·휴머노이드로 빠르게 대체되거나 '사람+기계 협업'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내 몸을 어디에 팔아야 하나' '임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경제적 질문과 함께 '일이 없으면 나는 누구인가' '일하지 않는 인간은 가치가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동시에 떠오를 수 있다. 낙관적인 전망에서는 AI가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면서 인간이 창의성·공감·판단·돌봄·공동체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관적인 전망에서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대량 실업을 촉발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질 것이다. “일을 ‘생존 수단’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로 다시 정의할 수 있는가?” AI와 로봇이 임금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더라도 '노동'과 '행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각한 것을 바깥으로 꺼내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금노동과 인간의 행위는 다르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주로 '지정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으로서의 노동'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에는 생존을 넘는 차원, 즉 '내가 무엇을 의미 있다고 느끼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행위의 차원이 있다. 이 차원에서는 결과물이 돈이 되든 안 되든, 생각하고, 설계하고, 몸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만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함께 쓰기 위해, 누군가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만들기 위한 노동은 그 자체로 관계를 맺는 행위다. 건물을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삶을 상상하고, 그 삶을 위해 무언가를 빚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제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미장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지금도 손목이 욱신거린다. 이 통증이 오히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준다. 라오스의 빈곤층 가정에서 자란 한 아이가 ADRF의 지원으로 지금은 대학에 다니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를 읽으며 오늘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다른 빛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고, 그리고, 일하는 것을 내 삶의 기본 리듬으로 삼으려 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고, 책상에서 글을 쓰고, 화폭 위에 장면을 옮기는 이 과정을 일상 속에서 반복하는 것, 나에게 이것이 노동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유하고 명상하면서 수많은 상징과 은유, 비전과 개념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체 세계를 견인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그것을 생각해 내고, 다시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내는 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질문하는 것이며, 인간의 호기심과 의문을 풀어 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질문에서 출발해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넓은 의미에서 ‘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은 세계를 만들 뿐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하는 하나의 학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인간과 다른 생물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이다. 바로 선다는 것은 땅에만 매달린 삶에서 벗어나 하늘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어떤 욕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특질은 이처럼 눈앞의 현실적 삶을 넘어 보이지 않는 추상적 삶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어쩌면 바로 그 힘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이 직립보행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유를 지향하는 존재라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노동은 단순한 ‘동물적인 생존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몸과 세계에 새겨 넣는 행위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노동은 ‘육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둘을 잇는 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이 인성 안에 깃든 유일한 사건이라면 인간의 노동은 그 인카네이션의 길을 따라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사유가 몸과 세계 속에 구체화되는 작은 성육신의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나 위인을 신성과 인성이 조화를 이룬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본다면 노동이야말로 그 신성을 내면에 새기고 실천 속에서 드러내어 점점 더 온전한 인간이 되어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 명함에 ADRF 대표이자 박사, 신문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이 더해진다고 해도 그 이름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먼지 속에서 보낸 하루의 노동일 것이다. 2026년 새해, 나에게 새희망과 새출발을 허락한 것도 결국 노동이라는 선생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이렇게 적어 본다. ‘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함에 박사 타이틀 더해져도 결국…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하루살이 노동자, 존엄은 얼마인가요?

    연말이 다가오며 어느덧 남도에도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한낮에도 바람이 차게 느껴지면서 근로자들도 햇볕이 드는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광주 현장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곳이지만 골바람도 세게 불어 잠시 쉴 때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곳을 찾게 된다. 점심시간 이후 휴식시간에 산 쪽의 언덕 작은 공원을 찾았다. 안전모를 벗어 옆에 내려놓고 벤치에 기대 앉아 눈을 감았다. 먼지투성이 작업복의 내 모습은 흡사 홈리스처럼 보이겠지만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덮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내 모습은 홈리스가 아니라 디오게네스처럼 보이지 않을까.’ 외모는 작업복에 헝클어진 머리, 어디든 몸을 뉠 수 있는 곳이면 아무데나 누워 잠을 청하는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배고프지 않고 햇살이 비치는 따뜻한 곳에 앉아 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있다면, ‘자족’과 ‘자연에 따른 삶’을 중시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견줄 만하지 않을까. 그는 행복이 부나 지위가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만으로 살 수 있는 내적 자유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만든 법, 관습, 체면 같은 인위적인 규범보다, 자연과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쓸데없는 욕망과 허영을 끊어낼 것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인간의 삶을 경제활동과 생존의 문제로 압축하는 이 표현 속에선, 해나 아렌트가 말한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건설노동자는 도시의 뼈대를 세우는 일을 해왔지만, 공적 공간에서는 자주 ‘하층 노동력’, ‘노가다’”라는 말로 불려 왔다. 건설노동자가 사회 구성의 가장 기초단위를 담당해 왔음에도, 이들의 얼굴과 이름, 생각과 감정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노동으로 도시가 완성될 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런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오랜 시간 반복된 사회적 구분과 시선이 몸과 습관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하위 계층’, ‘말하기보다는 지시를 따르는 사람’으로 위치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시를 지으면서도,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을 그냥 “하루살이 노동자”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건설노동자는 이 땅에 산업화가 시작되면서부터 한번도 정규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폐허가 된 이 나라에 길을 내고 도시를 재건하고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땐 해외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큰일을 했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선 이들에 대한 영웅적 서사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자기 인격과 생각을 공적으로 표현해 본 경험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듯, 우리의 몸은 단지 구조에 의해 찍혀 나오는 수동적인 표면이 아니다. 몸은 세계를 지각하고, 도구와 공간을 익히고, 타인과 부딪치는 과정에서 고유한 감각과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아침마다 무거운 자재를 나르며 균형을 잡는 다리, 한눈에 위험을 감지하는 눈, 동료의 몸짓을 읽고 즉흥적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손짓은, 현장의 노동자가 이미 매우 복잡한 판단과 협력의 능력을 몸으로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의 지혜는 “기술자”나 “전문가”의 언어로 인정받지 못한 채,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필요할 때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되어 왔다. 최근 건설현장의 안전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갖게 되긴 했지만 안전사고의 당사자인 근로자들을 혁신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늘 그래왔듯이 이들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래서 현장 안전을 높이기 위한 각종 법과 규제 그리고 교육이 많아질수록 힘들어지고 피곤해지는 것은 현장 노동자다. 과거 학교에서 써오라던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의 직업을 '노가다'라고 차마 적지 못해 고민하는 어린이가 그 시절을 표현하는 드라마에 숱하게 나온다. '건설노동'이란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의미였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남자', 거칠고 무식해 몸을 쓰는 것밖에는 돈을 벌 방법이 없는 사람, 늘 술에 취해 있거나 담배만 뻑뻑 피우는 아저씨.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정 힘들면 노가다라도 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정 힘들면 공무원이나 하라"든가 "정 힘들면 증권회사에 들어가든가"라고는 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는 건설노동을 누구나 할 수 있고, 잠시 하는 일이고, 별것 아닌 일이며, 실력 있는 사람은 하지 않을 일이고, 뜨내기의 일이라고 취급하고 있다. 건설노동을 꾸준히 일하면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자부심을 갖고 일하며, 힘들게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노동'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노가다'를 천시하고 괄시한다. 건설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그런 의미다. 어느 날, 현장에서 관리자와 다툼이 벌어졌다. 벽면 처리가 불량하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시멘트 가루에 접착제를 섞어 물에 갠 고스리를 바르고 있었고, 그 위에 다음 공정이 올라갈 예정이었다. 관리자는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며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해놨냐”고 했다. 그는 고스리가 어떤 재료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이 다툼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라는 것을. 건설 현장에는 지금도 외래어와 은어가 널려 있다. ‘히사시’, ‘시마이’, ‘오도리바’ 같은 일본식 전문용어가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오간다. 때로는 관리자도, 설계자도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실수나 하자가 생기면, 그 모호한 말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일을 “불량”이라고 단정한다.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평가권을 쥐고, 그 언어 안에서만 책임과 능력이 나뉜다.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언어자본의 문제다. 언어자본이란 단지 말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스스로 설명하고 방어할 수 있는 힘이다. 한국 건설노동자들이 일본에서 들어온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 내듯 쓰는 현실은, 기술언어에 대한 자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준다. 남이 만들어 놓은 말을 빌려 쓰면서도, 그 말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장악하지 못한 채 따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는 말과 겹쳐 보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노동자가 쓰는 언어가 자신의 몸, 기술, 삶의 경험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할 때, 그는 자기 존재를 머물게 할 집을 가지지 못한다. 고스리의 의미도 모르는 언어 공간에서, 노동자의 손과 기술은 이름을 잃는다. 기술은 있지만, 그 기술을 설명할 언어가 없고, 그 언어 안에서 자신을 드러낼 권위도 없다. 이는 단지 소통의 불편이 아니라, “존재의 집”이 타인의 언어로 지어져 있고, 노동자가 그 집의 세입자로만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외래어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언어가 노동자의 몸과 경험, 직업적 자각과 만나지 못한 채, 위에서 내려온 말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럴 때 노동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해석하고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다. 기술과 경험은 모두 자기 몸에 있는데, 그걸 말로 묶어 줄 언어가 없으니, 타인의 기준과 언어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이 상태가 곧 부정적 아비투스, 즉 “나는 원래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습성이 된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했다. 랑그가 사회가 공유하는 규칙과 체계라면, 파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실제로 입을 열어 말하는 행위다. 건설노동자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과 언론 보도, 정책 문서는 “위험하지만 값싼,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라는 이미지를 하나의 랑그로 굳혀 왔다. 여기에 맞서, 현장의 노동자가 자신의 몸으로 겪은 피로와 두려움, 동료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말은 파롤이자, 기존 랑그를 비트는 작은 균열이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전교육 몇 시간, 캠페인 몇 번이 아니라, 노동자의 언어를 되찾는 일이다. 현장에서 실제 쓰는 용어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몸의 경험과 연결해 설명하며, 외래어든 한국어든 “우리가 이해하고 선택한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 고스리의 의미를 알고, 그 역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고스리를 둘러싼 평가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는 곧 언어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자, “존재의 집”을 남의 말이 아닌 자기 말로 다시 짓는 작업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했다. 그 가운데 행위란, 타인 앞에서 말과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함께 새로운 시작을 여는 것을 뜻한다. ‘먹기 위해 산다’는 인식은 우리의 삶을 노동의 차원에만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건설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고, 안전과 존엄에 대해 말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사유하기 시작할 때, 그 삶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낮에는 먼지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공사장 비계 위를 오르내리며, 밤에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은, 그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나는 구조가 찍어낸 노동자인가, 아니면 나만의 말과 실천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주체인가.” 부르디외의 언어로 말하면, 그는 건설노동자의 아비투스를 몸으로 살면서도, 동시에 그 아비투스를 관찰하고 언어화하는 이중의 위치에 서 있다. 논문을 쓰고, 칼럼을 기고하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지 학문적 작업을 넘어, 건설노동자의 삶을 행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파롤이 되는 것이다. 도시의 건물은 도면과 자본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공사장 한가운데, 따뜻한 햇볕을 찾아 앉은 노동자의 몸, 휴대전화로 집에 남은 가족에게 안부를 묻는 목소리, 동료의 안전을 챙기기 위해 소리치는 외침의 한마디가 그 도시의 보이지 않는 골조를 이룬다. 건설노동자는 이 도시의 기초를 쌓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자기 몸과 말로 삶의 의미와 존엄을 함께 지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이 작은 행위들, 이 파롤에 귀를 기울이고, 공적인 자리에서 그 목소리가 더 자주, 더 분명하게 들리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다.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아비투스를 넘어서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일과 맞닿아 있다. 언어를 되찾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기 말로 표현할 때, 그 말은 개인의 하소연이 아니라, 도시와 사회를 더 안전하고 인간답게 만드는 행위가 된다. 그 길 위에서, 건설현장은 더 이상 누군가를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며 함께 세계를 세우는 장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하루살이 노동자, 존엄은 얼마인가요?
  •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가다' …노동의 가치를 다듬다

    뒤돌아보니 내가 건설노동자로 살아온 것이 7년이나 되었다. 이 기간은 단순히 한 막노동꾼의 경력이 아니라 한국 건설업의 구조적 현실과 맞닿아 있는 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발걸음 – ‘노가다판’이라는 세계 현장에 들어선 첫날, 나는 ‘노가다’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무겁게 쓰이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건설노동에는 처음부터 정규직도 장기고용도 없었다. 아침마다 노무시장에서 혹은 인력 소개소를 통해 노동을 팔고. 공사가 끝나면 곧바로 해산되는 삶.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건설업의 출발부터 이어져온 구조였다. 몇 년을 일하면서 나는 고용의 단절에 익숙해졌다. 현장이 끝나면 곧바로 ‘백수’가 되고, 다음 현장을 찾아 떠도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익숙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는 단지 개인의 불안정이 아니라 건설업 자체가 제도적으로 고정직을 두지 않는 산업이라는 사실이다. IMF 이후 비정규직이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지만 건설업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비정규직이 표준’인 세계였다.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의 외주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집단적 행동 양식으로, 그 형성 배경은 1960~1970년대 압축적 고도성장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서 기인한다. 당시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전방위적 산업화·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빠른 실행과 단기적 성과, 목표 달성을 사회 전반에 강하게 요구했다. 기업과 현장, 국민 모두가 “계획에 맞춰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생산성과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게 되었고 이는 공사, 제조, 수출, 도시 인프라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개별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구호로 확산됐다. 공무원, 기업인, 현장 노동자, 시민 모두가 신속 대응과 단기 목표 달성, 업무 효율화를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습관처럼 실천하게 되었고, 품질이나 안전보다 ‘빨리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풍토가 자리 잡았다. 이는 한국 특유의 동원체제와 맞물려 모두가 한꺼번에 빠르게 움직여 단기간에 합심 완성하는 분위기를 강화했고,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빨리빨리’가 내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빨리빨리 문화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행정, 서비스, 식당, 병원 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효율성과 경쟁력, 위기 대응력 등 장점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품질 저하, 스트레스, 안전 문제, 소통 단절 등 부정적 측면도 낳았다. 결국 오늘날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산업의 성장 동력과 더불어 한국인의 사회적 습관의 내면화라고 하는 하나의 아비투스가 되었다. 이러한 속도 중심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장기적으로 육성할 장인(匠人)이 아닌 필요할 때 쓰고 해산하는 ‘부품’으로 취급하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성찰의 시간 – 개인에서 역사로 노동의 무게가 때로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나는 그 길 위에서 질문을 품게 되었다. 왜 건설노동자는 늘 불안정해야 하는가, 왜 우리의 숙련과 땀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이어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의 체험은 결코 개인의 고생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건설노동자의 집단적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되찾기 위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제 건설노동자는 국가 성장의 그림자 속에서 묻힌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서술하고 미래를 제안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건설업에 뛰어드는가. 건설업에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다는 인식은 실제로 현장과 사회에 넓게 퍼져 있다. 실제 건설업은 '정규 교육, 전문 자격, 경력' 없이도 ‘일용직’이나 ‘기능공 보조’ 등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 직종에 비해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대표적 산업이다. 대부분 현장 근로자는 특별한 자격증이 없더라도 단기·일용직으로 고용된다. 대규모, 단기 현장에 수시로 많은 인력이 필요해 때로는 신분, 경력, 나이 등 제한도 크게 없다. 건설업에는 여러 직업에서 실패를 경험했거나 진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일단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가족의 생계와 생활비 등 긴급한 경제적 필요에 의해 빠르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건설 현장이 선택되는 것이다. 그만큼 건설노동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고등교육이 필요 없는 생계형 직업' '육체노동=비숙련 노동'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다고 해서 능력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복 경험과 현장 숙련, 팀장·기능공의 암묵지(현장기술) 전수, 안전 및 책임의식이 중요하다. 일정 기술력, 자격증(기능사, 장비자격 등)이 있으면 더 높은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도 점차 확산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건설업에 진입할 때와 실제로 몸을 담고 난 후 느끼는 점이 크게 다르다. '할 일이 없어 시작했다'는 출발점도 현장에서의 반복된 경험·관계·자율성·자기 성장 등 삶의 다양한 ‘참 뜻’을 발견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육체적인 노동, 동료와 협업, 직접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경험은 다른 사무·지식노동과 다른 성취감, 즉각적인 피드백의 특성을 제공한다. 건설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게 남으면서 '나 역시 사회를 만들고 구축하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자기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된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며 예기치 않게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때가 많다. 생존·협력·숙련·책임의 과정이 곧 삶의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제개발협력, 사무, 연구,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가 건설업으로 이동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한 이직은 단순 ‘생계 수단의 이동’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개인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인가 처음에는 '건설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건설일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작업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진입장벽은 낮지만 현장은 높은 전문성, 숙련, 책임, 협동, 안전의식을 요구한다. 겉보기엔 '단순한 육체노동' 같아도 실제로는 각종 장비 운용, 복잡한 단계별 협업, 공정 이해, 작업 순서의 원리, 현장 규칙 준수, 위험 예측 등 다양한 숙련이 필수다. 안전은 단순히 간단한 장비와 헬멧 착용처럼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장 위험을 체감·예측하고, 동료와 협력해 예방 조치를 실행하며,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항상 인식하는 깊은 책임감과 숙련이 필요하다. 미숙련자나 경험 없는 사람, 조심성이 없거나 안전의식이 낮은 사람이 투입되면 본인은 물론 전체 현장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건설은 생명을 다루는 ‘위험 산업’이기 때문에 아무나, 아무렇게나, '그저 돈 때문에' 투입된 미숙련자보다는 근본적 책임감과 안전의식이 갖춰진 사람이 일을 해야 하며 이에 대한 체계적 교육과 현장 적응, 반복 실습, 숙련자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가능한 일은 노동력의 대체 가능성과 저임금 구조에 놓이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일시적 생계 수단, 비숙련 일거리'로 취급받다 보니 기술 축적, 개인의 성장, 장기적 비전 등 고유의 발전 가능성이 억제된다. 건설업이 지금까지 '누구나, 아무 때나 가능'한 구조로 유지되어왔지만 최근에는 숙련, 자격, 안전교육, 직업의식,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산업안전, 기술혁신, 인적 자본 형성, 직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절차탁마의 의미 ‘절차탁마’는 원래 구슬(玉)을 만드는 전통 공정, 즉 '자르고, 깎고, 쪼고, 가는' 물리적 노동의 반복과 숙련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문·인격·지식인을 의미하는 '추상적 완성과 자기 연마'의 비유적 용어로 쓰이면서 노동의 실제 과정과 그 의미는 거리가 먼 말이 되어버렸다. 실제 노동자들은 매일 ‘구슬을 깎는’ 자기 손의 행위와 과정을 반복하지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만드는 결과의 사회적 가치, 인격, 공동체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자기 행위의 주체성, 즉 ‘내가 의미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 대신 ‘수동적 노동력’으로 머무르는 현실이 만들어진다. 절차탁마(노동의 반복과 노력)는 학문적 의미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노동 자체가 사회와 나를 빚고,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통로임을 스스로 자각할 때 행위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 내면의 성장, 자부심, 책임감 모두를 온전히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막노동꾼'을 넘어 '전문건설인'으로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한다는 자각(절차탁마)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막노동꾼'을 넘어 '전문건설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막노동꾼'이라고 낮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건설노동은 기술, 역사, 창조, 협력, 책임, 성취가 담긴 매우 복합적이고 전문화된 작업이다. 스스로를 '막노동꾼'이 아닌 ‘전문건설인’으로 인식하고 '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든다, 공동체의 기반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 직업의 가치와 삶의 성장, 안전의식까지 모두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 매일, 어떤 기술을 익히고, 오늘 새롭게 배운 것을 내일의 작업에 적용하며, 삶의 한 부분이 '역사적 건축물'로 남게 된다는 의미를 느낄 때 단순 노동이 아니라 '남겨지는 삶, 잊히지 않는 흔적'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런 고민이 바로 노동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성장의 토대가 된다. '나는 막노동꾼이 아니라 역사의 장인을 꿈꾼다.' 이 한 문장이 나를 바꾸고, 우리의 현장을 바꾸고, 세상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가다 …노동의 가치를 다듬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목소리 없는 현장, 들리지 않는 안전

    노동에서 행위로 이제 일용직 건설노동자는 단순히 생업을 위한 품팔이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정한 노동자, 더 나아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사상과 교양이 필요하다. 노동이란 단지 땀 흘리고 노동한 대가로 돈을 벌어 생존을 도모하는 사회적 수단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사회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식이자 사회적 매개이다. 아렌트가 말한 ‘행위(action)’는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현실 속에서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하며,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 그 노동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행위의 단계로 확장되는 것이다. 노동이 행위로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노동자의 자기 표현력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부르디외가 강조한 아비투스의 변화, 즉 개인의 습관과 태도, 가치관이 구조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때, 노동자는 더 이상 타인의 지시에만 따라 움직이는 부속품이 아니게 된다. 그는 자기의 세계를 가진 주체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다. 2차 대전 후 만주의 허강(鶴崗) 지역에 남아 있던 일본인 탄광 노동자들은 전쟁이나 군사적 목적이 아닌, 평화적 산업이나 민간 경제 재건을 위한 일에 계속 종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유용(留用)’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러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잡지 <쓰루오카>를 만들어냈다. 잡지 안에는 노동자들이 직접 쓴 시, 그림, 소설, 목판화, 번역문 등이 실려 있었다. 석탄을 캐고 땀을 흘리던 노동자들이 퇴근 후 글을 쓰고 그림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의 잡지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노동자의 사상과 교양이 살아 숨쉬는 장(場)이었으며, 이런 행위는 아비투스적 습관과 태도가 문화적·사상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건설 현장은 어떤가. 여전히 ‘빨리빨리’와 ‘효율’의 논리 속에서 노동은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많은 사망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안전이 국가적 관심의 대상이 되며 법과 제도적 개선과 함께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안전문화와 의식의 개선은 제도와 인프라 개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생각하고 표현하며, 자기 행동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뿌리내릴 수 있다. 이것이 허강의 작은 잡지 한 권이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걸고 있는 이유다. 현장 내 문화공간과 문화활동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문화가 부족한 상황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쓰루오카> 잡지처럼 노동자들의 생산적인 자기 표현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휴게시설, 작은 전시 공간, 소모임 장소 등을 조성하여 노동자들이 시, 그림, 글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까. 공간이 있어야 표현도 활성화된다. 그리고 현장 내에서 문화 워크숍(글쓰기, 미술 등), 공연, 작품 발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노동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동료와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작업장 내 노동자들의 의견 개진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차별이나 비난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 표현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 문화도 필요하다. 물론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와 현장 리더들이 노동자들의 문화 활동 참여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인 만큼 SNS를 비롯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작품을 공유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기 표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노동자의 내면적 성장과 의식 변화를 촉진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현장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의식 개선과 문화적 변화를 위한 핵심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단순 노동을 넘어선 인간적 자존감 허강의 일본인 노동자들에게 잡지 <쓰루오카>를 만드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취미 활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패전으로 모든 것을 잃고 이국의 땅에서 강제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했던 그들에게, 글과 그림을 창작하는 일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이들은 기술자이자 노동자였지만, 자신을 단순히 석탄을 캐는 기계적 존재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과 별개로 내면의 정신적, 감성적 세계를 표현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려 한 것이다. 이는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육체적 작업을 넘어 내면의 자아까지 확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정성'(혹은 최선)의 극한적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정성'은 물질적인 결과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 활동이야말로, 외부 환경이 어떻든 스스로에게 충실하려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만들기'의 가치를 잃지 않은 것이다. 위 사례는 지금도 노동자에게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은 정식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지만, 시와 그림, 소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고 타인과 소통했다. 기술적 숙련도를 넘어선 진정한 전문가의 모습은 육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인문학적 깊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의 100년이 지났지만 작업환경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나아진 지금이지만,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의 책을 낸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진보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우리를 문화적으로 진보시키지 못했나 '빨리빨리'를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우리 사회는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단가를 낮추고 속도를 높이는 도구'로 여기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적인 교류나 자기 성찰의 시간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이러한 문화 속에서 노동자의 내면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만주 허강의 일본인 노동자들은 비록 강제적인 상황이었지만, 같은 고통을 겪는 운명 공동체였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대의 건설현장은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개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일용직(하루벌이)으로 일한다. 서로가 경쟁자이거나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고립감은 함께 소통하고 문화를 만들어갈 여유를 앗아갔다. 오늘날 건설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작업물이 완성되는 전체 과정을 직접 볼 수 없다. 쪼개진 공정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일이 전체 건축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내 작업’이라는 자부심이 약해지고, 노동은 점차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진다. 이러한 노동의 소외는 정신적 성장에 큰 장애가 된다. 결국 현장의 물리적 환경은 진보했으나, 노동자의 삶을 둘러싼 심리적, 사회적 환경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희생한 결과,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인간다움'은 오히려 잃어버린 것이다. 노동자는 안전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여야 한다 요즘 건설현장에는 의외로 교육도 많다. 매주 공정별 위험성 평가회의가 열리고, 이제는 휴대폰에 안전관리 앱까지 깔아야 출근이 인정된다. 최근 내가 설치한 ‘안전지킴이’라는 앱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로그인해 확인 버튼을 눌러야 근태가 체크된다. 문제는 이 앱의 구조다. 위험요인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현장 노동자이건만, 그들이 직접 위험을 적고 보고할 수 있는 게시판은 없다. 대신 위에서 내려오는 메시지를 읽고 확인만 해야 한다.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는 또다시 교육의 대상, 관리의 대상, 통제의 대상으로만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마주하는 건 늘 노동자 자신이다. 자재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소리, 발 밑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진동,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불안한 동작, 이런 징후는 관리자보다 노동자가 훨씬 더 먼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말할 통로는 차단돼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일본의 건설현장에서는 ‘위험예지(KY) 활동’을 통해 작업자가 직접 위험요인을 적고 공유한다. 유럽의 일부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익명으로 위험을 제보할 수 있는 모바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가 안전을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안전문화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현실은 아직 거기까지 오지 못했다.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오히려 침묵을 강요당하는 구조다. 안전은 결국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노동자에게도 안전을 말할 권리, 자기표현의 기회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안전문화의 첫걸음이다. 진짜 ‘여유 없음’은 시간의 부족보다는,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행위의 우선순위와 사회적 인정 부족, 그리고 빠르게 바뀌는 정보/오락 문화환경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시간배분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가 ‘자기 표현’과 ‘내면 성찰’을 중시하고 그 가치를 북돋우는 노력이 함께 뒤따라야 더 풍요로운 노동문화, 안전문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목소리 없는 현장, 들리지 않는 안전
  • [이두수의 절차탁마] 임진왜란 도공의 기술 …고흐와 모네의 영감이 되다

    요즘 날씨가 한여름보다 더 더운 느낌이다. 입추가 지났으니 더위가 한풀 꺾일 만도 한데 여름날씨의 마지막 발악일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매일 땀으로 샤워하며 절감하고 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 몸의 온도유지가 일정치 못하면서 콧물과 재채기가 그치질 않는다. 내 몸도 변화를 혼란스러워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요즘 부쩍 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은 오랫동안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이나 음양오행론 같은 세계관 안에서 몸을 이해해왔다. 몸은 소우주(小宇宙)로서 자연과 호흡하고, 장부와 기혈은 하늘·땅·사계절과 연결된 질서 속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관에 변화가 찾아왔다. 일본이 네덜란드를 통해 <해체신서>(解體新書, 1774년)라는 독일의 해부학자 요한 쿠르무스의 <해부학 입문(Anatomische Tabellen)>네덜란드어 판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 학자들은 직접 시체를 해부하여 기존의 한의학적 설명과 맞지 않는 부분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몸=자연 질서의 축소판이라는 직관적·우주론적 이해에서 몸=해부 가능한 물질적 구조라는 실증적 이해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의학의 전환을 넘어, 인간관과 세계관의 근본적 전환을 촉발했으며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해하다’ 혹은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보통 ‘안다’고 하는 과정은 크게 '분석적 지식'과 '직관적 지식'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분석적 지식 (Knowing by Analysis)은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의 부분을 탐구하고, 그 관계를 파악하여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성을 중시하며 증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관찰-분석-추론-종합의 과정을 거치며 검증하는 것이다. 직관적 지식(Knowing by Intuition)은 분석과정 없이 대상을 한 번에,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논리적 추론이 아닌, 경험과 감각, 그리고 무의식적인 통찰력에 기반한다. 즉각적이고 주관적이며 비언어적인 것이 특징이다. 오랜 경험 축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대상에 대한 내재적인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오랜 시간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답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상을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숙련된 장인이 망치 소리만 듣고도 쇠의 온도를 아는 것은 직관적 지식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소리와 온도의 관계가 그의 몸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쪼개서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논리가 발달했고, 직감으로 전체를 아우르려는 태도에서는 통찰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다. 직감은 논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이렇다'라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 쉽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느낌이 그래', '내 경험상 이래'와 같이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요즘 한국의 국회나 청문회 등을 보면 정상적인 대화를 볼 수 없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 대화하기 보다는 고함지르기가 자랑이고 윽박지르는 것이 일상이다. 솔직히 이들을 좀 배운 지식인이나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라고 하기엔 낯부끄럽다. 통찰의 노동자, 논리의 감독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현장 문제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을 갖게 된다. 노동자의 몸은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작업을 반복하며 문제의 징후를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 소리는 용접 부위가 잘못됐다는 신호다", "이 냄새는 전기 합선이 곧 일어난다는 뜻이다"와 같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으로 상황을 '안다'.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이렇게 하면 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생긴다. 반면, 감독관은 도면과 규정, 공학적 지식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현장을 관리하려고 한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으로 확인하고, 수치를 측정하고, 관련 규정을 찾아보는 등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과정을 거치려 한다. 감독관의 역할은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모두에게 납득시킬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규정에 어긋나니 다시 해야 합니다"와 같이 원칙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의 차이는 종종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감독관이 현장의 미묘한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고집하며 일을 지연시킨다고 느끼며 화부터 낸다. 감독관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경험만 믿고 위험하거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이 충돌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가'에 대한 갈등이기도 하다. 경험과 몸의 감각을 중시하는 태도와 논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가 부딪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를 보완할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직관적 통찰이 문제의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되고, 감독관의 논리적 분석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경험이 이론으로 정립되고, 감독관의 논리는 현장에서 더 유용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현장의 안전교육에는 주의사항 전달이나 기능적 교육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교육내용이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그림 그리는 작가로 참가했었다. 유럽에 간 김에 런던, 파리 그리고 헬싱키를 돌아보았다. 주로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우연인지 모르지만 미술관마다 인상파 그림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인상파가 일어날 당시 유럽은 일본에서 건너온 우키요에(浮世絵)라는 목판 인쇄그림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일본 도시 상인과 서민 사이에서 목판 인쇄로 대량 제작된 우키요에는 값싸고 친근한 대중문화였다. ‘떠도는 세상(浮世)’이라는 뜻의 우키요에는 가부키나 노우 공연의 안내 포스터 출연 배우나 잘나가는 기생, 명승지, 그리고 일상생활이 담긴 자유로운 표현의 예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우키요에는 일본의 도자기 수출 과정에서 우키요에 목판화가 포장재(완충재)로 실려 나갔는데, 유럽 상인과 예술가들은 우연히 이 목판화를 발견해 그 신선한 시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의 평면적 색면, 비대칭 구도, 윤곽선 강조, 일상 속 순간의 포착 방식을 적극 수용하며 자포니즘이라는 붐이 형성되었다. 클로드 모네는 일본 다리와 연못을 모티브로 ‘수련 연작’을 그렸으며, 빈센트 반 고흐는 히로시게(広重)의 ‘명소 에도 100경’을 모사했고, 에드가 드가는 우키요에에서 무희들의 동작 포착과 화면 잘라내기를 학습하여 발레 무희를 생생히 표현했다. 클림트의 '황금 시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들도 우키요에가 가진 장식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우키요에는 근대 서양 미술의 자유로운 시각, 언어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임진왜란과 문화 기술의 이동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는 도자기 덕분이었다. 사실 돈이 된 것은 도자기였다. 일본 도자기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출신 도공들의 역할이 컸다. 1592년 임진왜란은 조선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전쟁은 인구 감소와 경제 쇠퇴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초래했다. 하지만 일본에선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의 뛰어난 장인들, 특히 도공들이 일본 각지로 이주하며, 그들의 기술이 일본 도자기 산업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 속에서 조선 도공의 기술과 일본 상업문화가 결합해 일본은 도자기와 우키요에를 세계에 알렸고, 유럽 미술 혁신을 이끌었다. 조선은 '기술'이라는 문화적 자산을 소유했으나,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했지만, 일본은 이 기술을 받아들여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제공했고, 이는 일본 상공업과 나아가 유럽 무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인류학자 최협 교수는 문화란 누가 최초로 무엇을 만들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파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책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에서 강조되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문화란 창조보다 전파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화가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은 ‘무엇을 처음 만들었는가’보다 ‘그것이 어떻게 퍼지고, 어떻게 공유되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의 사용, 농업, 철기, 문자 등은 한 곳에서만 창조되었더라도, 그것이 전파·수용·응용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회가 변하고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문화는 창조가 아니라 전파 속에서 힘을 얻는다. 몸의 지혜든, 노동의 경험이든, 예술의 감각이든, 나눠지고 공유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처음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형되며 확산되느냐다. 직관과 분석, 경험과 논리의 차이를 넘어, 상대에 대한 증오와 열등감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지식과 문화는 지금 어떻게 서로에게 전해지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기후위기의 시대, 패권전쟁의 시대에 흔들리는 사회에서 새롭게 붙잡아야 할 문화의 생명일 것이다. 이두수 작가 소개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임진왜란 도공의 기술 …고흐와 모네의 영감이 되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타는 목마름으로

    며칠간 지속된 더위는 내 육체적 한계를 드러냈고, 내 삶의 리듬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뜨거운 여름 건설 현장에서 '노동은 곧 운동'이라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일이 재미있고, 재미있으면 피곤함을 잊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과도하게 흘린 땀은 내 몸의 생체리듬을 무너뜨리고, 일에 대한 의욕을 앗아가며, 사소한 일에도 짜증마저 유발하는 '노이즈'의 시작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혼란은 단순히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의 문제였다. 몸무게의 70%가 물이라는 사실이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단순한 갈증을 넘어선 탈진 상태는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나와 세상 사이의 관계마저 뒤틀리게 했다. 물 한 병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소한 부주의가 개인의 신체 리듬을 넘어 삶의 질서와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경험은, '물'이라는 근원적인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를 재해원인분석 툴인 '4M'으로 분석해 보면. 먼저, 사람(Man)의 문제는 나 자신의 부주의한 선택이었다. 뜨거운 몸을 식히려고 차가운 물만 벌컥벌컥 마셨고, 충분한 수분 섭취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이는 관리(Management)의 문제, 즉 개인의 건강을 스스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찜통 같은 환경(Media)과 기본적인 냉방조차 쉽지 않은 건설 현장(Machine)의 물리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를 극한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실제 땀으로 인한 탈수 증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상의 독서, 그림 그리기, 운동 같은 소중한 나의 루틴들은 무겁고 피곤한 몸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약간 무리한 인용일 수 있지만 이 상태는 마치 에밀 뒤르켐이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의 부재, 혼란, 또는 붕괴로 인해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 좌절감, 무력감 등 무규범 상태인 아노미(Anomie)라고 말한 그와 같은 상태였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철학, 과학, 예술 같은 고차원적인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고, 오직 생존 본능만이 남는 혼돈 그런 상태 말이다. 물: 생존을 넘어선 '로고스'의 기반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다. 평범한 이 시각이 그리스가 그동안 신 중심의 신화문명에서 인간중심의 철학문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했던 그의 시도는 '물'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서 시작되었다. 물은 고체, 액체, 기체로 자유롭게 변한다. 고이면 썩고, 흐르면 살아 움직인다. 얼면 견고하고, 끓으면 보이지 않게 증발한다. 물은 ‘형태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모든 형태가 되는’ 존재다. 물의 이러한 유동성과 포용성은 당시의 수준에선 우주의 근원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근대에 들어와 우리는 이 ‘물’로부터 리터(Liter)와 킬로그램(Kilogram)이라는 단위마저 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10평방센티미터에 담긴1리터의 물은1킬로그램이다. 즉, 무게와 부피라는 물리 단위조차 ‘물’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탈레스의 말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측정과 질서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기준이 세워질 때 시민의식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린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이는 물이 단순한 생존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감정 조절, 그리고 사회적 관계 형성의 근간이 되는 '로고스(Logos)'의 기반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 부족으로 뇌 기능이 저하되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노이즈'가 발생하며, 결국 '나와 물체 간에, 나와 동료, 인간들 사이의 질서가 붕괴되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의 관리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관계의 파열, 나아가 문명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地-圖-理': 지식 탐구의 세 단계 어떤 노이즈 상태에서 로고스를 끄집어 내는 과정을 지-도-리로 간략화 해보자. 地 (현실, 경험, 데이터)는 단순히 물리적인 땅(Earth)을 넘어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지하고 경험하는 모든 복잡하고 정제되지 않은 현상 그 자체다. 무수히 많은 별들,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극한의 갈증과 피로가 여기에 해당한다. 圖 (개념, 모델, 재현, 체계화)는 단순히 지리적인 지도(Map)를 넘어, 현실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활용하기 위한 모든 형태의 표현물, 모델, 계획, 추상적인 개념, 혹은 질서화된 정보 체계를 의미할 수 있다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 속에서 찾아낸 '별자리', 측정의 기준이 되는 '미터법', 사과의 낙하에서 유추된 '수학 공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의 경험에서 얻은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하는 내 체질에 날 덥다고 찬물만 마셔 내 몸에 음기가 서린’ 것은 나름의 체질 분석으로 나에게는 일종의 '圖'가 되었다. 理 (이치, 원리, 궁극적 법칙, 완전한 추상)는 '圖'를 통해 이해된 여러 현상이나 개념들 간의 숨겨진 연결고리,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법칙을 탐구하는 단계다. 탈레스의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유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양자역학의 기본원리, 그리고 동양의 이기론처럼, 개별적인 '圖'들이 가리키는 궁극적인 실체를 파악하려는 시도이자 '圖'의 한계를 넘어서는 완전한 추상의 영역이다. '圖'를 넘어서는 직관과 지혜: 禪과 易의 가르침 우리가 만든 '圖'와 ‘理’는 아무리 정교해도 '地'의 완벽한 복사본이 아니다. 별자리가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포착한 '圖'이듯이, 우리의 모든 개념과 이론은 실재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따라서 '圖와 理’를 넘어 다시 '地'로 돌아가 직관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선(禪)은 언어나 문자로 표현된 '圖와 理'의 한계를 넘어, 실재('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깨닫는 것을 강조한다. '불립문자'의 가르침처럼, 아무리 지도를 잘 그려도 그 땅 위를 직접 걷는 경험과는 다르듯이, 선은 직접적인 '地'의 경험을 통해 총체적이고 비분석적인 이해에 도달하려 한다. 역(易)은 '변화'를 핵심 원리로 삼아 우주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원리를 탐구한다. 팔괘와 육십사괘라는 상징 체계('圖')를 통해 우주와 인간 세상의 변화 패턴('地')을 설명하며, 정적인 '圖'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地'의 끊임없는 변화와 그 속의 관계성,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까지를 '圖' 안에 담아내려 한다. 결국 선과 역은 모두 '圖와 理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어 '地'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깨닫거나 '地'의 동적인 측면과 그로부터 얻는 지혜까지를 '圖와 理’ 안에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재현이나 추상화를 넘어선다. 나의 경험 또한 그랬다.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냉방된 휴게실에서 얻었던 순간의 쾌락은 결국 '圖'에 갇힌 미숙한 선택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 역시 나의 '圖'가 '地'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地'로 돌아가 나의 몸이 보내는 직관적인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물 한 방울이 던지는 질문: 개인을 넘어선 문명의 문제 건설 현장에서의 물 부족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신체적 고통을 넘어선다. 그것은 물 관리, 환경 윤리, 사회 시스템,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탈진 상태에서 겪은 짜증과 관계의 마찰은 한정된 자원 앞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축소판이었으며, 물 부족 환경이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 기능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가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과거 군주들의 통치에서 치산치수(治山治水)를 강조하며 보와 수로를 증설한 것은 결국 식량증산을 위한 물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지금도 물 문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도시화된 현대 사회는 복잡한 물 공급 시스템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이나 홍수는 이러한 시스템을 언제든 마비시킬 수 있다. '물 한 방울'의 문제는 결국 문명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단순한 개인적 목마름을 넘어, 물이 생명과 질서의 근원임을 깨달았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로고스'의 힘이 약해졌을 때, 짜증과 자기 비하에 빠지는 나의 모습은그간 하찮게 여겼던 '물'이라는 근원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우리는 아직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의미를 낮을 곳을 향하는 물의 겸허와 만물을 이롭게 하려는 부쟁의 의미, 어떤 장애물도 돌아서 가는 유연함,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스스로 맑아지는 정화의 힘과 포용력 이런 은유적 의미보다는 단지 '물은 흘러야 한다'라고 피상적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 한 방울의 소중함과 그것이 개인과 사회, 그리고 문명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깊이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地'에서 '圖'를 거쳐 '理'에 이르는 지식의 여정 속에서 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는 이 여름날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노동을 마치고 물 한 잔을 마시며 물 한 방울이 우리의 생존과 이성, 감정, 인간 관계, 나아가 문명의 지속가능성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하이쿠 한 수> 물 한 잔 무시, 길을 잃은 내 영혼 껍데기일 뿐. 水一杯無視すれば魂も空っぽう。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타는 목마름으로
  •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마드 시대 …다시 회복해야 할 노동의 품격

    이제 광주 일곡현장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와 이달 말쯤이면 할석팀도 빠질 거 같다. 건물 주변 되메우기 공사가 시작되면 골조공사는 거의 끝났다는 얘기다. 할석미장팀만 남아 마지막까지 내장시공에 아무 문제없도록 틈을 메우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선 역시 선이 중요하다. 인체에서 골격이 좋다는 것은 선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건물도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지만 무엇보다 선이 예뻐야 한다. 마무리 공정에 들어가면 근로자들은 다음은 또 어느 현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건설노동자는 모두 일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이 끝나면 또 어디 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인 것이다.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고정된 것이 아니니 늘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좋게 생각하면 일용직 건설노동자는 현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노마드적 삶을 사는 직종이기도 하다. 직업과 노동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보통 '저는 ○○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빈칸에는 흔히 자신의 직업이 들어간다. 교사, 회사원, 건설노동자, 예술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사회적 위치를 표현한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곧 정체성의 뼈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더 깊은 울림을 가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단지 나의 직업을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업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그리고 이 일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자면 꽤 최근의 일이다. 고대 사회에서 노동은 하층민과 노예의 몫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은 자유인의 덕목이 아니며, 정신적 성찰은 노동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은 정무나 철학, 예술 활동에 참여해야 했고, 육체노동은 종속의 상징이었다. 중세에는 신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노동’은 육체의 타락과 원죄에 대한 속죄로 이해되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고통받고, 그것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때로는 처벌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직업은 여전히 신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사회적 이동은 제한되었다. 이러한 노동 개념에 근본적 전환을 가져온 것은 종교개혁이다. 루터는 모든 직업이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칼뱅은 성실한 노동, 근면, 검약을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 직업이 ‘소명(voc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노동을 통한 자기 수양과 성공을 미덕으로 여기는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가 되었다. 이렇게 근대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 등장과 시민계급의 부상은 노동의 성격을 바꾸었다. 직업은 신분을 넘어선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자 내면의 윤리를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출발점에서 직업윤리는 곧 인간의 윤리였고, 노동은 곧 자아 실현의 터전이었다. 이 시기부터 노동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개인의 자립, 덕성, 그리고 사회 기여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노동은 대규모 조직 속의 단위 행위가 되었다.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었고, 이로 인해 노동자의 인간성 상실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시기의 노동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이라고 비판했으며, 사회 발전은 물질적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사회 발전을 야기한다는 그의 유물변증법 이론은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노동은 또 다른 의미도 갖는다. 바로 노동자가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파업, 사회주의 운동, 복지국가의 형성 등 노동이 사회적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우리는 다시 노동의 의미를 묻고 있다. 자동화, AI, 일용직, 파견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화 등은 기존의 고정된 직업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일은 있는데 직업은 없고, 일터는 있지만 고용은 불안정하고, 일은 자유로운데 보상은 불공정하다. 이러한 형태의 노동은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지만 정체성을 지탱해줄 기반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생존을 위한 행위였던 노동이 점차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더 나아가 정치·문화적 의미까지 내포하게 되었다. 노동은 여전히 존재의 문제이며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왜 일하는가?' '노동은 나에게 무엇인가?' 노동자의 아비투스와 공동체 이런 상황 속에서 직업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강요처럼 들린다. 오늘 하루 일한 사람이 내일은 일을 못 할 수도 있는 시대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동이 일시적이고 대체 가능할수록 나 역시 일시적이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해진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은 많은 통찰을 준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행동, 감각은 사회적 구조가 몸에 새긴 무의식적 성향이다. 다시 말해 노동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성격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사회 환경과 조건이 형성한 결과다. 예컨대 장기간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한 사람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 쉽다. 정리정돈에 대한 개념이 체화되지 않거나 거친 말과 격식 없는 행동, 기술 숙련보다 속도를 우선시하는 문화에 노출된 사람은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일을 ‘어쩔 수 없는 생계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게으름이나 책임감 부족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형성한 노동자의 아비투스다. 이러한 조건에서 직업의식이 부재한 공동체가 어떻게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사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갖기 어렵다. 공동체는 ‘권리’만이 아니라 ‘기여’와 ‘참여’의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늘 임시직으로 전전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존엄하게 여기기란 쉽지 않다. 그에게는 ‘내 일’이라는 감각 자체가 체화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일을 방어적으로 수행하며, 동료와의 관계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생존이 우선이 된다. 이처럼 직업의식의 부재는 공동체 의식, 시민의식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업의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업은 단지 생계수단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이자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이란 투표권만 갖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는 태도이다. 그런데 자신을 대체 가능한 존재, 수시로 밀려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공동체를 책임지려 할 수 있을까? 결국 시민의식은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긍정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직업의식이란 그런 점에서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며,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조건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의식 자체를 교육이나 훈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 즉 ‘장(field)’이다. 선임 숙련공과의 도제관계, 동료와의 신뢰 기반과 협업, 현장에서의 예술과 인문학적 실천, 작업일지와 글쓰기 등은 모두 그 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끌어낼 수 있는 구조와 공간 말이다. 현실과 거리감이 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노동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릴로 벽을 깨고, 모르타르로 벽을 바르고, 타일을 붙이고, 벽지를 바르는 작업을 더 안전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그는 이미 예술가가 아닌가. 역사적으로도 노동이 생존을 위한 노예들의 작업에서 개인의 덕성과 시민의식을 키우는 행위로 발전해 왔듯이, 노동을 통한 몸과 정신의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노동자가 노동을 예술로 꿈꾸고, 철학을 상상하는 그런 노동현장이 될 때 노동은 소외를 넘어 예술이 되고 최고의 복지가 되지 않을까. 그럴 때 비로소 직업은 다시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며칠 전 건축가 윤경식 선생이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돈 조반니’ 총예술감독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치렀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 공연은 건축가가 총예술감독을 맡아 고전 오페라의 형식을 넘어 ‘공간과 예술, 인간의 존재성’을 아우르는 종합예술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설노동자다'라는 말이 단지 신분이 아니라 철학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직업 없는 노마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노동의 품격일지 모른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마드 시대 …다시 회복해야 할 노동의 품격
  • [이두수의 절차탁마] 거짓이 판치는 시뮬라시옹의 세상

    진짜의 세상을 바라며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정말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의 배경과 조건을 보고 있는가?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점점 더 후자의 방식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어디 출신인가, 어떤 직장을 다니는가, 어디에 사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사람의 ‘등급’을 판단하기 위한 사전 정보 수집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는 단순한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다. 우상과 권위에 의탁하는 사회 개인의 발견은 근대 정신의 핵심이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선택과 판단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서툴다. 자율적 판단의 부담 대신 누군가의 말을 따르고 싶어 한다. 전문가, 인플루언서, 지식인, 정치인 등 소위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한 맹신과 의탁이 여전히 강하다. 이런 현상의 본질은 일종의 마조히즘적 심리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대신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싶어 하는 욕망. 이것이 우상화로 나타나고, 권위주의로 이어진다. 정치를 향한 광적인 지지 또한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질서에 복종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의 발현일 수 있다. 문제는 단지 정치나 권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취향’마저도 정치화되고 있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가, 어떤 브랜드를 입는가가 그 사람의 지적 수준, 문화적 자본, 계급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신호가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와 “문화자본” 개념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상류층은 자신의 취향을 ‘자연스럽고 세련된 것’으로 위장하면서, 그와 다른 대중의 취향을 미숙하고 천박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한 취향의 정치화는 단순한 소비 행태를 넘어서,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서열화하고 계급화시킨다. 결국 우리는 인간을 ‘그 자체’로 보기보다, 그가 가진 배경, 학벌, 취향, 소속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단지 문화적 왜곡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다. 사기, 거짓말, 과도한 경쟁, 혐오 등은 결국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때때로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다. 권위란 신뢰와 실력, 성숙한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이다. 반면 권위주의는 권력을 휘두르고 서열을 강요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태도다. 학벌, 출신 지역, 배경 등을 근거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가장 치졸한 권위주의의 한 형태다.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타인의 인격을 평가하려 드는 것은, 실력의 표현이 아니라 자격지심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회가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인간 한 사람에 대한 사유의 부족이다.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속한 집단과 배경”을 먼저 보는 사회는 지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회다. 인간은 배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이야기, 생각, 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려한 이력서나 매력적인 스펙이 아니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눈, 그리고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는 용기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다. 한 사람을 그가 가지고 있는 “무엇(What)이 아니라 “누구(Who)”로 볼 수 있는 사회, 그의 배경이 아닌 그의 존재를 존중하는 문화, 바로 그곳에서 인간다운 삶, 그리고 진짜 공동체가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거짓이 판치는 시뮬라시옹의 세상 그러나 우리사회는 거짓과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세상을 망친 건 단지 몇몇 사기꾼의 출현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미 거짓에 익숙해졌고, 어쩌면 거짓이 편한 사회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어?”, “너무 순수하면 바보야”, “이기는 쪽에 줄을 서”라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명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품질보다는 ‘좋다고 알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보다 이미지, 실체보다 명성을 쫓는다. 그 제품을 만든 노동자의 땀과 손끝은 지워지고, 대신 누가 사용했는지, 얼마나 유명한 브랜드 인지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외양이 노동의 가치를 대신하고, 간판이 손의 노고를 덮어버린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시뮬라시옹의 세계’라 불렀다. 시뮬라크르(simulacre), 즉 현실을 흉내 낸 이미지들이 진짜를 대체하고, 사람들은 복제된 이미지가 진짜인 줄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가 사라지고 가짜가 진짜인 척하는 세계.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렇다. 이제 사회는 ‘진정성’이라는 말만 남았고, 실제 노동의 거칠고 투박한 진짜는 외면 당한다. 사람들은 노동을 ‘좋아하는 척’할 뿐이다.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땀 흘려 일해보지 않고도 노동의 존엄을 운운한다. 그 말이 자신을 개념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말은 화려하지만, 노동의 고통과 생명력은 점점 사라진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적이기보다는,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분을 소비한다. 구호가 실천을 대신하고, 말이 현실을 대체한다. 진짜는 조용히 사라지고, 거짓은 요란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진짜의 소리는 묻혀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자부심이 없으니 남의 삶을 모방하려 든다. 팬덤 문화가 정치에까지 침투하고, 외모지상주의와 돈·권력 숭배가 사회를 지배한다. 위조와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얻으려 한다. 남을 위한 봉사보다 SNS에 올라갈 사진 한 장이 더 중요하다. 심지어 이것도 실력이라고 한다. 위에서 말한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현상을 '문화자본' 개념으로 설명한다. 부유한 계층은 더 높은 수준의 문화와 교육에 접근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사회적 성공을 낳으며 계층을 고착화한다.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사회,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디 출신이냐'를 중시하는 문화는 진짜를 외면하게 만든다.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화려하다. 어쩌면 우리사회는 진짜를 부담스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는 여전히 있다. 건설 현장이 그 증거다. 거짓과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곳. 내가 잘못 시공하면 바로 다음 공정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선 실수가 눈에 띄고, 책임이 즉각 드러난다. 노동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다는 건 깨어 있다는 것이며, 깨어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상상하며 창조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노동자는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다. 원래 인간은 누구의 길을 흉내 내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창조자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위에 남는 발자국이 바로 새로운 길이다. 어느 날 수많은 소리가 엉킨 어수선한 건설 현장에서 망치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망치소리, 아직은 인간만이 일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호소하는 듯한 울림으로 들려왔다. 망치소리 망치 소리는 뼈와 뼈가 부딪는 소리다. 쇠가 긁히는 소리로, 결코 나긋나긋한 소리가 아니다. 너와 내가 부딪히는 살 떨리는 소리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짜증나는 소리다. 오늘도 하늘에선 타워크레인이 빙빙 돌고 쉴 새 없이 레미콘 차량은 들락거리고 지게차는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호각소리, 사이렌소리, 그리고 째지는 외침소리, 광장에서 들려오는 유세소리에 망치소리는 희미해진다. 진짜 세상을 만들자고 했고, 진짜가 나타났다고도 했다. 거짓이 많을수록 조미료를 많이 타고, 포장은 과해지며 목소리는 커진다. 아스라이 들리는 콘크리트 벽을 두드리는 망치소리는 살아 있다는 신호다. 각목에 못질하는 망치소리는 제대로 서라는 가르침의 소리다. 기억하라, 행복한 우리 집을 만드는 것은 땀방울에 물든 거친 망치소리임을. ‘망치소리’는 시뮬라시옹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가장 정직한 소리다. 포장되지 않은 진실의 육성이며, 삶과 노동의 실재다. 보드리야르는 ‘진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믿는다. 진짜는 사라진 게 아니다. 단지 너무도 많은 거짓된 소리들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귀를 기울이면, 진짜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거짓이 판치는 시뮬라시옹의 세상
  • [이두수의 절차탁마] 소쇄원을 거닐며… 이상을 꿈꾸다 현실에 갇히다

    요즘 나는 광주 일곡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골조공사가 끝나고, 곧 조경공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부쩍 정원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과 함께 담양 소쇄원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 관광자원을 세계에 널리 알려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당찬 비전을 품고 있었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한 기운이 씻긴 듯 흐른다’는 뜻이다. 흐르는 물소리,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대숲, 낮은 담장을 넘어오는 햇살이 어우러진 그곳은,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한 사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는 조광조의 제자였다. 중종 시대, 성리학적 이상정치인 왕도정치를 꿈꾸었던 조광조와 개혁적 사림 출신 인재들이 기묘사화로 몰락했다. 왕권의 정통성이 부족했던 중종은 개혁 의지를 접고 훈구 세력과 손잡으며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양산보는 그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출사를 포기한 채 고향 담양으로 내려왔다. 벼슬길이 끊긴 젊은 유학자는 자연 속에서 나마 따로 이상세계를 꾸리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소쇄원은 그렇게 태어났다. 세속과 단절되고 자연과 어우러진, 작지만 순결한 세계로. 별서정원(別墅庭園) — 속세를 떠난 선비들이 은거 생활을 위해 조성한 공간 — 의 전형이다. 나는 전에 영주 현장에서 일할 때,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자주 찾았다. 소수서원은 안향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였고, 이후 이색-정도전-정몽주-길재-김종직-김굉필-조광조-이황으로 이어지는 영남 사림파의 거점이 되었다. 이 지역은 세조 때의 계유정란과 맞닿아 있었다. 왕권 찬탈의 소용돌이 속에서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고, 많은 선비들이 충절을 지키려다 피를 흘렸다. 그 흔적은 지금도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에 남아 있다. 광주 현장으로 온 뒤로 담양 소쇄원을 두 번 찾았다. 이곳은 세조의 손자인 중종 시대, 기묘사화라는 또 다른 정치적 참화와 연결되어 있다. 훈구세력에 의한 조정의 보수화에 맞서 신진 사림파 중심으로 일어난 혁신운동은 좌절되었고,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 그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 속에서도 선비들은 오히려 더 간절히 이상국가와 왕도정치를 꿈꾸었을 것이다. 소쇄원의 구석구석에는 그런 정신과 다짐이 녹아 있다. 광풍각(光風閣)은 소쇄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각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채 같은 공간이다. '비갠 뒤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이름처럼 자연의 빛과 바람, 물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세속의 때를 씻고 자연과 하나 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읽힌다. 제월당(霽月堂)은 주인이 거처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공간이다. ‘비 갠 뒤 맑게 뜬 달’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맑고 고요한 심경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이는 스승 조광조의 청렴한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제월당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작품이다. 오곡문(五曲門)은 물이 다섯 번 굽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따고 싶었으나, 스스로 겸손을 담은 이름으로 보인다. 자연과 교감하고, 동시에 번다한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대봉대(待鳳臺)는 ‘봉황을 기다리는 대(臺)’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는 하(夏)-은(殷)-주(周)와 같은 이상적 세상을 이끌 임금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소쇄원은 양산보라는 한 선비의 좌절과 꿈 위에 세워진 공간이다. 세속 정치의 소용돌이를 떠나 작은 골짜기 안에 스스로의 이상사회를 조성했지만, 그 이상은 자연 안에 고립되었고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소쇄원은 아름답지만, 결국 ‘현실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이상’의 표상이다. 자연과 하나 되고자 했지만 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에 그쳤다. 이곳을 거닐며 나는,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로 연결하지 못하는 한국적 정신구조를 본다. 중국, 한국, 일본의 정원은 모두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만, 그 방식에는 각기 다른 정신의 지형이 담겨 있다. 중국은 자연을 인공의 손길로 조탁해 하나의 우주를 펼쳐 놓았고, 일본은 자연을 추상과 사유의 대상으로 밀어 올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그 사이 어디쯤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인공을 최소화한 자연과 인공의 적절한 융합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융합’은 정원이 도시 안이 아니라, 늘 자연 속에 깃드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이 세상을 정원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으로의 도피다. 사람들은 한국 정원은 “자연에 물들어 들어가는 느낌”이고 일본 정원은 “자연을 마음 안에 담아 표현한 느낌”이라며 한국정원은 실경을 살리고, 일본은 심경을 구현했다는 식으로 한국정원도 일본정원 못지 않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낸다. 더 나아가 한국 정원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인공은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한다 라고 평하는데 이런 말은 일견 멋진 표현 같지만 바로 그 점이 현대 도시문화 속에서는 한계로 작용한다. 한국의 정원은 대개 마을 한복판이나 도시 안에 있지 않다. 산과 물, 자연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그 자연을 현실로 끌어오는 데는 서툴다.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을 상상하거나 추상화하는 힘이 부족하다.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실로 끌어오는 데는 실패하고, 대신 아파트라는 반자연적 인공구조물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현실의 우리들 주거공간의 대부분은 아파트다. 자연을 흉내 낸 조경 몇 점을 곁들인, 반자연적이고 획일화된 건물과 단순한 도시 풍경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존중하고 그리워하지만, 실상은 동경만 할 뿐 현실로 구현할 의지나 체계는 부재하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현실을 돌파할 역량은 키우지 못한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일제잔재, 독재의 잔재 탓으로 돌린다. 청산이란 계몽이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현재의 힘이 과거를 이길 만큼 강하면, 청산은 저절로 이뤄진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는 것은 현재가 과거보다 미약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에서는 이 틀을 깨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는 더 이상 일본이나 서구문화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경쟁하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스스로 강해지니 자연스레 과거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것이다. 오늘 우리 정치는 어떠한가? 지금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신발끈을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정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저 과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은 이상으로 남겨두고, 현실은 현실대로 방치하는 방식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되, 그것을 현실의 삶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소쇄원의 고요를 넘어서, 살아 있는 자연, 살아 있는 이상을 품은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진석 교수가 정원에 대해 말한 부분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정원을 ‘정원’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정원이 제국을 운영해봤거나 적어도 꿈꿔본 적이 있는 나라에서라야 문화의 중심 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유ㆍ주체ㆍ독립ㆍ창의 등의 힘보다는 종속적 상황에 갇혀 사는 나라에도 정원이 없진 않지만, 그것이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하게 되는 문화의 일반성으로 자리 잡지는 못한다. 문화의 일반성으로 드러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매개로서의 그것을 비교적 어색하지 않게 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활화라고 하자. 이때는 누구나 여건이 되기만 하면 정원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이것은 삶의 의미에 눈뜰 때면, 누구나 시인을 꿈꾸는 바로 그 마음에 가깝다. 비 오는 날, 빗방울 소리가 리듬을 꾸리면서도 하나하나 따로 들릴 때 피아노 건반에 자신을 맡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도 비슷하다. 정원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소쇄원의 대숲 사이를 걷던 어느 봄날, 나는 다짐했다. “이상은 소중하지만, 현실을 이길 힘을 기를 때 비로소 그것이 진짜 삶이 된다고...”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소쇄원을 거닐며… 이상을 꿈꾸다 현실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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