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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2 FRI
브랜드칼럼
문송천 교수
문송천 교수 moon@kaist.edu
  • -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 유럽 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 카이스트, 케임브리지대, 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HW 30년, SW 0년 …굴뚝만 세운 껍데기 제국

    컴퓨터는 시스템 관점에서 볼 때 국가라는 조직만큼 매우 복잡하다. 컴퓨터를 하나의 국가 조직에 비유한다면 국토, 건물, 도로, 자동차 같은 것이 하드웨어(HW)에 해당한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법 체계가 필요하듯이 컴퓨터에서도 그렇다. 컴퓨터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구동 시키는 법전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소프트웨어(SW)에 해당한다. 즉 SW란 HW를 구동하는 육법전서와 같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엔진 변속기 운전대 바퀴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HW다. 반면 운전자의 운전법은 실물의 형태를 갖지 않는 SW다. 그래서 SW는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리 속에 혹은 컴퓨터 속에 숨어 있는 존재다. 따라서 HW란 기계 덩어리 혹은 실리콘 덩어리인 반면 SW는 질서 정연하고도 유연한 법의 체계를 갖고 있다. 법을 영어로는 프로토콜(규범) 혹은 알고리즘(해법)이라고 부른다. 컴퓨터의 HW에는 기억용 메모리 칩과 계산용 비베모리 칩, 이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기억칩과 계산칩을 유기적으로 작동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SW다. 즉 SW란 기억칩(메모리)에 저장돼 있는 데이터(숫자 문자 등)를 계산칩(비메모리)으로 가져와 계산(더하기 빼기)을 한 다음 계산된 결과를 다시 기억칩에 저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메모리도 누군가 만들어야 하고 비메모리도 누군가 만들어야 한다. 또한 SW도 누군가 제작해야 한다. 이런 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삼성이 있고 비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인텔과 엔비디아가 있다. 비메모리에는 계산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계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SW가 필요하다. 따라서 메모리 업체는 삼성처럼 SW가 필요 없으나 비메모리 업체는 인텔이나 엔비디아처럼 SW를 필요로 한다. SW 업체의 대표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SW가 윈도고 구글이 만든 SW가 안드로이드, 애플이 만든 SW가 iOS 같은 것이다. 메모리에 비해 비메모리가 부가가치가 높고 또 비메모리에 비해 SW가 부가가치가 높다. 삼성은 메모리 설계 및 제작에 주력하는 업체이다. 비메모리는 삼성이 제작은 하지만 주력 제품이 아니다. SW는 삼성이 아예 제작조차 하지 않는다. 즉 삼성은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제품에 주력해 왔다. AI 반도체(AI 칩)는 기억칩이 아니라 계산칩에 속한다. 즉 삼성은 비메모리를 주력해 오지 않았기에 역시 AI 칩에도 주력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 AI에 관심이 많은 이 시기에 삼성은 AI 칩을 생산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반면 엔비디아는 AI칩 설계에 가장 앞서 있는 업체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AI칩을 생산해주는 업체가 대만의 TSMC다. TSMC는 칩을 설계하지는 않으며 남(고객사)이 설계도를 넘겨주면 그 설계도에 충실하게 칩을 불량률 최소화하여 제작 생산해준다. 반도체 HW(메모리 및 비메모리)는 제철소와 같은 거대한 생산 공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첨단산업이기는 하나 굴뚝산업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SW는 공장 시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첨단 두뇌산업으로 분류한다. SW는 HW보다 부가가치가 1.5배 이상 높다. 크든 작든 어느 IT제품도 그 구성에 있어서 HW 대 SW는 80대 20이다. 이는 작은 IT 제품인 스마트폰에서부터 큰 IT 제품인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 산업매출 순익 시장규모로 보면 SW산업 대 HW산업은 60 대 40이다. 그만큼 SW가 HW에 비해 비중이 높다. 메모리반도체는 SW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비메모리반도체 (AI 반도체 포함)는 SW 없이는 설계/제작/생산이 불가능하다. 삼성은 잘 알고 있듯이 종합 기업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병풍 식으로 혹은 문어발 식으로 다방면에 사업을 펼쳐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굴뚝산업' 중심의 삼성은 어떤 기준으로 리소스를 분배해야 할까. 삼성은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그런 삼성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선언을 한 것이 있다. 메모리 강자인 삼성이 2030년이 되면 비메모리 분야에서 TSMC를 추월하겠다는 전략 계획이다. 그게 ‘삼성 2030비전’의 골자다. 그런 비전을 실현하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비메모리 분야에서 SW 없이는 강자가 될 수 없으므로 삼성이 SW를 자체 개발하든 아니면 인수합병하든 어떻게 해서든 SW 쪽 실천 로드맵을 작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후 삼성의 투자나 행보는 그에 부합되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다른 분야인 바이오 쪽에 거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 왔다. 삼성의 리소스 배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SW를 하겠다고 한다면 다른 SW 기업들을 보고 배울 점이 있다. SW 기업의 대표 주자는 마이크로소프트다. 그 다음에 애플 구글이 바짝 뒤쫓고 있다. 재계 시가총액 규모에서 전 세계 1, 2, 3위 기업이다. 정유산업 분야의 세계 최대 기업인 사우디아람코는 재계 7위로서 이들 3개 기업을 넘어설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들은 SW 한 우물 파기로 늘 그런 위상을 지켜왔다. SW 이외에는 다른 어떤 사업도 벌이지 않는 기업들이다. SW는 다른 제품과 달리 주기적 업그레이드가 필수다. 보통 18개월 주기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는데 이런 주기를 맞추지 않고는 SW 기업은 존속하지 못한다. 그게 그들의 생리다. 따라서 다른 걸 할 여력도 없고 또한 곁눈질해서도 안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삼성은 팔방미인 격으로 다양한 업종에 걸쳐 사업을 전개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SW를 할 체질이 아니다. 20년 전 일화가 있다. 안드로이드란 SW 기업이 자신의 제품을 들고 와서 삼성에게 인수 의향을 물은 일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 안드로이드를 그 인수거절 사건이 있은 지 단 2주 만에 인수한 곳은 다름아닌 구글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업그레이드시켜 우리가 잘 아는 알파고(AI 바둑)라는 검색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검색엔진은 100% SW다. 그 여파를 몰아 그 안드로이드 바탕으로 알파폴드라는 단백질 구조 분석/예측 검색엔진을 개발하여 2024년 노벨화학상을 휩쓸기에 이르렀다. 이게 바로 SW의 위력이다. SW란 이런 것이다. 부가가치가 1차 창출되고 또다시 2차 창출되는 구조를 갖는 것이 SW인 것이다. 물론 3차 창출도 가능하다. HW는 유형의 존재다. SW라는 무형의 존재가 이런 기적을 연출하는 마술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도체가 과거 메모리 중심에서 비메모리, 특히 AI 반도체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면서 삼성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메모리 강자의 면모를 지키기 위해서도 SW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삼성이 SW를 안 한다면 삼성은 IT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삼성 앞에 던져진 과제다. 그렇다면 삼성을 비롯해 한국 기업에서 SW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SW는 양파 구조처럼 되어 있다. 반도체는 그렇지 않다. 반도체는 접시 쌓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반도체 구조를 스택(stack; 그릇 쌓기)이라고 부르는 반면 SW 구조는 양파 껍질(onion ring)처럼 완벽하게 내포되는 구조를 갖는다. 우리나라가 SW를 하기는 하지만 바깥 껍질 쪽 SW에만 치중하는 게 문제이자 한계다. 맨 안쪽 SW를 SW 엔진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바로 윈도 운영체계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같은 것이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SW는 데이터베이스 엔진 SW가 있으며, 이 둘 위에서 돌아가는 SW는 모두 응용 SW라고 총칭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영체계와 데이터베이스엔진은 미국 제품을 다 들여다 쓰고 있으며 그 둘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SW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약하듯이 IT에서도 기초가 약한 이유는 안쪽에 약하고 바깥 쪽에만 신경을 쓰는 까닭이다. 안쪽 SW를 첨단 SW라고 부르며 그것이 두뇌산업의 총아로 불리고 있다. 부가가치 면에서 첨단SW는 응용SW의 몇 천배가 될 정도로 크다. 첨단SW는 자동차의 엔진이라고 보면 되고 응용SW는 자동차의 바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두뇌산업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이 세계 속에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공장형 굴뚝산업 일변도로 치우쳐 왔다 이는 마치 신체의 균형에 비유하면 좌우 대칭이 안된 채 한쪽만 발달해 온 꼴이다. 이런 기형적 절름발이 상태를 고쳐야 하는데 기업이나 정부는 두뇌산업을 해본 경험이 없어 이런 국가적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여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1세기는 4차산업혁명 시대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HW가 아니라 SW다. 즉 SW의 시대인 것이다. 이 물결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HW 일변도 굴뚝산업만으로는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불안하다. SW가 두뇌산업인 만큼 중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HW 전문가만 등용해서는 SW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내각 구성을 보면 SW의 비중과 중요성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미국 행정부처에는 15개 부가 있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서는 국가효율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장관에 테슬라의 머스크를 앉혔다. 또한 15개 부처 중 무려 절반 이상에 SW 전문가를 임명했다. 혁신도 사람의 몫이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텔 경영실적이 하락하자 인텔 지분을 정부가 직접 인수하며 경영개입에 나섰다. 우리는 어떤가. 무려 지난 30년간 HW 전문가만 줄기차게 등용하여 과학기술정통부 수장에 앉혀 왔다. SW 관련 전문가가 등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몇 차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 정부가 AI 전문가를 등용했으나 결코 AI가 다가 아니다. SW 분야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SW 전문가를 써야 한다. 고질적 인선 병폐가 바뀌지 않고는 이 땅에서 미국 같은 SW 입국은 요원하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HW 30년, SW 0년 …굴뚝만 세운 껍데기 제국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AI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 나가는 이유 세가지

    지금 AI 강국은 미국과 영국이다. 영국이 그 위치에 있는 이유는 케임브리지대 전산학과와 에딘버러대 전산학과 출신 4명이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AI 하나로써 휩쓸었다는 데 있다. 중국을 영국 다음으로 치는 이도 있고 미국 다음으로 치는 이도 있다. 금년 1월 딥시크 발표에 이어 6개월 뒤인 7월에 AI연비를 높인 키미란 이름의 AI 툴을 또 다시 발표하여 세계를 경악케 한 까닭이다. 우리는 아직 이런 수준의 AI툴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고질적인 소프트웨어 기피 주의를 중국이 노력 끝에 드디어 극복한 반면 우리는 아직 그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이는 마치 축구 종목에서 중국이 한국 팀만 만나면 공한증을 겪으며 한국 벽을 넘지 못하는 것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에서는 공중증을 느낄 만큼 우리는 중국을 멀찌감치 바라다봐야만 하는 상황에 빠져 있다. 참담한 현실이다. AI는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첨탑에 해당한다. 그런데 꼭대기가 있으려면 하부 기초가 있어야만 한다. AI의 그 하부기초는 다름아닌 OS(운영체계)와 DB(데이터베이스)다. 알파고라는 AI가 구글이 자체 소유의 안드로이드란 OS와 구글이 자체 개발한 F1이란 DB위에서 작동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부구조물 없이는 알파고는 단지 사상누각에 불과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안드로이드 급 OS를 중국은 국가 주도의 집요한 노력 끝에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삼성이 전에 만들려다 그만 두고 난 후 삼성은 AI에서 고전, 시스템반도체, 비메모리, GPU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넷의 공통분모는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 없이는 설계조차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점유율은 볼과1%, 비메모리 점유율은 불과 3%다. 이 둘은 태생적으로 소프트웨어 역량 없이는 안되게끔 아주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에 관해서는 완벽한 패배 주의에 빠져 있다. 패배주의란 도전조차 해 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자세를 가르킨다. 20년전 안드로이드를 삼성이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안드로이드 회사 대표가 직접 삼성 본사를 찾아왔다. 그러나 삼성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로부터 딱 2주뒤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다. 이것이 삼성, 아니 한국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세다. 그렇다면 중국이 딥시크와 키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두가지다. 첫째, 중국이 소프트웨어 기초를 닦으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부 주도의 한 인재 양성에 있다. 셋째는 중국은 OS를 자체 개발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을 특별 지원했다. 그 기업은 하웨이와 샤오미다. 우리의 삼성과 LG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자체 OS와 자체 DB엔진, 즉 하부구조 없이 AI란 최상층을 하겠다고 한다. 이름하여 소버린 AI. 이건 자칫 잘못하면 AI를 해봤자 결국 남의 잔치에 객 노릇하는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다. 말로만 소프트웨어 중심이라느니 또는 디지털 인재 1백만명 양성이라는 구호를 지난 20여년간 줄기차게 외쳤지만 모두 헛소리로 끝났다. 그것도 선거철에 나왔다간 어디론가 늘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뒤늦게 AI에 올인한다고는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OS와DB는 정부 지원 없이는 어느 나라에서든 나오기 힘들다. 과거 미국 영국이 그랬다. 미국은 1950년대 10년간 줄기찬 노력의 열매로 OS를 국산 개발라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영국이 1960년대 10년간 노력해 성공해냈다. 중국은 영국에 이어 최근 10년간 노력 끝에 성과를 거뒀다. 우리는 뭔가. 반도체는 첨단산업 중에서는 대규모 공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굴뚝산업형이다. 또한 관세전쟁의 주요 쟁점 항목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공장을 전혀 필요로 않는다. 컴퓨터 몇대 들어가는 사무실만 있으면 된다. 입항 통관이 생략된 무관세 산업이다. 삼성의 초대형 공장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택단지내 본사 건물을 방문해 보면 금방 이해 가능한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엔 공장이라는 게 아예 없다. 지금 생성AI 물결이 다가와도 실제로 우리가 주도하는 것도 하나도 없다. 삼성의 현 글로벌 제계 순위는 31위다. 얼마 전 10위에서 그만큼 내려 앉았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삼성이 다시는 10워 내에 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상위 1-6위는 모두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1위 엔비디아에 이어 그 뒤를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차지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 뒤를 바짝 이어 4위 구글로 이어진다. 이들과 더불어 그 뒤로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테슬라 역시 전부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즉 10위까지도 모두 소프트웨어 기업이란 뜻이다. 선진국이 왜 소프트웨어라는 두뇌산업으로 일찍이 치고 나갔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인재 양성 노력은 놀랍다. 우리의 몇 십배 몇 백배다. 중국을 배워야 한다. 미국 대학 전산학과 유학생 분포를 보면 그곳 학생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다. 미국 다음의 IT강국인 영국 대학 전산학과에서도 그렇다. 인재가 줄기차게 양성돼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 국내 주니어 인재 양성 노력 또한 대단하다. 1970년대 한국식이다. 중국은 주니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시니어 인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칭화대 종신교수인 야오치즈 교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전산학 랭킹 1위 혹은 2위에 위치한 명문대학 출신으로 중국전산학박사1호다. 그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직 교수로서 딥시크의 량원펑 같은 인재를 국내에서 매년 수십명씩 줄기차게 양성해 내고 있다. 고급 인재를 자체 양성하려면 이런 시니어 인재 활용 국가정책은 필수다. 과거 우리도 카이스트 출범 초기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서는 그게 안 통한다. 특별 대우 내지 특혜 비리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시니어 인재 양성 정책 존재 여부에 따라 국가 미래가 이렇게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평범한 인재 숫자 1백만명은 무의미하다. 그걸로 뭐가 달라지기는 힘들지만 고급인재 단 수백명으로는 국가 성장 동력을 현격히 바꿀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 국제무역 협정 현대화란 명분 하에 전세계 무역계에 관세 돌풍이 일고 있다. 이는 미국이 해외로 진출한 자국 기업 보유 공장 시설들을 미국 내로 역이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인 이래로 언젠가 닥칠 것으로 예견되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자동차가 이스라엘이 가면 관세가 100%로 높이 붙는다.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외산 자동차는 값이 수출가의 2배가 되는 꼴이다. 한국 자동차도 이스라엘에 가면 관세가 100% 붙는 것은 역시 동일하다. 한국 국내에서 1천만원하는 소형 자동차가 이스라엘에 가면 2천만원에 팔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보면 신기하다. 지금 미국은 그런 관행을 다소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산 제품이 미국 국경을 통과해 들어오면 100%의 절반 수준인 50%의 관세를 적용하겠단 뜻이다. 상호 관세 치고는 미국측이 선의로 절반만큼 양보하겠단 뜻이다. 한국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도 맞는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측이 미국 제품에 대해 부과한다는 50% 관세를 기준으로 그의 절반치로 산정했다는 것이다. 관세는 국제 무역에서 교역하는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외국에서 물건을 하거나 수출할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국경을 통과하는 모든 물건에 부과되며 수입국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부과하는 가장 일반적인 보호 무역 정책이다. 물건에는 무형의 서비스도 포함되지만 관세 당국에서 무형의 소프트웨어가 국경을 통과하는지 체크하기는 불가능하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띄질 않고 인터넷을 통해 그냥 다운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딥시크를 써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든 통관 세금 없이 그냥 받아쓴다. 소프트웨어가 무관세 산업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산업을 빨리 일으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른 든다. 더구나 소프트웨어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반면 세법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치고 나가기 좋다. 중국이 기초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우리를 앞서 가고 있다는 데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AI는 응용 소프트웨어 영역에 속한다. 중국이 소프트웨어 기초에 강했기 때문에 딥시크라는 응용 제품도 개발할 수 있었던 사실을 알아야한다. 기초라는 과정 없이 응용으로 직통하는 왕도는 없다. 쉬운 길은 없는 것이다. 그게 만사의 진리다. 그래서 남달리 성공하려면 일부러 어려운 길 쪽으로만 골라서 가라는 말도 있다, 자동차 산업을 보면 IT 쪽에서도 배울 게 많다. 세상 어디든 가보면 일본 차들이 판을 친다. 한국 차는 드물다. 자동차 엔진을 일본이나 한국이 모두 자체 국내 제작하며 차 출고 가격은 일본차나 한국차나 거의 비슷하지만 연비에서 한국차가 결정적으로 뒤지기 때문이다. 엔진 자체 제작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연비까지 좋아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소프트웨어 쪽에 비유하면 이렇다. 우리는 자체 엔진 제작 기초 기술이 없는 반면 중국은 자체 엔진 제작이 가능하다. 이제 중국은 키미라는 엔진을 통해 연비를 향상시켜보려는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중국을 따라가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기초 갖추기와 인재 갖추기를 생략하고 갑자기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길을 거부한다면 영원한 소프트웨어 후진국의 위치를 벗어나기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소프트웨어라는 두뇌산업이 가야 할 길에 비추어 보면 지금 한국의 소버린AI정책은 중국이 추구했던 길과는 영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AI는 소프트웨어 산맥의 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망각하면 전체 그림이 흐트러져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AI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 나가는 이유 세가지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李대통령의 AI·가상화폐 공약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

    두 개의 굵직한 21대 대통령 당선자 공약인 인공지능(AI) 및 가상화폐 코인 기술 공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가지 모두 기술 및 제도 기반이 부실한 채 과장된 수사로 추진되고 있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골자다. 정치적 동기가 앞선 탓이 크다.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 공약이 소버린AI라는 국내판에 한정되어 글로벌 제품을 기대하는 현실적 기술 수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소버린 시제품은 이미 국내에 나와있다. 그렇다면 AI 100조원 공약은 그들을 국내 시장 상품화하는 데 수십조원 지원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딥시크는 지금 사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그러면 우리 공약에는 딥시크 같은 글로벌 시장 도전은 없단 말과 같아진다. 챗GPT는 지금 사용자가 7억명이 넘는데 개발비는 7조원가량 소요됐다. 생성AI 및 저전력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싱가포르 정부는 700억원이라는 선에서 소버린AI를 현재 제작 중이다. 100조원이란 거금이 용처 세부 계획 없이 추진될 경우 제2의 중대한 금융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고 본다. 민간 자본이 결부되면 민간이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되는 ‘대장동사태’ 및 금전사기 ‘테라 루나 사태’ 같은 부패의 고리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AI 인재 양성 공약에도 허점이 많다. 인재 20만명 혹은 100만명 같이 잔뜩 부풀린 숫자가 아니라 인재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설은 1999년부터 그간 26년간 줄기차게 대선 때마다 반복적으로 쓰여온 해묵은 구호다. 김대중 정부가 ‘사이버 코리아’를 내세우면서 등장했던 바로 그 수치가 그 이후로 대선 공약 메뉴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가 숙원 사업 같았지만 실속 없이 유권자들 즉 국민을 기만한 허상뿐이었다.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고급 인재 양성 전략이 아무 실효 없이 늘 부실했던 탓이다. 여태껏 무려 26년간 아무 결과물 없이 돈 나눠먹기 식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량원펑(딥시크 개발자) 같은 고급 인재가 나올 리 없었다. 따라서 딥시크 같은 것도 나올 리 만무였다. 중국이 그 같은 고급 인재를 지난 10년간 무려 200명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우리는 그동안 뭐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알파고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오늘로 꼭 10년. 지난 10년간 여러 나라가 그 충격에 대비하려고 각자 노력을 했다. 그 결과로 한국은 중국보다 AI에 돈을 2배 이상 더 쓰고도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딥시크 충격에 다시 한번 휩싸였다. 앞으로도 고급 인재 양성에 있어서 중국 사례를 연구하는 특단의 대책 없이는 계속 허탕칠 가능성이 크다. 알파고 충격 직후 중국은 하사비스(알파고 개발자) 같은 고급 주니어 인재를 키워낼 전략을 세웠다. 주니어 고급 인재는 시니어 고급 인재가 키워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으로 하여금 깨닫는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알파고였다. 반면 우리는 그런 전략 없이 그냥 국가AI연구소 설립 같은 외형적 덩치에만 돈을 썼고 기술이나 인재 개발은 도외시하고 연구 정책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런 까닭에 칭화대의 최고 수재 집합소인 야오반(야오치즈 교수의 실험실)이 구심점이 되어 딥시크를 개발한 량원펑 같은 수재를 연 30~50명씩 배출하는 동안 우리는 그런 하사비스나 량원펑 같은 수재를 한 명도 양성해내지 못했다. 중국에 야오반 급 실험실을 가진 대학이 무려 10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 더 놀랄 수밖에 없다. 최소 199개의 또 다른 딥시크가 중국에서 또 나올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지난 10년간 한국형 딥시크 같은 것 하나도 만들지 못한 원인의 기저에는 사람을 키우지 않은 책임이 있다. 누가 이에 대해 항변할 수는 있다. 숫자로는 제법 키워냈다고. 그러나 글로벌 경쟁 시대에 보통 인재 숫자는 무의미할 뿐이다. 여기서 대조적인 사실 하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전산학박사1호로 현장에서 매우 활발하게 수재 후학을 양성하는 야오치즈의 이런 국가적 기여 활동과 한국전산학박사1호 카이스트 M교수의 근황에 관한 것이다. M교수 일상은 야오 교수와 전혀 다르다. 야오 교수와 전산학계 세계 최고 명문 미국 일리노이(어바나 샴페인) 대학 동문으로서 연구역량에서 완전 대등한 그는 학계 연령제한으로 강의 및 연구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다. 국가적으로 기여하려 해도 기회가 철저히 차단돼 있는 것이다. 본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한마디로 ‘완벽’하게 봉쇄돼 있다고 한다. 국내 제도적 관행으로 국가적으로 전혀 활용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인재 전략이 왜 한국에서는 실패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대변해주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사람(시니어 고급 인재)이 사람(주니어 고급 인재)을 키우는 공식이 중요하건만 우린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게 간단히 무시된 채 말로만 인재 100만명 양성을 구호로 외쳐대고 있는 씁쓸한 처지다. 공약 서로 복사하듯 AI 3대 강국이라고 외쳤던 구호 역시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현재 AI 랭킹을 보면 미국이 AI 분야에서 독보적인 상태에서 영국과 중국이 그 뒤를 2위 3위로서 영·중 간에는 서로 격차 없이 둘이 바짝 붙어 있는 상호 대등한 구조다. 그러므로 한국이 4강이라면 몰라도 3강은 수사적 슬로건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10년 내 2위를 목표로 하는 게 논리적이다. 대선 공약에서 정부 역할 또한 너무 과장된 경향이 짙다. 정부는 기업에 투자하고 회수를 기대하는 벤처캐피털처럼 움직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AI 생태계를 설계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인프라 건축가 역할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AI 국가 예산은 AI를 가능케 만들 데이터 인프라, 즉 국가 및 기업 데이터 효율화에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데이터 환각현상 제거에 대한 국가적 기초 인프라 제공 없이 AI는 간단히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하루하루 바쁘다. 국가가 할 일은 데이터 환각현상 제거 방법론을 선제 개발하여 전 기업에 나눠주는 것이다. 공약에는 이 중대 부분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대선 공약을 깨끗이 폐기하고 데이터 관점에서 이런 선제작업 없이는 국가 혈세 낭비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대선 공약 중 가상화폐 코인 공약도 문제가 있다. 코인 공약은 스테이블 코인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코인은 일반적으로 담보 자산을 외부 기관이나 블록체인 시스템에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코인을 발행하는 담보형 구조다. 겉으로는 '1코인=1달러'라는 단순한 형태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인 기술 인프라와 금융 구조가 얽혀 있다. AI 투자 과열과 코인 도입 열의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두 기술 모두 전산학에 기초를 두고 있어 기술에도 완벽을 기해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제도적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될 경우에는 대규모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낭비가 수백조원 급이 되기 십상이다. 로드맵 상 우선순위 선후행 관계는 명확하다. 정부는 혁신을 도모하려고 해도 투자자가 아닌 설계자로서 데이터 환각현상과 금융 부정행태 감시 체계 중심의 국가 AI 및 가상화폐 제도 인프라를 먼저 완벽하게 확립한 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10년간처럼 돈은 돈대로 쓰고도 성과는 없이 헛 공약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규제를 풀되 국가 시장 경제에 주는 충격을 흡수할 안전장치를 샌드백처럼 먼저 마련한 뒤 혁신을 시험해야 한다. 코인은 해킹, 오작동 및 제어 실패 같은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금융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담보형=안전이라는 공식은 순진무구한 착각에 해당한다. 담보를 은행에 예치하는 구조 역시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코인이 담보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지 않은 사례는 선진국에서도 적지 않다. 실물 담보를 표방했어도 시스템 하부 구조 붕괴나 블록체인 기술 오류로 인해 환급에 실패하거나 담보보장 궤도이탈 현상이 발생한 선진국 사례가 이미 다수 존재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코인은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전산 구조와 금융 거버넌스가 맞물린 종합 공학으로 봐야 한다. 국제사회 말썽의 주인공인 테라 (미화 기반 담보형 코인) 역시 구조적 결함 및 금융권 제도적 미비로 인해 붕괴된 사례로 꼽는다. 테라는 2022년 그 가치가 1달러에서 2센트로 하락해 불과 며칠 사이 무려 50조원 자산 손실을 유발함으로써 전 세계 코인 시장 불신 조장에 크게 일조했다. 그로 인해 권도형 테라 대표는 징역 100년 형 이야기도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중대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보면 한국이 코인 제도화를 추진할 경우 단순히 민간 혁신을 장려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에 앞서 무엇보다 제도적 안정성과 기술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규제 체계를 미국 영국 싱가포르 일본처럼 필수 전제 조건으로 도입해야 한다. AI와 코인 모두 단기 성과나 선거용 수사로 접근해서는 안 되므로 이번 대선에선 그런 공약이 모두 반드시 철회되어야 하며 그 대신 구조적 제도 설계를 통한 장단기 전략으로 전환돼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대장동 이권탈취 사태’, ‘제2의 테라 사기행각 사태’가 눈앞에 다가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AI나 코인은 기술과 금융이 맞물린 복합 구조인 점에서 정부는 투자자가 아니라 설계자의 역할을 자처해야 합리적이다. 민간 기술 실험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 통화 인프라의 일부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사후 대비가 아닌 사전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차 강조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AI에만 신경쓰다간 탈난다. 소프트웨어서는 AI가 다가 아니다. AI란 소프트웨어 시장의 불과 4분의 1~3분의 1 몫을 차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즉 소프트웨어에서 AI보다 중요한 것도 많다. 소프트웨어는 두뇌산업이자 무관세 산업이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반도체 같은 굴뚝산업형 관세 산업과는 체질이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21세기 주역 산업이 되어야 한다. 미국 영국이 그 길로 간 지 이미 오래됐다. 60~70년 족히 됐다. 이젠 중국이 10년 전부터 그 길로 들어섰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만큼 치밀하고 섬세하게 소프트웨어에 대해 접근해야 된다는 뜻이자 경고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李대통령의 AI·가상화폐 공약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4류 정치가 만든 불타는 한국

    30명의 인명을 앗아간 화마는 경북 내륙과 해안을 초토화시켰다. 피해 규모가 서울 전체 면적의 무려 80%에 달했다. 대피 시스템이 참담하게 실패했다. 디지털 시대에 산불 대응 정보시스템은 고사하고 전근대적으로 구두 연락 혹은 방문만 가능했다. 말만 AI니 빅데이터센터니 화려하면 뭐하나. 사물인터넷이란 정작 이런 재난 현장에 써야 맞는 것이다. 인기 영합에만 눈이 먼 정치권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림 수목관리도 거의 수작업에 의한다. 수도권조차도 엉망이다. 유럽에서는 가로수에도 반도체 칩을 심어 전광판으로 실시간 관리한다. 우리는 어떤가. 나무 밑 뿌리 가까이 구석에 쇠 번호표를 못질해 놓은 자국을 봤을 것이다. 볼 때마다 아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작은 빨라도 생각의 속도가 느린 한국 사회의 결정적 단면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주요 고위직에 IT 전문가들을 대거 등용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무려 12명이나 등용됐다. 우리로서는 이것도 요원한 일인가. 산불 진화에 투입된 군 병력은 7000여 명에 헬기는 290대다. 초대형 군 수송기도 동원돼 한번에 물 5톤을 쏟았다. 이래봤자 이건 산불 사후 대비다. 사전 대비가 문제다. 상황 전파를 위한 비상연락망이나 유사시를 위한 대피체계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마을 이장이나 주민이 일일이 이웃을 돌며 인기척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영양군에선 이장 부부가 이웃을 찾으려 노력하던 중 그만 대피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화마에 참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우리는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교통이나 도심 재난에는 대응체계를 제법 구축했다. 그러나 농촌·산촌·인구 저밀 지역은 예외다. 안동에서는 재난문자에 대피장소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까지 있었다. 구형 폰을 쓰는 고령자 중엔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 서부 오클랜드시에서는 연기 냄새를 감지하는 고성능 센서를 2년 전부터 산에 설치했다. 이른바 야외화재 검출센서다.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를 즉각 감지함으로써 냄새 데이터와 풍속을 종합해 발화 지점과 화재 규모를 단 1분 만에 정확히 예측해내는 정보시스템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이 다가 아니다. 산불은 기후변화 탓보다 방치된 산림이 더 큰 원인 제공자이므로 낙엽과 고사목을 먼저 제때 정비하지 않으면 산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이겨낼 방도는 과연 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라고 본다. 수목을 새로 심을 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 경험담이다. 서울 크기의 100배가 넘는 그 넓은 지역에 산마다 올리브 나무 천지였다. 운전대를 2시간 여 잡고 시속 100㎞로 달리는 동안 다른 수종은 보이질 않았다. 올리브 재배의 65%는 지중해 지역에 몰려 있다. 스페인이 그중 53% 가까이 차지한다. 그다음은 이탈리아인데 많아 봐야 10%다. 올리브 글로벌 시장은 연 20조원 상당이므로 스페인 몫은 연 10조원이다. 온난화농업대응연구소에 의하면 우리도 추위에 강한 올리브 수종을 쓰면 제주나 남해 지방에서 재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월동에 견딜 5개 수종을 이미 발굴하여 실제로 제주도와 전남에선 10여 년 전부터 노지 재배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스타링크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공중 인터넷이다. 통상 지상 혹은 지하에 인터넷 케이블이 깔려 있으나 해저에도 깔려 있다. 미국은 지상·지하는 물론 땅이 넓어 공중(위성)에도 깔려 있다. 이 기술이 저개발국인 아프리카 지역에 무상 제공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도 무상 군사 지원된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종전 협상 전략으로 스타링크 지원을 당장 중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난 80년간 3도나 높아졌다. 2100년엔 지중해성 작물도 한국에서 재배 가능하단 뜻이다. 가온(하우스) 재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실험 시도를 해봐야 한다. 연 매출 1000억원만 나더라도 후대를 위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꼭 그 나무가 아니라도 대대로 쓸모 있을 쪽으로 발상의 전환은 필요하단 뜻이다. 이번 산불로 씁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과 3년 전 60㎞에 달했던 대규모 삼척·울진·동해안 산불을 벌써 잊은 듯했다. 이번 피해는 그때보다 훨씬 컸다. 산불 유발 처벌 수위 강화는 이제 필수다. 이번 피해는 얼마 전 LA 산불 피해의 2배 규모다. LA 산불 피해액은 무려 4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피해 규모가 몇백조 원인지도 추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피해 규모가 25만 달러, 즉 3억원 정도면 사형에 처한다.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져 과학적이지 못하고 수치적이지도 못하다. 산불 유발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바뀐 게 없다. 정치권에서 민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고의가 아닌 실화죄는 오래전부터 최대 3000만원 벌금으로 되어 있다. 이제는 이걸 최소 그의 10배인 3억원으로 상향해야 한다. 국내 산의 3분의 2가 개인 소유라 하니 산불 예방에 소유주 책무도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에 갈 때는 화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한다. 길거리 문화도 작은 버릇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는 경범죄로 3만원이다. 경범죄로 보는 것 자체도 문제다. 운전 중 꽁초 무단 투기에 대해선 벌금이 고작 4만원이다. 이번 경북 지역에서도 어느 앞차 운전자가 꽁초를 버리고 나서 발화됐다는 뒤차 목격자의 진술도 있지 않았나. 바늘 도둑이 나중에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꽁초 투기 벌칙금을 최소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여 함부로 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올봄에 습설이 예상보다 많아 산불이 없을 것이라는 어느 산림 전문가의 말을 뉴스로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내리는 눈으로 강원 지역 당분간 산불 걱정을 덜게 됐다”는 보도(YTN 2025년 3월 16일 “3월 중순에 눈 '펑펑'···산불 걱정 덜었지만 폭설 피해 우려”)가 있었고 “이번 눈은 메마른 강원 산지에 산불 걱정을 덜어주는 고마운 눈 이기도 하다”는 보도(YTN 2025년 3월 18일 “40㎝ 눈 내린 강원도 또 폭설···산불 걱정 '뚝'”)도 있었다. “큰 피해만 없다면 산불 걱정을 덜어주는 고마운 눈과 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 (연합뉴스TV 2025년 3월 16일 “강원 산지는 다시 겨울왕국…내일까지 최대 30㎝ 눈 예보”)도 있었다. 경북 산불이 발화되기 시작한 것이 22일이나 이는 놀랍게도 불과 나흘 전 뉴스였던 것이다. 이렇게 방심하고선 무슨 일인들 아니 터지겠는가. 방심의 압권은 정치권이다. 돌이켜보면 정치권이 자초한 산불 재난일수도 있다. 정국이 오로지 탄핵과 법원 판결에만 집중돼 정치인 누구 하나 봄철 산불에 신경이나 썼던가. 무려 30곳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났으니 정치권이 자초한 산물이나 다름없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올봄 산불 조심하자"고 미리 말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심판받고 은둔하며 지내는 형국에 국가에 무슨 령이 서겠는가. 국가나 군대에 질서와 기강이 무너지면 불행한 일은 불시에 예고돼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산불재난이다. 공직사회에 책무 실종이 이처럼 극에 달한 적은 역사상 없었다. 종일 산불 끈 소방관에게 일회용 컵 미역국에 김치 몇 조각 주었다는 소식도 있다. 무엇보다 정쟁 여파로 산불 대응 예산까지 대폭 삭감된 것을 잘 알 것이다. 화재 진압 직후 삭감 원인을 놓고도 여야가 서로 떠넘기며 책임 공방을 벌였다. 삼류도 못 되는 사류 정치다. 이러고도 국민들 앞에 창피하지도 않나. 삭감 유발자를 가려 내어 꼭 책임 귀착 소재를 물어야 할 중대 사안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이전투구 혈투를 벌이는 몇 개월 동안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옆 대한만국역사박물관에서는 어떤 전시회가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현존하는 사회 원로들이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전시회였다. 국가를 기둥처럼 이끌어온 60인의 소장품이 그들의 서재를 잠시 떠나 만인에게 현대사의 진수로 공개된 것이다. 전시물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행정전산화 지시(1975)로 출간된 교과서로 당시 IT 기술뿐만 아니라 전산학 대학원도 없던 시절에 이 첫 한글 컴퓨터 교과서들은 훗날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주춧돌이 되었다”는 문구도 있었다. 관람객 수는 20만명을 넘은 가운데 정치인 중에서 이를 관람한 이는 극소수였다. 유일하게 단 한 명이었다. 여기서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지만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이미 신문지상에 공개된 바 있다(조선일보 2025년 2월 6일자). 그는 박물관 측에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관람하고 간 뒤 “뜻깊은 전시였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방문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고 지금은 대선 후보다. 노동과 헌신의 가치를 익히 잘 알았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약점이 있다. 우리가 정치지도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개인 특유의 역량이 갖는 영향력, 즉 카리스마 때문이다. 아무도 생각 못하던 시절 국가전산화라는 기치를 세우고 탁월한 영도력으로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환란의 질곡을 떨치고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지도자가 가진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많다. 유감인 점은 현대사에 공을 세운 족적을 보여준 전시회에 그들 중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초들 삶의 흔적에 관심이 없는 이들로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동선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도 선거 때면 앞다퉈 민생 운운하는 걸 보면 위장 정치의 전형이 따로 없다. 이기주의로 무장한 이들에게 애타심을 바라는 건 삼류 정치 사회에서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번 피해로 1000만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타버렸다.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 그 소나무, 차후에는 산불 대응이 과학적으로 또한 체계적으로 돼야 한다. 산불에 국한된 사안만은 아니다. 주택이나 공장화재에도 화재 발생 단 수초 내에 대응하는 안전사고 예방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물인터넷은 인간 편리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다. 동식물 전부 대상이다. 그래서 만물인터넷으로 칭하기도 한다. 기술이 있는데도 안 쓰면 죄 짓는 일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4류 정치가 만든 불타는 한국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민주주의 위장한 '딥페이크 정치' …양원제로 줄을 끊자

    2시간짜리 계엄은 대통령 하차로 대단원의 막을 고했다. 대화 부재로 여야 간 불협화음이 커지더니 급기야는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란 오명을 남겼다. 타협 부재의 정치 고질병을 질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었다. 여야 모두 국민들 앞에서 떳떳하게 논쟁을 벌이지 못한 채 언론을 매개체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온갖 술수들을 음지에서 펼친 게 화근이었다. 무늬만 정치를 하는 듯한 시늉 내는 저급한 정치가 따로 없다. 딥페이크도 따로 없다. 이런 게 민주주의를 위장한 딥페이크 정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계엄 이후 탄핵소추 결론까지 4개월은 전쟁 대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은 마치 전쟁 영화의 주인공인 양 장수의 길을 자진해서 선택한 듯했다. 헌재 결론을 총평하면 여야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게 요지다. 협치를 상호 거부했기 때문이다. 야댱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회를 배제케 유도한 책임이 컸으나 헌재는 대통령의 헌법정신 위배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무겁게 다뤘다. 지난 수개월간 국정 공백과 민생 외면의 부작용은 실로 심각했다. 민감국가 지정이 눈앞에 닥쳐와서 국가 산업이 위태롭고 국가 신인도 저하가 뻔한데도 여야는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방임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초법적 행태를 물불 안 가리고 상대에게 과도하게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정국이 탈출구를 전혀 찾질 못하고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급기야는 불행한 사상 초유의 대형 산불 재난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이는 한마디로 정치권 혼란이 자초한 산불로 봐야 한다. 단 이틀 사이에 30군데에서 산불이 동시다발로 났을 정도로 손을 놓고 있었다. 정국이 그 모양이니 산림 당국이나 소방 당국인들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있겠는가. 총체적 난국이란 게 따로 없다. 이런 치졸한 정치의 원인은 정치의견 수렴과정에서 여과 장치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절차가 무시된 결과 중심 사고방식이 고착화돼 있고 권위에 대한 도전이 쉽고 빠르게 진행된다. 이게 한국 사회 전반에서 권위의 문턱을 낮추어 놓은 결과까지 초래했다. 우리가 과도한 평등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닐까. 이에 반해 선진 정치의 특징은 여과 절차가 만들어져 있다는 데 있다. 절차 중시의 문화를 실현하고 있는 선진국,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원제 의회 구조를 갖고 한다. 양원제는 의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이며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하원 통과 안이 비합리적일 경우 상원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속도와 효율성에서는 떨어지지만 의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원에서 통과된 안이라 하더라도 상원을 또 한번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여과 기능만큼은 충분하다. 우리는 급속으로 발전해 오다 보니 과정을 생략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권위에 대한 존중 의식도 저절로 사라졌다. 밑에서 위를 우습게 본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개헌을 한다면 우리도 절차를 중시하는 양원제 도입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이번 29회에 걸친 탄핵소추에서 봤듯이 의회 전제를 방지하기 위해선 단원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명시된 헌법 제1장에서 명시한 정신이 산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게 저열 정치를 벗어나 고급 정치로 가는 길이다. 왜 토론을 통한 설득 과정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도 국회를 향해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 그리고 자제를 기조로 대화와 협상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야당이 주도한 고위 공직자 29차례 연속 탄핵도 이례적이며 일방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취임 이래 야당이 주도한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하여 여러 고위 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정지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5년도 예산안이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전면 감액 의결됐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받아들이기 곤란한 법률안들을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대통령의 반복적 재의 요구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국회 배제와 국회의 대통령 존중 결여의 원인은 어느 일방의 책임은 아니며 쌍방 간 대화 부족에 기인한다고 봤다. 국회 역시 정부와의 관계에서 타협하는 관용을 보였어야 했다는 지적도 했다. 소수 의견이라고 다수결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동일한 사유로 탄핵소추를 반복적으로 발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다수 의석 정당이 탄핵제도를 정쟁의 도구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재판 의견도 있었다. 이를 놓고 어느 기자는 합법의 탈을 쓴 위장 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래서 딥페이크 정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어느 공당 대표에 대해 대표 자신에 대한 형사상 범죄 혐의 관련 혐의 재판을 여럿 받으면서까지 차기 대선에 나오겠다고 하는 일 자체를 무리라고 봤다. 또한 국민의식 수준에 대한 도전이라고 봤다. 탄핵 후에도 개헌과 같은 중대사에 대해서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대화가 없이 언론 플레이를 답습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당내 개헌 논의를 당 중진(국회의장)이 제의했으나 토론 과정 없이 당대표 주변 인물이 그대로 물리쳤다. 그러자 국회의장은 며칠 후 없던 일인 듯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물러섰다. 이게 우리 정치의 고질적 토론 부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당내에서 그러니 당외로는 오죽하겠나. 탄핵심리 중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국가 신인도를 저하시킬 수 있는 그릇된 일탈에 대해 몇 가지만 보면 이렇다. 국민투표로 심지어 공직자를 누구든 파면할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이는 입법부가 3권을 장악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3권 분립에 위배되는 발상이다. 다수결만이 민주절차는 아니다. 그 이전에 토론이 있어야 한다. 영국 대학 교수생활을 하면서 본 바에 의하면 영국은 행정부와 의회가 쟁점사안에 대해서 매일 아침마다 만나서 국민들 앞에서 TV 생중계로 난상토론한다. 토론을 듣다 보면 여든 야든 그렇게 박식할 수가 없다. 서로 설득하려다 보니 논리 전개가 정교하다. 논리를 듣다 보면 저만 하면 어느 쪽이든 정권을 차지해도 나라가 잘 굴러가겠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우리는 의회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무책임하게 생략한다. 격론 대신 언론을 은밀히 뒤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주 나쁜 버릇이 됐다. 그러니 승복 문화도 없다. 승부가 치사하게 갈린 까닭에 진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앙금이 남고 국민 통합은 늘 지동적으로 물 건너 갔다. 증거 진위 판단 잣대도 심지어 법관이 엿장수 마음대로 한 사례도 있었다. 진본을 일부분 확대했다고 해서 위조가 될 리는 없다 그러나 법관은 확대 시도를 조작, 즉 위조로 판단했다. 확대나 축소는 편집 행위지 누구도 위조 행위로는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관이 이런 말장난을 쳐도 사석이 아닌 법정에서 허용된다면 그것 자체가 큰 범죄다. 재판관 임기까지도 다수결 논리로 임의로 연장 처리하겠다는 무모한 시도도 있었다. 탄핵 심판 결과 발표 하루 전에는 계엄선포 당시 1만명 사살 계획이 있었다는 뒤늦은 거짓말도 돌았다. 탄핵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략으로 추정되나 그 모습이 보기에 정말 추악했다. 결론적으로 대화와 협력이 없다 보니 여야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실이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즉 토론 부재는 정치 재난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게 헌재의 지적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토론 무시 문화에 대해 이견을 달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불상사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고쳐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이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법을 모르고 어리석게 했을 리는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오히려 법리에 너무 강해 그게 역으로 작용한 경우다. 그러나 왜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토론 부족의 단원제가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협치를 하도록 제도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시스템으로서는 의회 양원제가 있는데 혹시 이것이 우리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헌정 사상 부끄러운 대통령 탄핵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도움이 된다면 도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절차 중시의 양원제가 거대 정당의 전횡을 방지하는 데는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탄핵 후에도 개헌과 같은 중대사에 대해서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늘 그랬듯 당내 정파 간 언론 플레이를 답습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예를 들면 당내 개헌 논의를 당 중진인 국회의장이 제의했으나 당대표의 반발로 아무 후속 토론 과정 없이 며칠 후 아예 없던 일인 듯 사라졌다. 이게 우리 정치의 토론 부재 불치병이다. 그러므로 탄핵으로 민주주의를 복원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야당의 자족 내지 자만에 불과한 것이다. 탄핵을 유발하는 요인이 싹 트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이번에 봤듯이 계엄 선포자와 탄핵 유발자 쌍방 간에 그런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아무도 노력하지 않다가 돌아설 수 없는 형국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의회 양원제가 하나의 해법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우리도 한때 양원제를 실시하려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먹고살기 힘들 때 이를 악물고 이겨내겠다는 굳은 각오로 누구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권도 그런 노력에 합세했다. 그래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불과 단 20년 만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과 같은 환란 속에서도 국가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국민들은 각자 위치에서 여전히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정치권은 권력 찬탈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 앞날에는 눈이 멀었다. 기업도 맥을 잃고 있지 않나. 삼성을 보라. 메모리 1위의 역사를 쓴 지 32년 만에 1위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주었다. 글로벌 7위의 위치에서 단숨에 39위로 추락했다. 그러면 100위 아래로 더 내려갈 때까지 방관만 하고 있겠다는 뜻인가. 선거철 다가와 말로만 무슨 강국 하고 외쳐대면 뭐하나. 그걸로 국가산업이 발전하고 국가동력이 움트나. 정치 풍토 개선을 위해 토론 문화를 만들고 그를 위해 필요하면 개헌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기업들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민주주의 위장한 딥페이크 정치 …양원제로 줄을 끊자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빛의 속도 양자컴 .. 그런데 어디다 쓰지

    창작과 비평은 인간 고유의 몫이다. 기계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 현란해 보여도 자연지능을 넘어설 수는 없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4승 1패로 이긴 것으로 인해 AI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을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나 단지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자동차 속도를 사람이 못 따라가듯이 그랬다. 컴퓨터는 계산을 빨리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1초에 수십조 번 계산을 쉽게 하니 상상이 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가 일일이 다시 계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중간 결과를 내가 대신 어딘가에 저장해놔야 마음이 놓이지, 그래야 나중에 얼른 가져다 쓰지’라는 무식한 생각을 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중간 결과 저장이 일으키는 파장은 크다. 이 글에선 논할 바 아니지만 중간 결과는 가급적 또는 아예 없을수록 데이터 정확성에 기여한다. 기계에 대한 중간 결과류의 통상적 배려가 완전히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인간의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일까. 기계를 다스리는 인간 자부심의 본질은 창작과 비평 능력에 있다. 기계는 해본들 거의 표절급이다. 그래서 윤리 문제가 바로 등장하는 것이다. 창작 능력이 없으면 비평하는 능력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생성AI가 표절 혹은 단순 검색 일변도의 문장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도 이유는 알고 보면 그래서다. 기계 대 인간 간 게임에 대해 정교히 알기 위해서는 컴퓨터라는 기계가 어떤 구조하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작동 원리에 대해 자세히 모른 채 내놓은 생각과 판단은 단지 착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응용전산학자, 즉 기초전산학자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내놓은 판단은 대개 과장이 많고 틀린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양자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아주경제 2025년 2월 20일자).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상 작년 이맘때쯤부터 화제로 등장했다. '미래 산업 만능 열쇠 양자컴퓨터, 산업계 난제 한 방에 풀릴 것'란 본제의 뉴스가 떴다(매일경제 2024년 4월 1일자). 양자 컴퓨터란 정보 저장 능력을 기존 컴퓨터에 비해 증가시키기 위해 기존 컴퓨터에 비해 색다른 방법을 쓴다. 기존에는 정보를 표현하는 비트 한 자리에 0이나 1 둘 중 하나가 들어가지만 양자 컴퓨터에서는 그 한 자리(‘큐비트’라고 칭함·원어는 퀀텀 비트)만 가지고도 한 순간에 0과 1을 동시에 갖기도 한다. 즉 기존 컴퓨터에서는 0과 1을 동시에 갖는 일은 불가능하단 뜻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비트 두 자리를 놓고 기존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를 비교해봐야 실감이 난다. 기존에는 두 비트가 있을 때 어느 한 특정 순간에 가질 수 있는 값은 00, 01, 10, 11 중 단 하나만 된다. 즉 00과 01을 동시에 나타낼 수는 없단 뜻이다. 또한 두 비트에서 이 네 값을 같은 한 순간에 동시에 갖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에서는 00, 01, 10, 11이라는 4개 값을 한 순간에 동시에 갖는 일이 특이하고 희한하게 가능하다. 즉 기존 비트에는 2의 n(n은 비트 수)승의 1이라는 경우의 수 중에서 오로지 단 한 가지 경우만을 값으로 갖지만 큐비트에서는 2의 n승의 경우의 수 전체를 한꺼번에 모두 갖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양자 컴퓨터의 표현 능력은 기존 컴퓨터에 비해 커지는데 n이 증가할수록 표현 능력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같은 비트 자리 수를 가지고도 기존 방식과 양자 방식 간에 이렇게 현저히 다른 표현이 나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자석과 빛의 성질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강자성을 띤 자석은 한번 자화가 일어나면 외부 자기장이 사라져도 잔류 자화가 남아 있는 물질이다. 이런 식으로 N극 혹은 S극 중 한쪽 방향으로 자화시킨 게 바로 한 비트의 0과 1에 해당한다. 이게 기존 컴퓨터의 작동 원리다. 반면 양자란 것 자체가 양자 컴퓨터는 빛과 파동의 원리로 작동한다. 유리 같은 물체에 빛이 비치면 외부에서 보는 각도의 차이에 따라 각양각색의 다른 무지개 색깔 모양으로 눈에 보이게 된다. 광전효과란 빛이 갖는 입자의 성질을 이용한 현상으로 금속 판에 일정한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추면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이때 튀어나오는 전자의 패턴이 각양각색으로 달라질 수 있단 말이다. 이걸 어디다 응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미로 찾기 게임을 연상해보자. 기존 비트로는 한 번에 하나의 미로 경로를 시도한다면 큐비트로는 한 번에 여러 경로를 동시에 시도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양자 컴퓨터를 다룬 기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슈퍼컴 능가하는 양자 컴퓨터 전 세계 전쟁 중' '1만번 해야 할 실험, 한 방에 해결' '신약개발 등 AI가 연구실 풍경 바꿔놔' 같은 류의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된 내용들이다. 과연 그럴까. 이에서 더 진전하여 'AI와 결합할 경우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초지능도 가능, AI 학습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양자 컴퓨터가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오늘날 기업이나 공공 조직 내 데이터 중 절반이 값의 부정확성 내지 불필요한 누더기 같은 중복으로 인해 쓸모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양자 컴퓨터가 제 아무리 막대한 계산을 순식간에 해 낸다고 해서 AI 성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될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데이터 아닌 것들이 데이터로 둔갑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3=5에서 계산 과정 초기 인자 2와 3은 데이터지만 5는 계산 결과지 계산 데이터(data)는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간파해봐야 한다. 여기서 5를 계산 결과로 나온 정보(information)로 부를 수 있으나 초기 조건으로서 주어진 데이터는 결코 아니다. 이게 데이터와 정보의 현저한 차이점이다. 이걸 큰 차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컴퓨터 작동 원리나 컴퓨터를 사용하여 만들어져서 돌아가는 기업(공공조직 포함) 정보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관해 별로 알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양자 컴퓨터 상용화에 근접, 중국 일본 맹추격, 한국은 세계시장 점유율 1.8%'라는 내용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국가 자체, 즉 국내산 운영체계(OS) 없이 추격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아마존이나 메타(페이스북) 등도 AI 대전에 참전하는 배경은 그들은 자체 OS를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들이 기존 원도즈나 안드로이드를 채택하여 AI 대전에 뛰어든다면 누가 결과적 승자가 될지 그 결과는 뻔한 것 아니겠는가. 남 좋은 일을 아마존과 메타가 할 필요가 있을까. 기존 OS 의존 없이 자신만의 신규 OS를 만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특히 약한 부분이 바로 여기다. 요즘 잘하는 희망 섞인 말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능한 토종 챗GPT 또는 AI로 인한 연구실 풍경 변화 운운하는 내용의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토종 AI가 토종 OS 위에서 돌아간다면 말이 되는 것이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게 뻔한 것에 대해 번지수 잘못 짚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양자 컴퓨터에 대한 전망으로 '신약·우주·군사무기 패권 결정할 게임체인저'라는 내용도 나온다. 그러나 자연현상 분석, 신약 개발, 금융 투자 분석, 통신 암호 분석 등 분야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재무회계 수치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기업 부문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설 땅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큐비트의 한계인 계산의 오류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1000번 계산 중 한 번 오류는 큐비트가 지닌 매우 심각한 문제다. 기존 비트로는 수조 번을 계산해도 오류가 한 번도 나지 않는다. 빠르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1억번에 걸쳐 해야 할 실험을 단 한 방에 깨끗이 해결한다는 말은 예측력이 중시되는 특수 영역에서는 의미가 있을 일이지만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대부분 일반 재무 중심의 기업 부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CES 2025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면서 그리고 연설 후 시간이 수주 지난 시기에 양자 컴퓨터에 대한 실용화 시기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전망을 내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하고 양자 관련 주식 투자자들의 심기를 불유쾌하게 건드린 일이 있었다. 이를 보면 양자 컴퓨터의 미래에 관한 전망치는 응용 분야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연구 분야 중에 예측 분야가 있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기상예보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런 분야를 관찰하다 보면 딱 들어 맞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틀리는 게 정상이라는 판단도 얼핏 든다. 틀려도 용납 가능한 수준에서 약간의 오차로 틀린다면 쓸 만한 일이기도 하다. 기상예보 주기가 길어 본들 1주 단위로 나오는 건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의 계산 속도에 힘입어 만일 5년 치 혹은 10년 치 기상예측이 비교적 정확하게 가능하다면 여러 산업과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주가 예측도 그렇고 교통 상황 예측도 그런 쪽에 해당한다. 태양계는 보통 1광년 내에 속한다. 지금은 화성·목성까지만 가지만(거리로는 10억㎞ 이내) 나중에는 양자 컴퓨터의 성능으로 지구에서 가장 멀다고 하는 135억 광년(거리로는 10조㎞-목성까지 거리의 1만배) 떨어진 은하계를 후손들이 왔다 갔다 할 날도 올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 컴퓨터보다 수천 배 이상의 성능을 지금 당장 기대한다면 양자 컴퓨터를 그런 쪽에 쓸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기존 컴퓨터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1000배 성능 정도는 통상 10년 내에 가능한 일인 바, 생각하기에 따라 양자 컴퓨터의 쓸모가 정해질 것이다. 얼마 전 90세를 일기로 스위스에서 존엄사를 택한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처럼 관점에 따른 선택의 폭과 자유는 생활 속에서 무척 많이 주어질 전망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빛의 속도 양자컴 .. 그런데 어디다 쓰지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선거망 신뢰 회복, 데이터 검증 부터

    부정선거 혹은 선거부정에 대한 의혹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안이 계엄의 단초로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해서가 아니라 선관위 선거투개표 시스템에 잘못 설계된 것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이쯤에서 개선책을 내놔야만 의혹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문제는 진영 대립을 떠나 의혹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좌우를 떠나 개선점을 면밀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지난달 10일 의혹이 헌법재판소에서 변론으로 다루어지긴 했으나 전문가들이 아니다 보니 워낙 피상적이었던 점은 유감이다. 공방은 3가지 관점이다. 첫째로 선거인 명부 조작 가능성, 둘째로 보안체계 우회 가능성, 셋째로 망 분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다뤄졌는데 이런 수위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국정청문회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선거망에 전문성을 보유한 컴퓨터 전문가 단 한명도 없이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법적인 요건 상 아마 없어도 됐을 것이지만 전 국민 앞에서 논리적으로 또한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무척 아쉬운 대목이었다. 사이버 보안에서 내부위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기관의 최근 2025년 2월 보고서를 참고하면 외부위협은 25%에 달하며 내부위협 또한 그에 못지않은 수준인 2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위협의 비율은 2017년 보고된 39%(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7년 12월 6일자)보다는 다소 줄어든 것이지만 여전히 경종을 울려주는 대목이다. 내부위협 기술은 외부위협 기법에 비해 매우 정교하다. 그런데 이번 헌재 부정선거 의혹 공방은 모두 외부위협 관점에서만 다뤄졌지 내부위협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변론에서는 국정원 내 해킹전문가라고 하는 어느 차장이 출석하여 질의 응답이 진행됐으나 질의가 상기 세 관점에 국한된 것들이라 응답 역시 그 수준에 머물렀다. 선거정보시스템(속칭 선거망)에서 내부위협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 전 행정망(정확히는 행정정보시스템)에서 발생했던 오류처럼 선거망에서도 오류가 일어날 만한 여지를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데이터 설계 및 데이터 통합 관리가 부실했다면 충분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행정망 데이터 오류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선거망 데이터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왜 그럴까. 보도에 의하면 선관위가 보유한 전산장비는 6400대로 집계(더팩트 2025년 2월 12일자)되는데 그 많은 컴퓨터 장비에서 발생하는 선거데이터가 중앙선관위에서 중앙집중 관리되도록 통합 설계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도된 바가 전혀 없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그 많은 수천대 PC가 지역 개표소에 흩어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각 PC에서 선거데이터 구조를 어떤 기술로 어떻게 설계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전국 개표소 수는 총 251개로 나온다. 시군구별 선관위(개표소)에서 각기 선거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해 PC가 26대씩 사용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앙선관위에서 이들 원초 데이터를 과연 어떤 과정과 경로를 통해 어떤 기술로 취합하여 여하히 통합 관리했는지도 봐야 한다. 만약 이종 기술들이 혼재해서 사용됐다면 더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면 데이터 일관성 및 정합성이 어느 수준에서 지켜졌는지 또한 문제가 있다면 어떤 유형의 데이터 오류가 있었을지 판단 가능해진다. 이를 제대로 점검한다면 선관위로서도 부정 의혹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기술적 부분들은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려운 내용이겠으나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선거망도 정보시스템의 하나다. 잠시 행정망 사고를 되돌아보자. 2023년 11월에 발발한 것으로서 일주일 사이에 연이어 먹통 사고가 발생했고 그 후로 6개월이 지난 2024년 5월 또다시 서류 오발급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24에서 민원 서류를 신청했는데 남의 서류가 나오는 오류가 여러 군데서 터진 것이다. 서류에는 많은 데이터가 들어간다. 남의 서류가 나왔다는 뜻은 바로 남의 데이터를 건드리도록 시스템이 흘러갔다는 의미다. 행안부는 이 사고를 “정부24 오류 발급은 개발자의 프로그램 개발 상 실수 (코딩 오류)”라고 밝혔다 (2024년 5월 5일자 조선일보). 이게 과연 코딩 잘못일까. 그러자 “서류가 오발급됐다면 프로그램 개발자 실수 아닌 데이터 오류일 것”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있었다(2024년 5월 7일자 디지털타임스). 그러므로 선거투개표도 선거데이터 품질을 짚어봐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즉 데이터베이스(DB) 설계 오류일 가능성이 유력하다. 부정 의혹 주장을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선거인 명부 부정확성, 즉 불일치성을 제기하는 것 위주다. 개별 단위 개표소에서 집계결과치 수기 표기 등의 허점이 드러난 것으로 주장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 골자는 데이터 정합성인데 선거데이터가 과연 부정확하게 처리됐다면 선관위 DB에 들어갈 데이터 설계가 부실하게 다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선거DB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만일 무늬만 DB지 실상은 DB 기술에는 못 미치는 일반 파일 (엑셀 파일 수준) 처리 기술로 돌아갔다면 데이터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도 확진자 정보를 제대로 DB화 하지 않고 일반 엑셀 파일로 관리하다가 파일 후미에 위치해야 할 확진자 정보가 자동 실종되는 문제가 발생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차제에 단독 조사팀이 아닌 객관성을 높여 공동 조사팀을 꾸려 선거망 설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경우에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른 것에 우선하여 선거DB가 과연 적절히 설계됐는지, 설계 상의 오류는 없었는지 추적해봐야 한다. 선거부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이 부분은 필요하다. 만에 하나 DB 설계 오류가 존재하여 DB 설계 수준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선관위가 의혹을 자초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 케이스는 해킹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본다. 전에 원전 해킹 사태 그리고 청와대 국정원 KBS 등 국가 주요 시설 9군데가 동시다발적으로 해킹 당한 경우를 보면 대규모 해킹은 홈페이지 마비를 통상 동반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그런 류의 해킹을 경험한 적은 없는 걸로 안다. 그렇다면 문제가 유력시되는 DB에 대한 체크 리스트는 어떤 것일까. 3가지가 있다. 첫째 선거 DB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둘째 DB가 대단위로 통합 관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관리되는지, 즉 중·소단위 혹은 개별 투표소 별로 관리되는지, 셋째 DB 보안을 위한 기법이 어느 수준에서 적용되는지를 세심히 점검해봐야 한다. 이를 위해 DB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하여 합동 점검팀이 구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일반 파일은 데이터 정확성을 보장 못하며 일반 파일이 아닌 정규 DB로 설계하더라도 설계자 사람의 실수로 정확성이 보장 안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기계 오류가 아닌 인재에 해당한다. 결국 DB 설계 품질이 어느 수준인지 판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투입되면 오류 가능성에 관한 모든 게 가려질 일이다. 데이터 전문가 투입 시 문제진단은 물론 해법까지 마련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수개월이면 족하다. 20년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았을 때도 데이터 전문가를 투입하여 DB설계 관점에서 정밀 진단했고 그 결과로 데이터품질 문제가 제기되어 품질개선에 들어간 경험이 있다. 그후 개선된 FIU시스템은 지난 20년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선관위 시스템점검위원회 구성을 볼 때 DB전문가가 유독 포함돼 있지 않은 점은 석연치 않다. 전국 개표소에서 총 6400대 PC를 썼다고 하는데 그 수준이라면 선거망 하부에 DB가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엑셀 수준에서 선거결과가 집계됐을 것이다. PC에서는 DB기술이 원래 지원되지 않으므로 DB보안이 적용됐을 리 만무하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컴퓨터전문가들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색다른 시각이라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회 구석구석에 컴퓨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컴퓨터전문가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행정부 요직에 무려 10여 명의 컴퓨터전문가를 등용했다. 인사부장관 복지부장관 법무부차관 등이다. 그간 암암리에 숨어든 비효율적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읽는다. 대한민국에서 국가데이터 관리가 부실하여 연 10조원 상당의 혈세 낭비가 있다는 분석을 본다면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게 진정한 국가개혁이다. 선거부정 의혹을 단 한명의 컴퓨터전문가도 참고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점은 큰 실책이다. 일개 해킹 관련 국정 청문회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훨씬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 말로만 들어오던 선관위 인사 비리가 드디어 보도됐다. 지역선관위 당 평균 4건 꼴이다. 헌재는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라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감싸고 있다. 이로 인해 헌재와 선관위 발표 신뢰도에 의문을 다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헌재 역시 독립기관이다. 독립 여하를 떠나 선진국에선 헌재는 물론 선관위도 감사 영역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우리의 청렴지수가 세계 30위권인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이다. 선거망에 대해 요약하면 선거데이터가 발생하는 애초 순간부터 중앙서버에서 관리되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선거망이 구식 구멍가게 식으로 운영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면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클라우드 AI시대 아닌가. 그 핵심은 바로 데이터다. 그렇다면 선관위는 차세대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선거부정에 대한 내부위협까지 대응하려면 감시 인력 관여를 최소화하고 시스템적으로 자동으로 완벽하게 구현해야 한다. 공개 입찰로 업체에 단순히 맡겨서는 역부족이므로 FIU에서 했듯이 시스템 설계 초기부터 반드시 DB보안 전문가의 기술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선거부정 의혹은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오게 돼있는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선거망 신뢰 회복, 데이터 검증 부터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기업 AI 경영의 ABC…데이터의 '쓸모'를 보자

    기존에 데이터가 빅데이터급으로 많이 축적된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이 잘 작동할 수 있다는 단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이 이번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다. 또한 이번 CES 2025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보여준 신체적 AI라는 개념도 지금 생성 AI가 어느 방향을 향해 개발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자동차나 로봇을 제외하면 다른 제조업 분야나 일반 기업 경영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증명이다. 왜 일반 기업 부문에 생성 AI가 맞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생성 AI의 기업 문서 분석 능력 부족에 있다. 그렇다면 그걸 개선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게 이번 글의 주제다. 과학 분야에는 실제로 실험 결과로 수집된 빅데이터가 많다. 모두 실험실에서 나온 데이터들이다. 예를 들면 분자가속기 혹은 원자분쇄기로 명명되는 기계에서는 불과 1초당 1페타바이트(PB)라는 어마어마한 데이터 양이 발생한다. 1페타란 1000테라바이트(TB)로 10의 15승을 일컫는다. 따라서 충돌 실험이 수십 초 동안만 진행되더라도 수십 PB 분량의 데이터가 발생한다. 이는 대규모 물리 혹은 화학 혹은 생물 실험 현장이 아닌 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한 큰 분량이다. 따라서 데이터가 풍성한 과학 분야는 AI가 잘 놀 수 있는 마당이 된다. 바둑의 기보가 빅데이터급으로 쌓일수록 알파고가 잘 작동했듯이 말이다. 알파고는 본질상 검색엔진이었다. 역대 기보 전체를 모두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해서 다음 묘수를 찾아내는 데 인간보다 탁월했기 때문에 이세돌 9단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대 기보 전체를 데이터 분량으로 추정하면 대략 40TB 정도 나온다. 빅데이터급(빅데이터로 불리려면 1000TB는 되어야 함)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다. 외장 하드디스크의 보통 용량이 2TB인 점을 감안하면 그 20배나 되므로 기보 전체는 꽤 큰 규모다. 이렇듯 AI는 무지막지한 분량의 데이터를 사전에 학습한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묘수를 제시하는 데 탁월하다.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새로운 구조를 밝히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단백질 구조 분야는 연구비와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한다고 해서 결과가 그에 비례해서 나오는 분야가 아니었다. 이 과정을 AI가 파고든 것이다. 단백질은 마치 기다란 끈이 말려 있거나 접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아미노산을 기본 생명 단위로 해서 긴 사슬 형태로 이루어진 모습이 단백질이라는 분자다. 참고로 분자란 원자들이 화학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단위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알파고 개발자로 유명한 하시비스는 자신의 영국 대학 박사 과정 시절에 그가 소속된 연구실에서 개발된 '폴드잇'이라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 폴드잇은 가상의 공간에서 아미노산을 갖가지 방법으로 접어보면서 조합을 시도하는 온라인 웹 게임이다. 단백질을 직접 접어 보면서 안정된 구조를 찾아가는 모의실험이다. 이 도구로 과학자가 수십 년간 밝혀내지 못했던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 구조를 다수의 온라인 게이머들이 단 3주 만에 찾아낸 일도 있다. 폴드잇을 써 본 하사비스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 바둑을 둘 때 다음 수를 내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바둑 기사들이 다음 수를 놓는 과정과 단백질 구조 예측을 하는 과정이 유사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대한 실증작업으로 알파고를 만들어 이세돌 9단을 이긴 뒤에는 학습을 마친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나은 제안을 한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졌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신종 단백질 전용 알파폴드 팀을 곧바로 꾸렸다. 그가 개발한 검색엔진 알파폴드에서는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여 기학습한 단백질 구조 데이터와 아미노산 특징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아미노산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는 마치 챗GPT가 다음에 올 가장 최적화된 단어를 찾아낸 것과 같다. 이렇게 하여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를 90% 정확도로 예측해냈다. 이는 컴퓨터가 사람보다 10만배 빠르다는 증거 중 한 예다. 즉 전문가가 한 종류의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내는 일을 수행하는 경우에 짧아도 수년 걸리지만 그런데 컴퓨터는 수십 분 만에 간단히 해결한다는 말이다. 인류는 50년에 걸쳐 아미노산 특징을 파악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과학계에서 단백질 구조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온 지는 50년 됐다. 즉 50년 동안 파악해 놓은 단백질 구조 빅데이터가 존재했다는 뜻이다. 아미노산 종류는 20개로 한정돼 있지만 단백질 종류는 수천만 개에 달한다. 아미노산과 함께 그동안 인류가 밝혀왔던 단백질의 특징과 같은 실험 데이터가 쌓였기에 AI 학습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단백질 데이터와 아미노산 데이터 같은 것은 어떤 부류의 데이터인가. 그것은 전부 과학적 실험 데이터다. 즉 도표 형태로 묘사된 데이터들로서 문서 부류에 속하는 데이터는 전혀 아니다. 문장의 형식(문서)과 달리 단지 도표 하나가 데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과학 데이터보다 문서 데이터가 더 많다. 기업에는 특히 그렇다. 실험실 환경과 기업 환경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데이터가 단순한 과학 분야에서 AI가 괄목할 성과를 보인다고 해서 데이터가 문장 형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업 분야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나 눈을 기업으로 돌려보면 기업 섹터는 데이터가 그런 규모로 많지는 않다. 기업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월마트로 총 데이터량이 무려 40PB에 달한다. 전 세계 기업 중 1PB 분량을 초과하는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은 불과 10개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그런 기업이 하나도 없으며 미국에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단 몇 곳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제조 기업에서 많은 데이터를 발생시키는 기업이 있다 하더라도 데이터를 사외에 공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성 AI는 거기에 접근할 수 없다. 과학데이터는 숫자뿐이라 단순하지만 제조 기업에서는 발생하는 자체 데이터도 기업 내 문서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서가 AI에 적합하도록 다듬어져 있기 전에는 AI를 실제 적용할 길이 없다. 기업 내 문서데이터는 문장 형태로 표현되는 게 특징이다. 숫자는 별로 없다. 제약회사와 공장형 제조 기업은 예외다. 그간 축척한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정확도를 높여 불량률을 줄일 수 있었다. 제약회사는 의약 실험 데이터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I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풍부한 제조업을 제외하면 기업 부문에서 AI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는 극히 제한적이다. 기업 문서 내 문장이 문법적으로 온전치 않으면 기업 문서를 있는 AI에 그대로 학습시켜본들 소용이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문장의 온전성을 판별하는 선행 과정이 필수적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무슨 행위 A를) 하는지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 문장의 내용이다. 즉 어느 문장이든 6하 원칙을 갖추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6하 원칙 중에서도 행위가 가장 핵심이다. A라는 행위를 매개로 해서 B-A-C와 같은 데이터 간 관계적 흐름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B와 C보다는 A가 초점인 것이다. 이게 문서 문장 데이터가 과학 수치 데이터와 다른 점이다. 문서 데이터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을 AI의 먹이로 작용시키고자 할 때는 문서 내 문장이 행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행위 중심으로 돼 있어야 AI의 핵심인 문장 간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추론이란 사실들을 죽 늘어 놓고 연역 혹은 귀납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내는 일을 말한다. 도표를 기반으로 해서는 추론할 일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도표 속 데이터는 단순히 숫자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추론은 연역 또는 귀납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데 그러려면 데이터 간 연결고리 발견이 관건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B라는 데이터와 C라는 데이터가 A라는 데이터를 통해 연결고리를 갖듯이 데이터 간 연결고리를 찾는 게 추론에서는 중요하다. 그걸 찾아가는 길, 즉 추론 경로라고 부른다. 이런 데이터 간 경로는 문장 내에서 발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문법적으로 온전치 못한 문장에서는 이런 경로 발견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만일 행위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변환(정제)을 거쳐야 한다. 그 후에 AI에 문서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한다. 그래야 추론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행위 중심으로 제대로 제작된 문장을 교정 과정 없이 그대로 AI에 먹이로 준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AI에 내장된 추론 기능이 문서 정제까지도 자동으로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은 오산이다. 잘못 작성된 문장이라도 많은 문장들을 학습시켜 보면 추론이 가능할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잘못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찾는 게 불가능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AI 적용 효용성은 데이터의 유형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다. 실험 결과가 숫자나 이미지 형태로 나타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AI가 막강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숫자 형태보다는 문장 형태가 많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AI가 설 땅은 별로 없다. 기업 경영은 기초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에 속한다. 따라서 경영 합리화와 경영 최적화를 위해서는 AI를 적용하기 전에 무엇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기업 AI 경영의 ABC…데이터의 쓸모를 보자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선거투개표 시비…무엇이 화근인가

    지금은 인터넷 인구가 55억명에 달해 있는 시대다. 전 세계 인구의 65%에 해당한다. 유아들 빼고 나면 누구나 다 쓴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야를 지구촌 전체로 확대해보면 오지 어디를 가보더라도 이동통신망을 통해 교신 안 하는 성인이 거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인터넷 시대 단면을 목격하게 된다. TV 이래 인터넷만 한 영향력을 발휘한 도구는 없었다. 어느 한 지역에서 촉발한 작은 변화라도 사회 전반으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이는 인류 사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개방적 추세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시대에 유권자인 국민들은 과거보다 전향적인 투명성을 원하는 동시에 과거 회귀적인 그 어떤 시도에도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정치권에서는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투개표 방식에 대해선 이 시대 유권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맞지 과거지향적으로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개표에 대해서도 일말의 문제가 있다고 느껴 그걸 기술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과거 방식, 즉 수동 개표로 간다면 그걸 환영할 부류의 유권자는 소수일 것이다. 미국을 보자.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라는 기업이 유권자 8000만명분 개인정보를 허락없이 남용한 페이스북 스캔들 사건이 터졌다. 댓글 조작을 통해 페이스북의 감정조작이 이루어져 그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소셜미디어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그후로 인터넷 시대에 투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미국은 IT 강국답게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게 되었다. 비트코인 식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그 다음 대선, 즉 바이든 대통령을 탄생시킨 선거에서는 해외 주둔 병력을 포함한 재외국민투표에 블록체인 방식 투표를 적용했다. 또한 미국 조지아주 등 26개 주에서는 투표 회신에 획기적으로 이메일 방식까지도 허용했다. 애리조나주 등 4개 주에서는 대선 투표에서 모바일앱 투표도 도입했다. 이 앱도 투표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상기 블록체인 방식을 통해 유권자 신원증명을 거쳤다. 우리의 선거 방식 현장을 보면 투표는 수동으로 개표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투개표 방식에 불일치 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게 어떤 허점을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선관위에서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개표 시스템이라는 것은 허점이 있어 보여도 선관위 내부적으로 투개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투명성을 문제 삼기 쉽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추세에 맞춰 우리도 향후 수동 투표가 아니라 전자투표로 가는 날에는 모바일앱 투표방식을 포함한 이메일 투표 도입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는 게 발전하는 국가의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이번 국가 계엄 사태에서 쟁점시 됐던 선거 정보시스템에 대해 다르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거 시스템도 국가 정보시스템 중의 하나지만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완벽하지는 않다. 인간의 오류까지 막을 수 있는 완벽을 기하려면 블록체인 방법을 쓰면 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외부는 물론 내부 조작 및 해킹까지도 사전차단 및 사후추적 가능한 기술이다. 전자투개표에도 딱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에스토니아에서는 대선 투개표에서 블록체인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선관위 전자개표기 오류 가능성에 대해 2023년 두 차례 실시한 점검에서 엇갈린 결과가 나온 것이 화근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먼저 국정원 측 주도로 했고 그 다음으로 선관위 측 단독으로 했다 (이데일리 2023년 10월 10일자). 두 점검 결과에서 상이한 점이 발견됐고, 그게 진영 별로 서로 다른 해석을 자아내는 기초가 되지 않았나 본다. 그 후로는 추가 점검이 실시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지도자 입장에서 부정선거 진위를 과연 가리고자 했다면 선관위 관련 규정인 헌법 제114조를 유심히 살펴봤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관위는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의 3자 합의를 통해 구성되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와는 완전히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그러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3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전제 하에 선관위 시스템에 대한 통합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국가행정망 마비사태 때 만들어졌던 태스크포스처럼 말이다. 단독 점검이 아니라 유관기관 통합적으로 보강하여 실시할 길은 있을 것 같다. 주요 행정 부처 장관 탄핵에 이어 계엄 선포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까지 이른 이번 국정 혼란 사태는 한마디로 여야 법조계 출신들의 합작품이다. 여야 모두 법리에 강하다 보니 한쪽은 예상 외의 계엄 선포로 갔고 다른 쪽은 탄핵으로 맞섰다. 국가 요직에 법조인들이 몰리는 현상과 또한 그들을 선호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 영입이 많은 배경엔 그들의 쓰임새가 뚜렷이 있기 때문이다. 입법 등의 법률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당과 유권자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단일 전문 직군 중에선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분야도 바로 법조계다. 22대 국회에서는 법조인 출신이 60명으로 5명 중 1명꼴이다. 이는 21대보다도 30% 이상 늘어난 것이다. 20대 국회도 49명으로 6명 중 1명 꼴이다. 19대 총선에서도 48명이었다. 의회에서 이러한 법조계 편중 현상은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현상이다. 우리는 총 의원 수의 20%에 달하는 반면 그들은 5% 미만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출신은 얼마나 될까. 이공계 비율은 10% 문턱을 넘지 못하며 매우 낮다. 지난 20년간 그랬다. 이공계 비율은 21대 국회에 비해 22대 국회에서 더 낮아졌다. 이공계에 인물이 사실상 넘치지만 정치에 선뜻 나서지 않는 탓도 있다. 한때 비례대표 영입 1순위를 차지해왔던 이공계란 말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과학기술 입국을 외치지만 대선에서도 이공계가 도전했던 기록은 역대 한 명뿐이다. 그분은 과학계의 태두 격이었으나 득표율은 불과 0.1%도 안됐다. 그만큼 과학계 인재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특정 직업집단이 국가 요직에서 과다 대표되는 것은 출신 다양성 분포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법조계는 주로 과거 사건에 대해 법리적으로 반추하는 분야라 과거지향적인 특징이 있다. 반면 예를 들면 과학계는 미래를 보는 분야다. 법조계와는 정반대 성향을 갖는다. 헌법재판소도 예외지대는 아니다. 재판관 인적구성에 있어서 선진국처럼 비법률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 점을 참고할 만하다(한겨레 2009년 7월 12일자, 연합뉴스 2024년 12월 20일자). 앞으로 유권자들은 법조계 출신에 표를 행사하기 보다는 국회의원 중 비율이 가장 떨어지는 분야인 이공계 출신 후보에게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면 국가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다. 한편 국내 과학계 자구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단체로서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있다. 그러나 주로 과학기술인의 친목 단체 성격으로서 미국의 과총과는 설립 취지부터 다르다. 미국 과총은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학술지 중의 하나인 사이언스 저널을 출간하는 노력과 더불어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중시하며 정치권에 대한 선의의 압력 단체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국가 발전을 위한 압력 단체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법조계 출신들이 정계에서 비율이 크다는 점 하나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 대다수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도 권력을 이용하여 방어전을 지루하게 펼치는 관행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남에겐 관용이 없는 것도 법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법리에 강한 점이 국헌 준수와 거리가 멀다면 국가 지도층으로서는 큰 흠결이다. 논리적인 면에서 법조인에 못지않은 과학자라도 그렇게 행동할까.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여야 전체에서 특히 알았으면 한다. 따라서 우리의 제1과제는 인물부터 교체하는 일이다. 여야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달 탄핵 의결 후 연일 쏟아지는 소식을 접하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전혀 구별이 안된다. 아전인수 격으로 법적 권한에 대해 여야가 180도 다른 해석을 내리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디지털이다. 국가 행정 국방 법사 사회보장 교육도 모두 디지털로 가고 있다. 평시와 전시를 대비하기 위하여 행정망 국방망(북한 무인기) 같은 전산망이 그래서 구축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기 국가 주요 2개 시스템이 오작동 내지 먹통 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국가재난망 법원전산망 사회복지망 교육전산망과 같은 국가 주요 시스템에서도 최근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조직에서는 디지털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게 중추 역할을 맡기는 게 중요하다. 어느 인적 시스템은 물론 어느 기계적 자동 시스템도 완벽한 것은 없다. 앞으로 전자동으로 선거 투개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선관위 수장의 디지털 마인드는 점검의 대상이다. 선관위 법 어느 조항에도 위원직을 특정 전문 분야에 국한하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선 선관위 위원 임명 시 전문 분야 간 균형을 유지케 하는 관련 법 조항까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헌법기관이나 행정부처에서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문분야 간 균형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선거투개표 시비…무엇이 화근인가
  •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종전을 향해 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중앙에서 동서로 나누는 드니프로강 인근의 에너지 발전 인프라 시설을 중거리 탄도 미사일로 공격하여 전황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평소 가능한 한 전쟁을 조속히 끝내게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교전 양측이 종전 임박을 예견한 가운데 러시아 측에서 이런 확전 강세를 두는 것은 아마도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 발발 직전 필자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서 느낀 첫 인상은 모스크바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과거 오랜 역사의 공산권 러시아 지배로 인해 그런 듯했다. 잘살지 못하는 나라지만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IT로 국가 경제를 키워 보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노력을 해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서 개최된 IT 학술대회 기조 강연자로 초청을 받아 우크라이나 땅에 발을 디뎠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기 불과 1년 전 일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평화롭던 이 나라가 세계를 경악케 하는 화염 속에 휩싸일 줄은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둘째로 국토 면적이 큰 대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4000달러 수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꼴찌 최빈국이다. 마치 30여 년 전 한국으로 생각하면 된다. 동남아시아로 치면 인도네시아 정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 산업은 농업이다. 좋은 땅과 기후 덕분에 미국, 태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곡창 지대 중 하나다. 그러나 큰 덩치에 비해 지난 1000년 동안 남의 지배만 받아온 약소국 신세를 지금까지 면치 못하고 있는 나라다. 1000년 전부터 몽골 지배를 받다가 16세기에 이르러서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연합 세력에 국가가 드니프로강을 중심으로 동과 서가 각기 분할돼 지배당했고 17세기에는 폴란드 통치 진영까지 러시아에 의해 지배당하면서 러시아 지배권에 들어가게 됐다. 그 당시부터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이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니아를 침공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뇌인 것으로 보면 그 발언의 역사적 배경이 17세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한일합병 때처럼 우크라이나 언어 말살 정책으로 자국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인구가 늘어났고 1922년에는 국가 전체가 스탈린 휘하의 소련 완전 지배 체제로 돌입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 붕괴와 더불어 드디어 독립 국가로 재탄생했고 인구 구성 비율에서 러시아 출신이 20%에 달할 정도로 국가 정체성이 희석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재합병을 틈틈이 노리던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함으로써 그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간단히 편입하면서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러시아가 이번과 같은 대대적 침공을 전격 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고는 장장 2년 6개월 동안 적국에 침략당하고 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나라가 나라답게 독립하여 자생 능력을 갖추려면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새마을 정신 같은 결기로 국민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나라의 기초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훗날 창대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지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나라를 시궁창에 빠뜨리는 정치 풍토가 연속돼서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처럼 한강의 기적을 경험하려면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의 분골쇄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부정부패 지수는 창피할 정도로 아프리카 케냐와 동남아 필리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부정부패 지수로는 한국은 63점으로 중진국, 덴마크가 90점으로 선진국, 우크라이나는 33점으로 후진국, 해적이 들끓는 소말리아는 17점으로 최후진국이다. 북한 역시 17점이라는 사실도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다른 노력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돌이켜보면 지난 400여 년간 러시아 지배의 그늘에서 자력 갱생할 기회가 무려 7번에 걸쳐 있었다. 그때마다 정치력 부재로 실기한 과거를 상기하면 통탄할 일이다. 전쟁 발발 후 국토의 20%를 러시아 측에 잃고 마는 곤경에 처하다가 이제는 그중 9% 정도만 수복한 상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난국을 스스로 자초한 것 아닌가 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유럽연합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나토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불행 중 다행이다. 이번에도 실기할 것인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국제사회를 향해 과거의 우유부단한 정치력을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줘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지리멸렬한 전쟁 양상은 과거에 본 적이 없다. 전쟁 발발 시작부터 매우 이상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다른 나라에서 전부 빌려 다 쓰고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강대국들의 전략에 당한 신세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1994년 초까지는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핵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던 군사 강대국이었다. 핵탄두 약 1700발과 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다. 그런데 1994년 말 부다페스트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3국 주도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는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하면서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이때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던 핵탄두와 미사일을 반환하면서 공교롭게도 그것들이 전부에 러시아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 넘기기 전에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작전통제권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지 못했다. 핵무기가 물리적으로 우크라이나 영내에 있었지만 작전통제권은 러시아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며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현 국경에 대한 주권을 확인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에 유엔 안보리가 대처한다는 국제 조약이 1994년 12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영국이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핵탄두와 ICBM을 전량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다.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한 것은 1996년 6월이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 원전에서 쓰는 우라늄 원료를 모두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러시아로 반출해 처리하고 있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크림반도를 포함한 영토보전과 주권보장 경제적지원 등을 국제적으로 약속받았다. 이른바 부다페스트 조약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조약에 서명한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아무런 연합군 파병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법적 구속력이 별로 없고 부다페스트조약에서 조차도 핵무기에 의한 공격이나 위협이 있을 때만 지원을 위해 안전보장위원회를 소집한다고 하였기에 서방세계가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아도 조약위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군사주권을 갖고 있지 못했던 우크라이나가 2014년에 이르러 크림반도를 러시아 측에 합병당하고 나서 나온 말이다. 2018년의 일이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내놓은 성명은 이렇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안전 보장 약속은 해당 각서의 종이 값만도 못할 정도로 믿어서는 안 되며 각국은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서방 미사일을 지원해주면 그걸 사용하여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영국에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며 과연 누가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일국의 군사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현재도 유럽 최대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하며 또한 원자로를 17개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원자로에 대한 통제권이 러시아 측에 있다는 게 어떻게 말이 되는가. 우크라이나 국토 내 원전을 러시아 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이 직접 공격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그런 경우를 잘 설명해준다. 이번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교훈은 국제조약에 많은 허점이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만 예외가 아니며 어느 다른 국가도 그런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국가 재건 비용을 약 500조원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 1년치 국가예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근 3년간 지리멸렬하게 끌어온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비롯한 국제 정세 변화로 2025년 새해에는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가장 큰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종전 조건 협상 줄다리기에 1년을 보내리라고 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 당장이라도 러시아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양국 상호 간 에너지 시설 공격 중지에 관한 협상이 성공한다면 종전 분위기는 조성될 수 있을 것 같다. 종전 후 한국이 격동 30년을 통해 세계 10위권 자리를 잡은 한강의 기적을 보여줬듯이 침공당한 우크라이나가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과연 세계 만방을 향해 보여줄지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 지도층이 그들의 역사에서 부정부패를 과감히 척결하고 공의로운 길을 걸음으로써 국가를 견고하게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결의하고 실천하는 일 것이다. 앞으로도 러시아를 대항할 그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을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종전을 향해 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