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중국을 선진국으로 보느냐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소프트웨어(SW)에 관한 한 선진국으로 본다. 딥시크AI 덕이 크지만 사실은 그게 다는 아니다. AI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엔비디아는 그들만의 강력한 무기인 SW생태계도 갖고 있는 엄연한 SW 강세 기업이다. 딥시크가 엔비디아 반도체 위에서 돌아가므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국은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고유의 SW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서 화웨이를 활용하여 엔비디아 생태계를 격파하려는 전략까지 짜고 있다. 미·중 갈등이 도와준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것도 그게 다가 아니다. 실은 20년 전부터 중국은 SW 기술 자립 의지가 남달리 강했다. 화웨이가 좌절의 벼랑 끝에서도 어렵게 윈도급 OS를 성공적으로 국산 제작한 것은 대미 갈등이 있기 전 일인 까닭이다. 중국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다룬 논평은 많으나 그들은 일률적으로 아래처럼 마감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선택과 집중으로 맞서야 한다. 핵심분야를 정하고 인재양성에 집중투자해야 한다. 인재에게 파격보상을 약속하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파격보상, 취사선택, 규제혁파라는 3종 세트가 부재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동떨어진 이야기다. 이런 지적만으로는 부족하단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순으로 접근해야 이 문제가 풀릴까.
이런 딜레마는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초 시절의 데자뷔다. 그땐 특단의 방법을 써서 20년 뒤인 1990년대애 이르러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 방법이란 고등 인재 양성을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섰던 일이다. 여러 반대를 뚫고 카이스트라는 대학을 어렵게 설립한 일이다. 그 대학은 국내 산업계에 고급 인재를 대거 공급하는 숨통 역할을 했다. 무명이었던 카이스트는 지금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 정상급 대학으로 우뚝 섰다. 중국의 기술패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나 그중 가장 상징적인 작품은 딥시크다. 딥시크도 고급 인재 한 명이 해낸 것이다. 이처럼 고급인재는 중요하다. 딥시크는 세계 공동 3위다. 8억명은 챗GPT, 5억명이 제미나이, 1억명이 코파일럿, 또 1억명이 딥시크를 쓰고 있다, 그 개발자 량원펑이 나오기까지는 중국도 꼬박 20년이라는 인재양성 기간을 필요로 했다. 왜 20년일까. 이는 기술세계의 법칙이다. 딥시크는 5위 퍼플렉시티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면서 그 위용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순위에서 중국은 딥시크를 내세워 AI 분야 3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딥시크를 제외하면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미국 기업 제품이다. 따라서 AI 몇대 강국과 같은 거창한 표어는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그건 선전용일 뿐이다. AI가 메달 경쟁하는 축구 같은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메모리 강국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에는 삼성이 메모리 세계 1위의 자리에 20년 이상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3대 강국 같은 거창한 기치 아래 그에 부응한 결과로 삼성이 나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이란 표어에 집착하지 말고 세계 10위 내에 속하는 AI도구가 한국에서 실제로 나오게 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세계 10위 내 AI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10년 내에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 그럴까. 인재양성 정책이 전혀 받쳐 주질 않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인재양성 정책이 우리와는 현저히 다르게 성공적이었다. 일찍이 딥시크를 출시하기 20년 전부터 중국은 SW 인재를 꾸준히 양성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중국이 한국을 1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 AI 인재양성에 있어서 결정적 대부 역할을 한 이는 칭화대 야오 치즈라는 교수다. 그가 소명 의식을 갖고 미국 프린스턴대 전산학과에서 칭화대 전산학과로 자리를 옮긴 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일이었다. 국가 주도의 인재양성 연장선상에서 20년 뒤에 딥시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야오 교수는 전산학 박사로서 전공분야는 계산이론이었다. 전산수학에 해당하는 영역으로서 AI와는 별 연관이 없는 SW 분야 중 하나다. 또한 그가 처음 칭화대에 왔을 때는 AI가 뜨지도 않았을 때다. 그는 칭화대에 오자마자 야오반을 만들어 SW 후학들을 양성해냈다. AI도 SW에 속한다. 그러니까 SW라는 숲속 인재를 장장 20년간에 걸쳐 꾸준히 키워 내다보니까 딥시크 AI라는 나무 한 그루도 잘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처음부터 AI 인재를 타깃으로 해서 딥시크의 량원펑 같은 인재가 지금까지 중국 땅에서 수백명씩이나 배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야오 교수의 나이는 지금 80세지만 현직 교수로 재직 중인 점이 눈에 띈다. 한국 같으면 교육부 지침에 의해 활동 정지될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그는 현역에 있다. 중국에는 우리 같은 연령 제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중국과 한국 차이의 시발점이다.
불과 1개월여 전 “국내 카이스트 석학 빨아들이는 중국”이란 표제의 기사가 떴다(조선일보 2025년 9월 23일자). 그러나 이 기사는 새로운 발견이 결코 아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중국이 퇴직하는 한국 유수 대학 교수를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채용해 온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벌써 10여 년 전부터 이미 뿌리 깊게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국내 재직 시 연봉보다 2배 이상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중국에 영입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중국의 전략은 이렇다. 야오 치즈 급 교수를 계속 영입하기 위해서는 그 수준에 대등한 한국 대학 퇴직 교수를 꾸준히 영입하여 활용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민법상 외국인 교수가 자국 땅에 가서 시민권이나 취업 비자도 없이 수년간에 걸쳐 현직 정규 교수로 근무하도록 쉽게 특례 허용해주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도 거의 없다. 아무리 유능한 석학이라고 하더라도 취업 체류 비자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런 걸림돌이 되는 이민법 규제를 철폐했다는 뜻이 된다. 우리 같으면 이게 가능할까. 교육부 규제로 인해 불가능하다. 이런 규제 철폐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철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시니어 석학인 야오 교수가 주니어 고급 인재를 20년간에 걸쳐 매년 수십명씩 성공적으로 양성해내는 것을 보면 SW분야에서도 경륜이 중요하다. 급변하는 컴퓨터 분야에서도 구력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파격보상, 규제혁파, 취사선택, 이 셋 모두가 현재로서는 우리 스스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셋은 1970년대엔 모두 가능했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안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1970년대 그때는 지도자 단 한 사람의 결단으로도 가능했다. 예로 카이스트 설립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한명만 빼고 나머지 17개 부처 모든 장관들이 설립을 완강히 반대했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은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터만 보고서에 기반하여 카이스트 설립을 주도했다. 그로부터 50년 지난 오늘에 이르러 카이스트는 전산학과가 세계 9위를 기록하는 (튜링상 수여기관인 미국컴퓨터학회 ACM 발표 CSRanking 2024 기준)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대한민국 전산학의 수준을 전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보여준 쾌거다. 반면 카이스트를 제외한 국내 대학 중 카이스트 다음 순위를 기록한 대학은 저 밑 겨우 세계 99위에 랭크돼 있다.
그 대학으로 말하면 이렇다. 카이스트 설립을 극구 반대했던 부처 장관 전원의 공통된 의견은 카이스트 설립에 드는 비용을 그 대학교 공과대학에 대신 몰아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카이스트를 설립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집단으로 항변했다. 그때 장관들의 중의를 대통령이 만일 그대로 따랐더라면 ‘한강의 기적’이란 단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과 현실에는 항상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창조적 파괴 이론을 정립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중국 인재 쓰나미 극복을 위한 국가 정책에 늘 회자되는 파격보상, 규제혁파, 취사선택, 이 셋은 창조적 파괴를 실험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이 셋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구하기 힘든데 셋 모두에 대해서 일거에 동의를 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할 듯하지만 이 셋 간에는 상호 연관성이 있어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파격보상은 우리가 과거에 시행해 본 적이 없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다. 금전적 파격보상은 사회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예산 뒷받침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취사선택도 그렇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어 이 둘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규제혁파 같은 창조적 파괴는 돈 한푼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아닌가. 셋 다 하기 힘들다면 이것 하나만으로 국가 혁신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 아닌가. 말로만 AI 3대강국 운운하면서 또한 시니어 고급 인재를 다른 나라에 속수무책으로 뺏기는 상황에서 남의 나라 일인 양 정부가 규제혁파마저도 아무 손을 쓰지 못한다면 어떻게 주니어 고급 인재를 이 땅에서 배출할 수 있단 말인가. 시니어 고급 인재를 더 이상 다른 나라에 뺏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퇴직 교수 관련 교육부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게 마땅하다. 연봉 처우 문제를 떠나 시니어 고급 인재가 이 땅을 등지고 경쟁 상대국으로 떠나는 일이 없게끔 막아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또한 퇴직 시니어 인재로 하여금 현직 봉사 혜택을 주면서 그들에게 주니어 고급 인재 양성에 대한 목표치를 의무화하는 인재양성 정책도 요구된다.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SW에 10년 20년 지속적으로 투자한 결과로 AI라는 수확까지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이다. 5년 주기로 정권 바뀔 때마다 원상복귀를 반복하는 악습도 버려야 한다. 정부는 당장 몇 년내 열매를 따먹으려 하는 조급함을 버리고 중국의 SW 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규제혁파 차원과 SW 국산화 차원에서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고 설계해 보기 바란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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