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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의 중기직설 중기중앙회, '포스트 김기문' 누구?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지난 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6.01.02 16년간 중소기업중앙회를 이끈 김기문 회장이 내년 2월 임기를 끝으로 물러난다. 차기 회장을 뽑는 제28대 선거는 내년 2월 2일 치러진다. 유권자는 600여 개 협동조합 등 협단체로 한정돼 있고, 후보 자격도 협동조합 이사장에게만 주어진다. 아직 공식 출마를 선언한 인사는
정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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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선의 Beat Grease : 달콤한 반항
Vanilla Ice - Ice Ice Baby Vanilla Ice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미국의 래퍼다. 래퍼뿐 아니라 배우와 프로듀서, 방송인으로도 활동한 그는 1990년 발표된 이 곡으로 힙합이 팝 차트의 중심으로 진입하던 시기와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 ‘Ice Ice B
강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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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호의 일.고.감 일본 여성운동사부터 고령사회까지…100세 맞은 '기록영화 작가' 하네다 스미코
일본 기록영화 작가 하네다 스미코 감독 일본 기록영화 작가 하네다 스미코(羽田澄子)가 올해 100세를 맞이했다. 탄생 100년을 맞아 지난 6월 도쿄 시네마베라 시부야에서 '하네다 스미코 탄생 100년 기념-복지, 예술, 젠더를 통해 일본을 그리다'가 열려 대표작 13편이 상영됐다. 1926년 1월 3일 당시 일본이 조차하고 있던 다롄에서 태어난 그녀는 뤼순에서 소학교와 여학교를 마치고 1942년 도쿄의
박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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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밀어버리는거야"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며 불편해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투가 거칠어지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이 들곤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인색하다.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타인의 분노를 얼마나 이해하려 하는가. 그리고 누군가가 끝내 폭발하기까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알고 있는가. 주인공 혜영(김혜윤)은 평범한 청춘과는 거리가 멀다. 팔에 큰 용 문신을 한 그녀는 거친 말투와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녔다.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까칠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혜영을 ‘성격이 센 여자’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가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혜영의 삶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기점으로 무너진다. 아버지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혜영은 한순간에 가족의 보호자 역할을 떠안게 되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그는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해결해야 한다. 아직 자신의 삶조차 온전히 꾸려나가기 어려운 스무살 혜영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책임을 안겨준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 구본진(박혁권)이 운영하던 중국집과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다. 개발업자 측은 혜영의 가족에게 토지를 넘기라고 압박한다. 혜영에게는 이를 막아낼 경제적 힘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혜영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국집 가게 건물이 사실 아버지 소유가 아닌 과거 아버지가 일한 중장비 회사 최 회장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녹취록을 발견한 혜영은 최 회장과 본진 간의 건물을 둘러싼 거래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최 회장은 본진에게 ‘자유롭게 건물을 쓰라’며 건물을 내주었고 본진은 4억 원의 빚을 내 건물을 2층으로 증축했으나, 국회의원에 출마한 최 회장은 ‘부술 건물에 무슨 권리금이 있느냐’며 권리금을 주치 않은 채 건물이 있는 땅을 골프연습장으로 되팔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같은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최 회장과 정계 인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폭로하려던 혜영은 건장한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고 해당 녹취록은 삭제되고 만다. 그래도 혜영은 무너져있을 수만은 없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파헤치는 것만이 혜영이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경찰을 찾아가고 자신의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왜 분노하는가 이미 기울어진 힘의 균형 앞에 혜영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불도저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는 동생을 친척집에 맡긴 뒤 중장비 회사로 향한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배운 불도저를 몰며 중국집 건물을 스스로 허물고 최 회장의 저택 성벽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다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은 혜영은 돌진을 멈추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 교도소에서 출소한 혜영의 모습을 비춘다. 그녀는 동생과 작은 옥탑방에서 살아간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예전에 없던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불도저는 도시를 개발하고 기존의 건물을 밀어내는 존재다. 혜영은 이 거대한 불도저에 올라탐으로써 자신을 밀어내는 세상을 향해 거꾸로 돌진한 것이다. 혜영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누군가 혜영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혜영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불도저에 올라탄 것은 혜영이 스스로를 지키는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의 선택이 옳은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선택밖에 남지 않은 혜영의 절망을 느낀다. 영화는 혜영의 통장으로 죽은 아빠의 보험금 4억 원이 입금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종종 분노의 원인보다 분노의 방식에 먼저 주목한다. ‘왜 저렇게 과격해?’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말을 좋게 하면 되지’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무엇을 참아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혜영의 거친 모습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분노만큼의 상실과 무력감을 예상케 한다. 아버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는 절망.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그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혜영의 분노가 있다. 돈이나 권력 등 힘을 가진 사람은 화를 내지 않아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혜영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 회장에게는 돈과 조직이 있고, 혜영에게는 자신의 몸과 목소리밖에 없었다. 결국 혜영은 자신이 가진 가장 거친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처럼 불도저에 올라탄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복수극의 클라이맥스로만 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법과 돈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불도저에 올라탄 혜영은 세상을 부수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내고 싶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무력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소영 기자 -
박위, KTX 낙상사고 CCTV 공개 후폭풍…왜 그랬을까?박위를 돕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휠체어 바퀴가 걸렸다. 휠체어를 탄 박위는 KTX에서 내리다 넘어졌다.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는 사고였다. 논란은 사고 이후 시작됐다. 박위가 낙상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확보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것. 사회복무요원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며 현장에서 사과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면서도 "발을 경사로 위에 올려놓은 것 자체로 화가 났다"고 회상했다.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자신을 도와주다 실수한 사람을 수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 공개할 필요까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논란이 커지자 박위는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박위는 왜 CCTV까지 공개하며 이번 일을 공론화했을까. 박위 자신이 아닌 이상 정확한 속마음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그가 그동안 해온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몇 가지 심리는 짐작해볼 수 있다. ▲ 내가 겪은 세상이 진짜라는 믿음 박위에게 이 사건은 '누군가 나를 돕다 실수했다'는 사고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해석한다. 똑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과거 경험에 따라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가 달라진다. 박위는 2014년 사고 이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왔다. 이후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활동을 장애 인식 개선과 인권 증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해 2022년 서울시 복지상 장애인 인권 분야 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위에게는 비장애인이 쉽게 알지 못하는 위험이 수없이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발 하나 잘못 디딘 실수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사고가 된다. 박위는 CCTV를 보며 바로 이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말로 해서는 모른다. 직접 봐야 안다.' CCTV는 누군가를 망신주기 위한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 돌봄 윤리와 '내가 알려야 한다'는 책무 여기에 일종의 책무감도 더해졌을 수 있다. 돌봄 윤리는 인간을 홀로 완결된 존재로 보기보다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누군가의 취약함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돌봄에 응답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박위에게 장애인의 안전 문제 역시 이런 관계의 문제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장애인 유튜버로 살아온 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일로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리지 않으면 다른 휠체어 이용자도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문제가 개인의 불쾌함이 아니라 장애인의 안전이라고 받아들였다면, 공론화는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 선의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여기서 선의가 뜻밖의 함정이 된다. 도덕적 확신이 강해지면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도 강해지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수 있다. '다른 장애인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목적만 놓고 보면 반박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목적이 옳다는 확신 때문에 다른 문제에 대한 생각은 흐려질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박위를 도우려고 그 자리에 있었다. 사고는 고의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사과까지 했다. 박위는 수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명인이고, 사회복무요원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개인이다. 사고 순간에는 박위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였다. 하지만 CCTV를 유튜브에 올리는 순간 두 사람의 힘은 뒤집힌다.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강한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약자와 강자는 사람에게 영원히 붙어 있는 명찰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박위가 자신의 취약함에 집중하는 동안 자신이 상대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까지는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 같은 CCTV, 전혀 다른 장면 박위와 대중은 똑같은 CCTV를 보고 전혀 다른 장면을 봤다. 박위가 본 건 어쩌면 '작은 실수가 장애인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가'였을 것이다. 반대로 많은 사람은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곤욕을 치를 수 있는지'를 봤다. 이후 사과문에서 박위는 "저를 돕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를 제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며 "생각이 짧았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도 박위의 이 문장일지 모른다. ▲ 공감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박위는 오랫동안 비장애인에게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한번 바라봐달라고 이야기해왔다. 계단과 문턱, 경사로가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해달라는 요구였다. 필요한 이야기다. 하지만 공감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봐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자리로 건너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동건 기자 -
김다현 무대 본 뒤 달라진 심수봉 여론, 왜?가수 김다현, 심수봉 가수 심수봉의 공개 비판으로 시작된 논란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처음 논란의 중심에는 심수봉이 있었다. 심수봉은 지난 20일 '2026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앞 순서로 공연한 김다현(17)을 향해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도 모르는 아가씨인 것 같다", "앞으로 제 앞에 저 선수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 54세 어린 후배를 관객 앞에서 공개적으로 평가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심수봉은 이튿날 자신의 발언을 "상식을 벗어난 말"이자 "명백한 실언"이라고 인정했다. 김다현과 가족에게 직접 사과했고, 김다현 역시 심수봉과 통화해 사과와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김다현의 당시 무대 영상이 퍼지면서 초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김다현이 짧은 치마 정장을 입고 '내가 로또야', '꽃처녀', '칭찬고래' 등을 부르는 모습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영상을 보니 심수봉의 심정이 이해된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일부 여론이 반전됐다. 논쟁의 질문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대선배가 미성년 후배에게 저렇게 말해도 되는지'였는데, 김다현의 무대 영상이 퍼진 뒤에는 '김다현의 무대가 적절했는지'로 바뀌었다. 두 문제는 같은 저울에 올릴 일이 아니다. 김다현의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심수봉의 비판 방식이 적절해지는 건 아니고, 심수봉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해서 김다현의 무대를 좋게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후배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던 심수봉의 행동이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대신했다'는 행동으로 재해석됐다. 김다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심수봉의 행동에 붙는 의미까지 바뀐 것이다. ▲ 두 판단이 하나로 묶이는 이유 이는 사람들이 두 문제를 머릿속에서 따로 떼어놓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하면 '김다현의 무대가 적절했는지'와 '심수봉의 공개 비판이 적절했는지'를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일상의 모든 판단에 같은 만큼의 시간과 집중력을 쓰지 않는다. 수전 피스크와 셸리 테일러는 인간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에 비유했다. 복잡한 문제를 매번 처음부터 끝까지 따져보기보다, 가능한 한 적은 정신적 에너지로 빠르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다현의 무대를 짧은 영상으로 보고 댓글을 훑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무대를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김다현의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판단이 심수봉의 발언을 평가하는 데까지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다. 두 사안을 각각 다시 검토하기보다 '심수봉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네'라고 묶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 김다현의 무대가 건드린 것 그렇다면 김다현의 무대는 왜 사람들에게 그만큼 강한 불편함을 줬을까. 도덕 기반 이론의 '순수/오염'(sanctity/degradation) 개념을 빌리면 이 같은 반응을 더 들여다볼 수 있다. 순수/오염의 도덕 기반은 인간의 몸이나 성, 종교적 가치, 품위처럼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대상을 보호하려는 도덕적 직관과 관련된다. 누군가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았더라도 어떤 행동이 천박하다거나 타락했다거나 품위를 훼손했다고 느끼는 순간 도덕적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다현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운 '트로트 신동'으로 각인됐다. 그런데 최근 무대에서는 짧은 기장의 의상과 성인 가수에 가까운 퍼포먼스뿐 아니라 반복적인 훅과 과장된 몸짓, 익살스러운 연출이 강조된 '행사형 트로트'의 색채가 짙어졌다. 이를 본 대중에게는 김다현에게 기대했던 순수함이나 어울리는 모습이 훼손됐다고 느끼는 도덕적 직관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2026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가수 김다현의 모습 '기대 위반'(expectancy violation)도 함께 볼 수 있다. 사람은 상대가 자신이 기대하던 모습에서 벗어날 때 그 변화를 더 두드러지게 받아들인다. 특히 오랫동안 특정 이미지로 사랑받은 스타일수록 그렇다. 김다현의 무대가 잘못됐다기보다, 대중이 기대했던 '실력파 어린 가수'의 이미지와 현재 무대 사이의 간극이 실망을 키웠을 수 있다. 다만 선을 그을 필요는 있다. 김다현의 무대는 더 넓은 팬층을 겨냥한 상업적 선택일 수 있고, 또래 걸그룹 멤버들이 더 짧은 의상을 입거나 성적 표현이 강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경우도 많다. 흥을 유발하기 위한 후크송과 가벼운 연출은 가수에게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반응이 나쁘면 방향을 조정하면 되고, 새로운 시도가 통한다면 활동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6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가수 김다현의 모습 대중이 먼저 만들어놓은 김다현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는 김다현에게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응원하고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모습만을 요구한다면, 애정은 일종의 강요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실망은 쉽게 도덕적 판단으로 번지곤 한다. "내 취향이 아니다"에서 끝나는 대신 "왜 저런 방향으로 가느냐", "누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느냐"는 비난으로 확대된다. 취향의 불만이 사람과 선택에 대한 평가로 바뀌는 것이다. 처음 김다현은 '원로가수에게 공개적으로 상처받은 17세 후배'였다. 자연스럽게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김다현이 '부적절한 무대를 한 사람', 어떤 규범을 어긴 행위자로 보이면 구도가 달라진다. 김다현에게 느끼던 연민이 줄고, 심수봉의 발언은 이전보다 덜 부당하게 느껴질 여지가 생긴다. 김다현의 무대가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사람에게 심수봉의 말은 어느 순간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대신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심수봉이 총대를 멨다"는 반응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도덕적 프레임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김다현의 무대가 별로였다는 판단이 심수봉의 공개 비판까지 옳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무대는 무대대로 평가하고, 사람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린 행동은 그 행동대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 여론이 뒤집힌 이유도 그 두 판단이 섞였기 때문이다. 김다현의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하자, 심수봉의 말까지 덜 잘못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