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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영의 주린이 투자노트 홈플러스 회생안 D-1 복잡해진 셈법…MBK·메리츠에 노조·정치권도 가세
홈플러스의 '운명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3일 홈플러스의 변경 회생계획안을 검토한 뒤 회생 절차를 폐지할지, 추가 연장을 할지 결정할 방침입니다. 앞서 법원은 홈플러스 측에 2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 계획에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요구했습니다. 문제는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대출(DIP) 조달 방안의 공백입니다
고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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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의 Fin포인트 '500조' 퇴직연금 굴리는 시대…잠자는 내 돈 수익률 높이려면?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섰다. 이제 퇴직연금은 월급에서 빠져나가 회사 어딘가에 쌓여 있는 돈이 아니다. 노후 생활비를 좌우할 '제2의 월급통장'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같은 퇴직연금이라도 누가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크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2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
김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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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의 M.S.G 식음료·패션 이어 뷰티까지…기업 마케팅 '역사 감수성' 재점검
M.S.G는 마트(M)·스낵(S)·그로서리(G) 등 유통업계 이슈를 쉽게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조미료(MSG)를 한 스푼 더해 기사 한 줄 뒤에 숨은 이유까지 맛있게 정리해드립니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 이후 회사가 임직원 대상 역사 의식 교육을 진행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다시
홍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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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자는 왜 손흥민을 욕했을까?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 손흥민을 향한 취재진의 욕설 파문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을 지켜보던 두 기자가 손흥민에게 여과 없는 말을 뱉었고, 그 음성이 카메라에 고스라히 담긴 것. 해당 영상이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자 JTBC 측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뒤 발언이 삭제된 편집본을 재게시했다. 이번 논란을 들여다보기 전 분명히 해둘 점은, 우리가 두 남성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손흥민에게 열등감을 느꼈는지, 병역 특례에 반발심을 풀었는지, 현장에서 어떤 불만을 겪었는지 단정할 수 없다. 업계 밖에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기자라는 직업을 재판하기 위해 두 사람의 내면을 살펴보려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감정을 추측해볼 뿐이다. 취재 대상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 현장을 안다는 자부심, 팬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모든 게 어느 순간 냉소로 흐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가까이서 보고 평가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마음을, 본인을 포함해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말은 흔적을 남긴다.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에는 그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 자존심을 지키는 습관이 묻어난다. 대화 속 그들은 손흥민의 슈팅이나 경기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꺼낸 말은 '군대'였다. 손흥민을 향한 취재진의 욕설이 담긴 영상 "주장이라고 소대장 뛰듯이 뛰는 건가." "군대도 안 갔다 온 XX들이." "군대의 '군' 자도 모르는 XX들." 짧은 대화지만 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축구장의 주장을 병영의 소대장으로 바꾸는 시선, 군필 경험을 도덕적 우위처럼 사용하는 태도, 압도적인 스타를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좁은 기준 안으로 끌어들이는 심리, 남성들끼리 서로 으스대며 조롱을 주고받는 문화까지. 단순한 설명을 할 수도 있다. 현장은 덥고, 대기는 길었을 수 있다. 월드컵 현장 취재는 피곤할 수 있다. 낯선 도시, 빡빡한 동선, 제한된 접근, 취재 경쟁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더위와 피로는 말의 문턱을 낮춘다. 평소라면 속으로 삼켰을 짜증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불쾌감이 있었다면 그건 왜 하필 군대의 언어로 나왔을까. 피곤했다면 왜 그 피곤함은 국가대표 주장에게, 그것도 병역 경험을 조롱하는 말로 이어졌을까. ▲ 냉소를 전문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기자는 직업적으로 대상을 가까이서 본다. 훈련장을 보고, 인터뷰를 요청하고, 표정을 읽고, 몸짓을 관찰한다. 반복해서 사람을 평가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평가는 때때로 이상한 착각을 만든다. '나는 팬이 아니다.' '나는 저 사람을 안다.' '나는 저 사람의 민낯을 본다.' 건강한 거리감일 수 있다. 기자는 팬처럼 감탄만 해서는 안 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고, 질문해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감탄하지 않는 태도를 전문성으로 착각하고, 냉소를 통찰처럼 여기게 된다. 팬은 감탄하고 기자는 판단한다고 믿는 것이다. 가까이서 본다는 게 더 깊이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복적인 관찰은 사람을 대상화하기 쉽다. 선수는 사람이 아닌 기사 재료가 되고, 인터뷰이는 코멘트 공급원이 되고, 스타는 취재 동선 안의 자원이 된다. 손흥민 같은 선수는 더 그렇다. 그는 한국 축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기사와 조회수의 원천이다. 기자는 그에게 기대어 기사를 쓴다. 손흥민이 뛰어야 기사가 나오고, 손흥민이 말해야 멘트가 생기고, 손흥민이라는 이름이 있어야 독자의 눈길이 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는 존재 아래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재 대상에게 기대면서도 말로는 그를 낮춘다. 그를 작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작지 않다고 느끼려 할 수 있다. 전문가 의식의 그림자다. 취재권은 권력이 아니고, 접근권은 우월감의 근거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이 자주 보는 사람을 과소평가하고, 익숙함은 존경을 무디게 만든다. 선수와 같은 공간에 있고, 훈련을 보고, 인터뷰를 요청하고, 경기 전후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면 자신도 그 세계의 일부라는 착각을 가진다. 손흥민을 향한 조롱 역시 취재 대상에게 의존하면서도 그 위에 서고 싶은 직업적 이중감정이 드러난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 허세의 본질: 타인을 낮춰야 겨우 서는 자존감 손흥민은 한국 축구에서 너무도 큰 이름이다. 대표팀 주장이자 한국 축구의 얼굴이고,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증명해온 선수다. 그런 사람을 정면으로 깎아내리기는 쉽지 않다. 축구 실력으로 공격하기도 어렵고, 커리어로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다른 기준을 찾는다.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기준, 적어도 자기 안에서는 "그래도 이건 내가 더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 두 기자에겐 그 기준이 군대였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감은 남을 깎아내리지 않아도 서지만, 허세는 누군가를 낮춰야 선다. "나는 군대 갔다 왔다"는 말이 건강한 자부심이라면 타인을 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불안정하면 과시가 된다. 더 세게, 거칠게, 낮잡아 말해야 자신의 위치가 확인된다. 손흥민이 별것 아니어서 조롱한 게 아니라, 너무 큰 사람이라서 조롱해야 했을 수 있다. 누군가를 인정하면 내가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은 상대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대신 흠집을 찾고, 그 흠집을 확대한다. 그리곤 말한다. "그래도 저 사람은 이걸 모르잖아." 그들은 손흥민을 낮춰서 자신을 높이려 했던 게 아니라, 어쩌면 이미 작아진 자신을 견디기 위해 손흥민을 낮춰야 했을지도 모른다. ▲ 경험 독점 심리 "주장이라고 소대장 뛰듯이 뛰는 건가"라는 말은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은 손흥민을 축구대표팀 주장으로 보지 않는다. 발화자는 손흥민을 자신에게 익숙한 병영 세계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축구장의 주장은 그의 입에서 소대장이 되고, 월드클래스 선수의 몸짓은 군대식 조롱 코드가 된다. 이어진 "군대도 안 갔다 온"이라는 말은 손흥민의 자격을 빼앗는 말이다. "너는 우리가 겪은 세계를 모른다", "너는 그 고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완전히 인정받을 수 없다"는 식의 서열 의식이 깔려 있다. 손흥민이 축구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뤘든, 이 말 안에서 그는 '군대를 모르는 사람'으로 축소된다. 경험 독점 심리는 내가 겪은 것이 진짜 고생이고, 내가 아는 것이 진짜 세계이며,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것을 모르면 부족한 사람이라는 태도로 나온다. "군대의 '군' 자도 모르는"이라는 표현은 상대의 무지를 선언한다. 손흥민의 축구 인생, 훈련, 책임감, 압박감, 국가대표로서의 희생은 지워진다. 남는 건 하나다. "너는 우리가 겪은 군대를 모른다." 두 기자는 손흥민의 커리어를 부정하기 어려웠을 테다. 대신 자신들이 독점한 경험을 꺼냈다. 병역 문제는 손흥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소재였을지 모른다. 축구장에서는 손흥민이 주장이지만, 군대 이야기에서는 자신들이 선임이 된다. ▲ 고생의 권력화 군대는 어떤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말할 만한 고생담이 되고, 자기 정체성을 지탱하는 자부심이 된다. 단 그 자부심이 타인을 내려치는 도구가 될 때, 고생은 기억이 아니라 무기가 된다. 군대는 억울함이면서 자랑이고, 고생이면서 훈장이고, 상처이면서 자격증이다. '내가 그걸 견뎠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그러니 나는 말할 수 있다'는 권한이 된다. 군 경험이 자기 내부에서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다고 느낄수록, 그 경험을 더 세게 붙든다. 내가 겪은 고생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리면 너무 허무하니, 그 고생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군대를 도덕적 자산으로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병역 특례를 받은 스타는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군대에 오래 가지 않았는데도 사랑받는다. 내가 겪은 시간을 겪지 않았는데도 박수받는다. 그는 국민적 영웅이고, 나는 평범한 군필자다. 이 비교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 이런 감정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감의 얼굴로 누군가를 응징하려 한다. "군대도 안 갔다 온"이라는 말은 그렇게 박탈감을 도덕적 비난으로 포장한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를 위해 뛰었고, 국제대회 성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법과 제도 안에서 주어진 혜택이다. 제도적으로 정당한 일이라고 해서 모두가 납득하는 건 아니지만. 특히 군대처럼 개인의 청춘, 시간, 자존심, 억울함이 뒤엉킨 경험에서는 더 그렇다. 누군가의 특례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생이 무가치해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손흥민의 성취를 인정하는 대신, 그를 "군대를 모르는 사람"으로 부르는 말이 나온다. ▲ 남성들끼리 주고받는 공모의 말 이번 대화가 혼잣말이 아니라 두 기자의 주고받기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소대장 뛰듯이"라는 군대 농담의 문을 열자, 다른 사람은 "군대도 안 갔다 온"이라는 말로 수위를 올린다. 누군가를 같이 비웃는 동안, 두 사람은 같은 편이 된다. "너도 알지?" "우리끼리는 통하지?" "우리는 저 세계를 알잖아" 이들의 말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이때 손흥민은 두 남성이 자기들끼리 유대를 확인하는 재료가 된다. 군대 농담은 이런 방식으로 자주 쓰인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 사이에서는 몇 마디만으로도 공통의 기억이 열린다. 소대장, 간부, 뜀걸음, 얼차려, 점호 같은 말들…설명이 필요 없다. 남성들 사이의 빠른 접속 코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농담에서 그치는 편이 낫다. 사적인 유대 언어가 공적 현장에서, 선수 개인을 향한 조롱으로 튀어나올 때 그건 더이상 농담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공모는 수위를 키운다. 혼자였다면 지나쳤을 말이 옆 사람의 반응을 만나 더 거칠어진다. 첫 발언은 장난처럼 시작됐을 수 있다. 두 번째 발언은 그 장난에 욕설을 얹었다. 농담이 조롱이 되고, 조롱이 모욕이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 무대 뒤의 언어 이 사건이 더 씁쓸한 이유는 발언자들이 그 말을 사담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툭 던지는 말, 현장 주변에서 흘러가는 농담…하지만 사적인 말이라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무대 뒤라고 믿었던 말이 무대 앞으로 흘러나온 이번의 사건에는 손흥민을 향한 시선이 있었다. 국가대표 주장이 아니라 병영 농담의 소재, 세계적 선수가 아니라 군대를 모르는 사람. 영상에 담긴 건 그 시선이었다. 손흥민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너무 큰 사람이었을 것이다. 너무 멀리 있고, 너무 많은 박수를 받고,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사람. 그래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세계로 끌고 들어왔다. 그 세계의 이름은 군대였고, 어쩌면 현장이었고, 어쩌면 기자라는 역할이었을지 모른다. 두 남성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긴 말은 들을 수 있다. 그 말에는 피로와 불만, 허세가 뒤섞여 있었을지 모른다. 평범한 훈련 장면에서조차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의 자리에 놓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감정은 손흥민을 깎아내리는 말로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은 손흥민보다, 그 말을 뱉은 사람들의 세계를 더 많이 드러냈다.
이동건 기자 -
'나는 솔로' 31기 옥순은 왜 관계의 중심에 서려 할까?▲ 본 코너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연애 예능·리얼리티에 드러난 장면과 선택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심리와 관계 구조를 해석합니다. SBS Plus·ENA '나는 SOLO'에는 늘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직접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판을 읽고, 관계의 흐름을 만들고, 출연자들의 감정선을 조율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중심축이길 원하는 사람. 그런 캐릭터는 강한 존재감을 남긴다. 최근 31기 옥순의 모습이 그렇다. 옥순은 주변 인물의 불안과 욕망을 빠르게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내는 인물처럼 보인다. 정희가 정숙과 영식의 러닝 데이트에 하소연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옥순은 정희의 불안을 진정시키기보다 "둘이 러닝복 입고 오는 거 열받지 않냐"고 반응한다. 표면적으로는 공감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정희의 불안을 낮추기보다 더 구체적인 장면으로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대화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동 반추'와 닮아 있다. 공동 반추는 두 사람이 문제와 감정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친밀감을 높이는 현상이다. 문제 해결보다 감정 재확인에 머물 경우 불안과 우울을 더 키울 수 있다. 정희에게 옥순은 "내가 예민한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주지만, 동시에 그 불안을 계속 타오르게 만드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순자를 둘러싼 장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옥순은 룸메이트들과 이야기하며 "경수가 과연 순자를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순자가 경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 것처럼 해석한다. 더 논란이 된 건, 순자가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다른 여성 출연자와 경수가 이어지길 바라는 듯한 말을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뒷담화'로만 해석하면 옥순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끝나게 된다. 더 깊게 보면 옥순은 관계 속 누가 누구와 이어질지,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누가 흐름을 잡고 있는지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 흐름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과 분위기로 미세하게 개입하려 한다. 이 같은 통제 성향은 이성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옥순은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을 더 빛나게 만들며 그 곁에서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해 보인다. 영호가 특별히 웃긴 말을 하지 않아도 옥순은 적극적으로 웃고 반응한다. 호감 표현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행위다. 영호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험이다. 별것 아닌 말을 해도 크게 반응해주고, 자신을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옥순의 방식은 영리한 관계 전략이다. 사람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상대에게 강하게 끌린다. 옥순은 이 지점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매력이 드러나도록 판을 만들어준다. 다만 이 기질은 양면적이다. 상대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이 이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해질 수 있다. 상철과의 대화에서 그런 면이 드러났다. 상철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자, 옥순은 공격적인 말투로 선을 그었다. 이는 실망감이라기보단 통제감 상실에 대한 반응처럼 보인다. "나는 당신을 선택지에 둘 수 있지만, 당신이 나를 선택지 중 하나로 두는 건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 관계에서 통제감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는 모습. 불안한 사람은 상처받기 전에 먼저 밀어내고, 버림받기 전에 먼저 차단하려 한다. 그래서 옥순의 언행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자신감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주도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관계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크게 흔들린다. 타인을 잘 읽지만, 그만큼 타인을 자신의 관계 전략 안에 배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옥순이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을 확인해야 안심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조력자, 해석자, 대변인, 설계자가 될 때 가장 살아나는 인물. 항공사 전략기획팀 소속 옥순의 대변인 활동 이력도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변인은 누군가의 말을 대신 정리하고, 해석하고, 외부에 전달한다. '나는 솔로' 속 옥순 역시 종종 타인의 감정과 관계를 해석하고 대신 말하는 위치에 선다. 우연일 수 있지만, 그의 관계 방식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지난 방송 후 쏟아진 시청자들의 원성은 옥순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 강함이 타인의 감정 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희의 불안은 더 커졌고, 순자는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평가받았으며, 상철은 솔직한 혼란을 드러냈다가 차갑게 밀려났다. 옥순은 사람을 움직이는 법을 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말에 반응하며, 어떤 위치에 서고 싶어 하는지 빠르게 감지한다. 좋은 능력이다. 다만 관계에서 중요한 건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만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흐름 안에서 누군가가 작아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감각도 필요하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곳의 표정을 놓치기 쉽다. 얼핏 보면 옥순은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어쩌면,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이동건 기자 -
'나는 솔로' 31기 영숙은 왜 "나도 오열해?"라고 말했을까?▲ 본 코너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연애 예능·리얼리티에 드러난 장면과 선택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심리와 관계 구조를 해석합니다. 연애는 시험도, 투자도, 경기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랑까지 경쟁으로 이해한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설득이나 교감이 아니라 승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눈물마저 판세를 흔드는 변수로 읽는다. ENA·SBS Plus '나는 SOLO' 31기 영숙의 언행이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산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가 목표지향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숙의 목표지향성이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아픈 장면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영숙은 자기소개 때부터 목표지향성이 강한 인물로 소개됐다. 기금 운용 공기업 11년 차 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지난해까지 노후 준비 강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목표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라고 설명했고, 30대 초반까지는 운동에 몰입하다가 '자본주의를 깨닫고' 주말마다 임장을 다녔다고 밝혔다. 내 집 마련, 투자 의지, 경제적 준비는 그에게 중요한 삶의 기준으로 보였다. 목표지향성은 현대사회에서 강력한 생존 기술이다. 목표를 세우고, 자원을 모으고, 시간을 투입하고, 결과를 만든다. 이런 사람은 삶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고, 기회를 만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가려 한다. 성취목표 이론(Achievement Goal Theory)은 목표를 두 갈래로 본다. 하나는 배우고 성장하는 데 초점을 둔 숙달목표(Mastery Goal), 다른 하나는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수행목표(Performance Goal)다. 전자가 과정과 성장에 무게를 둔다면 후자는 결과와 비교, 인정에 더 민감하다. 영숙에게서 도드라진 모습은 후자다. 지난 방송에서 영숙은 달리기 미션 이후에도 그 장면을 여러 차례 되짚었다. 그에게 달리기 미션은 게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슈퍼데이트권을 둘러싼 경쟁이었고, 경수의 마음을 향한 상징적 승부였다. 순자와의 달리기 대결에서 넘어지며 1등을 놓친 영숙. 이후 옥순이 "우리 마음속의 1등은 영숙님"이라고 위로하자 영숙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어 "누군가의 다리에 걸려서 넘어진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순간 영숙은 객관적 결과와 별개로, 정서적 판정 안에서 1등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비쳤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내가 졌다"보다 "내가 방해받았다"는 해석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적 귀인(Self-serving Bias)은 성공을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으로 돌리고, 실패는 운이나 상황, 타인의 영향으로 돌리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나아가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적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적대적 귀인 편향(Hostile Attribution Bias)으로 설명된다. 물론 영숙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몰아갔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내면은 몇 장면으로 재단할 수 없다. 다만 화면 속 영숙은 패배를 패배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밀린 이유를 다시 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순자의 승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후 더 큰 장면이 나온다. 순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위경련 증세를 보였고, 결국 응급실로 이동했다. 순자는 여자 숙소에서 자신을 둘러싼 출연자들의 대화를 듣고 힘들어했고, 경수의 애매한 태도까지 겹치며 증상이 심해졌다. 경수는 순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뒤, 영숙에게 쓰기로 했던 슈퍼데이트권을 순자에게 쓰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경수가 영숙에게 슈퍼데이트권을 쓴다고 해서 순자가 오열했을 것"이라는 동료 출연자의 추측에 영숙은 "나는 왜 뛴 거냐"며 "나도 한 번 오열해?"라고 토로했다. 순자가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사실은 모르는 상태였다. 순자의 눈물이 경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건 영숙이 그 눈물을 어떻게 읽었는지다. 영숙은 몸으로 뛰었고, 넘어졌고, 패배도 감수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순자가 눈물 하나로 경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처럼 비쳤다. 정정당당한 구애 경쟁이 '생떼'에 의해 뒤집혔다는 억울함. 그래서 "나도 오열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말에는 "그것도 전략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영숙의 세계에서 순자의 감정은 고통이기 전에, 공정한 승부를 흐리는 변수로 읽혔다. 일종의 반칙처럼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이후 경수와의 1대1 데이트에서도 영숙은 "(경수가) 순자와는 밖에서 오래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동정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게 맞냐"고 말한다. 경수의 선택이 감정에 휘둘린 것인지 따져 묻는 방식이었다. 이때 영숙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가 제로섬 사고다. 제로섬 마인드셋(Zero-Sum Mindset)은 타인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을 의미하며, 세상의 자원이 한정돼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사랑은 제로섬이 아니다. 경수가 순자를 걱정한다고 해서 영숙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순자가 아프다고 해서 영숙의 노력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로섬 렌즈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은 공존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 몫을 빼앗는 변수로 읽힌다. 경수 앞에서 영숙이 약한 모습을 보인 장면도 이 맥락 안에서 읽힌다. 그는 달리기 이후 부상과 숨 가쁨을 어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순자의 힘듦이 경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판단한 뒤, 자신 역시 취약성을 관계 안에서 활용 가능한 수단처럼 다루는 모습. 순자가 어떤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지보다, 그 아픔이 경수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 크게 들어온 듯했다. 경쟁 상황 속에서는 타인의 감정이 보이지 않고, 나의 목표를 돕거나 방해하는 변수로 먼저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면은 앞선 광수와의 데이트 장면에서도 드러났다. 영숙은 자신을 1순위 호감 상대로 선택한 광수와의 데이트에서 서먹한 분위기를 보였고, 당시 자신의 관심 상대였던 영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광수가 "영철님 앞에서 영숙님이 가장 진실한 텐션으로 웃은 것 같다"고 말하자, 영숙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후 숙소로 돌아온 광수는 혼자 눈물을 흘렸고, 영숙은 영철을 찾아가 자신의 감정을 어필했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진정한 관계를 찾아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마음이 없는 상대에게 억지로 호응해야 할 의무도 없다. 다만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보일 수는 있다. 그건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따뜻하게 보내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광수의 마음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영철을 향한 영숙의 궁금증과 깨달음 속에서 광수는 소모품처럼 남았다. 영숙의 약점은 감정이 없다는 게 아니다. 감정은 많았다. 자존심, 서운함, 억울함, 질투, 성취감, 불안이 모두 강하게 드러났다. 다만 자신의 감정이 커지는 순간, 타인의 감정 위치는 실감하지 못했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순자의 힘듦은 고통이 아니라 변수로, 광수의 진심은 마음이 아니라 배경으로 밀려났다. 이런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질까. 물론 방송만으로 영숙의 성장사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경쟁형 인간의 성향은 몇몇 환경에서 강화된다. 첫째, 성과로 인정받아온 환경이다. 잘해야 인정받고, 이겨야 주목받고, 증명해야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을 결과로 설명하는 데 익숙해진다. 둘째, 감정보다 결과가 우선인 환경이다. 자신의 감정이 충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적으면, 타인의 감정도 보호해야 할 신호가 아니라 부담스럽거나 불공정한 변수로 보일 수 있다. 셋째, 자원이 한정돼 있고 밀리면 끝난다는 희소성의 세계관이다. 투자, 임장,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같은 언어는 현실 감각과 실행력의 증거다. 다만 이런 사고방식이 관계의 영역까지 그대로 들어올 때, 사람의 마음마저 선점하고 확보해야 할 대상으로 오해될 수 있다.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남보다 빨리 뛰어야 이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빨리 뛰는 사람이 반드시 사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영숙은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다. 추진력 있고, 욕망을 숨기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기회를 만든다. 남에게 인생을 맡기지 않는다. 일과 자산 관리, 자기계발 영역에서는 큰 힘이 되는 특성이다. 끝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성과도, 돈도, 자리도, 인정도. 사랑은 때로 용기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영숙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원하는 관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추진력은 그의 매력이자 힘이다. 다만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힘만큼, 상대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살피는 능력도 필요하다. 영숙의 행동이 낳은 불편함은 사랑을 향한 의지가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그 의지가 때때로 타인의 마음을 지나쳐버린 순간에 있었다.
이동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