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적 지위를 가진 일본 기술기업 디스코
디스코는 반도체 생산에 있어 절단·연삭·연마 분야 전문 기업이다. 디스코의 기계는 실리콘 웨이퍼를 머리카락 35분의 1 정도 밖에 안되는 두께로 갈아낼 수 있다. 이 같은 능력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른바 3D 후공정'(패키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3D 후공정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를 적층해 제품 부피를 줄이는 것은 물론 성능도 대폭 개선해준다.디스코의 가즈마 세키야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에 "크로와상을 깨끗하게 절반으로 자르는 것을 생각해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매우 특수한 칼과 엄청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디스코의 기술은 4~5년 동안 축적돼왔으며, 이제 실질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됐다"고 전했다.
디스코의 위치가 독점적인 만큼 이들 기계는 매우 높은 마진을 붙여 팔린다. 이미 1969년에 미국 사무소를 연 디스코는 IT 산업 초창기부터 실력과 명성을 쌓아온 기업이다. 블룸버그는 "디스코는 반도체 제작 공정에서 빠져서는 안되지만, 아직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기업 중 하나다"라면서 "디스코는 반도체 연마 기구에 있어서 81%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반도체 절삭기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이 무려 73%에 달한다"고 노무라 증권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디스코의 매출은 지난 회계연도에 30%의 증가율을 보이면서 1829억엔(약1조8693억원)에 달했다. 이익은 거의 46% 뛴 531억 엔을 기록했다. 이는 모두 사상 최고의 실적이다. 최근 반도체 물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서 공급 확장에 속도가 붙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디스코는 반도체 산업 성장 속도의 2배 속도로 커나가고 있다고 세이카 대표는 지적했다. 이어 아직 수요 둔화의 신호는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디스코는 공장 확장을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대만 TSMC와 손잡고 역량 강화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심화하면서 각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2025년까지 첨단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계획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기업이 대만의 TSMC다.지난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가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대규모 300㎜(밀리미터) 웨이퍼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설 공장에서는 16㎚(나노미터)와 28㎚ 기술을 도입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5월 31일 “TSMC가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에 반도체 연구개발(R&D) 거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총 사업비 370억엔 중 190억엔을 일본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부담한다.
향후 'TSMC 일본 3DIC 연구·개발 센터'로 이름 붙여질 해당 시설은 쓰쿠바시에 소재한 경제산업성 산하 연구기관인 '산업·기술 종합 연구소' 내부에 들어설 예정이다. 청정실(클린룸·반도체 생산 공정을 위해 내부에 먼지 등의 유입을 막은 공간)을 설치해 연구용 생산 설비를 조성한다.
올해 여름부터 시험 라인에 대한 정비 가동을 시작하며, 내년(2022년)부터는 본격적인 연구·개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반도체 패키징'이라 불리는 후공정 제조 기술 연구에 주력한다. 현재까지 반도체 생산 공정 기술은 반도체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줄이는 미세 공정(Scaling)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는 흔히 나노 공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미세 공정이 점차 기술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반도체 제조사들은 하나의 반도체 안에 들어가는 회선을 줄이는 대신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하나로 연결해 성능과 기능을 높이는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e)' 공정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후공정 기술을 보유한 일본 업체인 이비덴을 비롯해 △미세배선 재료 업체 아사히 카세이 △장비업체 시바우라 메카트로닉스 △키엔스 △JSR △스미토모 화학 △세키스이 화학공업 △니토덴코 △후지필름 △미쓰이 화학 △도쿄오카 공업 △도쿄대학교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등 일본 내 20여 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연구기관이 참여한다. 디스코 역시 참여한다.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반도체 산업 투자 발표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최신 산업구조 개혁안에 따른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6월 4일 제28회 산업구조심의총회를 열고 '경제산업정책의 신기축(経済産業政策の新機軸)'이라는 새로운 경제 발전 정책을 채택했다. 해당 자료는 요약본만 15쪽, 전체 보고 자료는 118쪽에 달하는 방대한 정책 자료다.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며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경기 부양책의 종합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경제 추세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일본 경제 역시 대규모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3가지 과제로 △공급망의 체질 강화(회복력·레질리언스) △디지털화 △그린(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전환)을 꼽았다.
실제, 일본 내 각종 경제 연구소와 경제 칼럼은 이와 같은 변화에 주목했다. 일본 온라인 매체 다이아몬드는 "경제산업성이 절실한 이유를 대며 큰 정부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고서 말미에 구체적인 정책 예로서 반도체 산업에 이와 같은 도식을 대입하고 미래 사회의 핵심 산업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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