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 등장 이후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딥시크 충격에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오히려 올해 AI 투자를 40% 늘리기로 결정했다.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선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 개발이 여전히 필요하단 판단에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는 한국에겐 위기다. 전세계 AI 기술력을 장악한 양 국가가 개발 속도를 경쟁적으로 높이면서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초거대 AI 모델 개발 순위에서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은 128개, 중국 95개지만, 한국은 14개로 격차가 상당하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AI칩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도체 강국인 한국 역시 경제적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한 트럼프 정권 하에선 동맹국들에게 대중 견제 전략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외교적 압박 역시 커질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의 국가 안보 동맹, 중국과의 경제 협력 사이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역할이 필요한데 한국이 그러한 포지셔닝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과 함께 AI 모델 분야 3대 강국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에 중요한 기술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례로 오픈AI의 샘 알트먼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을 직접 방문해 카카오와 전략적 동맹을 공개했다. 삼성·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를 만나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내달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도 한국을 방한, KT 등과 AI 협력을 논의한다.
미국과 중국을 꺼리는 제3국과 협력해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네이버 간 협력이 대표적이다. 중동 국가들은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기술 종속 우려가 심화되자,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기술 파트너가 필요했다. 한국 기업은 독자적 AI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미중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최적의 파트너다. 자체 초거대 AI를 보유한 네이버와 소버린AI(주권AI) 구축에 협력한 것이 좋은 예다. 소버린 AI는 자국의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면서 현지 문화를 반영한 고성능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이다.
앞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면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미국 수출 규제로 인해 인프라가 부족했음에도 딥시크가 혁신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인재 확보와 발상의 전환 덕분이었다. 딥시크는 스타트업 수준의 작은 회사지만 고액 연봉을 지급해 우수한 인력을 확보했다. 기존 기술을 응용해 AI 연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계의 혁신적인 활동을 끌어내기 위해선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는 스타트업 중심의 투자와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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