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인간이 선택한 강력한 도구는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과 컴퓨터 사이언스(Computer Science)다. 차츰 개인화된 손 안의 유비쿼터스 도구로 진화한 각종 디지털 도구는 인간의 삶을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일색으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앨빈 토플러 박사의 말마따나 ‘시간의 비동시성’ 탓에 아날로그 라이프스타일도 곳곳에 산재(散在)하나, 디지털이 문명의 대세(大勢)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디지털 도구들이 개인 손에 쥐어지기 전에도 인간은 제법 다양한 삶을 살았다. 누구 누구의 2세이자, 배우자이자, 친구이자 옹기장이나 대장장이로. 또는 기사나 군인, 귀족이나 머슴, 유권자나 출마자, 변호사와 회계사, 증권 브로커나 비즈니스맨 등 인생은 제 각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주로 출신과 지역, 경제 발전의 정도, 사회 체제, 법률과 종교의 전통, 관습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들에 의해 규정됐다.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도 엄연히 유리천정이 있고 지배그룹들에게 쓸모 있다고 평가된 인재들만이 발탁의 기회를 누린다. 즉 내 인생은 주로 남의 것이다. 이른바 근대인, 근대적 개인이다.
21세기 도구혁명은 인간을 근대적 개인을 넘어 미래형 개인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도구 혁명은 인생이 더 이상 팔자소관이 아님을 깨우쳐 주고 있다. 무자비한 환경과 의심스런 출신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디지털 도구를 잘 다루는 재주 하나로 벼락 부자가 되는 사건들이 대폭 증가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출세의 기준과 관념을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며 디지털 도구에 빠져 사는 개인들도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도구가 신통치 않았을 때 인간은 일종의 고정관념인 ‘신(神)’에게 집단 전체의 목숨마저 의탁했지만 세계를 손금 보듯 할 수도 있는 디지털 도구가 손 안에 쥐어지자 자기 속의 잠재력을 분화(分化)시켜 멀티 인디비주얼(다양한 인격, 여러 디지털 캐릭터)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환경과 체제에 규정당하는 존재이기를 거부한다.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서 온갖 비밀을 손에 쥘 가능성이 생긴 이상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내 세상을 살고 싶어 한다. 게다가 멀티 인디비주얼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21세기는 고삐 풀린 개인들의 시대다. 천방지축 날뛰는 디지털 사이코패스가 되건 인류를 위험에서 구원하는 디지털 슈퍼맨이 되건 ‘개인’의 자유다. 특정한 플레이어(Player)들이 아무리 공포(恐怖)와 분란(紛亂)을 마케팅해도 개인은 동요(動搖)하지 않는다. 다만 디지털 도구를 응시(凝視)하며 만지작거릴 뿐이다. 미래의 승자가 ‘개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보경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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