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공포'가 확산되면서 일본 식료품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리감독 강화에도 중국산 식료품에서 위해물질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중국에서 수입된 냉동 까치콩을 먹은 한 50대 주부가 혀 마비를 호소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 해당 제품에서 일본 식품위생법 잔류 농약기준(0.2ppm)에 무려 3만4500배에 달하는 6900ppm의 유기 링계 살충제인 지크롤보스가 검출됐다.
기준치의 3만4500배에 달하는 지크롤보스가 검출된 문제의 냉동 까치콩. |
또 살충제 냉동콩 사건이 터지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일, 중국산 팥고물로 만든 팥죽을 먹은 일본인 3명이 복통과 어지럼증을 일으켰다. 팥고물에서는 소량의 톨루엔과 초산에틸이 검출됐다.
올 해 1월 살충제 만두, 9월 멜라민 과자 사건에 이어 중국산 식료품,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한 식료품에서 연이어 안전성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살충제 만두와 멜라민 과자 사건에 곤욕을 치른 일본 식품회사들은 중국 현지공장의 감시태세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또 다시 터져나온 중국산 식료품 안전성 문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 생산거점을 둔 일본의 한 대형 냉동식품업체 관계자는 “두 손 들었다”며 “유해 물질이 혼입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일본 식품회사들은 살충제 만두 사건 이후 중국 현지 공장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감시태세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멜라민 사태에 이어 살충제 지크롤보스까지 검출되어 망연자실해 있는 상황.
일본 식품업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 소비자들이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한 식품을 멀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태까지 판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고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했지만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원재료의 수입처를 바꾸거나 공장을 옮기는 등, 생산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형 제과업체인 에자키 그리코의 중국 현지 법인은 현지에서의 원유 조달을 중지했다. 멜라민 파동을 일으킨 중국산 원유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이번 살충제 까치콩을 수입한 니치레이 푸드의 소마 요시히코 사장도 1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장에서 중국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지 생산을)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생산체제 변화를 시사했다.
냉동 콩 살충제 사건으로 '니치레이 푸즈'의 소마 요시히코<사진좌측>이 15일 후생노동성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지난 1월에 터진 중국산 살충제 만두 사건을 계기로 중국 현지생산을 축소한 회사는 자회사가 문제의 만두를 취급한 일본담배산업(JT), 단 1곳에 불과하다. 안전성을 약속하지는 못하지만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해 가격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국의 원자재를 사용해 안전성을 높이는 대신 ‘비싼 가격‘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인가에 일본 식품회사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성춘 일본 연구팀장은 “이번 문제는 일본과 중국이 무역 마찰을 빚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일본의 국산품 프리미엄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산 제품 안전성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나와 일본의 자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가격이 비싸도 구입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란 얘기.
2008년 일본농림업금융공고에서 조사한 ‘국산의 시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은 일본제품이 가장 비싸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산은 가격은 가장 싸지만 안전성 신뢰도는 최하위였다.
조사에 따르면 일본국민 43.7%가 일본제품(혹은 일본 원자재를 사용한 제품)이 중국제품(혹은 중국 원자재를 사용한 제품)보다 30% 비싸다면 일본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중국제품에 대한 신뢰도 프리미엄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강해질 거란 예상이다. 가격이 조금 더 올라도 일본산 원자재를 사용했다면 국산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란 얘기.
“일본 업체들이 중국에 직접 진출해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말한 정 연구원은 “일본의 이토츄와 같은 기업은 예전부터 직접 중국에 뛰어들어 생산과 가공을 거쳐 일본에 팔고 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한편 “일본 국민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제품에 대해서는 중국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안전성면에서는 중국보다 낫다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산 제품에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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