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 법안이 3일 국회를 통과하면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이 가능해진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면 대기업이 투자를 늘릴 길이 넓어진다.
하지만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고 은행을 제외한 증권.보험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은 여야 합의에 따라 4월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정부는 경제 관련 쟁점 법안 중 일부만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국제 금융위기가 확산하는 가운데 기업들의 여유 자금을 금융산업으로 끌어들여 은행 자본을 늘리고 국제 경쟁력도 강화할 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금산분리의 빗장이 풀리고 출총제가 없어지면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고 경제력 집중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 기업.연기금에 은행 소유 허용
당정이 마련한 은행법 개정안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직접 소유할 수 있는 한도가 현행 4%에서 10%로 늘어난다.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막으려고 1995년 주식 소유 한도를 8%에서 4%로 낮춘 지 14년 만에 다시 확대한 것이다.
그동안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던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은 일정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은행 지분을 10% 넘게 가질 수 있게 된다.
종전에 산업자본이 유한책임사원(LP)으로서 출자한 비율이 10%를 초과한 사모펀드(PEF)를 산업자본으로 간주하던 것이 30% 이상으로 완화된다.
하지만 전날 여야정 협의에서 민주당이 규제 완화 폭이 크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여 3일 정무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산업자본의 소유 한도를 8%로 수정하는 등 일부 손질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산업자본이 은행 증자에 참여하면 은행의 대출 여력 확대→기업의 투자.생산.고용 확대→경기 회복의 선순환이 이뤄져 금융위기의 조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말 기준 81조6천억 원에 달하는 상장기업의 현금성 자산 가운데 일부를 은행 자본 확충에 활용해 정부의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우리금융지주와 산업은행, 기업은행의 민영화 과정에서 투자자를 다변화해 공적자금도 더 많이 회수할 수 있고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을 해외에 줄줄이 넘긴 전례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산업자본을 감시하는 동시에 적절한 자원 배분을 통해 산업활동을 지원하는 금융산업의 중요성과 독립성 유지 필요성에 대해 여야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이번 법안 처리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넘게 소유해 최대 주주가 되거나 경영에 개입할 때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은행 임원 선임도 제한할 수 있고 대주주에 대한 감시.감독도 강화할 계획이기 때문에 사금고화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다만 증권.보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와 함께 제조업 자회사도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의 처리는 4월 국회로 미뤄진다.
금융지주회사 규제를 풀면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처럼 금융업과 제조업이 하나의 그룹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또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책금융공사 설립후 산은 민영화
국회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는 법안은 다음 국회로 넘기고 대신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설립 법안을 먼저 처리할 예정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전력, 도로공사, 토지공사 등 공기업과 구조조정 기업의 지분을 현물로 넘겨받아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맡게 된다.
정책금융공사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하락 부담 없이 중소기업 대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지원, 구조조정펀드 출자 등에 20조 원 이상의 자금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정부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4월에 통과되면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산업자산운용, 산은캐피탈을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회사를 세울 계획이다.
산업은행을 상업금융과 인수.합병(M&A), 파생상품 판매 등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지주회사로 전환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IB)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산업은행에는 시중은행처럼 요구불 예금과 가계 대출 등의 취급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애초 산은지주사의 지분 49%를 2010년까지 매각하고 민영화는 2012년까지 끝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국제 금융위기로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점과 헐값, 졸속 매각 우려를 고려해 민영화 시기는 탄력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정책금융공사를 먼저 세우고 산업은행은 시장 상황을 보고 민영화하면 되기 때문에 민영화 법안이 좀 늦게 처리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출총제 폐지..지주사 규제 추가 완화
국회는 재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자산 합계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그룹)에 속하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회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을 순자산의 4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출총제는 1986년 12월 대기업집단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정부는 당시 30대 그룹에 일괄 적용했지만 국제 경쟁 체제에 맞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 규제라는 이유를 들어 2007년 4월에 현 수준으로 완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출총제 적용 기업이 10개 그룹의 31개사에 불과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들 회사의 출자 여력이 43조 원으로, 출총제를 없애면 투자 확대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대신 대기업집단의 주식 소유와 출자 현황,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 현황 등을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출총제 폐지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도 일부 풀린다. 자본총액의 200%로 제한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규제와 비계열사에 대한 지분 보유 한도를 5%로 제한한 규제가 없어진다.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려면 100%의 지분을 가져야 하던 것이 30% 이상으로 완화되고 지주회사 전환 때 자회사 지분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하는 유예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공정위는 추가로 일반 지주회사에 증권.보험 자회사를 허용하고 대기업이 만든 PEF의 비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5년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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