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에 '슈퍼맨'이 등장했다. 이 슈퍼맨은 하늘을 날거나 엄청난 괴력을 갖진 못했지만 금융 업무에서는 만능이다.
성장 산업에 대한 자금지원, 사회기반시설(SOC) 확충, 중소기업 지원, 금융시장 안정, 부실채권 인수 등 금융권역의 대부분 업무를 수행한다.
이 슈퍼맨은 바로 지난달 28일 현판을 올린 '정책금융공사(KoFC)'이다.
국책은행이던 산업은행의 민영화 작업 과정서 정책금융 기능을 떼어내 분리, 설립된 공사는 말 그대로 '못 하는 일'이 없다.
정책금융공사의 이 같은 업무 폭은 공사가 역할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재건은행(KfW)보다도 광범위하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공사의 등장을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사의 온렌딩(On-lending) 대출 방식이 거의 대부분의 리스크를 은행에 전가하고 있는 데다, 산은·기은·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자산관리공사(캠코) 등과 업무 영역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공사는 한국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등의 통화량 조절 기능까지 갖고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한은·금융감독원 이외에 눈치봐야 할 조직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현재 국내 금융시스템이 큰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는데, 공사의 등장으로 공연히 부담만 커진 것이다.
한 민간 금융기관 연구위원은 "정책금융공사와 같은 거대 기관이 제 역할을 찾기 위해 큰 행동을 취할 경우 민간 금융 발전 저해는 물론 모럴해저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공사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국가경제 발전과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슈퍼맨은 '악당'이나 '위기'가 있을 때나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 화평시대에는 오히려 사회에 부담만 키울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갖고 태어난 공사가 최근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의욕이 앞서 힘조절에 실패한다면 민간 부문의 발전 저해와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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