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왈종화백/갤러리현대 제공. |
제주생활의 中道라는 단일명제로 작업해 온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시간의 힘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검은 머리가 백발로 눈썹도 또한 새하얗게 변했다.
그 동안 뜰에 핀 동백꽃, 수선화, 매화, 밀감꽃, 엉겅퀴,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에 취했고
비둘기, 동박새, 참새, 꿩, 까치, 직바구리, 비취새들이
마당에 날아와 목을 축이고 첨벙대며 목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던 시간들.
새들과 풀벌레들의 노래 소리 듣고 있노라면 ‘이곳이 천국이다’ 느꼈고
늘 몽환적인 꿈속에서 사는 듯 했다.
내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자유란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는 동안
삶의 무상함을 실감했다.
이미 늙은 몸은 허약하고 말랐으나
온갖 꽃들과 새를 벗 삼아 살아가는 나는 마음만은 풍요롭다.
마당의 동백나무에서 뚝뚝 떨어진 동백꽃을 보며
그간 지나간 시간을 뒤돌아보니
서귀포의 친한 친구들도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져 갔음을 회상한다.
존재하는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며
또한 그림자와 같다는 법문이 실감난다.
몸과 마음속에서 악취 나는 것을 씻어내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모든 존재는 緣起에서 이뤄지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것을
하얀 종이 위에 담는다. <이왈종 작가노트>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이왈종화백의‘제주생활의 중도(中道)’전이 서울 강남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 부조, 목조, 도자기, 향로 등 60여점 선보인다. 이화백의 작품세계를 총 망라하는 대규모 전시다.
올해로 22년 째에 접어드는 이 화백의 제주도 생활은 은둔적이라기보다는 분주하다. 10년 전부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미술교실을 열어 봉사하고 있고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들풀과 꽃나무가 사람, 집보다 더 크게 그려진 화폭은 무릉도원이 따로없다. 인간과 만물은 모두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사물이 더 작을 필요도 없고 동등하다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전시장은 이화백이 미리 담아온 제주의 흐드러진 봄으로 화창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삶의 여유와 제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화백의 개인전은 4월 1일까지 만나볼수 있다. (02)5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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