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예고된 제1야당의 패배였다. 민심은 새누리당을 택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후폭풍 가운데 치러진 4·29 재·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은 4곳 중 3곳을 석권하며 ‘선거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을미년 새해 벽두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으로 ‘조기 레임덕’ 국면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셈이다.
반면 민심은 제1야당에는 과감한 회초리를 들었다. 재·보선 중반 돌출변수로 등장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고리로 정권심판프레임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민심은 야권에 호된 회초리를 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광주 서구을 지역을 비롯해 수도권 3곳(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인천 서·강화을)에서 모두 패했다. 민심이 제1야당의 해묵은 심판론에 ‘레드카드’를 선고하면서 문재인호(號)는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與 160석의 공룡정당 탄생…“지역일꾼론 먹혔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참여정부 당시 ‘정풍운동’을 주도한 정동영(서울 관악을)·천정배(광주 서구을) 무소속 후보의 등판으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를 형성한 데다 야권이 ‘반(反) 박근혜’ 프레임만 고집하면서 민심의 외면을 부채질했다.
국지전인 재·보선 특성상 심판론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대통령 때리기 전략만을 쓴 새정치연합이 자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정공법을 택했다. 애초 4·29 재·보선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치러지게 되면서 당 내부에선 “1석도 어렵다”는 푸념이 나왔지만, ‘K(김무성 대표)·Y(유승민)’ 라인은 새줌마(새누리당 아줌마) 콘셉트를 앞세워 ‘재·보선=여권 텃밭’ 공식을 깨트렸다.
특히 ‘야권 텃밭’인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 중원에 지역일꾼론의 오신환·신상진 후보를 각각 내세워 야권의 정권심판론 프레임을 무력화시켰다.
김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재·보선 막판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범야권에 맞서 집권여당의 ‘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며 차별화를 꾀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저유가·저금리·저환율’ 등 신(新) 3저의 장기화로 경제 활성화에 목말라하는 민심을 철저히 공략한 셈이다.
통상적으로 40%에도 못 미치는 낮은 투표율의 재·보선 특성도 집권여당 승리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의원 4곳의 재·보선 투표율은 36.0%(잠정 집계)로, 지난해 7·30 재·보선보다 3.1%포인트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역별 상위 투표율을 기록한 광주 서구을(41.1%)과 서울 관악을(36.9%) 지역은 7·30 재·보선 당시 가장 높았던 전남 순천·곡성(51.0%)과 서울 동작을(46.8%)보다 9.9%포인트 낮았다. 야권이 이변을 기대하기엔 턱없는 낮은 투표율에 그친 것이다.
이학만 전 새누리당 온라인 대변인은 집권여당 대승 의미에 대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지역일꾼론에 묻혔다”면서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투명하고 원칙 있는 부정부패 척결 의지에 지지를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野, 민심에 호된 회초리…文 ‘호남 한계론’ 대두
“충격적이다. 재·보선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렵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자 이같이 말했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충격에 휩싸였다. 민주화의 심장이자 야권 텃밭인 광주에서조차 무너지자 할 말을 잃은 모양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엇박자를 냈다. 야권의 승리방정식인 연대 전략은 ‘새정치연합 탈당파’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다.
당 최대 주주인 문 대표는 당 안팎의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비판을 의식해 ‘전략공천’을 포기했다. 그 결과, 인물 구도에서 집권여당과 무소속 후보들에게 밀렸다. 선거전략도 선거 때마다 등장한 ‘정권심판론’에 의존했다.
민심은 제1야당이 인물도 전략도 정책도 없는 3무(無) 전략을 드러내자 대안세력·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문 대표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선거전략 자체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정치적 변곡점마다 ‘아마추어 리더십’ 논란에 휘말렸던 문 대표가 출범 이후 첫 선거인 4·29 재·보선에서 참패함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 공천에 앞서 당내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할 전망이다.
문제는 문재인호의 위기 수습책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실세 새정치연합은 친환경무상급식을 앞세운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단 한 번도 압승을 하지 못했다. 2012년 총·대선 땐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등으로 ‘이명박근혜’ 프레임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야권연대의 한계만 노출한 채 자멸했다.
제1야당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엔 ‘세월호 심판론’으로 맞섰다. 세월호 참사가 민심의 역린을 건드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최종 결과는 ‘절반의 승리’에 그쳤다. 제1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서 무기력에 빠졌다.
같은 해 7·30 재·보선에선 거물급인 손학규 전 대표마저 참패하면서 ‘11(여당)대 4(참패)’로 무너졌다. 정권심판론이 새정치연합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박상병 박사는 새정치연합의 참패와 관련해 “조직력의 친노 수장인 ‘문재인 체제’가 당장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리더십에 한계를 드러낸 만큼 20대 총선 공천에 앞서 비노(비노무현)의 역습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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