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양희경 배우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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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3-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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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직업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녀이자 부모이다. 배우 양희경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책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를 출간했다.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배우로서 인생을 담지 않았을까란 처음 기대와 달리 책은 우리가 매일 먹는 진짜 '밥'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밥 이야기라는 그릇 속엔 그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도 고봉밥처럼 담뿍 담겼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건 '밥'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가족 밥은 꼭 책임진다는 배우 양희경과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양희경 배우 [사진=김호이 기자]

-책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밥 먹자는 말에는 항상 다른 문장이 붙어있어요. 예를 들어서 '기분 좋으니까 만나서 밥 먹자' 또는 '힘든 일 있어? 우리 같이 밥 먹을래?' 같이요.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라는 의미는 '밥 먹자'에 담긴 의미를 말해요. 저는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밥 먹는 거 싫어해요. 굉장히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밥을 먹어요.
 
-SNS를 통해서 글도 올리고 육필일기도 써온 걸로 안다. 원래 기록하는 걸 좋아하나.
어렸을 때도 일기를 많이 썼고 라디오 생방송 멘트도 제가 직접 써서 진행을 했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할 게 없으니까 SNS에 풍경 사진과 음식 사진 등을 재미 삼아서 매일 올렸는데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어요.

2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을 남겼는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 사진과 함께 올려야 되는데 다니지 못하니까 일기를 쓰지 못했죠. 그래서 노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휴대폰으로 글을 쓸 때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노트에 쓰려고 하니까 생각이 안 떠오르더라고요. 예전에는 장문의 글을 SNS에 올렸다면 요즘에는 짧은 글을 올리고 있어요.
 
-배우의 삶과 관련된 책이 아닌 밥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뭔가.
운명처럼 배우의 길을 걷게 됐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다면 이걸 치열하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나이도 있고 일이 줄어들 때도 됐잖아요. 배우보다 먼저 시작한 게 요리예요. 지금까지도 매일 하고 있으니까 이게 우선이죠. 이렇게 하는 거면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저는 부엌 놀이라고 하고 있어요.
 
-양희경에게 잘 먹고 잘 사는 기준은 뭔가.
건강한 재료로 건강한 맛을 내는 양념을 쓰고 그것이 내 몸에 들어갔을 때 내 몸을 해롭지 않게 하고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거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루에 다섯 끼 먹는 거 아니잖아요. 한 끼를 먹더라도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하게 챙겨 먹느냐가 잘 먹고 잘 잘사는 거예요.

-외식도 하시나.
안 하죠. 외식이 잘 안 맞고 저는 제가 한 밥이 제일 맛있어요.
 
-40년 이상 연기를 해왔는데 배우는 어쩌다가 하게 됐나.
전공이 연극·연기였고 연극 무대에 다시 서게 되면서 그냥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편한 팔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고 그게 생계 수단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싶어서 연극무대에 서게 됐는데 그게 돈을 버는 일로 연결이 되고 아이들 키우면서 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친구와 동료의 의미는 뭔가.
분야가 같아야 동료라고 생각해요. 친구는 일과 얽히지 않은 거고요.
 

인터뷰 장면 [사진=김호이 기자] 

-자녀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강조했다고 들었다.
제가 만약에 다른 일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살았다면 엄청 불행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 남들보다 몇 배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일을 했으면 끝까지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까 애들을 틀에 가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너희들이 해보고 진짜 좋아하는 일, 지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걸 찾아서 하고 돈과 연결되지 않는 일이라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자녀를 키우면서 이것만은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교육 철학이 있나.
집밥은 꼭 해줘야겠다. 외식을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손주들이 캐나다에 있는데 며느리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밥을 해서 먹이라고 했어요.

-양희경의 소확행은 뭔가.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 해서 먹고 가족과 지인들과 음식을 나누면서 먹는 게 행복이에요.

 -워라밸을 어떻게 맞췄나.
내게 필요한 걸 하기 위해서는 잠도 안 자는 거예요. 저는 잠이 없어요. 일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뇌가 쉴 틈이 없었죠. 새벽 4시에 자서 오전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오래했어요. 그리곤 낮에 분장실 소파에서 잠깐 자는 생활을 했죠.
 
-'국민 고모'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별명 외에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
그런 말 안 좋아해요(웃음). 자녀 키우기도 힘들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드라마 속에서 오빠네 집에 얹혀 사는 여동생 역을 많이 했는데 노처녀던가 돌싱이면서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사건사고 일으키는 고모라서 국민 고모라고 불린 게 아닌가 싶어요. 근데 저는 고모보다 이모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고모는 이북에 계셔서 본 적도 없거든요.
 
-연기뿐만 아니라 내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소리의 힘, 말의 힘을 언제 가장 크게 느끼나.
저를 못 알아보는 사람도 목소리를 듣고 알아볼 때 목소리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껴요. 그리고 귀는 익숙한 걸 좋아하고 눈은 새로운 걸 좋아하기 때문에 라디오가 있는 거예요. 제가 라디오를 8년 했고 그걸로 내레이터 일을 하고 있죠.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었다는 게 제일 고맙죠. 그리고 내가 전공한 걸 살려서 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 돌아보니 살면서 가장 놓치고 산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는 게 제일 커요. 365일 일을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을 안 해 먹인 적은 없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어렸을 때의 기억 속에 자연을 느끼면서 여행을 경험하게 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워요.
 
-지금까지 무엇을 향해 달려왔고 요즘에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나.
지금까지는 열심히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살아가는데 매진했고 앞으로는 잘 죽는데 매진해야죠. 앞으로의 삶은 보너스로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너스로 주어진 삶답게 나누면서 쓰려고요.
 
-과거에 바라던 할머니의 모습이 됐다고 생각하시나.
저는 우리 할머니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우리 손주들한테도 그런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은데 이미 그렇게 각인되고 있어요(웃음). 캐나다에 살면서도 우리 손녀딸은 할머니 밥이 그립다고 해요. 저도 저희 엄마를 생각하면 아빠랑 일찍 이혼해서 8살 때 따로 떨어져 살아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가 다시 키웠는데 그때는 돈을 벌어서 살아야 됐기 때문에 집안살림을 별로 못했어요. 엄마의 음식에 대한 기억은 8살 때까지고 인간의 기억은 만 4살부터 시작된다고 하니까 기껏 해봐야 4년이 기억나는 건데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해줬던 음식들이 떠올라요. 그래서 음식이라는 게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엄마의 밥을 먹은 4년이라는 시간이 평생 기억에 남잖아요. 저도 그래서 집밥을 잘해주는 엄마로 남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양희경, 사람으로서 양희경은 어떤 사람인가.
같은 사람이에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 모습 그대로요.
 

양희경 배우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김호이 기자]

-양희경의 요즘 꿈은 뭔가.
잘 죽는 거요. 내일이 될지 지금 당장이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후회 없는 거요.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라.
요즘에 다 같이 둘러앉아서 집 밥을 먹는 집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온 가족이 둘러 앉아서 밥을 다같이 먹는 가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도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면 좋겠고 부모들도 아이들을 그런 환경에서 키웠으면 좋겠어요. 같이 마주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우리가 천원으로 해결되는 건데 백만원을 써서 먹는 사람도 있어요. 근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맛있고 좋아야 누구에게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러면서 나누는 게 습관이 되고 그게 좋은 삶인 것 같아요. 
 

양희경 배우(왼쪽)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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