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판다의 눈망울·마라의 얼얼함·골목길의 정취…청두, 오감을 깨우다

  • 트립닷컴 선정 올해 최고의 여행지…삼국지 서사 깃든 역사적 공간 청두

  • 자이언트 판다 번식연구기지부터 훠궈까지…잊지못할 '쓰촨의 강렬함'

  • 청두 골목거리·국제 무형문화유산 축제…'살아있는 전통' 품은 도시

판다가 등장하는 대형 LED 전광판이 눈길을 끈다 사진기수정 기자
판다가 등장하는 대형 LED 전광판이 눈길을 끈다. [사진=기수정 기자]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이 2025년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중국 청두(Chengdu)를 선정했다. 상하이도, 베이징도 아닌 청두라니. 그러나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의문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낯설지만 묘하게 익숙한 도시의 온기는 폐부 깊숙이 내려앉았다. 

청두는 조용했지만 단단했고, 부드럽지만 강렬했다. 무심히 걷기만 해도 이야기가 묻어나는 골목은 오래된 책(古書)처럼 세월의 더께를 품고 있었고, 공기에는 삶의 온기가 은근히 깃들어 있었다. 색채는 짙고 리듬은 느렸다. 도시의 결은 부드럽고 깊었으며, 그 감각은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유비의 도시···삼국의 중심 청두 

청두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삼국지의 서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공간이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이 정사를 돌보던 촉한의 수도이자 3000년 넘는 시간을 품은 고도(古都)다.

청두는 전통 위에 현대적 감각이 겹치며 미식과 문화,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로 거듭났다.

2박 3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두에서의 하루하루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다. 판다의 느긋한 눈동자, 혀끝을 얼얼하게 감싸는 마라 향, 오래된 골목이 품은 정서, 장인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전통의 결까지 청두는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오감을 깨웠다.

삼국지의 이야기들은 책장이 아니라 골목의 돌 틈과 전각의 기둥에서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청두의 역사적 깊이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무겁고도 단단하게 했다. 판다도, 마라 향도, 골목도 결국은 이 유구한 시간 위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이리라.
 
주옌차교 야경 사진기수정 기자
주옌차교 야경 [사진=기수정 기자]
 
선수핑 판다기지에서 만난 판다
선수핑 판다기지에서 만난 판다.

◆청두판다번식연구기지···귀여움 그 이상의 감동

청두가 속한 쓰촨성은 야생 판다의 최대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전 세계 1900여 마리의 야생 판다 중 72%가 이 지역에 산다고 한다. 판다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렇게 '청두 자이언트 판다 번식연구기지(成都大熊猫繁育研究基地)'로 발길을 옮겼다.

청두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한 이 연구기지는 자이언트 판다의 보호와 번식을 위한 세계적 연구 공간이다. 중국의 국보이자 세계적인 슈퍼스타 ‘자이언트 판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푸바오가 이곳으로 귀환했기에 푸바오와 조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푸바오와의 조우는 불발됐다. 청두 일대에는 총 네 곳의 사육·보호 기지가 있다. 아쉽게도 푸바오는 일행이 찾은 기지가 아닌 워룽 선수핑(神樹坪) 기지에서 생활하고 있단다. 해외에서 태어난 판다들이 돌아와 야생 적응 훈련과 번식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인기 스타 판다 허화(和花)도 다른 구역에 머물고 있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지 안에서 마주한 아기 판다들이 그 아쉬움을 단숨에 지워주었다. 나무를 오르내리며 장난치고, 서로의 배 위에 올라 노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심장을 녹이는 귀여움’이었다.

무려 238만㎡(약 72만평)의 방대한 기지 안에는 200여 마리의 자이언트 판다와 160여 마리의 레서판다가 살아가고 있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느릿한 숨결을 나누는 판다들 사이에서 우리의 시간도 자연스레 느리게 흘렀다. 이곳에서 마주한 건 단순한 동물의 귀여움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은 해답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는 많은 건축물들이 인상적인 타이쿠리 광장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는 많은 건축물들이 인상적인 타이쿠리 광장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타이쿠리···고전의 외피 입은 현재의 청두

청두의 현재를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곳, 타이쿠리(太古里)로 향했다. 청두의 라이프스타일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사합원(四合院)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 루이비통, 프라다, 셀린느 같은 명품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는 풍광은 퍽 생경했다. 

여행자들은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겼다. 물론 쇼핑을 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담장에 기대 선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이 이 도시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두가 보여준 건 단순한 ‘멋’이 아니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조화였다. 청두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았다. 고전의 틀 위에 현대를 덧입히되 그 모든 것을 우아하게 품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 균형은 놀라울 만큼 세련됐다. 
 
쓰촨 요리 박물관 관계자가 쓰촨 전통 요리인 궁바오지딩닭볶음을 만들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쓰촨 요리 박물관 관계자가 쓰촨 전통 요리인 '궁바오지딩(닭볶음)'을 만들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마라의 얼얼함···그 속의 기질을 맛보다

음식은 단순한 맛을 넘어 청두의 기후와 성격, 문화를 비추는 창이 된다. 어쩌면 청두를 진짜로 이해하는 방법은 하나,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두는 ‘미식의 도시’다. 이는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청두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 창의 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에서 ‘세계 미식 도시(City of Gastronomy)’로 공식 인정받았다.

고민할 겨를 없이 쓰촨요리박물관(成都中国川菜博物馆)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외관 안에 전통 향신료 창고, 요리 체험장, 전시 공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판다 모양의 찐빵을 만들고, 닭볶음 요리 시연을 지켜봤다. 이후엔 박물관 내부 장터에서 다양한 음식을 골라 담아 맛을 보았다.

평소 마라 요리를 좋아해 종종 훠궈집을 찾았지만 여기서 맛본 마라는 전혀 달랐다. 입안 가득 퍼지는 얼얼한 전율이 한층 깊었다. ‘맵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풍미였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혀끝은 얼얼하게 저렸지만 그 강렬함이 오히려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했다. 이곳이 바로 마라의 본고장이었다.

그 얼얼함 속에는 쓰촨의 기운이 가득 배어 있었다. 쓰촨의 향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오래 기억을 남기는 힘이었다. 향이 남은 자리마다 청두 사람들이 떠올랐고, 음식에는 그들의 기질과 땅의 기후, 그리고 오래된 역사가 스며 있었다.

 
콴쟈이샹즈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쯔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쯔···골목이 품은 정서

청두의 진짜 얼굴은 골목에 있었다. 그래서 콴자이샹쯔(宽窄巷子)로 향했다.

‘넓은 골목과 좁은 골목’이라는 뜻의 콴자이샹쯔는 청나라 시절 군관들의 거주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거리다.

서로 다른 숨결을 품은 두 개의 길이 나란히 이어졌고, 전통 찻집과 수공예 상점, 악기점이 늘어서 있었다. 찻집 안에선 묵직한 보이차 향이 그윽하게 퍼졌다. 

오래된 공예품 상점에 들러 한참 구경했다.

낯선 이방인으로서 이 거리에 나만의 흔적을 조용히 남기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귀청소’라는 독특한 경험도 했고, 작은 찻집에 들어가선 보이차의 묵직하고 깊은 풍미에 감탄했다.

골목을 걷는 일은 어쩌면 여행 중 가장 사적인 행위일 것이다.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그 안에서 내 삶의 속도를 되묻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골목에서 우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조용히 껴안았다. 콴자이샹쯔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 유독 아쉬움이 남았던 건 아마도 그런 복합적인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청두 무형문화유산축제에 참여한 부산 브니엘예술중학교 학생들이 ‘김백봉 부채춤’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청두 무형문화유산축제에 참여한 부산 브니엘예술중학교 학생들이 ‘김백봉 부채춤’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무형문화유산축제···손끝에서 전통이 살아나다 

청두는 ‘살아 있는 전통’을 품은 도시였다. 그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청두 국제 무형문화유산 축제다.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린 제9회 축제 기간, 무형문화유산박람공원에는 세계 60여 개국에서 600여 종의 유산이 모여들었다.

각국 장인들이 손끝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었다. 특히 부산 브니엘예술중학교 학생들이 선보인 ‘김백봉 부채춤’은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그 춤은 아름다움을 넘어 마치 전통의 온기를 품은 언어 같았다.

청두의 축제는 단지 구경거리가 아닌 참여하고 공감하는 무대였다. 전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무대 위에도, 공방 속에도, 어린아이의 눈빛 안에도 있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청두의 방식은 부드럽고도 당당했다.

짧았지만 깊었다. 판다의 눈망울, 마라의 얼얼한 풍미, 골목의 느린 호흡, 그리고 손끝에서 되살아난 전통의 온기까지···. 청두는 여행자의 오감을 하나씩 조심스레 깨우며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판다의 도시, 미식의 고향, 골목의 품격, 그리고 살아 있는 전통. 청두는 무엇 하나 과장하지 않고 조용한 진심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냈다. 트립닷컴이 이곳을 ‘2025년 최고의 여행지’로 꼽은 이유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다음엔 조금 더 길게 푸바오와 허화를 꼭 만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도시,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달뜨는 도시. 청두는 그런 곳이었다. 
 
콴쟈이샹즈에서 만날 수 있는 쓰촨 음식들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쯔에서 만날 수 있는 쓰촨 음식들. [사진=기수정 기자]
청두 자이언트 판다 번식연구기지에서 만난 판다 사진기수정 기자
청두 자이언트 판다 번식연구기지에서 만난 판다. [사진=기수정 기자]
타이쿤리 사진기수정 기자
타이쿠리 [사진=기수정 기자]
지우옌차오 야경 사진기수정 기자
지우옌차오 야경 [사진=기수정 기자]
타이쿤리 사진기수정 기자
타이쿠리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즈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쯔 전경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즈에서 만날 수 있는 쓰촨요리 식재료 판매점 사진기수정 기자
콴자이샹쯔에서 만날 수 있는 쓰촨요리 식재료 판매점.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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