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와 보스턴을 찾는 한국 IT·인공지능(AI) 기업 관계자, 교수, 학생들의 입국 거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로 인해 비즈니스나 학술 목적 방문조차 어려워지면서, 업계와 학계에 비상이 걸렸다.
20일 IT업계에 따르면 한 국내 AI 반도체 설계 기업의 직원들은 최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세미나 참석을 목적으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출입국관리 당국에 의해 추방됐다.
이들은 세미나 참석이 업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방문목적을 출장 등으로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 당국은 이들이 불법취업을 목적으로 입국을 시도한다고 간주하고, 이들을 추방시켰다.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최근 ESTA(전자여행허가제) 비자로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직원이 입국을 거부당했다"며 "이후 B-1 비자(비즈니스 비자)를 발급 받은 직원만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ESTA는 관광은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상담, 계약협상, 단기 출장 업무 목적의 입국을 허용하고 있지만 세부 일정 등을 이유로 제재를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대학을 나온 외국인에 대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경계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학생비자(F-1)를 이용한 불법 체류나 졸업생이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불법취업을 시도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 미국 이민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렇게 추방된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추후 미국 입국에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ICE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한국 지원 대규모 단속의 경우는 양국 정부가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추방 당한 300여 명의 한국인이 추후 미국 입국 시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개별 출장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추방 당한 AI·IT 업계 관계자들의 경우는 불이익이 예상된다.
학계도 비상이 걸렸다. 보스턴 등 연구 중심지를 방문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학술대회 참석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ESTA로 학회 참석은 가능하지만, 사전 준비나 부스 설치 등 추가 일정이 불법 취업으로 의심받으면서, 당국의 제재를 받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AI 공동연구를 위해 하버드 대학교 방문을 시도한 한 학생이 당국으로부터 불법취업 의심을 받고 입국을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원 교수는 “최근 들어 학계에서도 미국 당국의 단속으로 인한 추방 사례 등이 불거지면서 우려심이 커졌다”며 “기본적으로 세미나나 학술대회 참석은 학회를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큰 문제가 없지만 그 외 일정을 소화하거나 사전에 방문해 준비를 해야 할 경우 자칫 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어 교수들과 학생들이 미국 방문을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는 내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참관이 아닌 부스 참가 기업들은 다수 직원을 사전 파견해야 하는데, 최근 추방 사례가 많아 일부 기업은 참가 자체를 고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관계자는 “짧은 업무 목적의 출장은 ESTA가 허용하는 범위며, 당국도 과거에는 한국 비자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태로 인해 한국 여권의 위상도 크게 떨어짐은 물론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은 상태기 때문에 미국 행사 참가 자체를 꺼리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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