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一言爲定, 말 한마디의 무게

  • 中 레드라인 건드린 日총리 말 한마디

  • 대일 압박 명분 얻은 中…전방위 공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UPI·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UPI·연합뉴스]


"'중국이 무력으로 통일을 하려 한다면 대만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고 묻는 대만 친구에게 두말없이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였어요. '5개월이냐? 5주냐?'라고 묻기에 '5초'라고 답했죠."

얼마 전 중국의 한 대학교 세미나 특강에서 들은 중국인 교수의 발언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중국 내 대만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 강렬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그런데 최근 중국인의 양안(중국 대륙과 대만) 통일을 향한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입에서 나왔다. 그는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존망의 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인 대만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셈이다.

'존망의 위기'도 중국이 질색하는 말이다.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대륙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레토릭이기 때문.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군국주의 부활 신호탄'이라며 경계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다.

중국은 즉각 일본 영화 상영 금지,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 일본 유학·여행 자제령, 서해 군사 훈련 등 보복 조치를 꺼내 일본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발언 철회를 요구하는 듯하지만 중국은 일본 총리가 이를 번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세를 이어가는 데는 명확한 계산이 깔려 있을 테다.

하나는 주변국에 앞으로 중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 보여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일본을 거세게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는 데 있다. 그간 과거사 문제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미국 편들기,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등으로 쌓여왔던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할 계기가 생긴 것이다.

중국의 대만 발언 철회 주장은 목적이 아닌 대일 압박을 정당화하는 도구인 셈이다. 중국은 과거 사드(THAAD) 사태 때에도 한국이 사드를 철수할 수 없음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수년에 걸쳐 이 문제를 제기해 한·중 외교관계에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중국 국내 여론도 일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강경 대응에 힘을 실었다. 중국 언론들은 "新賬舊賬一起清算(옛날 일까지 모조리 끄집어 내서 한번에 청산하겠다)"며 십자포화를 쏟아냈고 중국 누리꾼들은 "一言爲定"이라는 말로 분노를 '승화'시켰다. 一言爲定, 직역하면 '약속을 지켜라'는 뜻이지만 '네가 한 말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감히 해볼 테면 해봐라'는 도전적인 뉘앙스가 읽힌다.

사실 한국도 대만 문제로 중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무력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 "대만 문제는 남북 문제처럼 국제적 사안"이라고 언급한 전 한국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산 것.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 문제를 내정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기자도 대학생 시절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양안 관계를 남북한 상황에 빗대 이야기했다가 중국인 친구에게 "남한은 남한이고 북한은 북한이지만 대만은 중국"이라는 단호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 친구는 남북한은 각각 유엔에 가입한 개별 국가지만 대만은 중국의 유엔 가입 후 축출돼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때 기자는 양안 문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4억 중국인에게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하물며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외교전장에서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신뢰를 쌓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한·중 관계 역시 경솔한 말 한마디에 얼어붙기도, 농담 한마디에 신뢰를 쌓을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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