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 부양보다는 물가 안정을 택했다.
금통위는 8일 기준금리를 연 5.0%로 동결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9월 이후 9개월 연속 제자리 걸음을 이어가게 됐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이미 4%를 넘어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향후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종 경기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유가와 환율 상승, 유동성 증가 등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 물가 더 오를 듯 = 지난달 금통위 직후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진정돼야 한다는 전제를 단 바 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서도 물가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오를 기세다.
실제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124달러를 육박하고 있고 두바이유도 110달러를 넘어서는 등 유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고유가에 따른 정유사들의 결제 수요 증가와 정부의 원화 약세 용인 등으로 지난 주부터 연일 상승하면서 이날 오전 개장 직후에는 1040원대로 폭등했다.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까지 내리면 원화 약세가 초래돼 환율이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으로 빠질 수 있다.
여기에 시중 유동성까지 크게 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날 한은이 발표한 '3월중 통화 및 유동성 지표 동향'에 따르면 광의통화(M2)와 금융기관 유동성(Lf) 증가율은 5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은 이러한 추세가 4월에도 계속될 것으로 추정했다.
고유가와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고 시중 유동성 증가는 총수요를 늘려 소비자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중반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예측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수입물가와 실효환율이 각각 5%씩 추가로 오르고 총수요 압력이 압력이 1% 내외로 지속되면 올해 물가 상승률이 4.6%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까지는 경기를 감안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이번 달 들어 유가나 환율, 유동성 등 각종 지표들이 생각보다 나쁜 쪽으로 가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금리동결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금리 인하는 언제쯤 = 금통위가 이달에는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국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금리를 동결한 만큼 당분간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특히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달 말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당분간 금리 인하를 자제할 것임을 시사해 통화당국이 뒤늦게 금리를 내리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전효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번에 금리가 동결된 것은 한은이 최근 물가 상승세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며 "미국이 금리 인하를 사실상 종결한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상 연구위원은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한은은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국내 경기가 급속히 침체될 경우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어 금리 인하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으로서도 물가만 내세우면서 마냥 금리 인하를 거부하기 힘든 만큼 유가 등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세가 꺾이는 시점이 되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혜승 기자 hssong00@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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