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대량환매 위기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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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9-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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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43조원 평가손
"업계.당국 방조 책임"
"제도.문화 개선 시급"

국내외증시가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펀드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올해만 국내외 주식형펀드에서 43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났다는 추정이다. 앞으로 시장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펀드 대량환매(펀드런)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같은 대규모 손실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롯한 대외악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나 단기차익을 노린 몰빵투자를 방치한 당국이나 업계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시장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9월 위기설처럼 국지적 요인이 시장 전체 위기로 확산돼 대혼란을 낳지 않도록 정보소통이 빠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량환매 우려 고조=최근 투자손실이 급증하면서 펀드런 우려가 어느때보다 높다. 일각에선 해외펀드 자금몰이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0월부터 만 1년인 올 10월 이후 환매가 집중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해외주식형펀드에서 7월 이후 현재까지 3개월새 1조6000원 가량 자금이 순유출했으며 국내주식평펀드도 자금 유입세가 눈에 뜨게 둔화했다.

금융당국은 시장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장기투자펀드에 대한 소득공제를 비롯한 펀드시장 안정대책을 내놨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펀드 가입 의사를 밝히며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의 이런 대응이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는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반기면서도 단편적인 세제지원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세제지원이 당장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회성 정책에 그치지 않도록 지원 범위와 대상을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퇴직연금펀드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제안이다.

펀드평가업체 제로인 최상길 전무는 "도입 2년째인 국내 퇴직연금시장은 현재 4조원 규모로 이 가운데 펀드 투자액은 8000억원에 불과하다. 과거 미국 사례를 봐도 펀드시장 발전과 안정을 위해선 장기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퇴직연금펀드 활성화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당국.업계 손실 키워"=펀드평가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해외주식형펀드 수익률은 19일 기준으로 연초 이후 평균 38.55% 하락했다.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국내주식형펀드도 26.31% 떨어졌다.

국내와 해외 주식형펀드는 올들어 평가손실이 각각 25조3000억원과 18조1000억원으로 모두 43조4000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이 발생했다는 추산이다.

이같은 대규모 손실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돼 글로벌시장으로 확산한 신용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에서 국내 투자자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투자자금이 고점에서 특정 지역에 쏠리게 만든 뒷북 또는 몰빵 투자 탓도 크다. 지난해 해외주식형펀드로만 46조원이 유입됐으며 이 가운데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중국증시가 사상 최고점에 도달했던 이해 10월에 몰렸다. 시장이 곳곳에서 과열징후를 보였지만 운용사나 판매사는 관련상품을 쏟아내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금융당국 또한 같은해 6월 환율방어를 목적으로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를 도입해 과열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삼성증권 조완제 연구원은 "지난해 말 중국투자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해외펀드 쏠림현상이 극심해진 것이 손실을 키웠다. 장기분산투자에 익숙치 않은 미숙함이 원인이지만 이를 방조한 판매사와 정부도 문제이다"고 전했다. 조 연구원은 "펀드 가입 뒤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판매사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판매사간 건전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문화 개선 서둘러야"=전형적 투자 문화인 '과열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증시가 1500과 1600선을 차례로 돌파하자 증시에 뭉칫돈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여유자금은 물론 은행에서 대출받아 주식을 사거나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여유자금이 아닌 대출로 주식에 투자할 때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면서 예금, 주식, 부동산에 분산투자가 이뤄질 때만이 주식시장 장기 상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에 너무나 취약한 국내 업계 구조도 문제다. 시황이 좋아 보일 때마다 대대적인 광고 공세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가 증시가 폭락하면 방치하는 행태가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종현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증권업계에 가장 시급한 것은 체계적이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정부 또한 정책을 추진할 때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환율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한 탓에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던 외환시장처럼 정부 정책 방향성을 예측하기 힘들 때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 이종승 리서치센터장은 "증시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환율 부동산 세제 민영화를 비롯한 경제환경을 좌우하는 정부 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하는 것이 증시 지원을 위한 가장 좋은 정책이다"고 말했다.

문진영 기자 agni2012@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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