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은행채 발행물량이 많은 은행에 대해 유동성 지원규모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한은의 방침이 현실화 될 경우 은행채 발행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전망이다.
정희전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지난달 31일 “은행채를 많이 발행한 은행과 적게한 은행에 대해 유동성 지원을 차등화할 계획”이라며 “은행채를 많이 발행하는 은행에 대해 RP(환매조건부채권)거래 과정에서 해당 은행채의 편입규모를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한은은 최근 은행채 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RP 거래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며 "은행들이 이를 이용해 채권 발행을 늘리고 한은이 다시 이 채권을 사들이게 되면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은행의 구제금융책 악용을 사전에 차단하고 채권 발행이 많은 은행의 은행채 매입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무분별한 채권발행에 패널티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 시중 은행 중 채권을 가장 많이 발행한 곳은 국내 은행 중 자산규모가 가장 많은 국민은행으로 한은이 은행채 발행 규모에 반비례로 매입량을 정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이 발행한 은행채는 11월 초 현재 9만4591건, 39조802억628만원에 이른다. 이는 시중 은행 중 비슷한 규모를 지닌 신한의 31조7664억9100만원 보다 7조3137억1528만원(23.02%) 많은 액수다.
게다가 국민과 신한이 발행한 은행채는 만기일이 차이가 난다. 두 은행의 은행채 만기는 각각 2033년 10월, 2038년 3월로 국민이 신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채권을 발행했음에도 총액에서 앞선다.
국내 3대 은행 중 하나인 우리은행도 2037년 만기 311건, 30조7765억1246만원으로 국민보다 8조3036억9382만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은 15조8269억원으로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외환은행은 10조3953억원으로 국민의 1/4 수준.
하지만 한은이 채권 발행 규모를 정하기 위한 기발행채 만기도래일 지정과 적용대상 등을 아직 정하지 않아 국민은행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지는 미지수다.
기발행채권 총액은 국민은행이 가장 많지만 올 4/4분기 만기도래 은행채는 기업은행(6조3413억원)이 가장 많고 산업(4조3412억원), 우리(3조3550억원), 신한(2조8607억원) 순이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의 만기도래 은행채는 1조4842억원.
각 은행들의 자산총액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잣대로 채권발행액을 산정할 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별은행들의 자산총액이 다르기 때문에 채권발행액 절대치만으로 정부매입량을 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한은이 은행들의 자산규모를 무시하고 똑같은 비율로 채권을 매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은은 이 문제에 즉답을 피하는 등 아직 구체적인 대답을 내지 않고 있다.
또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이 시중은행들 사이에서 실타래 처럼 얽혀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이 규모를 파악하는 것도 한은이 풀어야 할 과제다.
기업은행 관계자 “한은이 은행채 발행 규모에 따라 유동성 공급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RP 매입시 특정 은행의 채권만 골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은 정책의 현실성에 의구심을 내비췄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전체 은행채 매입 물량 중 특정 은행의 채권 비율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한은이 이같은 방식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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