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증가로 구직 상담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사진은 도쿄 도내의 취업알선업체 '헬로우 워크 신주쿠'. |
전세계적 경기침체로 일본 고용시장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와 노동계 간에 실업급여기금 사용처 논란이 불 붙었다.
일본 정부는 실업급여기금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 고용보험료를 낮추고 이 돈을 여타 사회복지기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고 노동계는 고용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실업급여기금은 3월말 기준 4조9000억 엔(약 72조2710억 원)이 쌓여있다. 올해 말 기준으로는 당초 예상(1조5000억 엔)보다 3배 이상 많은 5조4000억 엔(약 79조5447억 원)이 예상된다. 이는 더 이상의 기금 누적이 없어도 50만 명의 실업자에게 매달 10만 엔 씩 9년 동안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다.
실업급여기금은 일정 부분 일본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노사가 절반씩 지출하는 고용보험료를 근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잉여자금이 생긴 경우에는 적립한다. 최근 4~5년 간 일본 경제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며 고용이 증가해 잉여 자금이 축적된 결과 2003년 말 약 8000억 엔에 불과했던 적립금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실업급여기금 급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지난 10월 30일 추가경제대책에서 고용보험료율 인하를 검토하고 실업급여에 대한 국고 지원을 없애기로 했다. 이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지난 13일 열린 '2009년도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실업급여기금에 대한 국고 부담을 없애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현재 편성 중인 내년 예산안에 바로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 통상국회에서는 국고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미래를 대비해 쌓아둔 기금이 예상을 크게 웃돌자 실업자가 늘어도 실업급여 지급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또 실업급여 국고투입 중지로 매년 2200억 엔씩 줄일 수 있어 사회보장비용 자연 증가분을 억제하고 국가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거란 점도 일본 정부의 계획에 일조했다.
하지만 현 일본의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고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최근 일본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침체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본 내각부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 3분기 GDP(국내총생산)은 전기 대비 0.1% 감소했고 2분기에 비해서도 0.9%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일본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악순환 사이클이 겹치며 경제위기의 골을 깊게 파고 있다.
도요타, 소니와 같은 굴지의 일본 기업들도 줄줄이 이익폭이 줄거나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계속되는 감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 같이 고용시장도 흔들리며 노동·자본 중심적 산업구조를 가진 일본경제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서 실업급여기금을 줄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주장이다. 실업자가 크게 늘어 수급자가 늘 거란 예상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후생노동성의 자료에 의하면 올 9월 실업급여 수급자는 전년 동월대비 2.6% 상승한 60만6000명에 이르렀다. 올 3월 50만 명, 7월 6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지난해 5월 이후 1년 4개월 동안 꾸준한 증가세를 띄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노년층이 크게 느는 반면 노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과 실업급여 수급자수가 미국 IT(정보통신기술)버블 붕괴된 지난 2001년 이후 2007년 5월까지 6년 연속 감소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실제로 경기 후퇴로 고용시장이 위축되며 9월 신규 실업급여 수급자는 전년 동월대비 12.5% 증가했고 일본 정부도 이와 같은 증가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정이 있는 중년층 실업자 수도 크게 늘어 새 일자리를 찾는 45세 이상도 올 9월 전년 동월대비 20% 가까이 늘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11일 정부의 실업급여기금 개편을 위한 노동정책심의회(후생노동성 자문기구)와의 고용보험회의를 1년 만에 개최하고 실업급여 지급 방향과 보험료율 인하 등에 대해 논했지만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경제위기로 고용이 불안한 데다 비정규, 파견직 근로자가 많아지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이다.
고용보험회의에서 제기한 방안은 자진 이직(離職)의 경우 그만두기 2년 전부터 보험료를 1년 이상 납부해야 하고 기업의 도산, 해고를 이유로 한 이직의 경우 이직 전 1년간 6개월 이상의 조건이 있다.
이에 일본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사원의 안전망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기침체와 고용시장 악화로 1년 혹은 2년 이상 장기근속할 직원의 자리를 단기 비정규사원이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재계도 경제위기가 길어져 '직업불안'이 확대될 경우 소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실업급여기금에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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