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상품권 유통이 가히 폭발적이다. 상품권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유용성과 주고받기 쉽다는 편리성까지 합쳐져 상품권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상품권은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으로, 단지 요금 할인을 목적으로 발행한 증서(할인권)와는 다르다. 1961년 상품권법이 제정되면서 정부의 인가가 있어야 상품권 발행이 가능했으나 1999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이 법이 폐지되면서 상품권은 이제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상품권의 진화 속도도 놀랍다. 백화점 등 특정 매장에서 공산품 구입에 한정됐던 상품권 용도가 비행기도 타고 호텔에 묵으며 레포츠까지 즐길 수 있게 됐다. 도서·문화·관광상품권은 기본이고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기부상품권을 비롯해 스타상품권, 김치상품권, 건강상품권 등 이색 상품권이 수두룩하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상품권’도 급팽창하고 있는 상태다. 단순 상품 교환용이 아니라 현금을 대신해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제2의 화폐’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모습이다.
‘액면가대로 사면 바보’라는 말도 공공연하다. 백화점 주변 구둣방에서 할인 상품권을 사던 시대는 옛날이다. 인터넷상에 상품권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가 속속 등장했다.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액면가보다 보통 6~7% 할인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제화 상품권의 할인가는 절반에 가깝다. 소비자가 10만원짜리 구두를 구입하려 한다면 할인된 상품권에다 세일 기간을 이용하면 반값 이하로 살 수도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도 현찰을 확보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최근 300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나왔다. 대형 백화점 등이 여론을 의식해 눈치를 보는 사이 롯데백화점은 설을 겨냥해 어지간한 월급쟁이 연봉인 ‘비즈 에디션’을 과감하게(?) 내놓았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트리니티’ 상품권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지난해 말부터 판매가 시작된 이들 상품권은 지난 8일까지 롯데 15세트, 신세계는 5세트를 각각 팔았다. 1000만원짜리 패키지 상품권 역시 큰 호응을 얻어 롯데백화점은 1024세트, 신세계백화점은 168세트를 판매했다.
불과 3주만에 125억여 원어치나 팔린것이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이를 구입하는 기업이 어디에 쓸지 몹시 궁금하다.
물론 서민들이 구입할 수 있는 1만원짜리 세뱃돈 패키지 상품도 내놓아 백화점의 상혼이 얄밉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품권의 진화가 아니라 우리시대 어두운 단면인 상품권의 양극화가 분명하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롯데백화점 상품권’이라고 홍보하는 그 곳. '88만원 세대'는 3000만원짜리 상품권을 파는 곳에서 고작 1만원 상품권을 선뜻 구입하기 민망하지 않을까.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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