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
축사를 부탁받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했던가, 일생살이가 대개 그러하듯이 내게 건설은 우연히 다가왔다. 20년 전에 도시경제학 공부를 마치고 도시계획과의 학제간 연구 가능성에 마음이 끌려 국토연구원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채용이 되었고 배치 받은 곳은 건설경제연구실이었다.
당시에는 건설에 관한 연구가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때라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 신설된 연구실이었다. 연구원에 경제학 전공자가 거의 없어 선택의 여지없이 차출되다시피 배정되었다. 건설과의 첫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직접 선택한 분야는 아니지만 하나의 산업에 대해 배워가며 연구하며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은 큰 즐거움을 주었다. 대기업 사무실에 찾아가 임원을 면담하고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누비며 기술자와 기능인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현장밀착형 연구에 보람을 느꼈다. 건설부문을 대표해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시장 개방협상에도 참여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른 연구실에 배정된 적도 있고 파견근무도 해보았지만 주택, 교통, 민간투자 등 건설 관련 분야를 떠난 적은 없다. 건설은 내게 사회인으로서 또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해준 행복한 인연이었다.
건설에 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산업에 대한 열정도 함께 깊어갔다. 밝지 못한 산업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건설은 일차적으로는 우리 생활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주(住)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활동의 그릇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건축 현장에서 수만 가지의 부품이 여러 공정을 거쳐 조립되어 건물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을 보면 어찌 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연 조건과 싸워가면서 도로, 철도, 항만 등이 완공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수많은 악기의 음색이 조율되어 아름다운 화음을 완성하는 오케스트라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건설인들에게는 산업의 특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넉넉한 인심에 책상머리에서 건설을 접하는 내게도 현장의 이야기를 해주고 건설산업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대해 하소연도 한다. 꾸밈이 없고 질박하다. 솔직하고 의리가 있다. 직선적이지만 뒤끝이 없다. 일에 열심이고 낙천적이다. 가족과 떨어져 공사 현장에서 오랜 고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완공된 구조물을 눈앞에 두고 자식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실에 즐거워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들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거나 가시적인 결과물을 경험하지 못하는 데 비한다면 건설인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물론 건설산업을 규율하는 제도, 정책, 상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건설은 부실시공, 담합, 저가투찰, 안전사고, 비리 등의 온실로 인식되고 있다. 독립기념관 화재사건 이후 부단한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는 민관합동의 위원회가 내놓은 혁신방안을 입법화해 건설산업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이 경제학계에서는 건설경제산업학회를 만들어 산업의 선진화에 일조하게 되었다. 부디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건설산업이 건설인에게는 치명적인 인연이 되지 않고, 또한 국민들에게는 행복으로 다가가는 산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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