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공화당 하원 대변인을 지내며 온갖 독설로 의회 무대를 휘잡았던 뉴트 깅그리치가 또 한번의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세 차례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외도 행각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다시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과거 결혼과 이혼 스토리가 그를 견제하려는 듯 다시 부상하고 있다.
세번이나 결혼한 깅그리치의 가장 약한 고리는 첫번째 결혼과 이혼이다. 그는 19세였던 지난 1962년 자신의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재키 배틀리와 연예 끝애 결혼했다. 당시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명문 사립 에모리대학 1학년 생이었던 깅그리치의 결혼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결국 우여 곡절 끝에 16세와 13세의 두 아이를 두었을 때인 지난 1980년 둘은 이혼했다.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의 악소문이 깅그리치를 잡고 있다. 배틀리가 암으로 투병중이었을 때 이혼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암을 극복하고 현재 생존해 있는 배틀리는 이에 대해 “암투병중이었을 때 이혼한 것은 맞지만 일방적인 통보는 아니었고 서로 합의가 있었다”고 당시를 해명했다. 게다가 소문은 그녀가 병상에 누워있는데 깅그리치가 법적으로 작성한 이혼 서류가 병원으로 배달됐다는 것까지 번져 있다.
당시 병원을 오가던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깅그리치가 서류를 잔인하게 배달시켰던 것은 아니고 부인이 암 수술 후 회복중이었을 때 노란색 봉투에 담긴 이혼 서류를 갖고 와서 서명을 받아 간 것으로 해명되고 있지만, 이도 결코 깅그리치의 이미지에 도움을 줄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깅그리치 자신과 그의 큰 딸까지 나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깅그리치가 이같은 ‘이미지’ 악재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깅그리치는 이미 자신의 외도 등 개인적인 사생활을 언론 등에서 시인한 바가 있다.
(아주경제 송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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