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는 이날 발표한 시안에서 유로존 채무·금융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의 핵심은 이른바 ‘안정채권’이라는 유로존 공동 채권의 발행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동 채권을 당장 발행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면서 회원국의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집행위가 개입하는 재정 건전성 감독과 규제를 강화 시책들을 먼저 시행하면서 채권 발행을 결정하자는 2단계 시행방안을 내놓았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운영체체를 강화하지 않으면 공동통화인 유로의 지속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집행위는 이 시안에서 유로존 각 회원국이 자국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에 집행위에 먼저 매년 10월 중순까지 안을 내놓으면 집행위가 이를 사전 심사하자고 제의했다.
회원국 예산안이 EU의 안정·성장협약 등 관련 기준에 어긋나면 집행위가 수정이나 전면 개편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하면 회원국 의회에도 출석해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도록 했다.
각 회원국은 예산안을 짤 때 기초가 되는 경제 분석과 전망을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기관이 아닌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독립적인 기관의 평가를 활용하고 균형 재정 의무 등을 법률이나 헌법에 수치화해 반영토록 했다.
재정적자가 EU 기준치(국내총생산 대비 총 부채 비율은 60%, 재정적자 비율은 3% 이하)를 넘긴 국가들에 대한 규제와 감독도 대폭 강화하고 구제금융을 이미 받은 나라는 물론 받아야 할 처지에 몰린 나라의 재정·경제 정책에 대한 집행위의 간섭도 커진다.
이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선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는 등 각종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시안은 명시하고 있다.
집행위 시안은 또 집행위와 ECB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체(유로그룹)이 특정 회원국에 대한 구제금융 자금 지원을 공식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는 위기에 몰린 회원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유와 시장 불안감 등 때문에 구제자금 지원 요청을 최대한 미루다가 상황이 더 악화된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집행위는 이러한 규제 감독 강화안이 실행돼 무임승차가 방지되고 재정 건전성 유지가 일정 수준 유지되는 것으로 입증되면 유로존 공동의 ‘안정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정채권의 발행 방식과 관련해 집행위는 △17개 회원국이 공동 보증하고 공동 발행 △GDP의 일정 비율 이하의 채무(국채)만 공동 보증하고 초과분 국채는 개별국 정부가 보증 △개별국이 각자 혹은 협의에 의한 상호보증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바호주 위원장은 “우리는 논의를 시작했다”며 집행위는 특정 방안을 선호하지 않으며 이를 모두 병행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재차 반대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집행위의 제안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다양한 유로채권 발행 방식을 제시하며 마치 유로존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등의 반대로 공동채권 발행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호주 위원장은 이번 시안은 독일을 비롯한 어떤 회원국의 이해와도 상충되지 않는 것이라면서 독일은 공동발행이 아니라 발행 시기에 대해서만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나라도 절대 반대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안정채권 발행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독일 사람들의 발언을 자세히 살피면 사실상 대부분이 시점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호주 위원장의 주장은 독일 등이 지금 당장 공동 채권을 발행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고 있으나 규제 강화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이 확보되는 등 전제조건이 성숙되면 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EU 집행위 역시 유로채권 발행은 단기간에는 성사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금융시장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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