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20일 조의에서 북한 당·군정 실세들이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애도의 묵념을 하는 등 공식 후계자임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도 김 부위원장의 이름을 국가장의위원 명단에 첫 번째로 올리는 등 세습을 공식 인정했다.<관련 기사 2.3.4.5.6.7면>
하지만 김 부위원장의 고모부이자 북한의 군·당·돈을 움켜쥐고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정치적 입지 확대가 변수다.
그가 당장 전면에 나서긴 어렵겠으나, 중국이 장 부위원장에 대한 공식 지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미·중·러·일 등이 북한 체제에 입김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주변국들과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꼬인 모습이다. 이에 따라 김 부위원장의 체제가 장 부위원장을 비롯한 기존 수뇌부의 영향력 아래 꼭두각시로 전락할 것이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의 새 영도자로 등극한 김 부위원장은 이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최영림 내각 총리·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김경희 당 경공업 부장등 당ㆍ정ㆍ군 고위 간부진들과 함께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이번 참배는 김 위원장 사후 김 부위원장의 첫 번째 단독 공개활동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충심을 보여줌으로써 김 위원장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김 부위원장의 이름 앞에 일제히 ‘존경하는’이란 존칭적 수식어를 사용하며 세습체제를 공식화했다.
지난 1998년 ‘김정일 시대’를 개막하며 김 위원장의 이름 앞에 ‘경애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점을 감안하면 김 부위원장에게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본격적으로 ‘김정은 시대’를 열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노동신문은 이날 ‘영원한 우리의 김정일 동지’란 장문의 정론을 통해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이란 표현을 동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김 부위원장 체제 출범에도 정권이 완벽하게 이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 부위원장의 체제가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북한 수뇌부가 그를 과도하게 띄운 것은 내부 분란을 막기 위해 김 부위원장을 부각시켜 유훈 정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김 부위원장 외에 북한 내부에서 대안세력이 없다는 점이 기존 수뇌부의 충성을 끌어냈다. 이는 김 부위원장 후견인인 장성택 부위원장의 ‘세’가 점점 불어나고 있는 현 북한내 실상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일단 장 부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가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받지 못해 ‘지도자’로 나서긴 어려운 만큼 김 부위원장에는 명시적으로 충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부위원장의 정권 장악력이 높지 않아 기존 수뇌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지, 또 체제를 항시적으로 인정할 지는 변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김 부위원장과 장 부위원장 등 기존 수뇌부는 체제 안정을 공동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대가로 기존 수뇌부 쪽으로 권력 이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김 부위원장의 급속한 권력 누수가 예상된다.
아울러 북한을 둘러싸고 북핵 포기와 세습체제를 흔들려는 미국과 체제 안정을 희망하는 중국·러시아, 북한 고립을 희망하는 일본 등 주변국들이 간섭하기 시작하며 북한 내부의 정치적 문제는 외교 문제와 긴박하게 엮일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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