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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
오래 묵어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엠바고(보도유예)란 그럴 듯한 핑계로 침묵하기란 나 같이 ‘입싼(?)’ 기자에겐 고역이다.
특히 외교·안보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국익과 국민의 목숨이 펜 끝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게 될 때 보도경쟁의 유혹 앞에서 적잖은 고민을 한다.
지난 5일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장에서는 제미니호 선원들의 가족이 도움을 호소하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사건 발발 530여일이 지났지만 제미니호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외교부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문대성 국회의원의 질타와 함께다.
아울러 기자들이 제미니호 해적 피랍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왜 기자들이 눈길을 끌 만한 좋은(?) 기삿거리를 외면했을까.
먼저 힌트다. 제미니호 관련 국감에서 국무위원을 실랄하게 질타한 국회의원 보다 더 큰 수해자는 누굴까? 답이 ‘해적’이라면 입싼 기자들이 ‘함구’하는 이유가 짐작되는가?
해적 피랍은 국가 대(對) 국가의 협상 사안이 아니다. 제미니호 선사가 해적들과 몸값을 두고 소위 말하는 ‘밀당(밀고 당기기)’을 한다. 쉽지 않은 ‘밀당’에 가족들만큼 해적들도 지쳐간다.
하지만 피랍 관련 여론이 들끊게 되면 해적들의 '콧대'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선원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지쳐가는 해적들의 몸에 에너지가 불끈 솟는다.
해적들은 관련 기사를 신속하고 꼼꼼하게 스크랩해 기자를 당혹케 한다. 영국 등에 있는 브로커를 통해 우리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국익, 생명, 안보의 연장선상에서 고민하지 않는 기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관련 부처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세우지 않는 기자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선원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보도유예를 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보도가 선원의 생명에 '해적의 칼날'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문뜩 한·중 FTA 1차 협상이 시작된 지난 봄, 한·중 FTA를 위해 움직이는 한국의 인력이 5000명 인데 반해, 중국은 최소 3만명이란 한 당국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생각해 보면 알권리만을 충족시키려는 언론의 과도한 ‘서비스’ 정신과 자신의 지역구 표를 의식한 몰지각한 국회의원들의 ‘센스 없는 설전’으로 협상 상대국의 3만명에게 플러스 알파(a)가 되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기자는 오늘도 고민한다. 과연 어떤 판단이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국익·안보에 최선일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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