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어찌 이 주유를 지상에 낳으시고 다시 또 제갈량을 낳으셨단 말인가”라고.
지난 19일 대형투자은행(IB) 설립 등 알맹이가 빠진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이 구절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대형 IB’ 역시 주유처럼 현재 한국이란 시대운을 타고 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금융투자업계는 대선을 앞둔 상황과 민생현안에 밀려서 국회의 관심이 멀어진 법안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형 IB를 위해 자기자본을 늘린 증권사와 수 년 넘게 개정안 준비와 통과에 공을 들인 금융당국 모두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대형IB는 쉽게 말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과거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금융이 대형화된 금융기관 주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착안됐다.
결과적으로 이 출발점부터 어그러진 셈이 됐다. 지난 2011년부터 금융권의 탐욕을 규탄한다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월가의 시위 본질에 찬성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다. 부정부패가 잇따라 발생한 대형 자본을 축적한 금융기관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이제‘경제 민주화’가 화두가 된 시대다.
금융투자업계는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국회’를 원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의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에 의해 움직이는 곳인 점을 생각하면 대형 IB를 거부한 실제 주체는 ‘국민’이다. 대형IB를 준비한 한 증권사 관계자마저“지금과 같은 시대에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니…”라며 씁쓸해했다. 주유는 시대를 원망하며 결국 단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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