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지연 기자=패션업계가 돈 되는 브랜드에만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문어발식으로 브랜드를 론칭해 외형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의 내실을 강화하는게 더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수부진과 패션경기 침체, 수십조원 규모의 글로벌 SPA(제조ㆍ유통 일괄 의류)브랜드가 한국에 앞다퉈 진출하면서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다.
◆최근까지 중단된 브랜드만 40개…도매업체 포함하면 100여개 달해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패션기업들의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40여개의 브랜드가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이 잠정 보류되거나 중소업체가 운영하는 도매시장 브랜드를 포함하면 중단된 브랜드 숫자는 100여개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구 제일모직)은 후부(캐주얼)와 에피타프(여성복), 데레쿠니(여성복) 니나리치맨(남성복)등의 브랜드를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2012년 론칭한 SPA브랜드 에잇세컨즈와 빈폴아웃도어, 르베이지(여성복), 갤럭시(남성복) 등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기존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수익성이 낮은 브랜드는 접는 대신 에잇세컨즈와 빈폴아웃도어 등 글로벌 성장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는 공격적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랜드그룹도 경쟁력 없는 브랜드는 과감히 퇴출시키고 SPA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빅브랜드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해 쉐인진(캐주얼)과 콕스(캐주얼), 티니위니 키즈(아동복) 등의 브랜드를 중단하고, 후아유(캐주얼), 스파오(캐주얼), 미쏘(여성복) 등을 SPA브랜드로 전환시켰다. 이와 동시에 신발 SPA브랜드 슈펜, 아웃도어 SPA브랜드 루켄을 신규 론칭했다.
LG패션 역시 최근 인터스포츠ㆍTNGTWㆍ헤지스 스포츠 등을 중단했다. 대신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에 모든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도 지난해 대대적으로 재론칭했던 여성복 브랜드 쿠아의 사업을 중단하고 성장성이 높은 럭키슈에뜨의 볼륨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밖의 베네통코리아가 전개했던 시슬리맨과 형지가 만든 토종 중년 SPA브랜드 CMT도 중단됐다.
◆부도ㆍ폐업 속출…살아남기 위한 절박함 "돈 되는 곳에만 집중"
이같은 현상은 의류소비가 '저가'와 '고가'로 양극화되면서 소비자들이 가격이 저렴한 SPA브랜드와 명품 브랜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 패션업체 관계자는 "의류산업에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캐주얼 의류가 3~4년 전부터 안 팔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스포츠, 여성복, 남성복 등까지 매출이 연쇄적으로 급감했다"며 "SPA 의류 아니면 명품으로 쏠리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고착되면서 중가 가격대의 여성캐주얼 시장은 완전히 무너젔다"고 전했다.
중간 가격대의 패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200억원대의 중ㆍ소 패션전문기업들이 부도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패션협회에 따르면 최근 골프브랜드로 유명한 잔디로(브리조), 앙드레김골프(케이앤제이), 벤호건(에스씨어패럴코리아), 블루미스티(H&F 인터내셔널), 가나레포츠, 굿컴퍼니 등 중소패션업체가 부도가 나거나 폐업했다.
업계 관계자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중소규모의 브랜드가 대거 정리되면서 패션시장이 대기업 중심의 빅브랜드와 SPA브랜드로 재편될 것"이라며 "살아남기 위해 돈이 될만한 브랜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절박함만이 살길"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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