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제1야당의 4선 중진 의원. ‘국민의정부’ 시절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 1995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신호탄인 ‘새정치국민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지난해 대선 당시 ‘새 인물론’ 앞세워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 선언.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여객선 침몰사고 공동대책위원장 얘기다.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15대 총선에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김 위원장은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시기 동안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겪었다.
15대와 16대 총선 당시 경기 안산갑에 출마해 34.4%와 53.1%로 재선에 성공한 그는 17대와 18대 총선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하던 김 위원장은 2009년 10·28 재보선에서 안산을에 출마, 당시 한나라당 송진섭 후보를 제치고 5년 6개월 만에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의 제2의 정치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는 19대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9.5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 4선 고지에 올랐다. 두 번의 당선과 두 번의 낙선, 그리고 다시 두 번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1987년 ‘따라오라 시여’라는 제목의 시집을 시작으로, 다수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단순조립공의 하루’는 민중가요로 만들어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