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숙다방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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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2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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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그 사람일까
그 사랑일까
문이 열리면
먼 곳을 돌아온 그대
어깨에 내린 봄볕을 털며
쌍화차를 시킨다

이제야 은발이 된 머리카락
도회의 골짜기 어디쯤서
밤을 샌 술냄새는
등진 창 역광에 빛 바랜 한철

먼 바다를 떠돌던
해풍의 배를 탔을까
가슴 깃 비린 갯내음
창가 라일락 필 때쯤
잦은 파도가 일고

찻잔을 든
저리도 파리한 손으로는
누구에게 젊은 날
아린 편지를 썼을까
사랑한다고 혹은
사랑한다고

어쩌다
봄볕 아픈 쪽 문이 열리면
또 스쳐만 가는 한없는 봄날

그대 기다리는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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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에 가면 강림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치악산 속에 있는 마을로 조선초 태종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이 고려 멸망의 한을 안고 숨어 살았던 곳이다. 태종은 산속에 은둔하며 나오지 않는 스승을 찾아 이곳까지 와 쉬어갔다는 태종대가 있다.
주변 경관이 좋아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도시에서 내려와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강림면소재지를 지나다 오래된 가정집 같은 다방이 있어 들렀다. '숙다방'이란 예스런 이름의 다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순은 벌써 넘겼을 것 같은 주인이 봄볕을 쬐다 손님을 맞고, 조용히 차를 내오고, 또 봄볕을 바래 의자에 앉아 손님 하나 들지 않는 창밖을 우두커니 쳐다보는 모습이, 평생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나른한 오후 시골다방도 주인도 나른한 봄날이었다.

숙다방 기행 [사진=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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