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한국은행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사상 최저치인 1.5%까지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내수 진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한편으로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연신 최대규모를 경신하며 무섭게 늘고 있는 가계부채가 더욱 가파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빚 만큼 상환 부담도 덩달아 커지게 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소비심리를 회복시키려는 당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면서 국내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기준금리 인하 → 가계부채 급증 → 소비위축 악순환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는 당국의 설명과 달리 시장에서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와 규모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규제를 완화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여러 차례 내린 이후 가계부채가 60조원이나 급증한 전례가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1분기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 잔액은 사상 최대인 1099조3000억원을 기록했고, 부채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현재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지난 4월 예금은행 및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765조2000억원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해 10조원 넘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가계부채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관련 정책 당국은 부채 관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수출부진과 소비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내린 금리 인하라는 긴급 처방의 효과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낮아진 금리로 갈 곳이 없어진 시중 자금이 일시적으로 증시와 부동산시장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반짝'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부동산시장의 경우 자산가들의 여유자금이 투자를 위해 유입되기 보다는 폭등하는 전·월셋값에 못이겨 저금리를 틈 타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를 부추겨 서민층의 부채만 늘리는 부작용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부채 증가로 이자 상환부담도 함께 커져 살림살이가 쪼그라들면서 결국에는 지갑을 닫게 만들어 소비가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계부채의 증가는 민간소비 확대의 제약 요인으로 향후 경기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저소득층은 평균소비성향이 높아 가계부채에 따른 소비 축소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금리 인하로 당분간 증시와 부동산 등에 자금이 몰리면서 자산버블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일시적인 증시 활황와 주택구입 붐이 경기 회복의 탈출구로 작용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기도 전에 미국 금리인상 등 글로벌 악재가 닥칠 경우 순식간에 버블이 붕괴되면서 자칫 국내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생계형 대출자, 미국 연내 금리 인상 직격탄
이처럼 안으로는 가계부채, 밖으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 경기회복의 최대 암초로 꼽힌다. 이르면 9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상하고, 시차를 두긴 하겠지만 한국은행이 이를 따라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저금리를 활용해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금리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에 불이 붙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총 가계부채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은 70% 수준인 700조~800조원으로 추산된다. 단순 계산으로 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2조원 넘게 늘어나게 된다. 특히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는 곧바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자영업자 대출도 문제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09조5000억원으로 1년 새 19조원(9.9%)나 급증했다. 여기에 사업자금 목적으로 받은 주택담보대출까지 포함하면 실제 대출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 역시 크게 증가했다. 1분기 말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비은행취급기관의 숙박·음식점업 총대출 잔액은 7조6680억원으로 지난해 말(6조4760억원)보다 18.4%나 늘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미시 정책을 통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가계의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또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제는 구조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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