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몸 하나 간신히 뉠 수 있는 작은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고시원 방에서 연극배우 김운하씨는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떠난 오래된 고시원 건물 입구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그의 부재를 슬퍼했고, 동료 연극인들과 지인들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제를 지내며 아프고 슬픈 추모의 마음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는 “후배와 동료를 진심으로 아끼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형 잡아주지 못해 미안해, 안부인사 제대로 못해 미안해, 나 살기 바빠 술 한 잔 약속 지키지 못한 이 동생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미안해 형…. 그곳에서는 좌절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마. 우리 앞에서 관객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늘 밝게 웃길 바랄게. 형은 멋진 진짜 배우였어. 잘 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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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두살의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가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1월입니다.
예술인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시작되었던 ‘긴급복지’지원 사업이 전격적으로 확대 ‧ 시행된 것은 연극배우 우봉식씨가 생활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직후인 2014년 3월이었습니다.
‘예술인복지’라는 법적 근거와 정책은 이렇게 젊은 예술가들의 가난과 외로움으로 인한 죽음 뒤에야 떠밀리듯 하나 둘 급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법은 태생적 한계가 부족했고, 예산확보는 매번 쉽지 않았으며, 정책은 표류하기 일쑤였습니다. 예술가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려왔고, 그때마다 잠시 화제가 될 뿐 달라지는 것 없이 상황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요 국정기조 중 하나로 <예술인창작안전망구축>을 강조했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유능한 예술인들이 꿈을 접는 일이 없도록 개선책 마련할 것을 주문했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창작준비금지원사업’입니다.
그런데 <예술인창작안전망구축>의 핵심 사업으로 올해 110억이 책정된 이 사업은 6월이 끝나가도록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기재부에서 수시배정 사업이다, 중복성이 우려된다,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예산을 내려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가치와 예술인의 특수성에 대해 기계적인 잣대로만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월 24일, 기재부에서는 수시배정 사업에 묶여있던 이 예산을 수시배정 예산에서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국회에서 이미 통과된 예산을 6개월 가까이 집행하지 않고 있다가, 한 젊은 예술가의 죽음이 연일 화제가 되고 정부의 책임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니 그때서야 예산을 집행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기재부의 기만적인 행정 처리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술인복지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술인활동증명’을 해야 합니다. 2015년 6월 현재 예술인활동증명을 한 예술인은 15,774명입니다.
그런데 연극배우 김운하씨는 ‘예술인활동증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예술인’으로 등록하지 못한 것은, 연극인의 경우 ‘3년에 세 작품 이상 출연’으로 활동 증명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 탓일 수도 있고, 절차와 내용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문화부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인활동증명’을 알리고, 찾아가는 서비스 등 등록을 유도하는 정부차원의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예술인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들은 얼마나 되는지 면밀하게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통해 기준 완화와 절차 간소화 등의 논란에 대비했어야 합니다.
예술인활동증명 기준에 미치지 않는 예술인이 있다면, 기준에 맞지 않아 지원 대상이 아니라 안타깝다 이야기하고 말 것이 아니라, 복지부 등 타부처와 연계해서 가능한 보편복지 서비스를 연계‧안내해주는 것까지로 이어졌어야 합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책임을 방기해온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프게 돌아보고, 어떻게 개선해갈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과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제도가 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예술인들은 10개월 507시간 (6시간 근무 기준 3달) 이상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최대 8개월간의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국의 예술과 예술인을 보호하고 지지하려는 국민의 신념과 이해, 그에 따른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오랜 세월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입니다.
정부에서는 매달 한 번 정도는 문화를 즐기자는 취지로 ‘문화가 있는 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문화 향유도 결국 문화예술인들의 창조 활동과 문화 콘텐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않습니까?
예술인복지라는 것이 예술인들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예술인들이 창조하는 활동을 향유하기 위한 투자로 보는 우리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있으나마나 한 법, 예술인의 삶과 현실을 외면하고 사각지대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 예술인복지제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조속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난’과 ‘외로움’으로 인한 예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입니다.
아무리 ‘문화융성’을 강조한다 해도 결국 헛말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찔레꽃처럼 살았던,
찔레꽃처럼 울고 슬퍼하다 그렇게 간
연극배우 김운하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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