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잘못되면 불모지', '모든 알처럼 깨질 수 있는 황금알'.
글로벌 유통 전문지 '무디리포트'가 10월호에서 국내 면세사업의 퇴보를 우려하면서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매체의 마틴 무디 회장이 직접 작성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부는 격정(The Spiraling emotions 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기사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사업자 재선정과 관련 "전문적이고 영향력 있는 강한 사업자가 라이선스(특허사업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비합리적이다"고 지적하면서 "과연 기존의 4개 사업자 중 하나라도 바뀌어서 생기는 이득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 사람들은 면세사업이 보물상자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불모지가 될 수 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롯데와 신라 같은 한국 대표 면세점은 스스로 고객 유치를 하기 위해 한류 마케팅을 적극 활용, 관광객 유치에 기여해온 점 등도 언급했다.
마틴 무디 회장은 "한국 입법부가 반재벌 정서에만 너무 치우쳐 규제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며 "정부가 과연 면세사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 오랫동안 적자 메꾸며 발전시킨 사업자는 '미운 오리 새끼' 전락
최근 몇 년간 한류 바람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이 급증하면서 국내 면세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때문에 이번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을 놓고 대기업 간 경쟁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천문학적인 상생 기금 출연 경쟁이 대표적이다. 특허를 얻으면 곧바로 막대한 수익을 거둘 것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면세시장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국내 시내면세점은 88 서울올림픽 개최와 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 영향 등으로 29개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90년대 일본 버블 경기 붕괴와 한국 외환위기 발생으로 시장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18개 면세사업자가 폐업했고, 1999년에는 11개까지 대폭 감소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면세 시장이 위축된 이유는 환경 변화에 취약한 면세 산업의 특성에 있다.
면세점은 매장 임대 중심의 백화점과는 달리 브랜드를 직접 매입, 판매하는 구조다. 반품이 불가능하고 모든 재고 관리를 면세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막대한 자본력이나 운영 경험이 없으면 급격한 외부환경 변화를 버텨내기 힘든 구조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손을 털고 나온 이유다.
게다가 면세사업은 초기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반면 수익 달성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2003년 문을 연 롯데 제주면세점이 흑자를 달성하기까지 9년의 세월이 걸렸다. 5년이란 특허 시한은 사업을 제대로 펼쳐보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점과 글로벌 면세시장에서 대형화된 면세점들의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면세 특허 = 매출 급신장'으로 여기는 기업들에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현재 국내 사업자 가운데 세계 시장에 명함이라도 내민 곳은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두 곳에 불과하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4조3000억원으로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렸고, 2조5000억원의 신라면세점은 세계 7위 수준이다. 양사 모두 규모의 경제를 실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 기업들과 간신히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편, 면세 특허 쟁탈전이 과열 양상을 띄면서 부정적 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허 심사 결과 기존 사업자가 탈락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5년 동안 쌓아온 각종 인프라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면세점에 몸담고 있던 직원들도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이번 특허 심사에서 해당 심사위원들이 단순한 규제 논리에 치우쳐 국가경쟁력마저 잃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질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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