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는 TV 프로그램 중 KBS의 '명견만리' 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우리사회 문제점과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시사성이 아주 강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현안들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 인지하고 있거나 해결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방청객과 주제 발표자(문제 제기자)의 대화를 통해 시청자까지도 소통하는 형식이라 그 공감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를 주제로 방송했는데 다소 놀라웠던 것은 '현금없이 은퇴하는 첫 세대' 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 붐 세대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조명이었다. 자녀 사교육비와 결혼 그리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퇴 이전까지의 소득을 대부분 소진해 정작 본인이 은퇴할 시점엔 현금이 없다는 것이다. 공적연금을 비롯한 노후 이전소득이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와 맞물려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매우 컸다.
물론 노후에 돈만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노후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은퇴를 한다고 해서 돈의 소비가 확연히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삶의 연속에 들어가는 의식주를 위해 기본적인 현금이 필요하다. 빈도야 줄겠지만 그간 해 오던 사회생활도 칼로 두부 자르듯 정리가 되지 않는다. 50대 이후 남성 우울증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는 것으로 봐선 하던 일을 중단하게 되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의료비 지출이 늘 수밖에 없다.
현대과학으로도 논란이 있지만 고대 사람들은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노후나 은퇴라는 말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풍수를 불러 묏자리를 잡고 정성스레 수의를 만들고 노잣돈도 챙겼다. 그게 노후준비였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노후나 은퇴라는 말이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경제는 늘 호황을 이어 갈 것이라 믿었고 은퇴를 하면 풍광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은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이어가던 1980년대가 응답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이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중은행과 대형 보험사들은 이러한 사회현상과 불안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프라이빗 뱅킹이나 자산관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대상은 전 국민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정 수수료를 부담하고 이러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된다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경제상식이다. 사회적 수요가 있으면 법률적인 공급이 따른다. 역시 이 부분도 기본 상식이다. 오는 12월 23일, 법률로 규정된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된다. 바로 '노후준비 지원법(유재중의원 대표발의)'이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에, 노후준비 실태조사 결과 국민의 70% 이상이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심각한 저출산 현상과 겹치면서 미국이나 이스라엘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해 국민연금공단에서는 2008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를 중심으로 약 250만 명에게 노후준비서비스를 제공했다. 재무, 건강, 여가 및 대인관계를 중심으로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고, 노후준비 전문 사이트인 '내연금(http://csa.nps.or.kr)'도 운영하고 있다.
새롭게 시행되는 '노후준비 지원법'은 공단의 노후준비서비스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립해 시행되는 법률이다. 공단 본부에 중앙노후준비센터를 설치하고 각 지사에서 운영 중이던 행복노후설계선터를 지역노후준비지원센터로 전환해 운영하도록 했다. 물론 전 국민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비용은 무료다. 국민의 체계적인 노후준비를 위해 진단과 상담서비스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 공공기관, 사회시설 등과 연계해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노후준비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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