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임의택 기자 =‘정의사회’ 구현에 목숨 거는 히어로를 예상했다면 한참 잘못 생각했다. 마치 ‘언프리티 랩스타’의 래퍼처럼 늘 뭔가를 중얼거리고, 응징 상대에게는 댄스를 추듯 다가가 총질을 해댄다. 취미는 팬케이크 굽기인데, 먹지는 않고 30만 개 정도 구운 기록도 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남자, ‘데드풀’이야기다.
데드풀의 주인공 웨이드 윌슨은 암을 치료하려다 잔인한 비밀 실험 프로젝트에 빠져 흉측한 몰골로 변해버리지만, 대신 절대 죽지 않는 능력이 생긴다. 복수에 나서기 위해 스스로 흰 유니폼을 만들어 입었지만 싸울 때마다 피가 묻어나고, 세탁방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색깔 있는 옷을 입으라”는 충고를 듣고 빨간 유니폼을 만들어 입는다. 유머지수는 별 여섯 개, 전투력은 별 네 개지만 정의감이나 책임감은 전혀 없는 독특한 캐릭터다.
영화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마치 3D 영화에서처럼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오가는 오프닝 크레딧이 보통 ‘선수’의 느낌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메가폰은 시각효과와 애니메이션 연출자였던 팀 밀러가 잡았다. 감독으로서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주인공은 시작부터 총격전을 벌이는데, 이때 다리 난간에서 뛰어든 차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다. 우리나라에도 공식 수입되는 이 차는 육중한 외관과 든든한 차체 덕에 대통령 경호실에서도 사용한다.
영화에서 악당들이 타다가 뒤집어지는 서버번은 2014년 1월까지 판매된 11세대 모델이다. 측면 사각지대 경보시스템을 처음 탑재했고, 후방 카메라를 리어뷰 미러(룸 미러)에 내장해 큰 차체를 모는 부담감을 덜었다. 2010년에는 데뷔 75주년 기념 다이아몬드 에디션도 나왔다.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격투신에 등장하는 조연들도 화려하다. 그 중 하나는 새턴 이온이다. GM은 물밀듯이 들어오는 일본차에 대항하기 위해 1985년 새턴 디비전(사업부)을 만드는데, 여기서 나온 차가 이온, 뷰, 스카이 같은 차들이다.
새턴은 SL, 뷰처럼 역대급 못난이 외모와 형편없는 품질 때문에 외면 받으면서 판매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GM은 파산 위기를 앞둔 2009년, 새턴 브랜드 매각을 추진했으나 협상이 결렬되자 결국 2010년 10월에 사업부를 해체했다.
인지도가 낮은 비운의 브랜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었다. 한국타이어가 2005년 GM에 처음 타이어를 공급한 차가 바로 새턴 이온이었고, 한국GM은 새턴 뷰의 후기형 모델을 ‘윈스톰 맥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생산해 판매했다.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 중 하나는 ‘번역’이다. ‘약 빨고 번역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맛깔 나는 대사가 일품. 번역을 맡은 황석희 번역가가 스타로 떠올랐을 정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방심한 관객을 향한 마지막 대사가 나온다.
“뭐야? 아직도 집에 안 갔어? 끝났어~ 혹시 다음 편 티저를 기대한 거야?? 우린 돈 없어서 그딴 거 못해.”
‘데드풀’은 마블 역사상 가장 ‘소박한’ 7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영화다. 그러나 미국에서 개봉 3일 만에 1억3500만 달러(약 1600억원)를 벌어들이며, 마블 영화 가운데 최단 기간에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월17일 개봉했고,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15일 현재 32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