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2018년 체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던 20대 국회가 개원 첫발부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개원 첫날인 30일 52건의 무더기 법안을 발의한 것과는 달리, 둘째 날인 31일 법안 발의가 종적을 감췄다. 20대 국회 ‘1호 법안’의 상징성이 사라지자, 첫날 ‘묻지마 발의’에 나섰던 여·야 의원들이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민낯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발의된 법안 중 일부는 19대 국회에서 폐지된 안의 자구 내용까지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지역구 민원성 챙기기 법안은 물론, 지난 국회에서 무분별한 법안 연계 전략으로 쓴 ‘화약고 법안’도 포함됐다. 거부권 정국으로 협치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여·야가 타협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면, 법안 연계를 볼모로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정량적 발의에 묶인 20대 국회
31일(오후 2시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이틀간 접수된 법안은 총 59건이다. 개원 첫날에는 52건(법안 51건·의결안 1건), 둘째 날에는 7건이 접수된 셈이다. 이는 19대 국회 개원 첫날 접수한 53건보다 낮은 수치다. 다만 당시에는 대선을 불과 8개월 앞두고 여·야가 31건의 당론 법안을 발의했다. 의원 발의는 20대 국회가 더 많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접수된 7건 가운데 의원 발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상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등 2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정부가 발의한 2015 회계연도 결산을 비롯해 △2015 회계연도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2015 회계연도 기금운용평가보고서 △2016년 기금존치평가보고서 △2015 회계연도 결산검사결과 보고 등이었다.
국회 개원 첫째 날과 둘째 날 입법 발의안의 차이는 ‘1호 법안’을 둘러싼 선점 효과 경쟁과 무관치 않다. 1호 법안(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 설치 특별법) 주인공인 박정 더민주 의원 측은 법안 접수를 위해 27시간이나 국회 의안과 의안접수센터에 진을 쳤다.
하지만 발의 즉시 “민원성 법안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울릉도·독도지역 지원 특별법’도 민원성 법안으로 꼽힌다.
◆의사일정 요일제 등 시스템 개선 절실
일각에선 정량적 입법에 묶인 20대 국회가 무더기로 법안을 폐기한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19대 국회 때 발의된 1만5444건의 의원 입법 중 9809건은 ‘폐기’ 운명을 맞았다.
이번에도 재탕적 법안이 무더기로 발의,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이학재 의원 대표발의)을 비롯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명수 의원)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김성태 의원) △산업재해보상보험법·파견법 개정안(이완영 의원) 등을 발의했다. 이 중 다수는 지난 국회 때 쟁점 법안 연계 전략에 썼던 법안이다. 무쟁점 법안마저 볼모로 잡는 협상의 덫으로 작용했던 법안이라는 얘기다.
더민주 의원도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위성곤 의원 대표발의)과 일명 칼퇴근법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찬열 의원 대표발의) 등을 접수했다. 이 의원은 개원 첫날 칼퇴근법 등 10개의 법안을 발의, 최다 법안 발의 의원에 올랐다.
19대 때 발의된 법안과 자구 내용이 같은 안도 발의됐다. 규제개혁특별법(김광림 새누리당 의원)과 정부조직법 개정안(홍문표 새누리당 의원), 공직선거법 개정안(윤후덕 더민주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재교 세종대 자유공학부 교수(변호사)는 본보와 통화에서 “예측 가능한 입법안을 낼 수 있도록 근본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 개혁자문위원회는 지지난해 ‘의사일정 요일제’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여·야 합의에 실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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