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5년(1396년) 이성계가 건립한 목멱신사(木覓神祠), 즉 국사당은 서울 남산타워 옆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반드시 산천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 애국가에 '남산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가 울창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해 소나무를 베고 아카시아 등의 잡목을 심어 산의 경관을 많이 해쳤다. 1925년 일제가 조선신궁을 지으며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지금도 돌아가지 못 하고 있다.
원래 자리를 떠난 문화재는 다시 터를 되찾아 한 몸이 돼야 한다. 얼마 전 서울 남산 N서울타워 광장에서 진행된 '목멱산(남산) 대천제'에서는 '남산 국사당 제자리 찾기 범국민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됐다.
1975년 8월 완공된 이 타워는 2000년 YTN이 인수한 후 2005년 개보수해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 대다수는 "남산 N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이 타워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공간적 중심이자 상징적인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금 그 자리에 두어도 과연 괜찮은 걸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도민준 커플이 이곳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걸고 소원을 비는 장면을 보고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은 루프 테라스의 철제 난간에 사랑을 기원하는 자물쇠를 남기고 돌아간다. 하지만 이 '사랑의 자물쇠'가 수천 개로 늘면서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 방문객 안전을 위협하고, 자물쇠에서 떨어지는 녹물은 식물과 야생동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는 2007년 폰테 밀비오 다리 일대에 자물쇠를 달다 적발되면 50유로(약 6만3000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제재안을 도입하기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근대 백년 민속풍물전'에는 정선·양양 지역에서 제거된 쇠말뚝을 선보였다. 패널에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의 정기와 맥을 말살하려고 전국 명산에 쇠말뚝을 박거나, 쇳물을 녹여 붓거나 숯이나 항아리를 파묻었다…. 즉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한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 지기를 눌러 인재 배출과 정기를 누르고자 한 것이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일제의 소행을 입증할 근거는 없지만, 필요이상으로 큰 모양새를 보면 그게 아니라고 할 증거도 없는 실정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지난 2012년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산제를 지내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에 반대하며 "쇠말뚝을 박은 일제의 행위는 케이블카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신혜정 작가는 자신의 신간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에서 "깨끗한 전기를 얻는다는 핵연료 전기인데 송전탑을 어마어마하게 박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이 나라 멧봉우리마다 '쇠말뚝'을 박은 짓이 나쁘다고들 목소리를 높이던 때가 그리 멀잖은 옛날 같은데, 한겨레 스스로 이 나라 곳곳에 '일제강점기 쇠말뚝'은 우습지도 않은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송전탑'을 끝없이 박고 또 박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22일 밤 9시30분부터 5분간 '에너지의 날' 맞이 전국 소등행사가 진행된 바 있다. 이날 남산N타워 역시 불을 껐다. 산은 단순하게 명사화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나 물건이 아니다. 산에는 개천도 흐르고 다람쥐도 있고 나무가 어우러진 숲도 있다. 산은 생태이이자 환경이며, 생명이고 바로 '우리'이다. 그런데도 남산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산들은 모두 불쌍하다. 도무지 모두들 잠을 잘 수가 없다. 도심지 불빛으로도 피곤한데 산에 타워까지 만들어 불야성을 이뤄 우리 남산은 점점 신경 노이로제에 걸려간다. 산도 푹 잘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야간등행까지 하면서 사람들은 산을 괴롭힌다. 낮에도 제대로 편히 쉬지 못한 그들에게서 우리는 낮과 같은 밤을 뺏고 있다. 우리가 쉬고 싶듯이 산과 숲의 친구들도 쉬고 싶지 않을까?
남산도 쉬고 싶다. 일제 말뚝, 송전탑보다 큰 N타워를 이젠 철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63빌딩도 있고 123층의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건립 중이니 굳이 옮길 필요도 없다. 가능하면 남산 주변의 송전탑이나 안테나탑 그리고 케이블카 등도 철거하고 한 10년간 휴식제를 실시하면 안 될까? 랜드마크가 꼭 필요하다면 대신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생태공원화하는 용산공원에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평화와 인류애의 구현을 상징하는 기념물적인 오브제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 발전의 근간이 되어온 철강·조선업의 발전을 기원하며 통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진 '배'가 적당하지 않을는지. 가능하다면 '세월호'를 인양해 옮기거나 그것을 상징하는 선박을 용산공원에서 건조하면 어떨까? 고통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우리 국민들을 건네 주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되어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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