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신인 3할도 1998년 강동우가 마지막
아버지 이종범, 1993년 대졸 신인으로 타율 0.280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바람의 손자' 이정후(19·넥센)가 KBO리그에 몰고 온 바람은 미풍이 아니었다. 5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 3할대 중반 타율을 유지하며 사상 첫 고졸 신인 규정타석 타율 3할을 정조준한다.
이번 시즌 49경기에 출전한 이정후는 타율 0.343(172타수 59안타), 2홈런, 19타점, 38득점, 도루 3개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율은 리그 8위, 득점은 3위로 공격 부문 상위권에 당당하게 이름 석 자를 올려놨다.
이정후는 경기를 치를수록 진화하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4월까지 타율 0.306(98타수 30안타)을 기록한 이정후는 5월 월간 타율 0.392(74타수 29안타)로 오히려 타율이 상승했다.
보통 신인 타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 저하와 약점 노출로 타율이 떨어지기 일쑤지만, 이정후는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단순히 타율만 올라간 게 아니다. 4월 한 달 동안 볼넷 5개를 얻었던 이정후는 최근 삼성 라이온즈와 3연전에서만 볼넷 4개를 골랐다. 여기에 최근 4경기 연속 2루타로 장타력마저 입증했다.
이정후는 팀이 치른 49경기에 모두 출전해 전 경기 출장 기록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고교야구 주말 리그에서만 뛰던 신인이 일주일에 6경기씩 개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 이정후는 9번 타자로 출전하며 체력을 보충한다. 9번 타자는 1번이나 2번 타자로 나갈 때보다 경기당 최소 한 타석은 적게 들어간다.
체력을 회복하니 성적도 따라왔다. 이정후는 9번 타자로 출전했을 때 타율 0.500(44타수 22안타)을 쳤다. OPS(장타율+출루율)는 무려 1.259다. 표본이 적긴 해도, 이쯤 되면 '최강의 9번 타자'라고 할 만하다.
장정석 넥센 감독은 이정후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2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난 장 감독은 "9번 타순에서 워낙 잘하니 웬만하면 (타순을) 놔두려고 한다. 항상 우리 팀 투수들에게 '8, 9번 타자를 살려주면 그 경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하는데, 이정후가 상대에게 그런 역할을 해준다"며 "하위타선이라 체력에서도 조금은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정후가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KBO리그 사상 첫 고졸 신인 규정타석 3할까지 넘볼 만하다. 올해 그가 시즌 규정타석(446타석)을 채운다고 가정했을 때 남은 경기에서 타율 0.270~280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고졸 신인이 규정타석만 채워도 대기록이다. 고교 졸업 다음 해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선수 중 규정타석을 충족한 건 역대 5명뿐이다. 그중 한 명이 1995년 이승엽(삼성·타율 0.285)이며, 마지막 사례는 2009년 안치홍(KIA·타율 0.235)이다.
올해 이정후는 만 19세다. KBO리그에서 만 19세로 규정타석 타율 3할을 넘긴 건 단 한 명으로, 구천서(OB)는 프로 원년인 1982년 타율 0.308을 남겼다.
하지만 구천서는 신일고 졸업 뒤 1981년 실업야구 상업은행에서 뛴 '중고신인'이었다. 이정후가 올해 타율 3할을 넘기면 첫 사례다.
신인 3할은 대졸 선수로 범위를 확장해도 12명만 달성한 기록이다. 1998년 강동우(삼성)가 0.300으로 달성한 뒤 19년째 맥이 끊겼다.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도 데뷔 시즌인 1993년 해태에서 타율 0.280을 남겼다.
이정후에게 가장 큰 고비는 여름이다. 베테랑 선수도 여름이면 체력 고갈로 힘겨워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정후가 고척 스카이돔을 홈으로 쓰는 건 행운이다. 고척 스카이돔은 한여름에도 25~27도를 유지한다. 지난해 여름 선수들은 이미 돔구장의 혜택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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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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