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착각 같지 않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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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영 증권부 부장
입력 2017-07-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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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영 기자= 기억은 바뀌기도 한다. 과거 연인과 나쁘지 않게 헤어졌다, 이렇게 확신한다 치자. 상대는 줄곧 넌더리를 쳐왔을지 모른다. 심지어 만나는 동안에도. 8월 개봉하는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해 떠올리는 것', 이게 기억이라는 거다.

두 공기업 사장을 사나흘쯤 건너서 만났다. 둘 다 행시 출신으로 금융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은행에나 무섭지 고개만 숙이는 자리. 금융서비스국장을 지낸 사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나갔으니까 금융서비스국장을 맡았겠지. 증권사를 챙기던 전 자본시장국장에게는 공감하기가 쉬웠다. 마찬가지로 잠시 쉬어 가는 자리라고 깎아내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알아듣기 쉽게 이유를 댔다. 자본시장국장 치고 1년 넘게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나. 금융서비스국장은 안 그렇단다.

그래서 금융위에 확인했다. 올해까지 딱 10년 동안 금융서비스국장, 자본시장국장을 맡은 사람이 제각각 몇 명인지. 답은 똑같이 8명씩 모두 16명이다. 물론 사람마다 근속연수는 달랐다. 그래도 1인 평균 근속연수에서는 15개월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금융시장국장이 오래 버티거나 자본시장국장이라고 금세 물러나지 않았다. 전 자본시장국장이 한 얘기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거다.

일부러 과장하지는 않았겠지. 근속연수를 다시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범위는 박근혜 정부로 좁혔다. 금융서비스국장은 모두 3명에 평균 15개월 일했다. 자본시장국장은 이보다 한 명 많았다. 당연히 근속연수도 평균 10개월밖에 안 됐다. 가장 짧게는 8개월 만에 떠나기도 했다. 서태종 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최단기 자본시장국장이다. 일부는 쉬어 가는 자리처럼 느낄 법했다.

덩치로 은행은 증권사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인지 금융 정책을 증권사보다는 은행 위주로 만든다는 얘기가 많다. 증권사와 은행이 다퉈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은행이 이겨야 끝난다. 요즘에는 신탁업이나 소액지급결제가 문제가 됐다. 은행이 지급결제를, 증권사는 신탁을 제각각 자기 밥그릇이라면서 으르렁대고 있다. 당국이 또다시 은행 편을 들더라도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이렇게 번번이 밀리기만 하면 잠시 쉬어 간다는 생각이 당연할지 모른다. 반드시 지는 일에 왜 힘을 쏟겠나.

금융서비스국장이 고개만 숙이는 이유도 찾자면 많다. 기획재정부처럼 덩치 큰 부처는 힘도 세다. 국회와 주거니(예산) 받거니(법안)가 가능하다. 반대로 금융위는 모든 부처 가운데 한참 뒷전이다. 국회에도 줄 게 없다. 밀고 당기기가 안 된다. 금융을 번듯한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적다. 구조조정이나 가계부채를 빼면 기억에 남는 금융 뉴스가 없다. 심지어 금융위를 동네북으로 여기기도 한다. 금융위가 공정거래위원회보다 나쁜 짓을 많이 했다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얼마 전 기자단 앞에서 던진 얘기다. 문재인 내각 안에서 첫 팀킬로 기억될지 모른다. 물론 뒤늦게 실언이라고 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후에.

애정이 있으니 전 국장 둘도 불만을 얘기했을 거다. 김상조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실언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표현에 문제가 있었지만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기는 똑같을 거다. 요즘 금융권에서 최대 관심사는 새 금융위 수장이다.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장 후보로 정해졌다. 금융위를 크게 흔들어 놓을 사람은 아니다, 이런 평이 많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 사례가 적지 않다. 최종구 후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조직원이 고개 숙이거나 쉬기만 한다면 새 장관도 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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