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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둥이들 "韓·中, 잘 알면서도 모르는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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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17-07-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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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생 한·중 학생 14명, 수교 25주년 맞아 양국 오가며 교류 행사

한·중 수교동이들이 중국 베이징(北京) 싼리툰(三裏屯)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성균중국연구소 제공]


아주차이나 김봉철 기자 = # 지난 6일 오전 독일 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인터콘티넨털호텔.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25년 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공유해 온 전략적 파트너였지만, 최근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 같은 날 비슷한 시각 중국 베이징(北京). 14명의 젊은 학생들은 버스 안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버스를 타고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국인 학생 7명과 중국인 학생 7명으로 구성된 ‘수교둥이’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수교둥이들은 청더에서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의 ‘열하일기(热河日记)’에 묘사된 피서산장(避暑山庄)을 방문해 중국 전통 문화의 독특한 매력을 함께 만끽했다.

독일과 중국, 전혀 다른 공간만큼이나 분위기도 달랐다. 정치·외교적인 긴장감과는 반대로 수교둥이들의 얼굴은 해맑았다. 한·중 관계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수교둥이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한·중 청년 연구자 육성이라는 장기 비전 아래 마련됐다. 한·중 관계나 동북아 연구자 가운데 1992년에 출생한 수교둥이를 선발해 미래의 견실한 연구자로 육성하는 목적도 있다.

14명의 수교둥이들은 지난 2일부터 8박 9일 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숙식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한·중 정상이 마주한 6일은 공교롭게도 이들이 중국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한지를 이용해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성균중국연구소]


아주차이나는 한국인과 중국인 학생 각각 2명의 수교둥이들과의 미니 인터뷰를 통해 청년의 눈에 비친 한·중 관계 25주년을 되짚어 봤다.

이들은 모두 민간 교류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공감했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모르는 게 한·중 관계의 현 주소라는 것도 재확인했다.

단순한 ‘관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심도 깊은 민간 교류를 원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SNS 세대답게 위챗이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해 빠르게 친해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수교둥이 행사는 3개조로 나눠 팀별 미션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국에서 789예술구을 탐방했고, 난로구샹(南锣鼓巷)에서 베이징의 골목(후통·胡同)문화를 체험했다. 주중한국문화원과 왕푸징(王府井)에도 갔다.

주중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의 여러 가지 IT기기와 문화상품, 한국 서적들을 감상했으며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활동을 했다.

신지선씨(성균관대)는 “베이징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면서 “역시 많이 대화를 나눠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1992년은 한·중 수교 말고도 덩샤오핑(鄧小平)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천명한 해이기도 하다.

덩샤오핑은 이 해 1월 18일부터 2월 22일까지 우한(武漢)·선전(深圳)·광저우(廣州)·상하이(上海) 등을 돌면서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역설했다.

중국 정부는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보수파의 반대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에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중국은 남순강화를 계기로 다시 개혁·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후 중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 중국의 경제 발전은 한국과의 정치·외교적인 마찰을 야기했다. 대(對) 중국 수출이 한국의 무역 수출 비중에서 2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성균관대학교 명륜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성균중국연구소 제공]


지린(吉林)대에 재학 중인 왕정쥔(王政钧)은 “중국과 한국은 경제, 관광, 문화 모든 면에서 깊은 교류를 하고 있다”면서 “한·중 관계가 냉각일 때 우리는 왜 이런 행사에서 우정을 나누게 됐는지 곱씹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수교둥이 7명은 한국에서 서울시청,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옥마을,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돌아본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올해는 1992년생 수교둥이에게 의미 있는 해”라며 “양국의 청년들이 앞으로 많은 교류를 하고, 이들이 25살을 더 먹은 후에는 한·중 관계가 더 발전돼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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