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로 성북구청장이 월곡2동주민센터에서 얼굴없는 천사에게서 받은 쌀을 옮기고 있다.[사진=성북구 제공]
새해가 막 지난 1월 3일 오후 3시께. 서울 성북구 월곡2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경북 봉화군에서 20㎏ 쌀 300포를 구입해 주민센터로 보내니, 어려운 구민들에게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봤지만, 이내 해바라기 웃음을 지었다. 물품은 열흘 가량이 흐른 14일에 도착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관내 군인, 경찰들이 모여 주민센터로 옮겼다.
2019년에도 어김없이 쌀을 보내온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은 2011년 시작됐다. 매년 쌀 300포씩, 지금까지 모두 1억5000여 만원 상당의 2700포를 익명으로 기부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해마다 월곡2동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외된 이웃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고 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이들을 돕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가슴이 뭉클하다"고 전했다.
동대문구 '사랑의 쌀 전달식'에서 유덕열 구청장(가운데)과 '나정순할매쭈꾸미' 나정순 대표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동대문구 제공]
동대문구에서도 맛집 동네로 불리는 용두동. 이곳에서는 특히 매콤한 맛으로 사랑받는 '주꾸미 볶음'이 유명하다. 현지의 오랜 가게 가운데 한 곳인 '나정순할매쭈꾸미' 집의 나정순 대표는 '사랑의 쌀' 기탁자로도 잘 알려졌다. 올해도 이달 21일 동대문구청을 찾아 설 명절을 앞두고 힘든 이웃돕기를 실천했다.
나 대표는 정성스레 마련한 10㎏짜리 쌀 400포를 건넸다. 나정순할매쭈꾸미는 2015년부터 온정을 나누고 있다. 이날까지 총 1만8000㎏, 4000여 만원 상당이 모여졌다. 동대문구는 쌀을 용신동, 제기동, 회기동, 휘경1·2동 등지 취약계층에게 보낼 예정이다. 유덕열 구청장은 "지역의 어려운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나정순 대표의 따뜻한 취지를 담아 꼭 필요한 곳에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응암2동에서 20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자신의 사업장 앞에서 쌀, 라면 등 여러 식품 제공하는 주민이 있다.[사진=은평구 제공]
은평구 응암2동 내 천사의 기부는 2004년 이후 16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홀몸 어르신들 등을 위해 매월 동주민센터를 찾아와 10㎏ 쌀 8포와 제철 과일을 놓고 간다.이번 설 명절에는 기부된 쌀로 응암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저소득가정 어르신 120명에게 떡국용 떡을 만들어 전할 계획이다. 누구보다 춥고 긴 겨울을 견뎌야하는 이웃들에게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자신의 사업장 앞에서 쌀, 라면, 계란 등 다채로운 먹거리를 나누는 '나눔천사'도 있다. 의류업체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사업 수익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되돌리려, 사무실 안에 쌀뒤주를 놓아두고 한주간 쌀 30봉지를 모으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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