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시장은 다카이치 정권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대규모 재정 지출(돈 풀기)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고 엔화 약세(엔저)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선거 직후 시장의 움직임은 이와 정반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선거 전후로 쌓여있던 '엔 매도' 포지션이 정권 안정과 미국의 경제 지표 부진 등을 계기로 대거 청산되면서 엔화 가치가 오히려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달러=154엔대 초반까지 하락하며 지난달 30일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처럼 예상을 깬 엔고 현상의 배경에는 우선 정권 안정에 따른 시장의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리소나 홀딩스의 이구치 케이이치 선임 전략투자가는 "정권 기반이 안정되어 감세를 주장하는 야당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시장의 안도감을 전했다. 즉, 압승을 거둔 다카이치 정권이 무리한 정책보다는 시장 신뢰를 의식한 정책 조율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엔화 환매수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둔화 신호 역시 엔고 현상을 부채질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12월 소매판매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자, 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조기에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며 달러 약세를 유도했다. CIBC 캐피털 마켓의 알리 자페리 이코노미스트는 "노동 시장이 냉각되면서 가계가 미래 고용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것이 소비 부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0일 발표된 고용비용지수(ECI) 상승률도 예상치를 밑돌며 달러 매도세를 강화했다.
이에 외환시장에서는 일시적이나마 엔고 현상이 나타나며 일본 정부는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내달 19일로 예정된 트럼프-다카이치 정상회담이 향후 엔화 환율의 더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자국 금융 시장의 안정을 바라는 미국이 일본에 금리 인상을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엔저를 미국 무역에 불리한 요소로 보고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일본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어 일본 내 금리가 통제 불능으로 튀어 오를 경우,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인 일본의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대거 팔아치워 미국의 금리까지 동반 상승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닛케이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시각을 인용했다. 베선트 장관은 "일본 정부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자유도를 확보하는 것이 과도한 환율 변동 회피에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닛케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자국 금리의 불안정을 막고 불균형한 수출 경쟁력을 바로잡기 위해, 일본에 '금리 인상을 통한 질서 있는 엔저 해소'라는 숙제를 던질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일본 내부의 복잡한 딜레마에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요구를 수용하자니 1342조 엔(약 1경2717조원)에 달하는 빚의 이자 부담이 폭증하고, 거부하자니 통상 압박이 거세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일본 내 쌀 부족 사태 등을 언급하며 쌀 시장의 추가 개방은 물론, 자동차 안전 기준과 같은 비관세 장벽을 대폭 낮추라는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진퇴양난 속에서도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음식료품 소비세의 2년간 한시적 면제에 대해 "약속한 것은 진지하게 실행해야 한다"며 "총리는 한 번 말하면 흔들리지 않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타야마 재무상은 이번 감세가 2년 한시적 조치임을 명확히 하며 감세 연장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무상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 정부가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경기 부양(재정 확장)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은 '한시적 조치'라는 정부의 방어적 설명보다 '외환보유액 활용' 가능성이 가져올 파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이 미 국채로 구성된 만큼, 이를 처분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미국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 오히려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시계는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가 돈을 풀고 미 국채 매도 가능성까지 시사할수록 인플레이션과 시장 불안을 억제해야 하는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이라는 브레이크를 더 강하게 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권 시장에서는 4월까지의 추가 금리 인상 확률이 80%에 육박하고 있으며, 10일 도쿄 시장에서 신규 발행된 2년물 국채 금리는 1.31%까지 상승하며 1996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사상 최대의 부채를 안고 감세 정책을 강행하는 다카이치 정권이 3월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가 향후 일본 경제와 엔화 환율의 진정한 향방을 가를 것이다. 정권 안정에 따른 일시적 안도감을 넘어, 정책의 실질적인 진가를 가늠하려는 시장의 눈이 이제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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