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취재 후기] 15일자 정율성 기사를 쓰면서, 마음을 깊이 울린 부분은, 중국 연안(延安)에 몰린 젊은 혁명가들의 풍경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이념의 세상을 살아간 그들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듯한 기분이랄까.
연안의 연하수 언덕에 옹기종기 앉은 청년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이내 합창이 되고 노래는 노래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가슴엔 세상을 바꿀 열정이 끓고 있고 현실은 생사를 넘나드는 험지인데 노래는 흘러넘쳤다.
연안은 젊디젊은 창도(唱都)였다. 정율성은 그토록 목울대를 씰룩이는 청춘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노래를 수혈해준 셈이다. 스스로도 젊은 투사로서 연안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비장한 꿈을 곡조 속에 아로새겼다. 정율성이 작곡한 '연안송'은 노래를 넘어 그들의 소울(soul)이었다. 정율성이 만들어준 푸른 감성의 통로를 타고 그들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렀다.
"전투를 치르면서도 모두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게 하고 분노와 용기를 돋우는 그 노래.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곳곳에 연안송이 들렸습니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고
연하강 물결 위에 달빛 흐르네
봄바람 들판으로 솔솔 불어치고
산과 산 철벽 이뤘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정율성의 '연안송'을 번역한 가사
이념의 저쪽, 전쟁의 저쪽에선, 저런 풍경이 있었다. 정율성은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