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상외교로 동력을 잃어가던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깜짝 판문점 회동’ 이후 2~3주 내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이 지난주 외교 경로를 통해 북측에 실무협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판문점 회동 후 3주째에 접어드는 이번 주에 양국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될지 이목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입장 차이로 양 정상이 대화 결렬을 외칠 때마다 끈질긴 설득과 굳건한 인내심으로 남·북·미 정상 간 신뢰를 구축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적극적 리더십은 2018년 진행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2018~2019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달 30일 성사된 남·북·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으로 뚜렷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숙제도 분명하게 확인됐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성의를 표시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 조치가 없다면서 여전히 압박하고 있다. 북한 역시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등 체제보장에 대한 유의미한 첫 발걸음을 떼지 않는다면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본 북·미 관계의 SWOT(강점·약점·기회·위협) 중 ‘강점’은 문 대통령 집권 후 적극적인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남·북·미 지도자들 사이에 상당한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비록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됐지만, 문 대통령이 다수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든든한 뒷배로 자리매김하면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어간 덕분에 한반도 정세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2017년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절대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문 대통령의 적극적 한·미 공조와 끈질긴 대북 설득을 통해 남북 정상, 북·미 정상 간 신뢰 구축에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짚었다.
정 본부장은 “비록 비핵화와 상응 조치 로드맵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다수의 회담을 통해 구축된 신뢰관계는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제재 해제의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약점’이다. 미국은 영변 핵 단지를 넘어서는 ‘추가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영변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북·미 간 근본적인 비핵화 개념에 대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같은 추상적인 합의를 하는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에 장애가 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 유일한 레버리지(지렛대)는 ‘대북 제재’이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미 모두 상대국 정상에 호감이 있고, 한국의 협력확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건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미 정상회동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라는 공통적 지향을 국제사회에 확인시킨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 회동을 통해 한국의 중재자·촉진자로서의 역할도 재확인됐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원 박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을 한반도로 불러들인 것과 북·미 정상 간 단독회동이 이뤄진 것, 북·미 두 정상의 옆자리를 지킨 것도 한국과 문 대통령이었다”면서 “최근 미국이 비핵화 문제에 유연한 접근과 동시적·병행적 진전을 표방하게 된 데에도 한국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에 잠재적 ‘위기’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단적인 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시 주석은 2013년 5월 김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비핵화 언급 없이는 만나주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미·중 패권경쟁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북측의 손을 잡았다”면서 “비핵화 진전이 없음에도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얼굴을 바꾸는 중국을 통해 북핵 폐기환경이 한층 어려워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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