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은 재개발에 상처받은 주민들에게 건네는 위로"

전국 1호 도시재생 사업 선정, 창신·숭인동 직접 가보니

30일 채석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종로구 창신, 숭인동의 전경.[사진=한지연 기자. 아주경제 DB]

"재개발에서 소외된 지역과 주민들은 야전병원에 놓인 환자입니다. 도시재생의 1번은 사람을 치유하는 겁니다. 개발의 논리와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같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창신·숭인동에 활발하게 유입되고 있다는 게 이번 사업의 성과입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마스터플래너인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30일 기자와 만나 이 지역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창신·숭인동은 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됐지만 주민들의 요구로 2013년 해제됐다가 이듬해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돼 2014년부터 최근까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창신·숭인동은 낙산 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로 남산과 동대문 DDP, 구제패션거리로 유명한 동묘시장에 인접했다.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동대문역, 6호선 창신역 등 무려 3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이른바 '황금역세권'이다. 그러나 유독 개발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서울시는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을 위해 크게 △주거환경재생 △봉재재생 △관광자원 △주민역량강화 등 4가지에 방점을 찍었다. 대표시설은 고지대에 자리잡아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채석장 전망대다.

1200여개에 달하는 봉제공장이 있는 지역특성을 살려 설립한 봉제역사관도 개관 1년만에 2만5000명이 다녀갔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봉제를 배워보겠다고 찾아왔다가 아예 창업하게 된 '데님연구소'도 성업중이다.

창신숭인동의 명소로 자리잡은 산마루 놀이터, 골무형상을 한 놀이터 외관이 눈길을 끈다. [사진=한지연 기자.아주경제 DB]

도시재생의 가장 큰 성과는 지역주민들이 마을의 주체가 돼 마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백남준 집터에 있던 한옥을 사들인 뒤 리모델링을 거쳐 백남준 기념관을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백남준기념관의 도슨트투어와 마을까페의 바리스타는 모두 마을 부녀회에서 담당한다.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은 백남준기념관을 비롯해 다양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운영하고 이제 대표 축제로 자리한 '꼭대기장터' 등 주민참여프로그램을 기획해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을 처음 설계한 신 교수는 이 지역에 담긴 역사와 철학을 재생과 융화시키기 위해 사업 초기 2년간 매일 동네를 돌며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했다.

신 교수는 "동네 127개의 평상에서 들었던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이 지역을 담당하는 야쿠르트 아줌마 27명의 애환, 매일 언덕길을 오르는 우체부 3명의 사연이 마을 재생 아이디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지역에 이주노동자들과 미혼모들이 많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실제 서울시에 따르면 창신·숭인 지역에 거주중인 1만3831세대 가운데 1인 가구는 28%(3859가구), 다문화가정은 3.7%(517가구 1102명)다. 외국인 거주비율은 7.9%(2624명)로 서울 전체 평균(2.7%)의 3배에 달한다.

신 교수는 "창신, 숭인동은 과거부터 한국전쟁 후 피난민, 봉제공장을 찾은 이주노동자, 미혼모 등 사회 취약계층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며 "어린 자식을 집에 홀로 두고 공장에 나온 부모의 마음을 살피듯 이들에게 5분 생활권을 만들어주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마을 명물로 자리잡은 '산마루 놀이터'에도 이런 사연이 스몄다.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 만든 계단형 공터와 골무모양을 딴 놀이터, 도서관 등은 이제 다른 지역에서 원정 나들이를 올 정도로 인기다.

이날 본 도시재생은 고향을 잃고, 재건축에 상처받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였다. 서울시 도시재생 1호 사업인 창신·숭인동의 도전은 아직 현재 진행중이다.
 

디자이너들이 봉제를 배우러 왔다가 동네의 매력에 끌려 아예 눌러 앉아 창업을 하게 된 '데님연구소' 풍경.[사진=한지연 기자. 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