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대규모 시위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1960년대엔 반전(反戰) 시위가, 1970년대엔 반핵(反核) 시위가 세계를 뒤흔들었고 2011~2012년에는 세계화와 소득 불평등에 항의하는 월가 점령 시위가 뉴욕을 넘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시위가 새로운 것은 일일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브리제대에서 사회 변화와 갈등을 연구하는 잭클라인 반 스테켈렌베르그 교수는 "시위가 2009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면서 1960년대만큼 많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경제 불평등·정부 부패·정치적 자유 제약이 시위 촉발
그러나 최근 동시다발적 시위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배경이 있다는 게 BBC의 분석이다. 그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칠레의 지하철 요금 인상, 레바논의 왓츠앱 수수료 부과, 에콰도르의 연료 보조금 폐기 등은 얼핏 사소한 문제 같지만 심각한 불평등 속에서 민생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에겐 삶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 문제와 직결되는 게 정부의 부패다. 레바논 시위대는 국민이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동안 정치인들은 뇌물수수와 횡령을 통해 배를 채웠다고 항의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시민들은 만성적인 실업난과 공공서비스 부족, 기득권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면서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국가 순위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홍콩이 대표적이다. 홍콩 시위는 범죄 용의자의 중국 본토 송환을 거부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현재는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시위로 발전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지난 10월 대선에서 부정선거 논란 속에 4연임에 성공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시위대에 굴복해 14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풀뿌리 시위, 새로운 현상으로 봐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최근 시위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청년과 소셜미디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인이 된 청년들은 계속된 불황과 극단적 양극화로 전례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시위는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게 특징이다. 사법적·육체적 위험을 감수하는 시위는 고된 일상에 비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며,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행위를 할 때 연대는 쉽게 유행이 된다는 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시위가 조직·확산·지속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지도자 아래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시위를 펼쳤다면, 이제는 뚜렷한 조직자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모이는 풀뿌리 시위가 보편화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파올로 게르바우도 정치사회학 교수는 "뚜렷한 리더가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시위는 특정 계층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외된 전체 시민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시위가 가진 한계다. 블룸버그는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하는 대표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교섭할 상대도 없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문제로 시작된 시위가 머리가 여러 개인 괴물로 변하면서 복잡한 사회 문제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또 지도자 없는 시위는 민첩할 수 있으나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과거의 궤적은 구심점 없는 사회운동이 오랫동안 격렬하게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로서 이러한 항의 운동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시위를 이끄는 지도자도, 뚜렷한 메시지도, 이를 뒷받침할 든든한 자본도 없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혁명의 전조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결론이다. 그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현상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시위의 확산이 혁명적인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세프 셔리프 정치 애널리스트는 최근 가디언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시위 조직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시위를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라면서, "개인이 하나의 시스템에서 분리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단단한 기관과 네트워크로 구성된 전체 시스템을 깨부수는 것은 무척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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