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막자" 국내 인터넷 기업만 규제하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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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20-04-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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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역외적용 규정 도입 꺼냈지만 텔레그램에 실효성 있을지 의문

이번에도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n번방 사건의 주요 당사자인 해외 인터넷 기업은 정부의 규제를 피해갔다. 정부가 제2의 n번방을 막기 위해 강력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국내 인터넷 사업자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해외 인터넷 기업은 정부의 규제 밖에서 자유롭게 사업하고,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만 엄중한 규제를 적용받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23일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에는 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포와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인터넷 사업자가 발견시 바로 삭제해야 할 성범죄물을 불법촬영물(몰카)에서 불법촬영물, 불법편집물(딥페이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디지털 성범죄물 전반으로 확대한다. 이어 유통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의무를 웹하드 사업자에서 모든 인터넷 사업자로 확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거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되었지만, 이제 징벌적 과징금제를 도입해 인터넷 사업자의 사업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정보통신망법 상 불법정보 유통금지 의무를 해외 사업자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역외적용 규정 도입을 추진한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에선 이번 조치가 국내 인터넷 업계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조치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이달 초 성명을 내고 "보이스피싱의 책임이 통신사에 있지 않은 것처럼 SNS와 디지털 자산, 온라인 서비스가 인터넷상 범죄의 원인은 아니다. 일부 범죄자나 부정이용자의 행태에 근본적 원인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인터넷기업에 대한 규제만을 강화하게 될 경우 이용자에게 자신의 범죄행위를 플랫폼에 전가할 수 있도록 도피처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역외적용 규정이 도입된다고 해서 국내에 사업법인을 두지 않고 해외에서만 영업을 하는 텔레그램과 디스코드를 실효성있게 제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미국에 사업법인을 둔 디스코드는 한국 정부와 공조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텔레그램은 암호화 메신저임을 강조하며 미국, 러시아, 중국 정부 등의 협력 요청을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사업법인의 위치를 수시로 옮기고 데이터를 전 세계에 분산 저장하는 텔레그램을 제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지금처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성범죄물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 외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방심위의 성범죄물 삭제절차를 더욱 간소화해 '선 삭제 후 심의' 절차를 도입한다. 현재는 피해자의 신고 후 심의를 거쳐 사업자에게 삭제 요청을 해 성범죄물 삭제에 약 하루가 걸렸지만, 이제는 피의자의 신고 즉시 성범죄물 삭제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텔레그램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가 방심위의 삭제요청에 즉시 응답할지는 미지수다.
 
 

디지털성범죄근절 대책을 발언하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장.[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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