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서민의 살림살이가 악화한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일본도 가계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일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금년 1월 일본의 가계소득과 소비는 작년 동월에 비해 5%나 감소하였다. 인구 15만 미만의 소도시 이하 지역에서는 10%나 감소하여 대도시 0.3%, 중도시 3% 감소에 비해 그 영향이 심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더 적은 소도시 지역에서 소득과 소비지출이 더 크게 감소한 이유는 이들 지역의 고용이 중소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민간기업 종사자 중 중소기업 종사자 비율이 80% 미만인 지역은 도쿄(41%), 오사카(67%), 아이치(71%) 등 8개 도부현에 그쳤다고 한다. 코로나 영향에 취약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임금을 더 많이 깎았고 연쇄적으로 소비가 감소했다.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오키나와, 야마나시, 교토, 규슈 등 지역에서는 국내외 여행소비액이 감소하면서 가계소득과 소비가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일반서민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귀국한 이후에도 일본에 출장을 갈 기회마다 느끼는 한 가지 희한한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생활상이 마치 내가 일본을 떠나올 때 보았던 2000년대 초반에서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필자가 거주했던 도쿄 근교지역에서는 거리의 풍경이 약간은 변화되었지만 대체로 예전의 상점과 음식점들이 그대로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필자가 즐겨 갔던 파스타 가게에 가 보면 그때 일했던 요리사 아저씨와 서빙을 하던 청년이 이제는 나이든 노년의 요리사와 중년의 아저씨로 변했다는 것만이 변했을 뿐, 메뉴와 식탁의 배치도 그대로였다. 물론 파스타의 맛도 예전처럼 여전히 맛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면서 살아서 꿈틀대는 한국의 거리풍경과는 너무 대조적이고 인상적이다.
이러한 두 나라의 특징은 가계 살림살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의 일본 가계살림은 2000년대 초반에서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의 가계살림은 거리의 풍경이 변해가듯 빠른 변화를 보였다. 필자가 일본에 건너갔던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일본의 가계살림은 한국에 비해 매우 좋은 상태였다. 필자의 눈에는 풍요로운 그들의 생활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거기서 머물렀다. 마치 사진처럼 그렇게 그곳에 머물렀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년간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어제 분명히 이곳에 있었던 가게가 오늘은 사라지고 내일은 또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것이 일상화된,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우리나라 가계살림의 특징이었다. 이런 세월을 거쳐 과연 두 나라 가계살림은 현재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한국의 가구당 평균소득(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2019년)은 5924만원이고 이를 월별로 환산하면 약 494만원으로 나타났다. 각종 세금 및 사회보험 등을 차감한 처분가능소득은 4818만원, 월별로는 약 402만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일본의 1인 가구를 포함한 전체 가구의 실질수입(총무성, 가계조사, 2019년)은 월평균 약 53만엔이다. 2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득은 이보다 더 높은 약 61만엔 수준이었다. 한·일 간 가구소득에는 아직 월별로 100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20~30년 전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 양국의 금융자산과 부채를 보면 그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비교를 위해 양국의 국민경제계산 통계를 활용하였다. 먼저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2019년)은 3981조4000억원, 금융부채는 1879조원, 자산부채배율은 2.1배를 보였다. 이에 비해 일본가계의 금융자산은 1883조8000억엔, 금융부채는 340조5000억엔, 자산부채배율은 5.5배였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금융부채보다 훨씬 더 많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순자산은 약 2102조원인 데 비해 일본은 1543조엔으로 한국에 비해 약 7배나 많다. 그런데 지난 10~20년에 걸쳐 자산과 부채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를 보면 두 나라 사이의 차이가 뚜렷하다. 2008년부터 2019년 기간 동안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는 약 2배 이상 증가하였다. 반면 일본의 금융자산은 겨우 25% 증가하는 데 그쳤고, 금융부채는 오히려 약간 감소하였다. 우리나라 가구가 빚을 내면서도 소득이 증가하면서 자산도 동시에 증가한 데 비해, 일본 가구는 소득이 정체하는 가운데 소비를 억제하여 약간의 저축을 하고 또 일부 부채를 상환하는 경제활동을 해온 것이 눈에 보인다.
그렇다면 비금융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은 어떤 상황일까? 일본의 가계 총자산은 2000년 약 2905조엔에서 2019년 3033조엔으로 128조엔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본의 가구수가 5300여만 가구인 것을 감안하여 가구당 총자산을 계산하면 5687만엔 수준이다. 우리나라 화폐로는 약 6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기에서 가구당 부채 추정액 638만엔을 차감한 순자산은 약 5048만엔(약 5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한편 2020년 기준 한국의 가구당 자산(가계금융복지조사)은 4억4543만원이고 여기에서 부채 8256만원을 차감한 순자산은 약 3억6287만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의 가구당 순자산에 비해 1억여원 작은 규모이지만 지난 20여년에 걸쳐 한··일 양국의 가계 살림살이가 매우 비슷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양국의 가계 살림살이는 역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우리 경제가 앞으로도 저성장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임금수준도 계속 빠른 속도로 증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2000년 대비 2019년의 국내총생산을 보면, 한국은 2.9배 증가한 반면 일본은 1.04배 증가한 데 그쳤다는 것이 두 나라 가계살림 수렴의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계속 성장하는 경제였던 반면, 일본은 안정적이지만 성장이 멈춘 경제였다. 성장이 멈추면 임금도 정체된다. 임금이 정체되면 가계의 살림살이도 고정된다. 일본의 경험은 저성장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늘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느꼈던 일본을 어느새 추월할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월급을 계속 인상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생산성을 우리 경제가 확보할 수 있다는 조건이다. 청년의 구직난과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 그리고 고령인구의 증가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업의 지형도를 보면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우리는 늘 그렇고 그런 살림살이가 아니라 그래도 매년 더 두꺼워진 월급봉투와 매출액을 계속 받아볼 수 있을까? 어쩐지 다음 세대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經濟學硏究科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經濟學硏究科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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