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디지털 무역협정', 네트워크 구축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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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1-07-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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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7월 초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대비해 국영기업과 위생검역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위생검역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국영기업도 국내 외국기업을 차별하며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는 진작 고쳐야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CPTPP 가입을 서두르는 것은 현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이는 미국이 가까운 시일 안에 CPTPP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만 해도 미국이 늦지 않게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인 진보세력과 노동자계층이 자유무역에 부정적이어서 가까운 시일 내 복귀는 어렵다고 해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CPTPP 복귀가 필수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 행보를 보건대, 미국의 CPTPP 복귀는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먼저 미국의 CPTPP 복귀가 바이든 대통령이 중점을 두고 있는 미 국민의 통합에 부정적일 수 있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CPTPP를 통해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없으며, 미국 내수시장만 외국에 내줄 뿐”이라는 주장이 아직도 백인 중산층에 상당히 뿌리 박혀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전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민주당 내에서도 젊은 층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비판적이다. 내년 중간선거와 대통령 재임을 감안한다면 쉽사리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산층 노동자를 위한 통상을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는 마당에 잘못 각인된 CPTPP 추진은 무리수가 될 수 있다.

CPTPP를 추진한다고 해도 문제다. 미국이 캐나다 및 멕시코와 맺은 USMCA 수준이 CPTPP보다 높기 때문에 현 수준의 CPTPP가 상향 조정되지 않는 이상 미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노동과 환경이 해당된다. 그렇다고 현 CPTPP의 노동과 환경기준을 USMCA 수준으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의 노동과 환경기준을 맞추는 것도 버거워하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가 기준의 상향조정에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CPTPP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과정에서 기존 회원국의 이탈도 우려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 형성 전략이 거꾸로 동맹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CPTPP 말고 인도-퍼시픽이라는 또 다른 중국 견제수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CPTPP 복귀를 통해 기존 CPTPP 회원국의 분열을 가져오기보다 일본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 기존 CPTPP를 가지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러니 미국으로서는 일본 중심의 CPTPP와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퍼시픽을 발전시켜 상호 미흡한 점을 보완,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CPTPP에 복귀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일본시장은 미·일 FTA를 통해 대부분 보상받을 수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CPTPP보다 디지털 무역협정을 내세워 아시아로의 복귀를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디지털무역은 아직까지 이를 규율하는 국제규범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디지털무역에 대한 국제규범을 선점하고 세계 최고의 미국 인터넷 기업의 이해를 디지털 무역규범에 반영시키는 것은 미국의 핵심 관심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디지털 무역협정은 디지털무역의 새로운 국제표준을 결정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상품무역에 관한 것이 아니니 미국 내 자유무역 반대파의 저항도 훨씬 덜 할 것이다. 상품무역에 집착한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새로운 디지털 통상을 내세우면서 미래의 디지털무역을 선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미국 유권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개도국이 어려워하는 노동과 환경이 없고 관심이 큰 디지털 분야이니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무역협정의 외연 확대에도 용이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중국 동맹 형성도 그만큼 쉽다는 말이다.

여건도 좋은 편이다. 미·일 간은 물론 호주와 싱가포르 사이에도 이미 디지털 무역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3국 간 디지털 무역협정(DEPA)도 마련되어 있다. 미국이 들어가서 이들을 확대 발전시키면 된다. 과거 미국이 P4(칠레, 호주, 뉴질랜드, 브루나이) 협정에 들어가 TPP로 확대 발전시킨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여 깜짝 놀랄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CPTPP 복귀라는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디지털 무역협정을 매개로 인도-퍼시픽 경제권을 아우르는 새로운 디지털연합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 백악관도 이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CPTPP 가입보다 DEPA를 포함해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과 디지털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미국 중심의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빠른 인터넷 속도와 인프라에 기초하여 선진 디지털 대한민국을 모토로 빠르게 치고나갈 분야가 바로 디지털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업의 이해를 반영, 국제 디지털무역규범을 만드는 국가로서의 부상은 지금부터 준비하고 나서도 빠르지 않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미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얀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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